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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둥글다
‘공은 둥글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언뜻 단순한 명제로 보이는 이 문장 속엔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 경기 역시 예측하기 어렵단 뜻이 숨어있다. 흔히 축구에서 쓰인다지만 야구 또한 이 명언이 잘 어울리는 스포츠가 아닐까.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 왕조 포수이자, 2000년대까지 약팀이던 홍익대학교 야구부를 단숨에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수장 장채근 감독도 여전히 말한다. ‘야구는 모른다’라고. 30년 넘게 야구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어렵다지만 홍익대의 야구는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정답은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은 언젠가 빛을 발한다는 걸 그들의 역사에서 수없이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공은 둥글다는 사실도 이들에겐 불안요소가 아니라 미래를 더 기대하게끔 하는 요소다.
에디터 김나현 사진 KUBF(한국대학야구연맹), 롯데 자이언츠, SSG 랜더스, 두산 베어스
#여전히 목마르다
홍익대 야구부는 1987년 창단 이래로 큰 주목을 받는 팀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에 접어들며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안방마님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던 ‘KBO리그 대표 포수’ 장채근 감독이 부임한 지 2년 만이었다. KBA 회장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춘계리그와 대통령기까지 두 번의 준우승을 거두며 순식간에 강팀의 자리에 올랐고, 그다음 해 하계리그에선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에 이르렀다. 홍익대의 리그 첫 우승이자, 2004년 대통령기 토너먼트 우승 이후 10년 만의 일이었다.
2016년엔 3년 연속 하계리그 제패와 대통령기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신인드래프트에서 3명이나 프로 지명의 꿈을 이루는 등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듬해 2017년에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왕좌에 오르며 상승세의 정점을 찍었다. 장채근 감독이 ‘홍익대학교 야구부인 것에 자긍심을 가지라’며 선수들에게 하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비록 지난해는 전국대회 토너먼트에서 조기 탈락하며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해일 뿐, 홍익대는 이제 곧 시작할 22시즌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장 감독은 올해의 목표를 묻는 말에 주저 없이 우승이라고 답했다. 많은 영광을 맛봤으나 아직 승리에 목마른 홍익대학교. 또다시 정상을 노리는 그들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홍익을 넘어
홍익대학교 야구부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한창 좋은 성과를 내기 이전에도 여러 출신 선수가 KBO리그에 이름을 새겼다. 연타석 만루홈런으로 유명한 정경배, 준수한 타격과 뛰어난 프레이밍을 선보였던 차일목, 언더핸드의 정석 김대우 등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장채근 감독의 지도하에 쑥쑥 성장해 프로에 입성한 네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구승민
출생 1990.06.12 신체조건 182cm/86kg 학번 09학번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1시즌 성적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이닝 |
사사구 |
탈삼진 |
4.33 |
1.25 |
68 |
6 |
5 |
20 |
0 |
62.1 |
35 |
65 |
지난 3시즌 성적
시즌 |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이닝 |
사사구 |
탈삼진 |
2020 |
3.58 |
1.09 |
57 |
5 |
2 |
20 |
0 |
60.1 |
26 |
58 |
2019 |
6.25 |
1.83 |
41 |
1 |
4 |
6 |
2 |
36 |
24 |
43 |
2018 |
3.67 |
1.26 |
64 |
7 |
4 |
14 |
0 |
73.2 |
34 |
75 |
최고 구속 153km/h의 빠른 볼을 던지는 구승민은 롯데에서 가장 믿을만한 필승조 요원으로 활약 중이다. 2020시즌 자이언츠 우완투수 최초로 20홀드를 기록했고, 2021시즌에도 연이어 20홀드를 달성하며 팀을 대표하는 불펜으로 자리 잡았다. 구승민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장채근 감독의 입에서 바로 착한 선수로 기억한다는 칭찬이 나왔다. 훌륭한 인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훈련 때마다 충실히 임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엔 내야수였으나 대학교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했고, 현재는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 중이다.
2. 이흥련
출생 1989.05.16 신체조건 184cm/85kg 학번 09학번 소속팀 SSG 랜더스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2021시즌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32 |
.236 |
127 |
30 |
3 |
14 |
15 |
.326 |
.331 |
.657 |
지난 3년 성적
시즌 |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20 |
49 |
.240 |
125 |
30 |
3 |
20 |
6 |
.273 |
.320 |
.593 |
2019 |
27 |
.310 |
42 |
13 |
0 |
5 |
3 |
.341 |
.405 |
.746 |
2016 |
85 |
.260 |
150 |
39 |
6 |
25 |
20 |
.315 |
.453 |
.769 |
다음으로 소개할 이는 SSG의 안방마님 이흥련이다.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포수 최대어로 꼽히며 공격과 수비가 모두 탄탄한 자원으로 주목받았다. 장 감독에게 이흥련은 굉장히 인상 깊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장 감독의 부임 당시 4학년 재학 중이던 그는 곧바로 감독실에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집이 어려워서 프로를 꼭 가야 합니다”라고. 장 감독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무조건 갈 수 있다고 단언했고, 이흥련은 힘든 훈련을 모두 소화하며 당당히 프로에 입성했다. 열정은 물론 뛰어난 센스와 안정감으로 현재 SSG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최용제
출생 1991.07.12 신체조건 182cm/90kg 학번 10학번 소속팀 두산 베어스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2021시즌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79 |
.279 |
104 |
29 |
0 |
15 |
7 |
.356 |
.308 |
.664 |
지난 2년 성적
시즌 |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20 |
28 |
.295 |
44 |
13 |
0 |
9 |
9 |
.354 |
.341 |
.695 |
2016 |
4 |
.222 |
9 |
2 |
0 |
1 |
0 |
.300 |
.222 |
.522 |
최용제는 2014년 두산의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 이후 약 2년간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2016시즌 퓨처스리그에서 3할 5푼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처음 각인시켰다. 군 복무 이후 2020시즌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지난해는 대타 요원으로서 필요할 때 한 방을 해주는 조커 카드로 눈도장을 찍었다. 장 감독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착실한 모습을 보여주던 제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덧붙여 신고 선수로 입단했어도 언젠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고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4. 나원탁
출생 1994.08.20 신체조건 183cm/100kg 학번 13학번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1시즌 성적 (투수)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이닝 |
사사구 |
탈삼진 |
13.50 |
2.00 |
2 |
0 |
0 |
0 |
0 |
2 |
3 |
3 |
지난 2년 성적 (타자)
시즌 |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18 |
20 |
.125 |
24 |
3 |
0 |
1 |
0 |
.125 |
.125 |
.250 |
2017 |
12 |
.217 |
23 |
5 |
0 |
0 |
2 |
.217 |
.261 |
.478 |
마지막 주인공 나원탁은 독특한 이력의 보유자다. 대학 시절 장 감독의 눈에 들어 1학년 때부터 주전 포수로 활약했고, 홍익대에서 무려 네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프로에서도 향후 수준급 포수로 성장할 재목으로 기대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잠재력을 미처 다 발휘하지 못한 채 2021시즌 외야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최고 구속 148km/h의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새롭게 투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장 감독은 분명 포수로서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쉽다는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프로로서 필요한 능력은 모두 갖췄다고 평가하며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
#장채근 감독과 일문일답
홍익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지 햇수로 13년이 됐다. 올 시즌을 맞는 소감이 궁금하다.
항상 해오던 거라 올해라고 특별한 건 없다. 그저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에 임해서 올해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에는 좀 아쉽게 끝났다. 내가 부임한 이후 가장 부진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연습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부지런히 준비했으니 기대하고 있다.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다.
홍익대는 훈련량이 엄청난 것으로 유명하다. 훈련 방식이 어떻게 되는가?
예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내가 아무리 선수들에게 강요해도 본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약 2년 전부터 훈련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맡겼다. 그 변화 과정에 있어 작년까지는 과도기였다고 본다. 올해는 이 방식이 자리를 잡아 팀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2011년에 부임한 후 1년 만에 준우승 2번을 거뒀고, 그다음 해에는 바로 우승까지 해냈다. 비결이 있다면?
앞에서 말한 대로 연습량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악랄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새벽 1시, 2시까지 방망이를 잡게 했고, 선수들의 머리도 전부 짧게 깎았다. 지금은 그렇게 못 시키지 않나. 인식도 변했고, 나도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야구는 답이 없다’라는 철학이 유명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제일 답이 없는 게 야구다. 정석대로 가는 게 없기 때문이다.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일도 있고, 이상하게 또글또글 굴러가서 안타가 되는 경우도 많다. 오랫동안 야구에 몸담고 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현역 시절 뛰어났던 포수로 회자하고, 포수를 잘 키우기로도 유명하다.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포수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 해야 할 게 많은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공만 잘 던지고 방망이만 잘 친다고 될 수 없다. 포수들에겐 특히 경기 중에 발생하는 모든 요소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항상 말한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결국 끊임없이 연습하고 공부해야 하는 자리다.
올해부터 얼리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된다. 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단호하게 말해서 지금 대학야구가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 대학 무대가 있기에 어린 학생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고등학생 때 실패해도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엘리트 야구가 힘을 못 쓰게 되고 있다. 아무것도 지원받는 게 없어서 점점 학교에서도 야구부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이다. 신인드래프트에서 대학 출신들을 지명한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중 엘리트 체육 지원을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 꼭 신경 써줬으면 한다.
말한 것처럼 점점 대학야구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기반이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은 프로야구가 덩치만 커져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일단 대학 경기가 방송에 나가지 않는 것부터가 아쉽다. 모든 게임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경기들은 방송사에서 중계해줬으면 한다. 또한 야구인들도 목소리를 내면서 대학야구를 살릴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자원들을 배출할 수 있고, 다들 열정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다면?
특별히 한 명을 꼽을 수 없다. 우리 제자들도 <더그아웃 매거진>을 즐겨보는 거로 안다.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까. 한 팀이 돼 모두가 잘하고 있다.
어떤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사실 지금 학생들은 내게 좋은 감정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내가 무섭게 지도하는 게 본인을 위한 거라고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중에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면 내가 제일 많이 생각난다고 한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나중에라도 떠오르는 지도자로 남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홍익대 선수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신인드래프트가 끝나고 지명받지 못해 눈물 흘리는 이들을 많이 봤지만, 그 마음가짐이 오래가지 못한다. 그때의 심정을 잊지 않고 열정적으로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대학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왔으니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졸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3호 (5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