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KIA 타이거즈의 마운드를 굳건하게 지켜왔던 양현종이 올 시즌 들어 부진에 빠졌다. 하지만 기아 팬들은 에이스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올해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들어온 애런 브룩스의 맹활약 때문이다. 개막 이전 많은 전문가들이 중하위권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던 기아는 7월 16일 현재 32승 27패를 기록하며 리그 4위에 올라있다. 이러한 기아의 선전은 탄탄한 투수진 덕분인데, 브룩스는 그 선봉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100% 해내고 있다. 브룩스의 활약 비결은 과연 무엇인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았다.

글 나상인 사진 KIA 타이거즈 자료 제공 스포츠데이터에볼루션,스탯티즈

브룩스는 7월 16일 현재 12경기에서 75이닝을 던지며 2.52의 평균자책점과 3.04의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브룩스의 sWAR(스탯티즈 기준 승리기여도)은 3.18에 달하는데, 이는 리그 선발 중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득점 지원이 적어서 아직 4승에 그치고 있긴 하지만 실점 억제 능력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탈KBO급’의 구속을 가진 브룩스이지만, 그의 성적을 자세히 뜯어보면 생각보다 탈삼진 능력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브룩스의 9이닝 당 탈삼진 수는 약 7.9개로, 외국인 투수치고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브룩스가 뛰어난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것은 적은 볼넷과 피홈런 때문인데,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브룩스는 지금까지 KBO 무대에서 75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3개의 홈런만을 허용했다.

#땅볼귀신 브룩스

야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내야 이기는 게임이다. 점수를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홈런을 치는 것이다. 따라서 투수의 입장에서는 홈런을 덜 맞을수록 좋다. 그런데 투수의 홈런/플라이볼 비율은 표본이 커질수록 리그 평균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홈런을 안 맞기 위해서는 플라이볼 자체를 덜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브룩스는 홈런이 많이 나오는 최근 야구 트렌드에 최적화된 투수이다.

2020년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땅볼아웃/뜬공아웃 비율 순위를 살펴보면, 브룩스가 3.00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위인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가 1.74인 것을 생각하면 브룩스의 압도적인 땅볼유도능력을 체감할 수 있다. 타구별 데이터가 제공되는 2014년 이후로 이 부문 최고 수치는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투수 리살베르토 보니야가 2018년에 기록한 2.14였다. 브룩스의 3.00은 아직 시즌이 절반 이상 남았음을 감안해도 경이로운 기록인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뜬공아웃 중에서 내야뜬공이 33.3%나 된다는 점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렇다 보니 타자들은 브룩스에게서 장타를 뽑아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월 16일 기준 브룩스의 피안타율은 .253인데, 피장타율은 .320밖에 되지 않는다.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순수장타율 .067이 얼마나 낮은 수치인지 체감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올 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53명의 타자 중 48~49위에 해당하는 타자들이 .067 수준의 순수장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브룩스 앞에서는 리그 정상급 거포도 소위 말하는 ‘똑딱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브룩스가 이토록 뛰어난 땅볼유도와 장타억제능력을 보이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 직구 회전수의 역설

브룩스의 주무기는 뭐니뭐니해도 직구다. 브룩스의 직구 구사 비율은 포심과 투심을 합쳐서 48.2%에 달한다. 브룩스 직구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구속인데, 포심은 149.9km/h, 투심은 148.1km/h를 기록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시절과 비교해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수치다.

그런데 직구의 위력이 구속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건 팬들에게 상식이 된지 오래다. 트래킹 데이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회전수와 무브먼트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회전수가 많을수록 구위가 좋다’는 게 새로운 상식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리그에서 가장 좋은 직구를 던지는 브룩스의 포심과 투심 분당 회전수는 각각 2179, 2047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팀 내에서만 따져도 문경찬(2408), 박준표(2393), 정해영(2388), 이민우(2310), 전상현(2290), 양현종(2283) 등이 모두 브룩스보다 높은 회전수의 직구를 던진다. 일반적으로 구속이 빨라질수록 회전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브룩스 직구의 회전력은 리그 평균 이하라고 볼 수 있다.

오버핸드/스리쿼터 투수가 던지는 직구에는 역회전이 걸려 있기에, RPM이 높을수록 마그누스 효과에 의해 중력 반대 방향으로 상승하는 무브먼트를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중력에 의해 덜 떨어진다) 타자 눈에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라이징 패스트볼’의 존재가 종종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브룩스의 직구는 오히려 낮은 회전수로 인해서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룩스 포심과 투심의 상승 무브먼트는 각각 23cm, 19cm인데,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이 수치가 30cm 중후반대를 기록한다. 다시 말하면, 브룩스의 직구는 타자가 150km의 직구로부터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덜 상승하고, 따라서 타자들은 번번이 공의 윗부분을 때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타자 저승사자

브룩스는 압도적인 신체조건(193cm)을 바탕으로 KBO리그 타자들에게 생소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공을 던진다. 2020시즌 브룩스의 릴리스 포인트는 마운드 지면에서 약 194cm 떨어진 위치에서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리그 우투수 중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게다가 브룩스는 마운드 중앙점에서 오른쪽으로 70cm 정도 치우친 위치에서 공을 던진다. 이 역시 리그에서 가장 극단적인 수치에 속한다. 이러한 릴리스 포인트와 리그에서 6번째로 높은 구종가치를 가진 슬라이더의 존재는 우타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우타자들은 올 시즌 브룩스를 상대로 .192/.233/.232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우타자 상대 피OPS .465는 규정이닝을 채운 리그 투수 중 3위다.

브룩스의 상대적인 약점은 좌타자다. 좌타자들은 브룩스를 상대로 142타석에서 .323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피안타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브룩스의 좌타자 상대 피출루율은 .360, 피장타율은 .423으로 리그 우투수의 좌타자 상대 평균 성적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타자를 상대로 보여주고 있는 저승사자 같은 모습에 다소 못 미칠 뿐, 그가 좌타자 상대로 특별히 약한 것은 아니다.

#불운을 지우는 실력

브룩스의 가장 큰 약점은 좌타자가 아니라 오히려 운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7월 16일 현재 브룩스는 12경기에 등판해 4승 3패를 기록 중이다.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것만 8번인데, 그중 승리를 챙긴 것은 3번밖에 되지 않았다. 팀 기록으로 보더라도 KIA는 브룩스 등판 경기에서 6승 6패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승패가 투수의 기량을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였던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이제 야구 팬들은 투수의 승패 기록보다 실점 억제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함을 알고 있다. 오히려 타선과 불펜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전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브룩스의 멘탈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가 순위표 상에서 멀찍이 도망친 지금, KIA 타이거즈가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것은 와일드카드전이나 준플레이오프 진출이다. 하지만 기아는 단기전에서 상위권 팀들이 두려워 할 만한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바로 리그 정상급의 선발진이다. 양현종-브룩스-드류 가뇽-임기영으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는 어떤 타선도 잠재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브룩스가 역대 최고의 땅볼 유도 능력과 우타자를 상대로 한 극강의 모습을 유지해서 KIA의 우승 도전을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보자.

▲ 더그아웃 매거진 112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