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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KBO 올스타전 행사가 열렸던 7월 15일과 16일, 잠실야구장 외부 팬 페스트존 한쪽에 낯선 경기장이 마련됐다. 바로 선수와 팬이 함께 즐기는 ‘베이스볼5’ 경기장이었다.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이벤트에 선수들과 팬들 모두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는데, 마치 어렸을 적 추억의 ‘주먹 야구’를 연상시키는 이 새로운 야구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더그아웃 팁’에서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해 줄 ‘베이스볼5’ 종목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0월 7일 작성)
에디터 김민규 사진 WBSC(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Play Everywhere
베이스볼5는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World Baseball Softball Confederation, 이하 WBSC)이 2017년에 고안한 야구의 개량 스포츠 중 하나다. 어디에서나 할 수 있을 만큼 간소하며,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종목의 기원이 야구인 만큼 기본적인 규칙은 야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이닝에 3명의 타자가 아웃을 당하면 공격과 수비가 바뀌며, 1루·2루·3루를 지나 홈 플레이트를 밟으면 득점이 인정된다는 것까지 같다.
하지만 간소화된 야구인 만큼, 경기장의 규격부터 상당 부분 축소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내·외야를 포함하는 페어 지역(Fair Territory)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는 18m이다. 또 페어 지역 안에는 한 변의 길이(인접 베이스 간 거리)가 13m인 내야가 있다. 야구의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가 18.44m라는 걸 생각한다면 베이스볼5의 경기장은 매우 작은 크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야구와 비교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바로 장비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볼, 티볼 등 야구를 변형하거나 개량한 각종 유사 종목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특징이다. 선수들은 어떠한 장비도 차지 않은 채 맨몸으로 경기에 임한다.
게다가 9명의 수비수, 1번부터 9번까지 이어지는 타순, 9이닝 등 숫자 9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야구와는 달리, 베이스볼5는 종목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규칙이 ‘5’라는 숫자에서 출발한다. 정규 이닝은 5이닝이며, 교체 인원을 제외하고는 경기에 출전하는 인원도 5명이다(후보선수는 3명까지 등록 가능). 반드시 ‘남녀 혼성팀’을 편성해야 하며, 경기에 출전하는 5명 내에도 한 성별을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경기에 출전하는 사람의 수가 다르니 포지션의 이름도 야구와는 사뭇 다르다. 야구의 내야수에 해당하는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는 같지만, 2루 베이스 뒤에서 수비하는 미드필더(Mid Fielder)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총 다섯 명의 내야수만이 경기장을 지킨다고 이해하면 된다.
#진행 방식
경기 개시 후 원정팀의 선공으로 1회 초가 시작된다. 공격팀에서는 사전에 발표한 1~5번 타자가 차례로 타석에 들어서서 공을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친 후 1루로 달려나간다. 타격이 이뤄진다면 수비팀은 타자가 타격한 공이 바운드가 되기 전에 잡거나, 바운드된 공을 잡아서 주자보다 먼저 베이스를 터치 혹은 주자를 태그하는 방식으로 아웃 카운트를 늘리면 된다. 3개의 아웃 카운트가 채워지면 공수가 바뀌며, 5회 말까지의 스코어를 기준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여기까지는 경기가 맨손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야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야구와는 달리 ‘공격수(타자)의 실책’으로 아웃이 선언될 수 있다. 우선 타자는 반드시 홈 플레이트 뒤에 있는 가로‧세로 3m 규격 정사각형의 타석(Batter’s Box) 안에서 타격해야 한다. 만약 공격 시 타석을 벗어나거나 타석의 라인을 밟으면 자동으로 아웃 처리된다.
그 외에도 타자가 친 공이 파울 지역(페어 지역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떨어지는 경우, 타자가 공을 타격하기 전에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 그리고 타자가 친 공이 펜스를 맞거나 넘어가지 않았을 때 그 공이 페어 지역 안에 떨어지지 않은 경우 타자는 수비와 상관없이 아웃이 된다.
#색다른 매력 포인트
이때 재밌는 것은, 공격 시 타자에게는 오직 ‘1구’의 기회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설령 한 번의 실수로 타구가 파울 지역에 날아가면 곧장 아웃이 된다. 모든 타자의 운명이 바로 결정되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흐름 속에 경기가 진행된다. 투구 수를 늘림으로써 상대 수비의 진을 빼놓는 광경은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용규놀이’의 주인공인 키움 히어로즈의 이용규는 베이스볼5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타자가 친 공의 첫 바운드가 홈 플레이트로부터 4.5m 이내(15세 이하 경기의 경우 3m) 거리에서 이뤄지거나, 바운드가 되지 않고 담장을 넘어가면 불인정 타격(Illegal Hitting)이 선언되어 이 역시 아웃이 된다. 의도적으로 타구를 매우 약하게 보내거나 바로 앞에서 공을 튀겨 어려운 바운드를 유도하는 전략이 불가능하며, 경기장이 작다는 점을 이용해서 홈런을 날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타자의 힘보다는 절묘한 기술과 스피드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스포츠인 셈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빠른 흐름 속에 진행되는 만큼 경기 시간 역시 야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다. 실제로 5이닝 단판 경기로 치러질 경우, 경기 개시 후 종료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고무 소재의 공을 사용하고, 필요한 장비가 아예 없는 터라 경기 중 부상 위험도 거의 없다. 여기에 선수들의 신체적 능력이 그렇게 부각되지 않는 종목이라 진입 장벽도 매우 낮다. 그렇기에 아직 야구라는 종목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베이스볼5에 먼저 입문한 후 야구를 접하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베이스볼5의 확대
WBSC는 이 개량 야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 특히 그들이 강조한 ‘빠르고(Fast), 어리며(Young), 역동적인(Dynamic)’이라는 표어에 맞춰, 베이스볼5는 전 세계의 유소년 스포츠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실제로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 하계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고, 2026년 다카르 청소년 하계올림픽부터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대만 등의 나라에서 베이스볼5를 자국 내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인다. 이미 국제화가 시작된 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orea Baseball Softball Association, 이하 KBSA) 역시 국내에서의 베이스볼5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지난 2018년 세종시에서 첫 대회가 열리며 약 150명이 참가하기도 했고, 2021년에는 KBSA와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주관하는 12세 이하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올해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벤트 경기를 진행한 것 또한 이러한 움직임과 비슷한 맥락으로 추진한 거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최근 KBO리그 도루왕 출신인 전 KT 위즈 이대형이 대한민국 베이스볼5 대표팀의 플레잉코치를 맡아 화제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신종길, 윤석민(타자), 최승준까지 전 KBO리그 선수 4명이 대표팀에 승선해, 베이스볼5가 본격적으로 야구팬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들 외에도 소프트볼·여자야구선수 출신의 장명화, 전대림, 김서현, 김소원이 합류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지난 8월 중순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22 베이스볼5 아시안컵’에 출전해 3위라는 쾌거를 이뤘다. 베이스볼5가 빠른 속도로 저변을 확대하는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경쟁력을 증명한 값진 성과였다.
#이들의 미래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의 선전으로 오는 11월 초에 열릴 ‘제1회 WBSC 베이스볼5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대회는 11월 7일부터 13일까지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되며,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12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아시안컵 1, 2위 팀인 대만과 일본과 함께 아시아 대륙 대표로 출전한다. 역사적인 첫 대회인 만큼 대표팀의 선전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WBSC는 장기적으로는 성인 하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까지 채택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청소년 올림픽이긴 해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건 IOC로부터 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므로,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성장을 거듭하고 국제적인 호응이 이어진다면, 야구가 빠진 자리를 베이스볼5가 대체할지도 모를 일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다시 빠진 상황에서, 우리가 베이스볼5에 주목해봐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는 이 새로운 야구가 아직도 살짝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이미 베이스볼5는 상당히 체계적인 규칙이 정립된 데에 이어, WBSC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대중화와 국제화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베이스볼5의 성장은 단순히 그들만의 성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세대가 야구라는 포맷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야구와 소프트볼의 저변 확대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겨울, 어색함을 털어버리고 이 신선한 개량 야구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 더그아웃 매거진 13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9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