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DUGOUT Voice] 은퇴 투어 논란 DUGOUTV

dugout*** (dugout***)
2022.04.01 12:07
  • 조회 734
  • 하이파이브 1

프로에 입단해 길게는 약 20년간 꾸준히 활약하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건 많은 선수의 꿈일 거다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매년 살아남는 자체로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동안 1군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이런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가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을 때면 우리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향해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곤 한다가령 은퇴식을 열어주는 방법으로 말이다하지만 영광스러운 마무리를 맞이해야 할 영웅에게 오히려 상처만을 남길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으니바로 은퇴 투어에 관한 논쟁이다.

 

에디터 이찬우 사진 삼성 라이온즈

 

#상처뿐인 논쟁

 

최근 논쟁은 스프링 트레이닝이 한창이던 지난 2월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 발화했다. 2022시즌이 끝나고 은퇴가 예정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여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 화두였다합당하다는 측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과 이대호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을 주된 근거로 들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회 우승 등 한국 야구의 영광스러운 순간마다 중심에 있었으며, KBO리그에서는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쓴 조선의 4번 타자가 아니면 누가 적절하냐는 주장이었다반대하는 측은 왜 응원팀이 아닌 타 팀 선수를 축하해야 하나’ 혹은 우리 팀 레전드는 못 하지 않았나라는 의견이 주가 됐는데이러한 목소리가 커진 이유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이런 논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엔 현역 마지막 시즌을 치르던 박용택 현 KBS 해설위원(당시 LG 트윈스 소속)에게 은퇴 투어를 열어주자는 선수협의 제안이 있었고이 소식을 들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치열한 찬반 토론이 오갔다당시에는 역대 최다 안타와 경기 출장 등의 기록을 쓴 꾸준함의 대명사라면 자격이 된다는 찬성 측빈약한 국가대표팀 경력과 과거 타격왕 수상 논란 등으로 모두의 축하를 받을 인물은 아니라는 반대 측의 대립이 첨예했다큰 대립 양상은 올해와 유사했으나 파급력은 2년 전이 비교적 컸다스포츠 뉴스 댓글난이 살아있을 때라 하루가 멀다고 그를 향한 조롱이 쏟아졌고포털사이트는 은퇴 투어 찬반 투표 코너를 게재하며 광풍에 편승했다.

 

당시의 논란은 결국 박용택 본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 투어를 사양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마찬가지로 올해 이대호도 취재진 앞에서 은퇴 투어는 생각지도 않았다대신 우승하면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라는 말로 논전을 매듭지었다. (이후 한 달여가 흐른 3월 14일 KBO가 은퇴 투어 시행을 결정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한 번도 희망한 적 없던 행사를 논란 속에 스스로 고사해야 했던 웃지 못할 사건이자두 사람과 팬들의 마음속에 아픈 흉터를 남긴 상처뿐인 논쟁이었다.

 

#희소성의 원칙

 

은퇴 투어에 대한 팬들의 잣대가 엄격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가장 큰 이유는 그 희소성에 기인한다아무리 남다른 활약과 행실로 평판이 높다 한들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니라는 거다실제로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KBO가 공식적으로 주관한 은퇴 투어의 주인공은 국민 타자’ 이승엽 단 한 명뿐이었고최근 결정으로 이대호까지 두 명이 된 거다.

 

메이저리그도 비슷하다무려 120년에 달하는 역사 동안 은퇴 투어를 경험한 인물은 단 4명뿐이다물론 유구한 역사 대비 상당히 늦은 2012년에야 문화가 도입된 건 감안해야겠지만전설적인 선수가 즐비한 세계 최고최대의 무대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다손꼽히는 레전드 중에서도 스위치 히터로서 한 획을 그은 치퍼 존스명예의 전당에 만장일치로 헌액된 마리아노 리베라빅리그를 상징했던 데릭 지터 등 극히 일부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밖으로 눈을 돌려 농구 종목에서 메이저리그와 같은 위상을 지닌 NBA(미국프로농구)의 예를 살펴보자메이저리그보다 26년이나 빠른 1986년에 첫 은퇴 투어가 시행됐음에도마찬가지로 현재까지 단 4명만이 영광의 대상자가 됐다그 명단에는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등 농구 문외한일지라도 알법한 이름들이 포함된다. KBL(한국프로농구)의 경우에도 리그 출범 20주년 역대 레전드 12인에 든 서장훈과 김주성 두 명만이 은퇴 투어를 경험했다그마저도 KBL 연맹 차원에서 이뤄진 건 김주성 단 한 명뿐이다대표 인기 스포츠인 축구의 경우엔 한 시즌에 양 팀 간 맞대결이 2번 넘게 이뤄지기 힘든 특성상 사례를 찾기조차 어렵다이러한 배경이 있으니 팬들이 설정한 문턱이 매우 높은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asd.jpg


 

#제각기 다른 기준

 

이렇게 은퇴 투어를 누릴 수 있는 기준이 높은데그래서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모호한 것도 논란의 주된 이유다메이저리그에서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4번의 은퇴 투어 역사 속 마지막 주인공이었던 2016년 데이빗 오티스의 경우 논란의 대상자가 됐다과거 금지 약물 복용 스캔들과 더불어 이전 3명에 비해 다소 부족했던 커리어가 문제였다전 야구팬의 충분한 공감대 없이 이벤트를 강행한 여파는 컸다직전까지 4년간 3번이나 은퇴 투어가 진행되는 등 활발히 논의되던 분위기가 이후 차갑게 얼어버린 것이다.

 

KBO리그의 1, 2호 주인공이 된 이승엽과 이대호는 워낙 압도적인 성적과 전국민적 인기를 보유한 만큼 공감대 형성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하지만 박용택의 경우처럼 모호한 기준 때문에 앞으로 또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류현진에겐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짧다는 잣대가 들이밀어질 수 있고김현수에겐 잠실 라이벌 두 팀 중 어느 팀의 이미지가 더 강한지 모호한 게 이유가 될지 모른다누군가에겐 결격사유가 터무니없어 보일지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어차피 명확한 기준이란 건 없으니 말이다.

 

#결국 피해자는 우리

 

이러한 이유로 발생하는 치열한 갑론을박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좋으련만상술했듯 상처뿐인 논쟁이 돼가기에 큰 문제다당사자와 팬들의 마음이 크게 다친 건 물론소위 누구는 급이 안 된다라는 여과 없는 표현들과 날 선 반응이 사정없이 오가며 팬덤 간 갈등은 심히 격화됐다이러한 양상이 점차 굳어지며 이번 이대호의 사례처럼 높은 공감대를 형성한 인물에게도 여지없이 융단폭격이 날아드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논전이 주로 촉발하는 커뮤니티에선 팬덤 간 부정적인 기류가 쉬이 해소되지 않는 편이고잠잠해졌나 싶다가도 일순간 재발화하곤 한다슬프게도 은퇴 투어가 화두에 오를 다음번에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 말하기 어렵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건이처럼 고착화된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야구를 보며 무엇에 열광하고 감동하는가응원팀이 짜릿한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하는 순간이나 감격스러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도 있지만한 선수의 감동적인 서사에 마음이 움직인 경험이 분명 있을 거다작년 KT 위즈의 창단 첫 통합우승막내 구단의 우승 신화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두 노장 박경수와 유한준의 스토리였다데뷔 19년 만에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 MVP까지 수상한 박경수의 투혼철저한 자기관리로 존경을 한몸에 받는 최고령 선수 유한준이 개인 첫 우승과 함께 그라운드를 떠나는 모습은 크나큰 여운을 남겼다은퇴 투어는 분명 한 선수의 야구 인생을 스토리로 가공해 팬들과 감동을 나눌 소중한 기회다이러한 자리가 더 활발히 만들어지기는커녕 갈등과 조롱 속에 무산되고 상처로만 남는다면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통탄할 일일 거다.

 

#변화를 촉구하며

 

이승엽과 이대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KBO는 은퇴 투어에 결코 미온적이지 않다. 2017년 이호준에게 자체적으로 비공식 은퇴 투어를 열어주고 재작년 박용택의 행사를 추진했던 선수협도 마찬가지다결국중요한 건 팬 여론이다모든 구단의 협조가 필요한 자리기에아무리 협회에서 적극적이라 한들 팬들 사이에서 견해가 크게 갈리면 강행하기 어렵다뜻깊은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선 팬덤 간 소모적인 갈등 완화와 의식 전환이 선행돼야만 한다.

 

희소성을 고려해 자주 시행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면꼭 그렇게 신성한 의식처럼 받들어야만 하는지 묻고 싶다당장 우리가 롤 모델로 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도입 직후 3년 연속 거행하며 활발히 논의하던 게 은퇴 투어다그들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KBO리그에선 아무리 자주 시행하려 할지라도 대상자가 매년 한 명씩 나타나기도 쉽지 않을 거다아무리 문턱을 낮춰도 선수가 미리 자신의 마지막 시즌임을 공표해야 하며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들어야 하는 등 필요조건도 많다벌써부터 너무 자주 열리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건 지나친 우려가 아닐까 싶다.

 

꼭 거창한 의식이 수반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뜻깊은 선물 증정식이 있던 이승엽의 사례도간단한 꽃다발 수여와 기념촬영이 있던 이호준의 사례도 둘 다 은퇴 투어였다선수와 팬들이 감동을 나누고 추억을 쌓는 덴 후자의 규모로도 충분하다박용택 본인의 만류 이후 상대 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꽃다발을 안겨주고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가 훈훈함을 느꼈다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간소한 행사엔 열려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상처를 최소화하며 소중한 이야기들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기록을 거둔 모범적인 선수였다면 모두의 축하 속에 떠날 수 있는 KBO리그가 되길 소망한다물론 그 기록이 어느 정도인지모범의 기준이 무엇인지 합의를 끌어내기까진 갈 길이 멀겠지만최소한 팬들 사이에서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것만으로도 큰 첫걸음이 될 거란 의견이다.


132_web.jpg

▲ 더그아웃 매거진 132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2호 (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하이파이브 1 공감하면 하이파이브 하세요!

댓글 1

더그아웃매거진, 은퇴투어, 은퇴투어논란, 프로야구, KBO리그, KBO, 야구

등급
답글입력
Top
등급
답글입력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수정취소 답글입력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