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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Story] SSG 랜더스 박종훈 DUGOUTV

dugout*** (dugout***)
2023.05.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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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에 쉬운 항해는 없기에

그냥 잠수함에서 이제 스위치만 누르면 핵잠수함이 될 거라 장담했던 언더핸드 투수는, 2021시즌 김광현이 빠진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서는 듯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찾아온 부상. 마운드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한 마음을 숨기지 않던 모습에 팬들의 마음도 내려앉았다. 그렇게 수술과 긴 재활 끝에 다시 오른 무대.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위태위태할 때도 있지만, 깊고 어두컴컴한 바닷속을 헤매는 잠수함의 항해가 쉬울 리 없다. 때론 수면 위로 나와서 바깥 동태를 살필 때도, 때론 아주 깊게 잠수해서 누구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조금 길을 잃어도 괜찮다. 이 잠수함의 목적지는 누구보다 확실하기에, 반드시 도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는

반갑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에 <더그아웃 매거진>과 함께하게 됐어요. (4월 15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그때는 SK 와이번스였는데 지금은 SSG 랜더스의 박종훈입니다.

이번 시즌 첫 등판인 4월 7일 경기에서 6이닝 4k 무실점으로 시즌을 성공적으로 열었습니다.
준비한 대로 결과가 나왔어요. 물론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고, 마음 편하게 던지려고 했죠.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왔지만, 승을 거두진 못했어요. 아쉽진 않았나요?) 전혀요. 첫 경기부터 배부를 생각은 없었거든요. 모든 경기가 끝나고 시즌이 종료된 후의 결과가 더 중요하니까요.

당시 포수 이재원이 도루를 2개나 저지하며 큰 힘을 주기도 했어요.
도루가 제가 가진 약점 중 두 번째로 큰 약점이거든요. 그래서 보완하려고 계속 노력했고요. 그런 것들이 결과로 나와서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과거에는 2루타보단 볼넷이 낫지 않느냐는 말을 한 적도 있던데?) 아까 두 번째 약점이 도루라고 했는데 사실 첫 번째 약점이 볼넷이었거든요? 근데 방금 그 질문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그 말을 했다는 걸 까먹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볼넷에 대한 걱정을 많이 덜게 됐네요!

수술 후 첫 풀타임을 소화해야 하는 시즌이에요. 어떻게 올 시즌을 준비했나요?
아프지 않는 게 1번이었죠. 물론 당연한 거지만요. 그리고 도루를 허용하는 것과 컨트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훈련을 위주로 했습니다.

지난 시즌 얘기를 해볼게요. 21시즌 초반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지만, 5월 갑작스러운 팔꿈치 통증을 느끼며 마운드를 내려가야 했어요.
사실 전조는 시즌 초부터 있었어요. 근데 제가 숨기고 있었죠. 저한테는 21시즌이 꿈같은 시즌이었거든요. 너무나도 존경하는 김원형 감독님이 오셨고,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추)신수 형이 합류했잖아요. 한 게임이라도 더, 공 하나라도 더, 이런 식으로 욕심 아닌 욕심을 부렸어요. 그래서 공 하나하나를 아깝게 생각하면서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이 결정됐죠.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시즌이라 더 아쉬웠겠어요.
되게 여러 가지가 있는 해였어요. 대표팀에 나갈 기회도 있었고요. 팀도 1위를 달리고 있던 차에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 순간에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이런 생각을 엄청나게 했어요.

같은 선발 투수인 문승원도 함께 수술대에 올랐어요. 팀엔 굉장한 악재였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의지가 정말 크게 됐죠. 훈련하면서 승원이 형한테 배울 게 진짜 많았거든요. 하지만 승원이 형한테 “형도 왜 다치고 그러냐”라고 하긴 했어요. 왜 형까지 아프냐고. 지난 얘기니까 이제 와 말하자면, ‘우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그 해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몇 번 했거든요.

강화도에서 재활하면서 보여준 모습이 여러 후배에게 본보기가 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시간을 보낸 건가요?
우선 승원이 형이 워낙 성실한 사람이다 보니까 제가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쉬고 싶어도 승원이 형은 계속 운동하니까 따라서 하게 되죠. 강화도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진짜로 닭보다 먼저 일어난 게 승원이 형이었습니다. 저는 승원이 형이 기구 쾅쾅거리는 소리에 일어났어요. 그때가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였으니까, 승원이 형은 그전에 일어난 거죠.

오랜 재활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물론 동료, 선후배들도 큰 힘이 됐지만 1순위는 역시 가족이죠. 그래도 딸들은 아빠가 계속 집에 있으니까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긴 했어요. 그러면서도 첫째는 “아빠는 TV에 언제 나오냐”라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걸 들으니까 빨리 1군으로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자랑스러워하죠?) 아파트 주민들, 동네 사람들이 다 압니다. 딸이 친구들한테 다 얘기하고 다녀서.

그리고 다년 계약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너무나도 고마웠어요. 수술한 상황이었고, 아무리 수술이 잘 됐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구단에서 먼저 다년 계약을 하자고 했을 때 그것만큼 고마운 게 없었죠. 그때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날 바로 계약했습니다. 아내는 ‘다른 팀 갈 생각이 없으면 얼마를 주든 간에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어요.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이 금액에 정말 계약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인가 봐요?) 모든 결정은 아내가 합니다. 밖에서는 육식동물인 척하는데, 집에서는 초식동물이죠.

팬들 사이에선 두 토종 선발을 묶어 ‘문박대전’이란 표현을 쓰기도 해요. 알고 있나요?
옛날부터 알았죠. 하지만 저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승원이 형은 훨씬 더 큰 재능을 지닌 선수고요. 근데 거기에 노력까지 엄청나게 하죠. 저로선 묶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승원이 형은 지금도 너무 좋은 투수고, 앞으로 더 좋은 투수가 될 거라 확신해요. 저는 그 뒤를 따라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항로를 열다

이제는 원클럽맨을 향해 가고 있어요. 본인에게 SSG는 어떤 팀인가요?
제가 팔꿈치를 다쳤을 때 구단주님께 문자가 왔거든요? ‘이제껏 팀을 위해서 달린 만큼, 이제는 선수를 위해 팀이 움직일 때다’라고요. 아마 운동선수라면 모두가 느끼지 않을까요. 그 한마디가 이 팀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는 걸요. 다른 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구단주님의 관심이나 임원분들의 응원, 그런 말 한마디, 내 이름 기억해 주는 것 하나하나에 힘을 받거든요. (그런 관심이 부담되진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부담은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느껴야 하는 거니까요.

수술 전 까다로운 루틴으로 화제가 됐는데 현재도 유지 중인가요?
그럼요. 루틴을 안 하면 하루가 뭔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까먹는 일은 없나요?) 까먹을 만큼 엄청나게 까다롭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신발 신을 때 왼쪽부터 신는 거, 걸을 때 어느 발부터 시작하는 거, 출근길은 항상 똑같은걸요.

22시즌, 사실 좀 더 빠른 복귀가 예정돼 있었는데 7월로 밀렸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어려움이 있었다기보단, 너무 팔꿈치만 생각한 게 문제였죠. 되려 어깨가 아프더라고요. 팔꿈치보다 어깨에 이슈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 던지는 게 자꾸 멈춰지고, 미뤄지고 하다 보니 예상보다 늦어지게 됐죠.

그리고 7월 31일 마침내 KIA 타이거즈전에서 복귀전을 치렀죠.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리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도 무척 했어요. 조금 더 확실하게 준비해서 올라왔으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납니다.

8월 26일은 전의산의 실책으로 마운드를 빨리 내려가야 했어요. 근데도 전의산을 위로해 주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건 의산이의 실수 때문이라고 보지 않아요. 왜냐면 투수라는 건, 이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운드에 올라가야 하는 존재거든요. 팀 스포츠에서 같은 팀 동료가 실수했다고 뭐라고 하는 선수는 저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을 거예요. 더군다나 의산이는 저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고, 저는 막아야 할 걸 못 막은 거니까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의산이 덕분에 이기는 경기가 더 많습니다.

결국 한국시리즈에서는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낙점됐어요. 아쉽진 않았나요?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일단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도 감독님께 감사드렸죠. (오랜 기간 선발로 던졌는데 불펜 투수로 던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딱히 없었어요. 저는 항상 9회 중 1회가 문제거든요. 1회만 아니면 다 잘할 수 있어요. 그래서 혼자 3회, 4회부터 투수 코치님께 ‘저 몸 풀고 있을까요’ 물어보고 스트레칭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든 이기든 한 경기만 던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임했어요. 워낙 다른 선수들이 다 잘하니까요.

4차전에서 비록 팀은 패배했지만 8회 노아웃 2루 상황에 등판해 위기를 막았어요. 위기 상황을 이겨낸 비결이 있었다면?
재밌었어요. 그때는 이판사판으로 던졌다고 했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 나요. 그리고 저는 워낙 노아웃 2루 상황을 경험한 적이 많거든요. (웃음)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구단 유튜브에서 ‘정규시즌에 버스를 탔으니 한국시리즈에선 버스를 태워주겠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본인의 활약에 만족해요?
뭐, 버스도 버스 나름이니까요. 안전하게 운전하는 버스도 있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버스도 있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으니까 된 거죠.

6차전 우승 확정 후 오태곤이 떨어뜨린 우승 공을 주웠어요.
그걸 버리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뛰어나가고 있는데 태곤이가 공을 잡자마자 버리더라고요? 이따 내가 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멤버들이랑 환호하러 갔죠. 그리고 태곤이한테 ‘너 왜 공 버리냐?’라고 하려고 쳐다봤는데 태곤이가 뛰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껴안고 계속 뭐라고 했어요. 공을 버리면 어떡하냐고.

우승 후 베테랑들의 눈물이 화제가 됐는데 본인에게도 남다른 우승이었을 것 같아요. 눈물을 흘리진 않았나요?
저는 마냥 신난 상태였어요. 6차전 때 저는 1아웃만 잡고 내려갔거든요. 그때 저는 저 혼자 이미 우승한 상태였어요. 왜냐면 제 뒤에 (김)광현이 형이 올라올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이 타자만 막으면 우리 무조건 우승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우승이라고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프다기보단 뜻깊은 우승이었다고 봐요. 일단 우리 팀이 평균 나이가 있는 편이잖아요. 멋진 선배들과 함께 우승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그리고 신수 형이 태어나서 경험한 첫 우승이라며 우는 모습을 보며 놀랐어요. 우승 반지도 라커룸에 예쁘게 장식해 두고, 우승 마크도 조만간 차에 붙일 거라고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제가 말리려고요. 아무튼 그렇게 대단한 선수가 한국에 와서 우승했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승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느꼈어요.

코치로 함께했다가 다시 감독으로 만난 김원형 감독은 어떤 지도자라고 느끼나요?
선수에게 공감을 정말 잘해주시는 분이에요. 선수 때의 경험을 살려서 지도는 물론, 배려도 잘해주시고요. 어린 투수든 베테랑 투수든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십니다. 또 진짜 남자다우시거든요. 뱉은 말은 확실히 지키시고, 문제점이 있으면 딱딱 집어서 얘기해주시는데, 그걸 고쳐오면 칭찬도 확실하게 해주세요.

김원형 감독이 볼넷을 싫어하는 거로 유명한데, 염두에 두고 던지는 편인가요?
감독님도 인정하세요. ‘너는 볼넷 주는 투수야. 신경 쓰지 마’ 하세요. 원래는 저도 볼넷에 예민했는데 이제는 신경 안 쓰려고요. (이)재원이 형이 잡아주겠죠.

 

#길고 긴 항해

그리고 맞은 23시즌, 사실 시범경기에서는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였어요. 스스로 불안하진 않았나요?
불안감은 없었는데 올해 이상한 마가 끼었는지 1회가 계속 흔들리는 걸 보완하고 싶어요. 1회만 지나면 다 괜찮아요. (사실 여러 선발 투수가 1회를 어려워하잖아요?) 전 유독 더 심하다고 느껴요. 지금 프로 몇 년 차인데. (한숨) 하지만 앞으로는 편하게 던지겠습니다.

올해의 목표가 어떻게 되나요?
우승이죠. 제 개인 성적은 두 번째, 세 번째가 돼도 상관없어요.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위치에서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느새 프로 14년 차를 맞이하면서 팀 내 고참이자 베테랑이 됐어요. 본인은 어떤 위치에 서 있다고 느끼고 있나요?
일단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게, 후배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싫어요. 저는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거든요. 원래는 7살 차이를 기준으로 선배님과 형이 나눠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다 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강민이 형도 자기한테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요. 신수 형은 애초에 선배님 소리를 듣기 싫어하고요. (노)경은이 형도 마찬가지고요. 강화도에서 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애들은 뭘 안 사줬어요. (웃음) 저는 아직 중간이에요. 어릴 때부터 저와 함께했던 선배들이 아직 그대로 있거든요. 투수의 중심은 광현이 형, 타자의 중심은 (최)정이 형이 여전히 건재하고요. 그 형들이랑 앞으로도 세대를 같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형들이 끝까지 계속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마흔 살까지, 마흔 살을 넘어서도 야구를 하고 싶거든요. (김강민은 50살까지도 할 것 같죠?) 강민이 형이요? 그 형은 가만 놔두면 진짜 50살까지 할 겁니다. 구단에서 코치를 하라고 제의하지 않는 이상 계속할 수 있다고 봐요. 신수 형, 경은이 형, (고)효준이 형 모두요. 그만둘 사람이 아예 안 보여요.

 

투수가 주장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특유의 밝은 성격과 리더십으로 주장을 해봐도 좋겠다는 팬들의 의견도 있어요.
제가요? 제가 주장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2연패 하면 다 바지 올리게 하고(‘농군 패션’이라고 불리는 하이 삭스 패션), 삭발시킬 거거든요. 전 스스로 인정하는 꼰대라서요. 그래도 아직은 제가 중간 나이다 보니까 먼 이야기라고 봐요. 다른 팀에 가면 고참인데, 여기선 아직 어리거든요. (그래도 할 기회가 온다면?) 구단에서 제의해 준다면 솔직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저도 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거고, 제가 만들고 싶은 팀의 모습도 있을 테니까요. 근데 이거 인터뷰 나가면 애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너 주장하면 안 된다고. (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야구선수 박종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 매력이요? 뭐가 있을까요… (고민) 팬분들이 희로애락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선수? 화가 크게 났다가 또 좋았다가 또 화가 크게 났다가….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말할 것도 없죠. (이)로운이랑 (송)영진이요. 특히 영진이는 스프링 캠프 때부터 좋게 본 게 너무 많아서 제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송영진과 이야기도 자주 나누나요?) 영진이가 욕심이 있어요. 야구에 대한 열정도 엄청나고, 또 섬세하고요. 좋은 건 다 갖고 있어요. 그 나이에 갖기 힘든 좋은 모습들을 봤거든요. 저희가 세대의 변화를 계속 느끼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릴 때 저희는 선배에게 물어보는 걸 무서워했어요. 근데 요즘 친구들은 서슴없이 와서 물어보거든요. 그게 되게 좋아 보이고요. 영진이가 그래요. 생각이 깊고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저도 더 챙겨주고 싶고. (MZ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나요?) 자주 있긴 한데. 가끔 노이즈 캔슬링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긴 한데요. (웃음) 저는 후배들이 좀 어려워하는 선배거든요. 아까 말한 것처럼 꼰대 기질이 있어서. 근데 영진이는 어려워하면서도 잘하고 싶어서 다가오려고 노력하는 게 좋게 보이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옆에 있는 로운이도 더 자극받아서 열심히 하더라고요. 둘의 시너지가 앞으로 더 빛날 거라고 봅니다.

얼마 전 구단 유튜브에서 시구를 잘 가르쳐주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훗날 코치로서도 잘 해낼 것 같다는 반응도 있어요. 코치에 대한 욕심도 있는지 궁금해요.
지도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 프로 생활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계단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가끔 언더핸드 투수가 가르칠 수 있냐고 하거든요? 근데 야구는 다 똑같아요. 프로 생활을 그만두면 지도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아, 근데 아직 그만둔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한참 멀었거든요. (미신을 믿는 편인가 봐요?) 상당히 믿죠. 루틴 봐요. 징크스가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 남은 프로야구 인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요?
강민이 형이나, 정이 형, 광현이 형처럼 끝까지 꾸준하게 정말 잘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요. 하지만 냉정하게 그렇게 되긴 어렵겠죠. 저는 끝까지 헌신한 선수, 팀을 위해서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박종훈만큼은 팀에 없었으면 안 됐다’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팬들께 한마디 부탁해요!
제가 올해 시작하면서 불안한 모습, 좋은 모습을 다 보여드렸는데 이게 야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정말 노력 많이 하고 있으니까 야구장에 더 찾아오셔서 함께 숨 쉬고, 함께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45호 (5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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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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