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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Tip] 프로야구 속 여성 DUGOUTV

dugout*** (dugout***)
2020.08.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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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구속 134km/h. 슬라이더와 커브를 구사한다. 구속이 오를 가능성도 적고 체구도 작다. 장점은 볼 회전수가 높다는 것뿐. 더군다나 이 선수는 여자다. 이 고등학생은 프로에 들어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힘들다. 천재 야구소녀로 불렸지만, 트라이아웃 신청서조차 제대로 내기 어려운 처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프로 선수가 됐다. 영화 ‘야구소녀’의 주인공 주수인의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여자 프로야구 선수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는 반문했다.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에디터 조예은 사진 이지현


#’금녀의 구역’ 그라운드


주수인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캐릭터가 아니다. 여성 야구선수로서 최초로 야구협회가 주관하는 공식전에 출장한 안향미 선수가 모티브다. 그는 리틀야구를 거쳐 경원중학교, 덕수고등학교(당시 덕수정보산업고) 야구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안향미가 하는 모든 것에 1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야구는 여자 운동경기로 인정받지 못하는 종목이었다. 이 때문에 경원중에서 1루수로 활약했던 그는 체육특기생 자격을 얻지 못했다. 여러 차례 탄원서를 제출한 끝에야 덕수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덕수고는 야구부가 있는 유일한 남녀공학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지금까지 유일한 여자 선수의 공식 경기 등판 기록이다. 마운드에서 그가 던진 공은 단 3개였다. 구속은 101, 105, 105km/h. 결과는 몸에 맞는 공이었다. 그리고 이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자책점 1점이 기록됐다. 이 등판으로 체육 특기생 자격을 얻었지만, 안향미에게 손을 내민 대학은 없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등 여러 구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프로의 문턱은 높았다. 미국 여자야구팀 워터베리 다이아몬즈에서 받은 입단 제의는 비자 문제로 취소됐다. 이후 일본 사회인 야구단 도쿄 드림윙스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은 한 그는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야구팀 ‘비밀리에’를 창단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여자야구팀이 생겨나며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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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미가 고교야구 1호 여자 선수라면 김라경은 대학야구 1호 여자 선수다. 최연소 여자야구 국가대표이자 에이스다. 최고 117km/h의 강속구와 좋은 타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계룡시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한 그는 한때 선수로 뛰지 못했다. 당시 리틀리그는 중학교 1학년까지만 선수로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 선수의 연령 제한이 완화된 뒤에야 선수로 뛸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리틀야구장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올해 서울대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새내기’가 된 김라경은 대학 리그에서 뛰는 최초의 여자 선수다.


메이저리그의 첫 여자 선수는 ‘야구의 여왕’ 리지 머피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모두 올스타로 뛰었고, 니그로리그에 출전한 첫 여자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17살에 세미프로팀에 입단했고, 1918년에는 팀을 옮겨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경기를 뛰었다. 특히 1922년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자선 경기에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 1루수로 출전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야구선수를 꼽자면 요시다 에리를 들 수 있다. ‘너클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요시다는 중학교까지 야구부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부상을 입고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나와 사회인 리그와 클럽팀에서 활약했다. 이때부터 너클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너클공주’로 불렸다. 그리고 2009년 고베 나인크루즈에 지명받으며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다음 해 미국 독립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여성 코치


선수뿐 아니라 여성 코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번 시즌 알리사 나켄 코치와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정식 여성 코치다. 정식 코치는 나켄뿐이지만, 마이너리그에는 지금도 여성 코치가 여럿 있다. 레이첼 발코벡 코치는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에 소속돼 있다. 시카고 컵스 루키리그에선 레이첼 폴든 코치가 활약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타격 코치다.


2014년 인턴사원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입사한 나켄 코치는 야구선수 출신이 아니다. 새크라멘토주립대 소프트볼팀에서 1루수로 뛰었고, 184경기 동안 타율 .304, 19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 심리학 학사와 스포츠 경영 석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이기도 하다. 따가운 시선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뛰었던 전 메이저리그 선수 오브리 허프는 본인의 SNS를 통해 "여자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야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외에도 잦은 구설을 일으킨 허프는 자신이 이끈 월드시리즈 우승 기념행사에서도 배제됐다.


이들 이전에는 저스틴 시걸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여성 코치다. 110km/h를 넘는 공을 던졌던 시걸은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009년엔 독립리그 브록톤 록스에서 1루 코치를 맡았다. 남자 프로리그에서 여성이 코치를 맡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2년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배팅볼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교육리그에 인스트럭터로 초청받았다. 스포츠심리학 박사이기도 한 시걸은 2017년 3월에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스라엘 대표팀 멘탈 코치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여자야구를 지원하고 있다.


#프런트 속 여성


나켄 코치와 같이 소프트볼 선수 출신으로 프런트가 되는 경우도 있다. NPB 오릭스 버팔로스의 이누이 에미 스카우트가 대표적인 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누이는 2010년부터 오릭스의 유소년팀 코치를 맡아왔다. 당시 지도한 학생 중 한 명이 지난 7월 5일 프로 첫 홈런을 때려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포수 유망주 쿠키 류헤이다. 이누이는 그동안 기른 인맥과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오릭스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 스카우트는 출범 80년이 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성 프런트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고위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에서 임은주 단장을 선임하며 첫 여성 단장이 등장했다. 그러나 열흘 만에 자진 사퇴하며 부사장으로 물러났다. 이후 키움에서 ‘옥중 경영’과 관련해 직무 정지 징계를 받았다. 임 전 부사장은 지금까지 구단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 프런트에서 여성이 오른 가장 높은 직책은 부단장이다. 지금까지 세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일레인 웨딩턴 스튜어드가 보스턴, 진 애프터맨이 양키스, 킴 응이 양키스와 LA 다저스에서 각각 부단장에 올랐다. 이 중 킴 응은 29살에 양키스 부단장 자리에 오르며 최연소 기록을 작성했다. 2001년 다저스로 옮긴 뒤에도 계속해서 부단장으로 근무했다. 2005년 다저스 단장 면접을 본 뒤로 시애틀 매리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단장 후보에도 올랐지만 계속 부단장에 머물렀다. 그는 2011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 둥지를 옮겨 운영 부문 수석 부사장을 맡고 있다. 2015년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엔 KBO에서 사상 첫 여성 팀장이 나왔다. 남정연 KBO 홍보팀장이다. 2001년 입사해 홍보팀에서만 18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 홍보와 마케팅에 치중돼 있던 여성 프런트의 업무 영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4월 김정화 경영혁신팀장을 영입해 구단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R&D팀에도 2명의 여성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경기력과 직결되는 데이터 분야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지난 스토브리그를 휩쓴 드라마 ‘스토브리그’에는 30대 여성 운영팀장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평가받은 설정이기도 하다. 선수 출신 직원이 많은 운영팀 특성상 여성 팀장이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화한다. 10년, 20년 뒤에는 여성 운영팀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오지 않을까. 시걸은 처음 코치를 지망했을 때 비웃음을 들었다. 아무도 여성 코치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은 코치가 됐다. 나켄 코치의 선임 소식을 들은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The wall is bro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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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112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2호(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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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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