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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의 조건
명품의 가치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그 가치를 더하기도 한다. 빛나는 역사는 그 이름에도 힘을 부여한다. 건국대학교도 그렇다.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 이종범 전 코치,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 등 수많은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한 명문대다. 선배가 쌓은 명성에 후배의 노력이 더해진다. 비단 야구만으로 명문이라 칭해지는 것은 아니다. 건국대의 또 다른 무기는 성실과 예의다. 어떤 선수가 되는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건국대는 더욱 돋보이는 팀이다.
에디터 조예은 사진 한국대학야구연맹(KUBF)
#전통을 유지하는 길
1972년 창단한 건국대는 다음 해 대통령기 준우승, 2년 뒤엔 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89년 이종범, 추성건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입학하며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전국대회 순위권 안에 들며 명문의 힘을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며 기존에 야구장이 있던 터는 백화점과 아파트로 변했다. 2005년 완공된 이천 스포츠과학타운이 야구부의 새로운 터전이 됐다.
공부하는 야구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월, 화, 목요일에는 오후 6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자연스레 수, 금, 토요일에만 단체 운동을 한다. 아침 9시에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이천 스포츠과학타운으로 간다. 오후 4시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다른 학교에 비해 수업을 듣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야구를 잘하기 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건국대의 이념이다.
위기도 있었다. 2009년 야구부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았다. 1년에 60억이 드는 운동부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문이 하나로 뭉쳤다. 총장실 점거까지 감행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건이 커졌고, 결국 해체는 무산됐다. 그리고 2013년 역사적인 대통령기 우승을 차지했다. 4학년 때 우승을 맛본 차동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28년 만의 우승을 일궈냈다.
건국대의 야구는 수비다. 실책 비중을 줄이고 견실한 야구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투지와 사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곧 동문의 힘으로도 이어진다. 이번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건국대는 강팀을 연이어 누르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준결승에선 디펜딩 챔피언 성균관대학교를 만나 5-4 신승을 거뒀다. 어려운 상대와의 만남으로 힘들 법도 하지만 선수들의 집중력이 빛났다. 그렇게 올라간 결승, 차동철 감독은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했다. 4학년을 위한 기회였다. 특히 투수 운용에서 그러한 모습이 드러났다. 선발 투수로 등판한 박원민과 이어 등판한 박동현은 모두 4학년 투수다. 특히 박동현은 올해 부진하지만,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던 에이스다. 교체를 위해 올라간 감독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에이스의 말에 다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날아가는 타구를 지켜봤다.
#이번 시즌 건국대의 기대주
최영민
출생 1997.06.09 신체조건 175cm/72kg 출신학교 경기 모가중-장안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좌타
2020년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5 |
.346 |
52 |
18 |
0 |
5 |
16 |
0.493 |
.423 |
.916 |
스카우팅 리포트
올해 건국대 주장이다. 대학 4년간 유격수로 활약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 3루로도 뛸 수 있는 수비 자세를 가졌다. 평균적인 송구 실력을 갖추고 있고 캐치볼도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주력이 좋지 않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보완이 필요하다. 좌측 타구가 많고 장타력이 좋지 않은 것도 개선할 점이다. 체격이 크지 않지만 견실한 내야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승준
출생 1998.03.29 신체조건 183cm/85kg 출신학교 배재중-배재고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좌타
2020년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5 |
.438 |
48 |
21 |
1 |
17 |
13 |
0.591 |
.625 |
1.216 |
스카우팅 리포트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타점상 수상자다. 단국대와의 결승전에서도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점수를 혼자 냈다. 지난해 극도의 부진을 겪었지만, 올 시즌 반등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주로 3루수로 출전하며 내야 외길을 걸어온 선수다. 송구 자세가 특이하나 어깨가 나쁘지 않고 바운드 감각이 좋다. 체격이 좋아 프로 무대에 진출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보인다.
이중석
출생 1998.07.27 신체조건 190cm/93kg 출신학교 매향중-야탑고 포지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2020년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5 |
.298 |
47 |
14 |
2 |
8 |
7 |
0.468 |
.553 |
1.021 |
스카우팅 리포트
야탑고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선 사구 여파로 부진했다. 체격이 좋고 평균적인 주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깨가 강하지 않다는 점은 우려할 부분이다. 헛스윙이 많고 변화구에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장타력이 있고 타격 메커니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발전할 여지가 있다.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하는 선수다.
박동현
출생 1998.03.27 신체조건 183cm/100kg 출신학교 매향중-야탑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0년 성적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이닝 |
사사구 |
탈삼진 |
5.67 |
1.48 |
10 |
1 |
1 |
27.1 |
15 |
31 |
스카우팅 리포트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던 투수다. 최고 143km/h의 속구를 던지며 커브와 슬라이더를 곁들인다. 속구의 묵직함이 좋으며 커브의 각으로 타자를 잡아낸다. 다만 속구 제구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상체 위주의 투구라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 부진에 빠지며 좋은 체격을 살리지 못하는 투구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심한 자기 관리가 가능하다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투수다.
#차동철 감독과 일문일답
이번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아쉬웠을 것 같다.
스포츠에서 준우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준우승이라도 대학의 이름을 빛냈다는 것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야구에선 학교의 명예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학생의 미래다. 이 지점에서 대학 야구의 딜레마가 생긴다. (박)동현이에게 올라가서 교체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꺼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안타를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맞았다. 그렇다고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교체할 순 없다. 선수는 학비를 내고 본인의 미래를 위해 야구를 하고 있다.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지만 선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감독이다.
대회가 미뤄지는 등 시즌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나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즌 흐름이 어그러졌다. 운동선수는 3일 이상 쉬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올 시즌 투·타 밸런스는 좋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악영향을 많이 받았다. 올해는 미뤄졌지만 4학년은 교생 실습도 나간다. 운동부라고 학사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선수들의 몸 상태가 가장 좋을 때 맥이 끊기니 힘들다.
이제는 U-리그 왕중왕전 준비에 한창이다.
그렇다.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서 무사히 진행될지 걱정이었는데 일단 취소는 하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 수업을 빠질 순 없으니 연습을 몇 번 하지 못한다. 그 부분이 걱정이다.
감독으로서 자신만의 철학은 무엇인가.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안 된다. 우리 학교 출신 프로 선수도 많지만, 지도자도 가장 많다. 인성을 중요시하는 학풍 덕분이다. 건국대의 장점이기도 하다. 과거엔 인성이 좋지 않은 학생을 내보내기도 했다. 옛날에는 감독의 틀 안에 선수가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감독이 선수의 마음을 파악해야 한다. 처음부터 인성이 좋은 선수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모두 끌어안고 가르쳐야 한다. 교육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 생활을 오래 했다. 어떤 감독이 되고자 하는가?
뒤끝 없는 감독이 되고자 한다. 원래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오늘은 혼내더라도 내일은 칭찬한다. 선수의 사정도 챙겨야 한다. 동문의 기부를 독려하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다. (선수의 진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대학 감독은 공갈을 잘 쳐야 한다. (웃음) 프로 스카우트들은 수많은 선수를 보며 평가한다. 하지만 감독은 무조건 내 자식이 가장 예쁜 법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우리 선수가 가장 잘한다고 단언한다. 물론 뒤돌아서면 걱정이 앞서긴 한다.
건국대의 훈련 스타일이 궁금하다.
선수들의 개인 공간을 존중해주고자 한다. 전지훈련을 하러 가서도 선수의 방엔 들어가지 않는다. 가장 편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규율을 어기면 엄벌에 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전지훈련은 야구만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인성 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설날에는 세뱃돈도 주고 덕담도 한다. 상금을 걸고 윷놀이도 한다. 가족을 위한 선물을 사라고 용돈도 준다. 그런 사회생활이 다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건국대 출신 대선배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선수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네가 야구를 잘해서 프로를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프로에 진출해 학교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바로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선수로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인정받는 프로가 돼야 한다. 지금도 롯데 전준우, NC 다이노스 문경찬, KIA 타이거즈 이창진 등 우리 학교 출신인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선수를 어느 포지션에서 뛰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홍창기는 흙 속의 진주였다. 안산공고 시절부터 눈여겨보고 데려와 외야로 전향시켰다. 당시 중견수였던 조수행도 원래 유격수였다. 입학한 후 외야수용 글러브를 사주며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다. 그때 중견수였던 노수광을 우익수로 보냈다. 노수광도 4학년이었으니 중견수로 뛰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수광아, 대학 야구 10번째 중견수로 뛸래, 제일 잘하는 우익수가 될래?”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습을 해보더니 스스로 우익수로 가겠다고 말하더라.
대학 야구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수로, 지도자로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선수는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따라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태에서 LG로 트레이드된 후 백인천 감독님께 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감독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빨리 알아채는 선수가 팀에 필요한 선수다. 그리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을 수 있다. (졸업을 앞둔 선수가 들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4학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졸업을 앞둔 선수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프로 지명의 기로 앞에서 급한 마음에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것저것 시도만 해선 될 것도 안 된다. 만약 특기가 제구라면 그를 갈고 닦아야 한다. 2군에 145km/h를 던지는 선수는 많지만 모두 1군 선수가 되는 건 아니다. 진짜 프로에 가려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14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