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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리웠다. 그라운드로 모든 선수가 쏟아져 나오는 진풍경 말이다. 지난 4월 23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3년 만의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물론 벤치클리어링도 엄연히 패싸움의 일종인 만큼 자주 봐서 좋을 건 없다. 하지만 전염병 창궐로 2년간 경기 전후 팬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접촉 행위가 금지됐었기에, 팬들에게는 오래간만에 보는 이벤트성 사건이 내심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벤클’ 재개를 맞아(?) 이번 호 ‘더그아웃 먼슬리’에서는 위와 같은 사건을 포함해 지금까지 KBO에 등장했던 여러 가지 이색사건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야구를 오래전부터 즐겨 온 이들에게는 아마 재밌는 추억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5월 5일 작성)
에디터 전윤정 사진 삼성 라이온즈, 스포츠코리아, SSG 랜더스
#우리만의 난투극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야구장의 이색사건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벤치클리어링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더그아웃을 지키고 앉아있던 선수들이 대거 튀어나와 그라운드를 바글바글 채우는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체로 빈 볼(bean ball, 투수가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고의로 타자의 머리 쪽으로 던지는 공)과 관련해 시비가 붙은 경우가 잦다. 특정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몸에 맞는 공의 고의성 여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해 혹은 상해 미수 행위에 대한 반발로서 벌어지는 것이다.
올해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생했던 3년 전 벤치클리어링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양 팀 감독 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2019년 4월 28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롯데 구승민이 던진 공이 두산 타자 정수빈의 갈비뼈 부근에 맞았고, 그는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부상에 격분한 김태형 감독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 말이 발단이 된 건지, 롯데 측 더그아웃에 있던 양상문 전 감독도 거세게 항의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 양 팀 사령탑이 모두 자리를 비우자 선수들도 덩달아 쏟아져 나왔다. 당시 김태형 감독의 막말 여부와 구승민의 고의성 유무 등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으나 정확한 내막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면 선수들 개개인의 표정과 반응에도 주목해볼 만하다. 2014년 4월 20일, 대전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정찬헌(현 키움 히어로즈)과 정근우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몸에 맞는 공을 던지고 왜 사과하지 않느냐는 불만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당시 중계카메라는 어떤 상황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정찬헌의 얼굴을 크게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카메라 렌즈가 줌 아웃되더니, 그의 주위로 모든 선수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당시 팬들은 이 사건을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든 촬영 감독의 센스를 두고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참고로 이때 마운드 부근까지 무서운 속도로 뛰어와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마무리한 선수의 모습은 깨알 재미 요소.
#이런저런 실수들
확실한 건 야구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라는 것. 그라운드에서 종종 싸움이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주요한 일은 바로 ‘실수’다. 야구에서의 실수라고 하면 보통 수비 실책을 떠올린다. 잡기 난해한 공을 야수가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는 일이 이따금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5일에 있었던 한화와 롯데의 경기에서 벌어진 신본기의 헤딩 수비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신기한 수비도 간혹 발생한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사령탑이 실수를 범할 때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15년 5월 13일 KT 위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다. 당시에는 자동 고의사구 제도가 없었던 탓에 해프닝이 발생했다. KIA의 김기태 전 감독은 고의사구 상황에서 폭투로 공이 뒤로 빠질 것을 대비해,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에 배치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카메라 앵글에 비친 이범호의 머쓱한 표정이 상당한 재미 요소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규칙 위반이었다. 볼 인 플레이 상황에서는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가 페어 지역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이 시즌 통합 우승을 목전에 뒀던 순간이다. 김태형 감독은 헹가래 투수가 되기까지 아웃 카운트를 단 두 개 남겨둔 이용찬을 격려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했다. 이때 김태형 감독은 마운드 방문 횟수와 관련해 3루 페어 라인 부근에서 심판과 눈짓을 주고받았는데, 서로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두산은 규정에 따라 예상치 못한 투수 교체를 해야 했다. 감독의 선택을 받은 마지막 투수는 은퇴를 앞두고 있던 배영수. 엄청난 중압감이 올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기회를 얻어 생글생글 웃으며 마운드로 뛰어나오는 그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가 남은 아웃 카운트를 쉽게 처리하면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했다. 일면 당혹스러운 해프닝이었으나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지난해 4월 6일 한화와 SSG 랜더스의 경기에선 통역의 실수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투수를 주현상으로 교체하겠다는 뜻을 통역에게 전했는데, 통역은 심판진에게 교체 투수가 강재민이라고 전달했다. 통역이 양손으로 등번호 66번을 표현한 수베로 감독의 한쪽 손을 보지 못하고 55번 강재민으로 이해하고 만 것이다. 수베로 감독은 오해에 대해 심판진에게 3분 이상 강력하게 항의하고 퇴장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은 강재민에게 몸 풀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에디터들의 이색사건 PICK
이 밖에도 팬들의 기억에 자리 잡은 야구장 이색사건들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이렇듯 재미있는 장면들이야말로 우리가 야구를 계속 보게끔 하는 모종의 매력이 돼 주기도 한다. 야구장에서 목격한 이런저런 사건들에 대해, 이번에는 <더그아웃 매거진> 에디터들의 추억을 들여다봤다.
이찬우 에디터: 작고 귀여운 승리 토템
무언가 들어와선 안 될 것이 그라운드에 들어왔을 때 잠시 게임이 중단되곤 한다. 흔히 떠올리는 관중 난입이나, 공이 두 개 투입되는 등의 해프닝 말이다. 하지만 여기 그보다 더 자주 경기의 흐름을 깨는 주인공들이 있으니, 바로 귀여운 고양이들 되시겠다.
이들의 난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야구장에서 무슨 냄새라도 맡은 듯 매 시즌 스리슬쩍 모습을 드러내고, ‘잠실냥이’, ‘사직냥이’, ‘라팍냥이’ 등 9개 구장 어디든 신출귀몰하며 야구의 흥을 깨곤 한다. 하지만 팬들은 이들의 등장을 은근히 반기는 모양새다. 어리숙한 표정으로 잔디를 밟으며 인간들의 마음을 홀리는가 하면, 진행요원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며 흡사 런 다운 플레이를 보는 듯한 쫄깃함을 선사한다. 그러다 점프 캐치를 하듯 뛰어올라 어렵사리 그라운드 밖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한다. 다행히 관중들에겐 ‘방해꾼’보다는 야구장의 이색 재미로 받아들여지나 보다.
하지만 팬들이 고양이들을 유독 반기는 이유는 이들이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전설 때문일 거다.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난입할 때마다 홈팀이 이기곤 해, 냥이들은 ‘승리 토템’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례로 2019년 4월 23일 LG의 잠실 홈 경기, 드넓은 잠실 외야를 누빈 검은 ‘미묘(美猫)’와 함께 승리를 거둔 LG는 파죽의 8연승까지 내달렸다. 구단에선 이를 기념해 ‘승리의 잠실냥이 유니폼’까지 출시할 정도였으니, 고양이들이 야구장에서 얼마나 환영받는 존재인지 알 만하다.
박소정 에디터: 추억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라이온즈 팬들에게 전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다. 1982년에 삼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8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왕조를 구축하던 시절이 담겼다. 양준혁, 이승엽, 장효조 등 한국야구 레전드와 리그 대표 마무리 투수 오승환의 다양한 기록도 이곳에서 써졌다.
그런 유서 깊은 곳에서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여럿 있었다. 2011년 4월 16일 두산과 삼성의 경기 도중 발생한 정전사태가 그 예다. 두산 정수빈이 기습번트를 치고 1루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하던 중 갑자기 정전이 발생해 경기장은 암전이 돼버렸고 경기 또한 암흑에 빠졌다. 타자의 세이프 여부를 판단 못 할 정도로 경기 진행이 어려운 상황. 결국 전력 시설을 복구하지 못한 채 해당 경기는 다음 날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순연됐다. 정전 때문에 경기가 중단된 사상 초유의 사태였으며, 지켜보던 이들의 황당함을 대변하듯 당시 중계카메라가 흔들리며 경기장 곳곳을 비추던 움직임이 압권이었다. 한편 관중석의 팬들이 일제히 핸드폰 플래시를 켜 뜻밖의 콘서트장 같은 장관이 연출됐고 중계를 맡은 권성욱 캐스터는 “여기는 불 꺼진 대구구장입니다”란 멘트를 남겼다.
반면 켜져선 안 될 불이 켜진 상황도 있었다. 같은 해 8월 12일 오승환의 최연소 및 최소경기 200세이브 달성을 기념하던 중 야구장 전광판에 불이 난 것. 오승환의 대기록을 축하하고자 구단 측에서 폭죽을 터뜨렸는데 폭죽 불꽃 중 일부가 전광판 왼쪽 상단에 떨어져 화재로 번졌다. 결국 소방차가 불을 끄고 야구장을 화재로부터 구하며(Save) 한 경기에서 2번의 세이브가 달성되는 진기록이 나왔다. 이처럼 대구시민야구장엔 잊지 못할 추억이 많다.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현 홈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선 라이온즈가 어떤 새로운 추억을 팬들에게 선사할지 궁금하다.
김나현 에디터: 투타 가리지 않는 야잘잘
지명타자 제도가 운용되고 투타 겸업이 흔치 않은 KBO리그에선, 선수가 자신의 주 포지션과 다른 위치에 서는 경우 소소한 화제가 되곤 한다. 물론 투수가 타석에 서는 건 엄청 드문 일은 아니다. 엔트리에 있는 야수가 모두 소진되면 왕왕 목격할 수 있는 일화다. 그런데 2017년 6월 14일 경기는 좀 남달랐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현 SSG 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한화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맞대결 중, 당시 포수를 보던 이홍구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남아있는 야수가 없게 됐다. SSG는 내야수 나주환을 포수로 올리고 투수 전유수를 1루에 세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8회 말 전유수는 타석에도 섰지만, 삼진으로 물러나며 큰 임팩트를 남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수비에서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팬들의 환호성을 끌어냈다. 당시 선수들의 부상으로 다소 어수선하고 격해져 있던 분위기가 단숨에 달아오른 건 당연하다. 투수가 풋 아웃(put out, 상대 타구를 잡아내 타자나 주자를 아웃시킨 야수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카운트)과 실책을 기록한 드문 장면이기도 했다. TV 생중계로 보고 있던 에디터의 아버지가 폭소하며 뻑뻑 치던 손뼉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와 반대로 타자가 투수로 등장하는 사례는 더욱 드물다. 최근 큰 인상을 남겼던 플레이 중에서는 SSG 김강민의 투수 등판을 꼽을 수 있겠다. 2021년 6월 22일, LG에게 무려 12점 차로 지고 있던 SSG가 9회 초 선택한 투수는 바로 백전노장 중견수 김강민이었다. 투수도 아낄 겸 끝까지 남아준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였는데, 이는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
힘없이 더그아웃을 지키던 선수들은 그가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마다 환호성을 보냈다. 동태눈으로 경기를 보던 직관러도, 채널을 돌렸던 집관러도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강민은 최고 구속 146km/h로 투수로서 충분한 자질을 보여주며 40살의 나이에 성공적인 마운드 데뷔를 알렸다. 무기력하게 진 경기임에도 팬들의 귀갓길은 즐거웠다. 이후 SSG 야수들은 너도나도 마운드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내세웠고, 실제 본지 129호(1월 호) 인터뷰에서 박성한은 투수 데뷔를 원하는 야수 선배들이 줄을 서 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김민규 에디터: 안경 낀 포수는 조심해야 한다
때는 2013년 6월 2일, 광주에서는 LG와 KIA가 맞붙고 있었다. 당시 8회까지는 KIA가 4대0으로 앞서던 상황이었으나, 9회에 마무리투수로 등판한 앤서니 르루의 난조로 경기는 4대4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LG는 이미 모든 포수를 소진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9회 말 포수로 들어온 이는 바로 내야수 문선재. 재미있는 건 그가 이날 전까지 포수를 본 경험은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경기는 결국 연장 10회 초 문선재가 때려낸 적시타로 LG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여기에 더해 투수 임정우는 9회 대주자로 출전해 전문 대주자 못지않은 폭풍 주루로 극적인 동점에 기여했고, 이날 승리를 챙긴 마무리 봉중근은 10회 초 마지막 타자로 등장하는 등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날 안방마님으로 대수비를 나와 결승타까지 기록한 문선재는 1년 뒤인 2014년 4월 19일 또 한 번 포수 수비를 소화했다. 이때는 무려 상대 팀 대주자의 도루까지 저지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줬다. 이 정도면 사실 그에게 강력한 포수가 될 가능성이 있던 게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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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일화 이외에도 쓸 만한 게 태산인데 지면이 모자란 게 아쉽다. 스윙만 했는데 김현수의 배트가 부러진 장면과 같은 사소한 일부터, 팬이 공을 건드리는 바람에 홈런이 2루타로 바뀌어 버린 큰일까지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굳이 하나하나 따로 찾아볼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KBO리그는 지금도 매일매일 새로운 장면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건을 목격했을 때 와그작거리며 팝콘을 먹는 이모티콘을 쓴다. 그리고 올 시즌 우리는 드디어 야구장에서 팝콘을 뜯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올해는 야구장에 자주 찾아와 선수들과 감독들이 선사하는 구경거리를 눈앞에서 신나게 구경하는 건 어떨까? 아무쪼록 내일은 야구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함께 기대해보자.
▲ 더그아웃 매거진 13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4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