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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다. 음주운전이라는 잠재적 살인행위를 저질러도, 역병의 시대에 대여섯 명이 모여 술판을 벌여도 ‘야구선수’이기 때문에 본업에 충실하면 그게 ‘보답’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돈, 그것도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하는 야구가 어떻게 사회적 물의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해 보수에 상응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것일 뿐, 팬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난 도쿄올림픽 이후로는 KBO리그 선수 연봉이 거품이란 말도 나온다. 애초에 잘못을 상쇄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지만, 본업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팬들은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8월 14일 작성)
에디터 황유빈 사진 두산 베어스
#당신에게 야구는 무엇인지
야구계에 마가 꼈나 싶을 정도다. 하루가 멀다고 사건이 터진다. 시작은 지난 7월 5일 밤 발생한 NC 다이노스의 일명 ‘원정 숙소 술판 사태’다. 잠실 원정 경기를 위해 투숙한 호텔에서 박석민, 이명기, 권희동, 박민우가 외부인 여성 2명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모임은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당일에는 경기도 있었다. 이들의 범법 행위는 동석한 여성이 8일 박석민에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전하면서 알려졌다. 이처럼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명령을 위반한 것으로도 모자라, 해당 선수들은 동선을 허위진술 하기까지 했다.
위의 파문으로 영영 묻힐 수도 있었던 행적이 일파만파 드러났다. 앞선 4일 한화 이글스 주현상, 윤대경, 키움 히어로즈 한현희, 안우진 또한 같은 여성들과 자리를 함께했던 것. 역학조사에서는 한화 선수들이 자리를 뜬 뒤 키움 선수들이 합석한 것이라 진술했지만, 이 역시 거짓으로 밝혀졌다. 숙소 무단이탈, 방역 수칙 위반, 허위진술 그리고 프로 의식 망각. 이 모든 것을 저지를 만큼 그들에게 중요했던 건 무엇일까. 구단 하나에서 그치지 않은 일련의 문제는 본 호텔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사실상 표면화되지만 않았지, 비단 이번 일뿐이겠는가.
이후 7월 10일 두산 베어스 선수 2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 사실을 추가로 알렸고,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의아한 일이 벌어졌다. 4일 두산과 게임을 치렀던 KIA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가 11일 경기 직전 밀접 접촉자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한 번도 1군에 등록된 적 없는 신인 포수가 당일 콜업과 동시에 선발로 투입된 것. 외려 이 사달을 빚은 NC와 두산은 잇달아 경기가 취소됐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주전 선수들을 말소해가면서 경기를 강행해야 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어느 구단은 선수 공백으로 팀 운용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해 리그 중단의 상황을 종용했으니 팬들의 원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KBO의 모호한 대처에 대한 분노로 “신분제 리그”라는 냉소적인 발언까지 등장했다.
#현실에도 삼진아웃이 있다면
올 시즌 시작 전 KBO는 퓨처스리그 선수단을 총동원하는 한이 있어도 리그 중단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의 2021 코로나19 매뉴얼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현실 적용의 어려움을 고려해 “엔트리 등록 미달 등 구단 운영이 불가하거나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긴급 실행위원회 및 이사회 요청을 통해 리그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라는 내용의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이에 따라 당초 선언했던 내용대로만 대응할 수 없었음은 이해한다. 물론 금번 리그 중단 사안은 특정 구단에 편향되는 판단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KBO의 형평성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눈에 밟히는 것은 몇몇 구단의 이기적인 태도다. 팬데믹 속에서도 지금껏 리그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건 각 팀이 저마다 크고 작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상 운영을 위해 고군분투한 덕이다. 작년으로 거슬러 가자면 한화의 경우, 2군에 있던 신정락의 확진으로 퓨처스 선수단 전체가 격리 조치를 당해 한 달 동안 1군 선수로만 경기를 운영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6월 래리 서튼 감독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대행 체제로 팀을 이끌었으며, SSG 랜더스는 7월 12일 시즌 중단이 결정되기 전까지 8일 연속 게임을 치른 바 있다.
그 가운데서 NC, 두산이 선수가 없어 엔트리를 구성할 수 없다며 직간접적으로 리그 중단에 찬성을 표했음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여기에 덧붙여 KT 위즈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조선 박재호 기자의 취재에서 시즌 중단에 대한 소신을 묻자, “팬들이 2군 선수단 만나서 경기하는 거 보고 싶겠나”, “리그 질 자체가 떨어지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며 찬성의 이유를 밝혔다. 결국엔 퓨처스리그 선수들의 ‘수준’을 문제로 걸고넘어진 것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경기 당일 밤새 음주를 하고 출전해도 멀티 히트를 기록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KBO리그 프로 선수들의 수준은 안녕하냐고. 이들의 수준을 더 적나라하게 논하려거든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면 된다. 야구 종목에 출전한 6개국 중 현역 프로 선수들로만 엔트리를 구성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단 2팀이다.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Double-Elimination Tournament), 우스갯소리로 ‘좀비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패자부활전 시스템에서도 결과는 노메달. 안타깝지만 이는 수준 차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현실은 이러한데 여전히 1군 선수, 주전급 선수라고 눈감아주며 싸고도는 것만이 구단의 최선일까. 단적으로 얘기해서 그들의 플레이에는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본인은 돌아오면 언제든지 뛸 자리가 있는 주전이고,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니까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프로 의식이 결여된 행위들을 자행해도, 웬만해서는 선수 생활의 입지가 흔들릴 만큼의 페널티가 없기 때문에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어쩌다 중징계를 받아 시즌 아웃이 되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듬해 복귀하는 모습은 3개월 자숙하다 돌아오는 유튜버의 그것과 같이 공감성 수치가 느껴질 정도다.
야구에서 타자는 스트라이크 3번이면 타석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섣부른 스윙을 할 수 없다. 1군 무대를 몇 번 나서본 적 없거나 혹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다지도 절실할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술이나 마시고 설렁설렁해도 되는 당연함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프로 선수라면 그라운드에서 ‘피곤하다’라는 말조차 함부로 뱉는 것을 삼가야 한다. 스스로 느끼기에 원활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잠시 자리를 비켜줄 줄도 알아야 한다. 응당 국내 최고 인기를 누리는 프로 스포츠 무대라면 진지한 마음가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해야 한다는 걸 구단 차원에서 거듭 강조해야 옳다.
#야구 권하는 사회를 고대하며
현재가 영원할 거라는 착각과 오만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지금껏 야구만 잘하면 덮을 수 있는 과오였기에 앞으로도 그럴 거란 착각. 팬들 눈은 적당히 속여 가며 야구에 대한 진심만 읊어주면 될 거라는 오만. 순전히 그 생각으로 자신의 허물을 씻고자 야구를 앞세워 애꿎은 사람들의 진심까지 더럽힌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야구는 잘못이 없다. 그래서 더 통탄스럽다.
원정 숙소에서 뭘 하느냐는 질문에 “잔다”, “도착하면 10시라 힘들어서 뭘 할 수가 없다”, “책을 본다” 등의 대답은 카메라 앞에서 대충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었다. 꼭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돌아온 진실이 시즌 중에, 그것도 전염병 속에서 벌인 ‘술판’이었다는 데에서 기만이고 배신이 되는 것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고, 대마초 성분을 반입하려다 적발되는 아둔함에 대해선 더는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한편에선 이제 만 23살의 한 어린 선수가 KBO리그의 미래를 걱정한다. 요즘 젊은 층과 어린이들 사이에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 자신이 몸담은 야구계를 더 부흥시키기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말한다. 이 선수의 말처럼 프로 스포츠는 당연하게도 팬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팬 없이 할 야구라면 앞에 ‘프로’ 대신 ‘동네’를 붙이는 게 맞다.
팬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야구팬으로서 부끄럽지 않기를 원한다. 어딜 가더라도 야구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그뿐이다. 야구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야구장을 가자고, 떳떳하게 권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5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5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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