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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는 리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개선점을 발견하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수많은 제도가 깎이고 다듬어지는 절차를 밟았고, 그 덕분에 KBO리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막연히 아름답지만은 않다. 리그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최근 KBO가 보인 행보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허구연 총재의 부임 이래 대대적인 개혁 의지를 천명한 KBO, 그들은 과연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12월 8일 작성)
에디터 김민규 사진 키움 히어로즈
#2년 만에 제자리로
지난 131호(3월호), ‘더그아웃 보이스’에서 다뤘던 ‘퓨처스리그 FA’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본지에서는 시행 첫 시즌이 지난 시점에서 해당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논의한 바 있었다. 당시 주요 논지는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퓨처스리그 FA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지도 모르며, 결국 ‘선수의 선순환’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장기적으로 리그의 경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개선점이 없었던 퓨처스리그 FA는 시행 2년 째에도 큰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2022시즌 종료 후 공시된 16명의 권리 대상자 중, 신청자는 LG 트윈스 한석현과 이형종 두 명뿐이었다. 물론 한석현과 이형종 모두 각각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로 이적하면서, 이적 사례 없이 2차례의 재계약만 성사된 작년보다는 다소 사정이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총 30명의 자격 취득자 중 5명만이 권리를 행사했고, 그중 이적에 성공한 것은 2명뿐이라는 사실을 보면 제도 자체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행 내내 눈에 띄는 기대효과를 만들지 못했던 퓨처스리그 FA는 끝내 폐지가 결정됐고, 내년부터는 2차 드래프트가 부활한다. 선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존의 제도를 폐지하면서까지 도입했던 제도가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실패작이라는 인상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녕 최선이었나
폐지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방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한적이기는 했어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첫해와는 달리 분명히 이적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비현실적인 자격 취득 조건’을 완화하여 더 많은 선수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면, 향후 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권리를 행사하여 ‘제2의 한석현’이 될 수 있는 여지 또한 존재했다.
게다가 ‘첫해 연봉은 직전 시즌과 동결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음에도 이형종의 사례처럼 다년 계약이 가능해짐으로써 단순히 ‘기회 보장’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금전적인 면에서 선수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선례 또한 만들어졌다. 만약 KBO가 퓨처스리그 FA를 운영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분명히 방법은 있었다.
그런데도 KBO는 폐지를 택했다. 물론 2022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애당초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것이 결정됐기에 한석현과 이형종의 계약이 제도의 존폐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KBO가 진정으로 이 제도를 도입할 때의 의지가 강력했다면, 이렇게까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성급하게 폐지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퓨처스리그 FA 제도를 도입할 때 KBO의 진심은 어디까지였을까.
제도의 맹점을 인정하고, 빠르게 변화를 가져간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2년 전, 제도를 구상하고 도입했던 KBO의 기준에 줏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새 제도가 이전보다 확연하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결국 오래지 않아 도로 회귀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다시 말해, 2차 드래프트를 폐지했던 결정을 단 2년 만에 스스로 뒤집어버린 KBO의 결정에는 분명한 기준과 방향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충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퓨처스리그 FA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KBO가 이와 같은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현실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엄격한 자격 취득 기준, 금전적 이득을 도모할 수 없는 연봉 산정 기준 등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는 분명히 제도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아니, 반드시 예측했어야 했고, 그에 대한 보완 장치까지도 마련하는 것이 옳았다.
수많은 선수가 2차 드래프트의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음에도 KBO는 끝내 제도의 변화를 가져갔다. 그 정도로 강한 의지로 도입한 제도라면, 적어도 2년 만에 제도를 폐지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했다. 설령 제도의 보완을 위해 2차 드래프트를 부활시켜 두 제도를 병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정 기간은 퓨처스리그 FA를 지켜보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대대적인 수정이 뒤따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폐지를 택함으로써, 결국 KBO는 스스로 실패를 자인한 꼴이 됐다. 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게 했던 2차 드래프트가 다시금 부활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나름 야심 차게 시작했던 퓨처스리그 FA 제도가 어두운 단면만을 보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반복되는 문제
명확한 기준이 없는 듯한 운영은 단연 이번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년의 리그 중단 사태 또한 KBO가 매뉴얼을 유명무실화시킨 대표적인 경우다.
2021시즌 개막 전, KBO는 시즌 도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퓨처스리그에서 대체 선수를 수혈해서라도 리그를 중단하지 않고 경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것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 일부 구단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자 기존의 매뉴얼을 뒤집고 리그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KBO의 단독 결정은 아니었지만, 이사회를 소집하고 사안의 최종 결정권이 리그 운영 주체인 KBO에게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초기에 정했던 스스로의 대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제도의 도입·시행을 떠나 전반적인 KBO 운영방식의 개선이 요구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본인들이 초기에 정했던 방향성과 의지를 지킬 필요가 있다. 주변의 피드백이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아니면 말고’ 식의 줏대 없는 태도는 분명 다르다.
#다가올 변화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최근 KBO가 많은 개혁을 단행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 8월에는 2015년부터 이어진 ‘2연전’ 체제를 폐지하고, 2023시즌 후반기에는 ‘3+1’ 형태로 일정을 편성할 것임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포스트시즌 제도를 개혁하려는 조짐이 보여, 그들의 행보에 각종 언론과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변화의 요지는 이렇다. 현행 포스트시즌 시스템이 팬들의 흥행을 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10개 구단 중 5팀이 진출하고, 하위 팀부터 계단식으로 진행되는 현 방식은 상위 팀에 과도한 어드밴티지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하위 팀의 업셋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메이저리그(이하 MLB)나 일본 프로야구(이하 NPB)처럼 모든 팀이 포스트시즌 시작부터 시리즈에 참여하는 방식을 채택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혹자는 한국 프로농구(KBL)에서 시행되는 6강 플레이오프 시스템과 비슷하게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구체적인 로드맵은 다르지만, 변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도는 결국 하나다. 상위 팀들이 대기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가을야구 매치업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하위 팀들의 업셋을 더 용이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KBO 역시 이들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KBO의 입장뿐 아니라 현행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으로 봤을 때, 포스트시즌 시스템도 머지않아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물론 현행 제도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면 수정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포스트시즌 제도 또한 여러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이 아니던가. 문제는 현행 제도가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거다. 하위 팀의 우승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1위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어 가을야구의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가 지적받는 지점인데, 이는 단일리그로 시행되는 KBO리그의 특성상 있을 수밖에 없는 특징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KBO가 구상하는 방법대로 제도를 손본다면, 오히려 기존보다 마이너스 요소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포스트시즌에 참가하는 팀이 전체 구단의 절반 이상이라면, 그 시리즈의 가치는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중위권에만 속하더라도 정규시즌 우승팀과 우승확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우승의 권위 역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낮아질 것이 자명하다.
심지어는 구단들이 정규시즌 때 굳이 무리해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이에 최악의 경우 모기업에서 투자를 대폭 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과 선수층이 얇아지고, 리그가 하향 평준화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결코 KBO가 바라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새로운 제도로 바꾸고 나서 위와 같은 문제점이 생겼을 때, 이번 퓨처스리그 FA의 사례처럼 뒤늦게 문제를 자각하고 원래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 식의 운영이며, KBO는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실정에 맞게
흔히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 중 하나는 MLB의 변화다. 야구의 본고장이자 전 세계 최고의 선진 야구 리그로 평가받는 그들의 변화는, 전 세계의 야구 흐름의 변화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대상에 KBO리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스트라이크 존, 비디오판독 등 MLB의 변화가 일어난 후 KBO리그에도 같은 변화가 연쇄적으로 이뤄진 적이 많으며, MLB의 ‘룰5 드래프트’는 KBO리그의 2차 드래프트 제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 중 비디오판독 도입 등의 변화는 KBO리그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이처럼 타 리그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세계야구의 흐름을 따라감과 동시에 리그 발전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따라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야구라는 대전제를 공유하고 있더라도, 리그 시스템, 인프라 등 여러 측면에서 모든 리그는 저마다의 특수성을 가진다. 당장 KBO가 가을야구 시스템에 변화를 주기 위해 참고하는 MLB나 NPB는 양대 리그 체제로, 단일 리그 체제인 KBO리그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들의 제도를 별다른 토착화 작업 없이 도입한다면, KBO리그의 실정과 괴리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KBO는 리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립해야 한다.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우리의 실정에 부합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제도에 변화를 줄 거라면, 시행 이전에 최대한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설령 그로 인해 도입에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더는 근시안적이고 무리한 운영으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Fan-first’
변화와 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KBO가 추진하는 변화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주곤 했다. 마치 임기 내에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을 남기려는 듯한 근시안적인 변화는 오히려 리그를 퇴보시킬 뿐이다. KBO리그는 연속성을 갖는 리그인 만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해 KBO는 ‘팬 퍼스트(Fan-first)’라는 슬로건 아래 의욕적으로 많은 정책과 이벤트를 준비하고 시행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Fan-first’는, 팬들이 지켜볼 리그를 건강하고 정상적인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만큼, 개혁 의지를 천명한 KBO가 앞으로 팬들의 실망이 아닌 박수를 받는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41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41호 (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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