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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side The Park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광작가 DUGOUTV

dugout*** (dugout***)
2022.09.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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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oryteller


최근 매주 야구팬들을 찾아오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바로 ‘KBO리그 40주년 기념 40인의 레전드. 우선 4명의 최다득표자인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이 올스타전에 공개됐고, 그 이후로도 매주 네 명의 그리운 얼굴들이 공개되고 있다. 각 선수의 활약상과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마음속에 그 시절의 설렘과 그리움이 가득해지곤 한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페이지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들의 일러스트다. 선수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는 삽화들은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언뜻 보면 단순한 그림일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림이 담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엔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과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으니.


Photographer Mino Hwang Photo KBO Editor Mingy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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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그려내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해요. (8 16일 인터뷰)

스포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광작가라고 합니다. 그냥 광작가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웃음)


 

평소에 <더그아웃 매거진>을 접하거나 찾아본 적이 있나요?

.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고요. 사진이 되게 좋은 잡지라고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는 스포츠 잡지 사진이 다소 획일화돼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더그아웃 매거진>이 나오면서부터 점점 예술적으로 바뀌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옛날에는 잡지가 정보만 제공하는 매체였다면, 이제는 화보 중심으로 가는 데 있어서 선봉에 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되게 올바른 잡지고 항상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감이 좋은 잡지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곤 하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쉽게 이야기해서 스포츠 그림에 특화돼서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거의 제가 처음 시작했는데,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보니 이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일반 일러스트레이터보다는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기대치가 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단 등 스포츠 업계 쪽과 협업해 굿즈 제작 같은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최근 ‘KBO리그 40주년 기념 40인의 레전드들의 일러스트를 맡았어요. 기념비적인 이벤트인 만큼, 작업을 맡고 나서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연락을 받고 나서는 정말 좋았죠. KBO 쪽 일을 하고 싶던 게 좀 오래됐거든요. 베이징 올림픽 때 국가대표팀 로고를 디자인하고 난 이후로는 협업이 없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맡게 되면 생각보다 막 기쁘고 환희에 차기보다는 의외로 무덤덤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일을 맡았다는 기쁨보단 맡은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져요. 그때마다 내가 이 일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만큼은 성장했구나라는 뿌듯함도 들긴 하는데, 보통은 그런 감정조차도 느낄 여유가 잘 없긴 해요. 여러 사람을 만족시킬 결과물을 만들고, 마감 시한도 맞춰야 하니까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게 어떤 것이었나요?

일단은 결과물을 보실 팬분들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일러스트의 주인공인 선수분들이 보기에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림 한 장을 그리더라도 그분들의 조금 더 젊은 시절의 예쁜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레전드들의 옛날 자료를 찾다 보니 고화질의 사진을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 프로젝트가 과거의 장면을 복구하는 작업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최신 사진은 없지만, 제 그림을 통해 그 시절의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면서 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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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4명의 일러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솔직히 말해서 생각할 겨를이 잘 없어요. (웃음)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워낙 바쁘게 지내고 있거든요. 월요일에 공개되는 걸 보고 나면 바로 다음에 공개되는 분들 작업에 들어가야 해요. 물론 그 와중에도 반응이 좋으면 너무나도 기쁘죠. 팬분들도 그렇고 레전드 분들이 좋다고 해주시면 만족감도 들고요. 그런데 사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보다도 나쁜 반응이 없을 때가 더 좋아요. (웃음) 또 아직 남은 선수가 많잖아요. 40인이 다 공개되고 나서 40장의 그림을 쭉 모아놓으면 그때 정말로 만족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결과물이 공개되고 나서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피드백이 있었나요?

딱 하나를 뽑기는 힘들지만, 다행히 대부분 좋아해 주세요. 또 댓글을 읽다 보면 제 그림을 보고 옛날을 추억하는 분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이건 여담이기는 한데,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봤던 야구가 정말 재밌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기억하는 선동열 선수나 이종범 선수, 이승엽 선수는 정말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였어요. 특히 김재박 선수가 개구리 번트를 했을 때는 마치 전설 속의 신화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에 우리를 설레게 했던 영웅들을 상기할 수 있었는데, 팬분들도 비슷한 감상을 받으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현재까지 공개된 것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업물을 하나만 뽑아보자면요?

이승엽 선수요. 일단은 이승엽, 이종범, 선동열, 최동원 이렇게 최다득표자 네 분이 처음에 공개됐잖아요. 작업을 하다 보면 당시의 사진이나 자료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나머지 세 분에 비해 이승엽 선수는 활동 연대가 비교적 최근이기도 하고, 또 선택한 사진의 인상도 잘 나왔어요. 모든 결과물이 잘 나오긴 했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이승엽 선수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요. 또 다음 주에 공개될 김태균 선수도 잘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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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그려내듯


작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와 협업해서 코믹스 일러스트를 제작하고 있어요.

하나의 야구단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전에 다른 구단과도 컬래버레이션한 적이 있지만, 팀 전체를 담당한 건 처음이었죠.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삼성이 되게 멋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거였어요. 스타플레이어도 많고. 그리고 운이 좋게도 제가 작업을 맡은 첫해에 성적이 좋았잖아요. 또 작년에 진행했던 콜라보레이션이 성공적으로 끝난 덕에 올해는 선수분들도 작년보다 굉장히 협조를 잘해주세요. 그래서 지금까지 좋은 기억을 갖고 계속 작업을 하고 있어요.


선수단 전체를 맡다 보니 작업량이 많을 텐데,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가장 먼저 선수 파악을 하죠. 그다음은 삼성 구단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구단에서도 제가 삼성의 이미지를 잘 이해하길 바라기도 했고요. 그래서 구단 관계자분들이 저를 야구장에 많이 초대하셨어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를 쭉 돌아보게도 해주고, 더그아웃도 한번 내려가게 해주시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최대한 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시더라고요. 그 후에 첫 번째로 콘셉트를 잡을 때는 제가 제일 잘하는 방향으로 잡았고, 두 번째는 조금 방향을 바꿨어요. 살짝 중후한 느낌이 나도록 했는데, 다행히 팬분들의 반응이 워낙 좋았어요.


흡사 어벤져스 포스터가 연상되더라고요. 혹시 참고하거나 영감을 얻은 작품이 따로 있나요?

평소에 스포츠와 히어로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 코믹북 표지 콘셉트를 많이 참고하곤 했어요. 제목도 코믹북처럼 해놓기도 했고요. 또 최근에는 어벤져스 같은 히어로물이 워낙 유행이고 접근하기 쉽잖아요. 그래서 단체 컷을 그릴 때도 마치 어벤져스 포스터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한 것도 있습니다.


여러 인물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각 선수의 장면을 고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우선 멋있게 나온 사진이랑 각 선수의 시그니처 포즈가 나온 사진을 한 개씩 골라서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질문 주신 것처럼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일단 개개인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걸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하고, 그리고 이건 야구만의 특징인데, 플레이할 때 표정이 일그러지는 상황이 많아요. 일례로 옛날에 정민태 선수나 조계현 선수처럼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때 엄청 얼굴이 일그러지는 분들이 있어요. 또 삼성에서 구자욱 선수는 타격하는 순간에 볼에 바람을 불어놓는 특유의 표정이 있고요. 그래서 평소에 정말 잘생기고 멋있는 분인데, 찰나의 순간에 멋있는 장면을 찾아내기가 의외로 어려웠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각자의 특징과 잘 어울리는 순간을 골라내 그려내곤 하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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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기까지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무엇인가요?

일단 어렸을 때부터 그림은 열심히 그렸는데, 제가 어렸을 때 운동을 잘 안 했어요. 체형도 엄청 뚱뚱했고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접한 운동이 농구였어요. 잘하진 않았지만 되게 오랫동안 했는데, 그 덕에 살도 빠지고 성격도 바뀌고 농구 덕에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도 농구는 제게 집이나 고향 같은 존재예요.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농구에 관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이 일을 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맡은 건 언제였나요?

루키 더 바스켓이라는 농구 잡지사에 제 그림이 담긴 CD를 보낸 적이 있는데, 운 좋게 채택돼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회사에서도 지금까지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은 없는데, 한번 시켜보자라는 생각으로 제게 일을 맡겼던 건데, 그걸 계기로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그때 농구 쪽 기자들도 알게 되고, 그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일로 연결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농구 쪽 일을 쭉 하다가 어느덧 지금의 야구 분야 작업까지 맡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힘들었거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부분은 없었나요?

직업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고, 또 옛날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지금은 줄어들긴 했지만, 돈을 버는 과정에서 희생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관념이 강했어요. 그런 시선을 견디는 게 조금 힘들 때가 있었죠. 물론 주변에 저를 믿어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를 의심하는 시선을 뚫고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20대까지는 정말 한 푼도 못 벌었으니까요. 한 달 내내 작업해서 50만 원을 벌었는데,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그 과정이 마냥 좋았던 기억이 나요. 가끔 다른 사람한테 질투도 하면서 왜 나는 성공을 못 하지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 당시 하루하루가 외롭긴 했어도, 괴롭진 않았어요.


그렇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난 직후에 만든 작업물은 더욱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농구 잡지 루키’ 2002 9월호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잡지 내의 섹션별로 표지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그게 제 첫 작업이었고, 4장 작업하고 나서 10만 원 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저도, 회사도 이런 프로젝트가 처음이다 보니 서투른 게 많았어요. 그래서 잡지가 나오고 제 그림이 실린 걸 봤는데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별로인 거예요. 당시 편집장님도 계속 작업을 맡기는 건 고민을 해봐야겠다. 한 달만 더 기회를 주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날 밤부터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달 잡지에 그림을 실었는데,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걸 계기로 거의 10년을 연재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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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야구와도 인연을 맺었는데, 어떤 계기로 작업을 맡게 됐나요?

앞서 말한 대로 당시 국가대표팀 모자의 ‘K’ 글자를 제가 디자인했는데, 이게 후일담이 있어요. 원래는 2006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도 그랬고, 나이키에서 만든 딱딱한 디자인을 썼어요. 그러던 중에 대만에서 국가대표팀 원정 경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원정 팬들이 쓸 모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이키 로고를 함부로 인쇄해서 쓸 수가 없잖아요. 그때 팬분들 전용으로 디자인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지금의 ‘K’자가 탄생한 거예요. 그런데 그 모자가 구단 관계자들한테 마침 눈에 띄어 지금까지도 대표팀 공식 로고로 사용되고 있죠. , 그리고 로고 제작에 당시 사장님의 지분도 컸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저 혼자 만들었다고 하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웃음)


본인이 디자인한 로고를 달고 선수들이 활약하는 걸 보는 기분이 어때요?

초반에는 누가 안 알아주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그때 사장님과 같이 일하면서 만든 거긴 하지만, 정말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특히 이 로고를 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에는  K가 내 K!’라고 자랑도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집착은 버린 상태에요. 가끔 저희 아이한테 저거 아빠가 만든 거야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래도 로고는 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가 다른 분야의 작가와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건 제가 정의한 건 아닌데,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어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요. 그리고 거기에 누가 답변을 달았더라고요. “얼굴을 똑같이 그려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맞는 말이거든요. 얼굴을 다르게 그리면 사람들의 만족도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당사자조차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생겨요. 멋있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에요. 스포츠의 특성상 같은 유니폼을 입고 비슷한 포즈를 취하는 때가 많아서, 무조건 그 선수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게 그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일러스트는 의미가 없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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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제일 강하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제일 중요한 건 구단에 제안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여전히 구단에 제안하고 있고요. ‘내 그림이 이런데,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내는 거죠. 그다음에는 상대의 피드백을 받고, 또 고쳐서 다시 제안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기획 단계에서는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만약 회사 측에서 콘셉트를 다른 방향으로 교체해달라고 하면, 요구사항에 맞춰서 잘 바꿔주기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러한 협의의 과정이 전부라고 봐요. 사실 그림 그리는 건 30%밖에 안 되고, 나머지 70%는 다 제안하거나 사전 협의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이 과정을 절대 허투루 여겨서는 안 돼요. 설령 본인의 제안이 거절당했다고 하더라도,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또 제안해야 해요.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왕좌의 게임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맨 마지막 해에 왕을 정하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힘도, 권력도 아닌 스토리가 제일 강하다라고 얘기하거든요. 결국 역경과 극복 과정이 가장 많았던 사람이 왕으로 추대돼요. 사람들은 스토리에 열광하고 복종한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100% 공감이 됐어요. 그림 한 장을 그리더라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는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도 미술시장을 보면 특정 그림이 왜 좋은 그림인지는 잘 몰라도 왜 나쁜 그림인지는 확실히 알 거 같아요. 서사가 없는 그림은 나쁜 그림이에요.


스포츠의 특성상 역동적인 플레이 중에서 단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림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한 장면을 선정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얼굴이 잘 나왔으면 좋겠고요. (웃음) 그리고 그 선수만이 낼 수 있는 포즈가 있으면 좋죠. 이건 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도 연결돼요. 제가 어렸을 때 마이클 조던 선수를 보면서 자랐거든요. 조던이 자유투 라인 덩크(골대에서 4.5m 떨어진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올라 행하는 덩크 슛)를 하던 때였는데, 그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공중에서의 동작 자체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이게 예술이구나 싶었어요. 멋있게 보이려고 일부러 만들어낸 게 예술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경지에 이르려는 동작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하나의 장면을 고를 때는 그의 플레이에서 가장 대표될 만한 순간을 고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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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囊中之錐)


지금의 일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당시에는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라고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아닌 적도 많았고요. 처음에는 일하다 보면 성취감도 만끽하고 집에 가서 샴페인도 터뜨리면서 홀가분하게 술 한잔 마시는 순간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런 일이 잘 없어요. 작업 과정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을 어떻게든 털어내야 하고, 또 완성한 결과물을 보면 좀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도 들곤 해요. 게다가 프리랜서 특성상 한 프로젝트를 끝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다른 일이 들어오는 게 일상이에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런 일상이 정말 만족스러워요. 사소한 거에 기뻐하고 환희가 가득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이쪽 업계에서 바쁘면서도 고만고만하게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에요.


지금까지 수많은 작업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본인만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있는지 궁금해요.

돌이켜 보니까 제가 야구 서적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은 적이 많더라고요. 옛날에 야구에서 배우는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딱 한 구절만 기억이 나요. “3할을 치는 타자는 어디서든, 누구든 데려간다. 방어율이 좋은 투수는 버려지지 않는다라는 얘기였어요. 만약 본인이 정말로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된다면, 설령 어디에 있든 간에 찾아줄 사람은 있다는 거죠. 최근에 취업 시장을 보면 사회가 청년들에 기회를 많이 주지 않는다는 걸 느껴요. 하지만 진정으로 누군가 자신을 데려가 주길 원한다면, 본인 스스로 3할 타자가 돼야죠.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와 시대도 달라졌고,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려야만 나를 찾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이거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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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이전에도 해외 일을 가끔 하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야구로 치면 제가 메이저리그에 갈 정도의 그림을 그려야 갈 수 있는 거지, 어떤 발전이 없는 상황에서 나한테는 왜 미국에서 전화가 안 오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때마다 제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고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려고 해요.

 


앞으로 이 직업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무슨 일이든지 하나는 해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을 했을 때 돈을 적게 번다고 하더라도, 수입을 걱정하지 말고 일단은 조그마한 거라도 시작해야 해요. 정 안 되면 SNS에 자기의 그림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단계를 올리면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너한테 1억 줄 테니까 그림 그려봐라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하다못해 작은 야구 아카데미 강사 일러스트나 미술 학원 광고 전단지라도 그려봐야 해요. 그래야 실력도 늘고, 본인의 것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한테 알릴 수 있어요. SNS에 간단하게 일기 형식으로 만화를 올리는 방식으로라도 연습을 하다 보면, 충분히 좋은 기회가 올 거로 생각해요.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입니다. 본인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스포츠라고 느껴요. 농구나 배구는 한 선수의 활약이 팀 성적에 직결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하지만 야구는 MVP가 있다고 하더라도 팀은 질 수도 있어요. 또 평균자책점은 낮더라도 1승 투수에 그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렇게 보면 한없이 팀 스포츠라는 느낌이 드는데, 막상 투수와 야수 개개인의 능력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해요. 저는 그런 조화가 정말 재밌어요. ‘이라는 가치가 중요시되는 동시에 선수 개인이 빛날 수도 있는, 되게 특별한 스포츠예요. 게다가 타 종목과는 달리 야구는 다른 걸 하면서도 즐기는 게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일상 속에 늘 같이 있는 느낌이에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여지도 많고요. 요즘 제게 참 흥미로운 스포츠에요. 아직 연구해볼 게 많다고 느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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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인에게 일러스트란 무슨 의미인가요?

글쎄요 이제는 진짜로 일상이 됐어요. 고마운 마음도 크고요. 제가 잘하는 게 이거 하나 있어서 그걸 끝까지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결국은 그림 덕에 지금의 행복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고맙고 소중해요.


마지막으로 야구팬분들, 그리고 구독자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레전드 40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그림들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고, 가능한 많은 구단의 팬들과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리고 이건 제 욕심이기는 한데,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 있는 그래픽이나 아트워크 수준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런 상황이 와서 구단마다 재밌는 이미지들도 더 많아지고, 팬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도 나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저도 지금보다 더 재밌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테니까, 여러분들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야구에 낭만을 부여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스토리. 모 선수가 타 팀의 거액의 오퍼를 거절하고 원클럽맨으로 남았다거나, 독립리그 출신으로 육성선수로 입단해 1군 주전이 됐다거나 하는 스토리 말이다. 팬들은 이러한 서사에 열광하고 설레하며, 이러한 서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가 된다. 그렇기에 그림에 야구팬들의 추억을 담아내는 광작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의 일러스트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Illu-Storyteller’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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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13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7호 (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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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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