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내리다
4살 때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꽤 어린 나이부터 좋아했네요?
아마 생일날이었을 거예요. 잠실야구장이었거든요. 그렇게 큰 소리의 함성을 생애 처음 들어봤을 거예요. 모든 선수가 똑같은 옷을 입고 운동장을 막 뛰어다니는데 너무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수많은 팬이 한 사람을 응원해주는 걸 보면서, 저도 그런 응원을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야구를 품게 됐습니다.
잠실야구장에서 어떤 팀을 응원했나요?
LG 트윈스요. 엘린이입니다. (수줍)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어린이 회원을 해주셔서 카드도 있고, 팬 북도 있고 사진도 엄청 많아요. (가장 가고 싶은 팀이 LG겠네요?) 메이저리그의 게릿 앨런 콜 선수가 뉴욕 양키스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양키스 선수가 됐잖아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야수를 하다가 투수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수비 실책 때문이라고요?
야수만 했던 건 아니고 중학생 때는 둘 다 했었죠. 내야수랑 투수를 했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키가 아주 작았어요. 키순으로 세우면 두 번째, 세 번째 정도?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동계 훈련을 하다 손가락이 부러져서 운동을 약 한 달 동안 쉬게 됐어요. 정말 집에서 먹고 자기만 했죠. 그러다 3주 만에 친구들 시합을 구경하러 갔는데 제가 두 번째로 키가 큰 선수가 돼 있더라고요? 키가 큰 건 좋았는데 이제 수비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옛날에는 조금만 숙여도 글러브에 공이 들어왔는데 그것만 생각하고 숙이니까 공이 다리 사이로 휙휙 빠지고… (웃음) 그래서 감독님께서 3루수를 하거나 어깨가 좋으니까 투수를 집중적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셔서 투수를 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균관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제가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에요. 근데 마침 성균관대에 중학교 선배였던 승우 형도 있고, 원래 친했던 성준이 형, (유)수현이 형 등이 있어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적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성균관대는 야구도 잘하는 학교니까요. 두 가지가 딱 맞아서 떨어졌고, 운이 좋게 합격해서 기뻤습니다. (이연수 감독의 훈련이 만만치 않은 거로 유명한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감독님이 훈련은 저희에게 자율적으로 맡기세요. 근데 훈련을 한번 나가면 정말 쉴 새 없이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더 잘 맞더라고요. 느슨하게 길게 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확 집중해서 강하게 하고 쉬는 게 더 효과 있다고 생각하고요.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입학 후 캠퍼스 생활은 어땠나요?
아마 저랑 같은 학번이라면 다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캠퍼스 생활이 없었거든요. (웃음) 형들이 말해줬던 대학 생활을 즐길 수도 없었고,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없더라고요. 그래도 작년부터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서, 미개봉 중고품을 뜯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조금은 즐겨보려고 합니다.
대학 입학 초반에는 구속이 다소 낮았어요. 어떤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 궁금해요.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렇게 낮지 않았어요. 근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흔히 말하는 고삼병이 걸린 거죠. ‘여기서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데 구속은 점점 낮아지고, 안 좋은 습관이 생기고 폼도 딱딱해지고… 그게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간 게 아닐까 싶어요. 다행히 대학 입학하고 감독님, 코치님, 선배들에게 조언도 계속 얻으면서 부담감이 떨어지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4년제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4년 동안 열심히 다듬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했죠. 그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 했는데 MBTI가 어떻게 되나요?
INFP입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와 야구를 할 때의 성격은 다른 편인가요?) 아무래도 야구를 할 땐 스카우트분들의 눈에 띄어야 하고, 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마운드에선 액션도 크게 하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그런 걸 보면 놀리기도 하지만요. 근데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지만 야구만 시작하면 마인드가 좀 담대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안타를 맞으면 맞은 거고, 아웃 되면 아웃 되는 거고,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 그날 하루 못 던진 거를 12시 이전까지 털어내려고 하거든요.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게 제게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친구들 사이에 불리는 별명이 재밌던데요? 별명이 김연아라면서요?
정말 그런 별명이 왜 생겼는지… (한숨) 사람이 재미가 없으면 쌀쌀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추위로 연결되고 얼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제 별명이 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따뜻한 커피를 사다 주면 아이스 커피가 맛있겠다고 그러거든요. (하지만 막상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재밌어요.) 이게 이미지가 한번 굳어지니까 계속 가네요.
좋아하는 음악이나 취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레트로한 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음악도 옛날 음악, 80년대 팝송을 주로 즐겨 듣고 그런 음악이 나오는 영화도 좋아하고요. ‘라라랜드’랑 ‘어바웃 타임’을 재밌게 봤습니다.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면?) 저 가리는 거 없이 진짜 다 잘 먹어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입니다. 어릴 때는 스트레스를 좀 받기도 했죠. 저 중학생 때 감독님께서 부모님과 면담하실 때 많이 먹이라고 하셨대요. 안 먹으려고 해도 억지로 먹이라고요. 근데 저 먹는 거 보시고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웃음) 남들은 경기가 있으면 2시간 전에 일찍 먹고, 배를 비우려고 하는데 저는 진짜 들어갈 때까지 계속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