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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terview] 유희관 DUGOUTV

dugout*** (dugout***)
2022.03.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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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름

 

어쩐지 허전하다인터뷰할 때마다 두산 베어스라는 수식어를 착실하게 달고 나오던 이름이 이제는 덩그러니 혼자다우승의 순간을 빛낸 마운드 위의 아이언맨과 자선 야구 대회를 누비던 올라프는 이제 유쾌한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남부럽지 않게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유했던 그인지라그와 함께 호흡하던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는 올겨울 유독 시린 바람이 불었으리라그러나 누가 아쉬워하고만 있겠는가야구계를 휘어잡았던 만능 엔터테이너가 이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됐으니작별의 슬픔은 그의 새로운 앞날을 향한 기대로 바뀐 지 오래다본지와 다시 만나는 그날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달고 있을까.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oonjeong Jeon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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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2월 10일 인터뷰)

은퇴하고 처음으로 인사드리네요두산 베어스 출신전 야구선수 유희관입니다반갑습니다.

 

은퇴 선언 후 첫 번째 인사를 본지와 하기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더그아웃 매거진>에는 항상 좋은 기억이 많았어요또 마침 비시즌이다 보니 제 근황이 궁금했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그래서 이렇게 의미 있는 곳에 나오기로 한 거죠.

 

은퇴를 선언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백수 생활 중이죠사실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야구장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그런데 곧 나 은퇴했구나이제는 안 나가도 되는구나’ 해요그럴 땐 현실적으로 제법 와 닿고 실감도 나죠요즘은 이런 생각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위해 바쁘게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만두길 고민하고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은데요당시의 감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깊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마음이 하루에 한 시간, 1분 단위로 바뀌었어요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과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공존했어요하지만 후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팀이 나아가는 방향을 봤을 때 저 개인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나은 모습일 때 박수받으면서 떠나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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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과 구단 유튜브에서 눈물을 보였어요.

솔직히 예전에는 은퇴하는 선배님들이 왜 우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그런데 막상 제가 그 자리에 있어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고요하루 이틀이 아니고 인생의 3분의 2, 25년이라는 세월을 야구와 함께했기 때문에 유니폼을 벗는다고 상상했을 때 당장은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그저 막연하게만 여겼는데 현실로 다가오니까 어릴 때부터 운동해온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거기에다 저를 위해 노력하고 고생해 주신 분들을 떠올리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고생해 주신 분들에 대해 언급했는데이 자리를 빌려서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감독님들코치님들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등 제 주변 모든 분이 저를 위해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어요그렇지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모님 얘기는 잘 안 했던 것 같아요돌이켜봤을 때 저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고 노력해 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저를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고 응원해주셨거든요.

 

결심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형이랑 더 하고 싶다”, “선배님의 길을 따라가서 멋지게 은퇴하겠다”, “두산이 계속 명문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이어서 노력하겠다” 하는 말들을 들었어요이런 말에 감동이 짙게 남으면서도 그 후배들을 보니 이제는 진짜로 그만둘 때가 됐구나라는 결심이 서더라고요제가 없더라도 든든한 동생들이 두산이라는 팀을 충분히 이끌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어떤 선배였나요.

한편으로는 제 은퇴 소식에 내심 좋아하는 후배들도 있었을 거예요. (웃음왜냐면 제가 잔소리를 자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예절 같은 부분에 대해 엄격한 선배였죠물론 좋은 조언도 꽤 해줬지만그것보다는 직설적이고 어찌 보면 안 좋게 들릴 수 있는 충고를 더 많이 해줬던 거로 기억해요그렇지만 그 선수들이 싫어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더 잘되라고 쓴소리를 한 거니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제 잔소리를 들었을 땐 속상하고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바탕으로 더 멋지고 훌륭한 선수들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속으로 제일 기뻐했을 것 같은 후배를 한 명만 뽑자면요?) 사실 한 명을 뽑기에는 팀 내 모든 투수가 다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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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랜 시간 함께한 김태형 감독은 어떤 말을 해줬는지 궁금하네요.

감독님도 아쉬워하셨어요김태형 감독님과는 워낙 좋은 기억이 많았죠제가 제일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가 감독님이 부임했을 때기도 했고요그리고 첫 우승까지 함께했기 때문에 감독님도 아쉬움을 보였던 거죠내심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셨는데그러면서도 제 선택에 대해 지지와 응원을 누구보다 열심히 보내주기도 하셨어요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제2의 인생 잘 준비해서 멋진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우승했을 때 옷 벗는 세리머니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 아쉽네요그런 끼를 물려줄 후계자가 있나요?

지금 이영하 선수가 그런 포지션이 아닌가 싶어요팀의 주축이 돼야 하는 선수기도 하고개인적으로 영하가 올 시즌 중요한 키라고 꼽거든요영하가 올해 좋은 활약하고 우승해서 주축으로서 팬분들을 위한 인상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호 더그아웃 스토리’ 코너에서 김강률을 만났어요김강률의 전화에 인마라고 답했다고요.

그날은 전화가 터질 듯이 왔어요결심하고 며칠 동안은 눈물도 나고 했는데 후배들한테는 왠지 그런 약한 모습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죠다들 어떤 말을 해올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던 상태였기 때문에강률이가 전화했을 때도 평상시 하던 대로 그냥 받자’ 했던 거예요. ‘왜 전화했어뭐 인마’ 같이 제 나름의 말투로 다가갔던 거죠물론 전화해 줘서 너무나도 고마웠어요강률이한테 앞으로도 잘하라고응원하겠다고 말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몸담은 구단이잖아요유희관에게 두산이라는 팀은 어떤 존재인가요?

2의 집이죠2의 고향이고요어떻게 보면 가족보다도 선수들과 함께한 시간이 길기도 해요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야구장에 나가 있는 때가 더 많았거든요서로 눈빛만 봐도 다 아는 동료들 덕분에 저한테는 더없이 의미가 깊죠그리고 저는 데뷔할 때부터 계속 한 팀에만 있었으니까 또 다른 나 자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어디를 갔을 때 항상 안녕하세요두산 베어스 유희관입니다” 하니까요두산은 유희관을 대변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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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지만 통산 100승을 달성하던 순간의 소감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네요.

우여곡절 끝에 100승을 달성했어요그 기록을 달성하기까지 경기에 나가는 동안 잘 못 던진 적도 있었고이기고 있다가 역전당한 적도 있었어요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성적 때문에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그때 모든 선수가 제 기록을 위해 신경을 써줬어요그런 부분에는 정말 감사했죠사실 100승이란 게 막연히 꿈만 꿨던 기록이거든요기어코 달성해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자부심을 품었고 또 좋은 팀을 만난 덕분이라는 감사함도 느꼈습니다.

 

99승 때는 모두가 조마조마했어요.

저도 너무 떨렸어요세간에 아홉수라는 말이 있잖아요그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꽤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게다가 그땐 99승이라 아홉수를 넘어서 쌍아홉수라는 소리까지 들었거든요이걸 의식하다 보니 계속 결과가 안 나오고그래서 더 잘하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고요그 뒤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경기에 임했는데 그게 100승을 해내는 데 도움을 준 게 아닐까 해요.

 

프로 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되는 순간은 없나요?

후회되는 순간은 뭐못했을 때죠후회스럽기보다는 아쉬워서 계속 떠오르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요어찌 됐건 그것도 제 야구 인생 중 일부였고 못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 잘했던 경기들도 나온 거겠죠모두가 저한테는 다 소중한 추억들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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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두산은 또 한 번 미라클을 보여줬어요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작년에는 제가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서 빠졌어요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함께하지 못한 거죠하지만 밖에서 보니까 후배들이 참 대견스럽더라고요저도 입단했을 때 선배들이 이루었던 업적들을 보고 성장하면서 이 팀을 명문으로 만들어야겠다라는 포부를 가졌는데어느덧 선배의 위치가 돼 후배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어요이제 내가 주연은 아닐지라도 멋지게 활약하는 동생들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수 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경기를 뽑아보자면요?

아무래도 프로 데뷔 첫 승 경기가 가장 떠오르네요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2013년 5월 4일인데… 그때 더스틴 니퍼트 선수가 담이 걸려서 제가 대신 선발로 나갔어요하필 LG 트윈스랑 하는 어린이날 잠실 더비였죠당연히 팬들은 니퍼트가 나온다니 기대를 크게 하고 계셨는데대신 무명의 선수가 나온다니 기대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됐죠그때 팬들이 제 투구를 보고 기억해주신 날부터 제 프로 인생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그때의 1승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100승도 없었을 거예요첫 단추를 잘 끼웠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요.

 

그 일에 대해 니퍼트한테 고마움을 전한 적도 있나요?

항상 전했죠네가 담이 안 걸렸다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너보다는 너의 어깨에 걸린 담에 고맙다. (웃음니퍼트 선수는 그냥 우습게 여겼겠죠그렇지만 멋있게 말해주더라고요. “네가 잘 던졌고 또 열심히 한 거니까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던 거다” 하고요.

 

우승 반지도수상 경력도 상당히 많아요나의 야구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꼽자면 언제가 있을까요?

2015년에 우승하던 순간이요제가 프로에 입단하고 처음 우승했을 때거든요그때 저 개인적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뒀고요지금까지도 절대 잊지 못할 시기로 남아 있어요잠실에서 정상에 올라 팬분들과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이유도 있고요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가장 영광스러웠을 때로 뽑고 싶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힘들었을 때도 많았을 듯해요특히 남들과 다른 유형의 공을 던지다 보니 이런저런 오해와 편견도 받았는데요이에 맞서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마음가짐이나 원동력이 있을까요?

그만두는 날까지 편견과 싸웠던 것 같아요좋은 팀을 만난 덕분에잠실야구장을 쓴 덕분에… 하는 편견들이 항상 있었어요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선들이 저한테는 더 강한 자극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제가 KBO리그에 처음 등장했을 때 제 공이 당시까지 쉽게 보지 못했던 유형이었잖아요. “내년이면 털릴 거다”, “이제 안 통할 거다” 이런 평가를 들었어요근데 그런 말들을 듣고 나니까 더 잘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강해지더라고요최대한 더 많은 이닝을 던지고 승수를 착실히 쌓아가려고 분투했던 부분들이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고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이렇듯 강한 정신력이 지금의 유희관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요?

제가 멘탈은 좀 강한 편인 듯해요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제 느린 공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남들보다 공은 느리지만 제 공을 스스로 믿고 경기에 임했어요.

 

커리어 말미의 부진에 대해서는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어요상처받지는 않았나요?

상처도 됐지만… 제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점이었죠항상 그런 것 같아요매년 매 경기 잘할 수는 없잖아요그래도 매번 최선을 다했다는 건 인정받고 싶더라고요다들 알아주시고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응원해주시는 게 항상 감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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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은퇴 소식을 들은 팬들이 많이 씁쓸해했거든요알고 있었나요?

그러게요놀랐어요제가 악플이 많은 선수로 유명한데요. (웃음은퇴를 발표하고 나서 보니까 좋은 말들을 제법 써주셨더라고요감사했죠저는 예전부터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생각해왔어요악플도 다 관심이 있어서 하는 말씀이라고 여겼거든요그런 분들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했고요기자회견 때도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과 미워해 주셨던 분들께 모두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SNS를 통한 팬 서비스에도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저는 댓글에 답글을 다 달아드려요예전에 싸이월드를 할 때부터 그랬는데요여기에 또 웃픈 사연이 있는 게싸이월드를 할 적엔 비교적 야구를 못했거든요그 뒤로 제 입지가 커지던 시기에 인스타그램으로 옮긴 거예요그런데 댓글을 안 달면 야구 잘하더니 변했다’ 하는 얘기가 들릴 것 같더라고요안 좋은 얘기는 듣기 싫으니 웬만하면 지금도 답글을 다 달아드리려고 하고 있어요어찌 됐건 저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분들이니 노력하려고 합니다(이제 답글 안 달면 은퇴하니까 안 다네’ 소리 듣겠어요.) 계정을 탈퇴하고 SNS를 접을 때까지는 다 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모습을 팬들이 무척 좋아하겠어요.

사소한 거지만 크게 좋아해 주세요그 마음을 이해하는 게저도 어렸을 때 누가 사인을 해주고 또 누군 안 해주는지 기억에 남았거든요그래서 웬만하면 저도 그런 팬 서비스를 최대한 해드리려고 했어요애당초 프로스포츠 자체가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응원해주는 분들한테 잘해야겠죠.

 

은퇴를 알리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에 답글을 달면서는 울었을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참 짠했죠계속 멍했어요혼자 심오하게 있었던 느낌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서 집에서 천천히 답글을 달았는데요일부러 슬픈 노래이별 노래를 틀어놓고 혼자 분위기 잡으면서 하니까 찡하더라고요글을 쓰면서부터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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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유희관이 팬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그라운드에서 항상 밝고 유쾌했던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어요팬들한테 진심으로 다가가려 했던 편한 선수그러면서도 경기에 임할 때는 누구보다 이기고 싶어 했고 팀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했던 얼굴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얻었던 인기만큼 별명도 되게 많았잖아요특별히 애착이 가는 별명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유희왕이라는 별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올라프도 있고바나나 우유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은데요근데 유희왕이라는 별명은 뒤에 왕이라는 말이 들어가잖아요. ‘내가 최고다라는 뉘앙스가 좋더라고요. ‘야구의 최고 왕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올라프라는 별명은 다른 팀 선수들도 다 알더라고요.) 맞아요제가 자선 야구 대회 때 올라프 분장을 한번 한 적이 있어서 더 이슈가 됐을 거예요.

 

망가지는 게 두렵진 않아요?

처음에는 그랬죠좋아해 주는 분들도 있는데 보기 싫어하는 분도 있어요솔직히 말하면 왜 저렇게 설치고 다니냐야구나 열심히 하지’ 하는 말도 있을 거예요하지만 저는 야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외적으로 팬들한테 즐거움을 주는 것도 팬 서비스라는 신념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그래서 갖은 노력을 했던 거죠.

 

유별난 헤어스타일이 상징이잖아요앞으로 다른 스타일을 추구해볼 의향은 없나요?

하다 보니까 이게 제일 잘 어울리던데요머리를 길러서 다른 스타일을 해보는 상상도 했는데 좀 어색하더라고요이 머리 때문에 오랑캐나 말갈족 같은 특이한 별명들도 생겼어요(옆머리는 주기적으로 미는 거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밀어요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헤어스타일입니다.

 

앞으로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 다들 궁금해 해요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이 많았다고 들었거든요마음은 정했나요?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대로 가닥이 잡힌 것 같긴 해요해설위원과 예능을 병행하려고 하는 중이거든요실은 야구를 그만두고 정말 막막했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하고요어찌 보면 조금 무기력하기도 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연락을 주셨어요한편으로는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기도 했죠.

 

앞으로 특별히 출연해보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지금은 불러주신다면 어디든지 다 나갈 생각이고요얼마 전까지는 고참이고 베테랑이었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다시 신인이니까요뭐든 배운다는 자세로 어디든 불러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전화 많이 주시길 바랍니다. (웃음)

 

역시 세간의 예상대로 방송계로 갈 것 같네요혹시 지도자로 나가볼 계획은 없나요?

솔직히 없진 않아요감사하게도 두산에서 코치 제의를 해주시기도 했거든요그렇지만 당장은 제가 누구를 가르친다고 상상하기가 어려워요공부가 좀 더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 서서요물론 예능에 나가는 것처럼 그냥 방송 활동만 할 수도 있겠지만지금은 야구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야구로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도록 해설위원을 선택했어요선수 때보다 나아가서 야구를 더 넓게 보고 싶기도 하고요한동안 지식과 시야를 넓히는 공부를 하다가 언젠가는 두산 코치로 돌아갈 날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달성해내고자 하는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글쎄요아직은 없네요은퇴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요아직은 제 인생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하고 스스로 계발해야 하는 시기예요어떤 명확한 꿈이 있고 그걸 반드시 이뤄야겠다는 것보다는 눈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또 다른 인생을 위해 정진하고 연구해 나가는 게 먼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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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평생을 함께해 온 야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야구 얘기하니까 또 눈물 날 것 같아요어떻게 보면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간 거나 마찬가지거든요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했고 즐겁게 해줘서 고마웠고… 또 네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닐까지금은 헤어졌지만 앞으로 야구를 평생 못 잊을 거예요가슴 한편에는 헤어진 야구가 영원히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항상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첫사랑 같은 거네요?) 그렇죠잊을 수 없죠첫사랑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응원해 준 팬들에게 인사하고 마칠게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즐거웠고 또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웠습니다그동안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제가 받은 사랑을 다른 곳에서혹은 야구장에 돌아와서 여러분께 다시 돌려드리고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요즘 시기가 시기인 만큼 고생 많으실 텐데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서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즐길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올해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저 유희관도 <더그아웃 매거진>도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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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131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1호 (3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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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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