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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Talk]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 MEMORIES

dugout*** (dugout***)
2019.07.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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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혹의 나이를 앞둔 삼성 마운드의 중심

 

나이에서 ‘9’라는 숫자를 보면 흔히들 아홉수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미완의 숫자 ‘아홉’이 들어간 나이를 불길한 시기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을 단번에 미신으로 만든 선수가 있다. 세 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시작으로 개인 통산 4번째 완봉승을 거두며 두 시간에 만에 퇴근을 외쳤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 통산 130승 고지를 밟아 삼성 라이온즈 최다승 투수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올해로 서른아홉, 불혹의 나이를 앞둔 그는 미완의 ‘9’가 아닌 한 단계 높은 ‘10’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에디터 박서휘 사진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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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환 (6월 5일 인터뷰)

출생 1981년 10월 8일 부산광역시  183cm 몸무게 88kg

별명 윤커브, 윤태자

 

축하한다! 삼성 프랜차이즈 선수로서 최다승을 기록했다. 소감이 어떤가?

기분이 좋다. 제일 많은 승수를 올렸다는 것에 자부심도 생겼다.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가 있는데 그걸 이뤄나가는 과정 중 하나라 기쁘다. (어떤 목표인지 알려줄 수 있나?) 나중에 공개하겠다. 지금은 비밀이다. (웃음)

 

130승,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큰 숫자긴 하지만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대기록을 세웠을 당시 주변 반응은?

역대 8위 성적이라며 대단하다고 하더라. 선수들과 지인들이 더 기뻐해주고 축하해줘 고마웠다.

 

올 시즌 선발투수로서 삼성의 마운드를 톡톡히 지켜내고 있다. 특히 99구만으로 완봉승을 거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시즌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4년 만에 달성했는데 뿌듯했다.

 

두 시간 만에 경기가 끝나 2019시즌 최단 시간 경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날 유독 컨디션이 좋았나?

사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걱정하면서 던졌는데 의외로 완봉승을 거뒀다. 상대 팀 투수도 워낙 잘 던진 경기라 두 팀 모두 집중이 잘 됐던 것 같다.

 

선수들이 퇴근하며 어떤 말을 하던가?

축하해주며 대단하다고 칭찬해줬다. 모두 기분 좋게 귀가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난다.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해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무척 힘들었다. 계약 과정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지인들과 부모님께 많은 조언을 구했다. 부모님이 야구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젊은 투수들과 선발진 경쟁을 하게 돼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그렇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윤성환’하면 무조건 선발투수라고 여겨주던 때가 있었고 나 또한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감독님께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겠다고 하시고 흐름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그만둘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섭섭함과 아쉬운 마음이 공존했지만 이런 상황들을 예상해뒀던 터라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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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합류가 좀 늦었다. 스스로 가졌던 마음가짐은?

오로지 팀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어떻게 하고, 몇 승을 거두고 이런 개인적인 욕심보다 기회를 얻었으니 선후배가 조화를 이루며 멋진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이제는 어엿한 팀 내 두 번째 맏형이다. 선배의 시각으로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갈 투수를 꼽자면?

양창섭, 원태인, 최충연을 꼽고 싶다. 이 세 선수가 앞으로 삼성의 선발진을 담당할 것이라 본다.

 

이들 중 마치 어렸을 때의 본인을 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선수가 있나?

양창섭이다. 투구 자세와 성격이 나와 비슷하다. 창섭이도 까불거나 나서지 않는 묵직한 성격이다.

 

스스로를 묵직한 성격이라고 표현했는데 야구선수 윤성환과 사람 윤성환은 각각 어떤지 궁금하다.

선수 윤성환은 야구에 있어 진지하다. 평소에는 낯을 많이 가린다. 친해지면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만 그 전에는 조심스러운 편이다. 한 번 봤다고 먼저 연락하고 곧바로 친해지지 못한다. 여러 번 보고 공감대가 형성돼야 형, 동생으로 지낸다. 그래서 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먼저 다가가고 빨리 친해지는 성격은 아닌데 친해지면 깊고 돈독하게 지낸다.

 

그럼 평소에 후배들에게는 어떤 선배인가?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나이차이도 꽤 나서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유독 나이 차이를 느낄 때가 언제인가?

2000년생이 스무 살이라고 하더라. 내가 00학번인데… 그때 태어난 동생들이 벌써 신인이 된 것을 보고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느꼈다. (거의 삼촌뻘이지 않나?)그렇다. 19살이나 차이나니 삼촌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삼촌으로 안 보인다. 동안의 대명사 아닌가?

사복을 입으면 더 어리게 봐주신다. 나이를 얘기하면 다들 깜짝 놀라더라.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선수보다는 어려 보인다고 생각이 드는 선수를 꼽자면?

아마 또래들이나 고참 선수들 중에는 내가 제일 어려보이는 것 같다. (웃음)

 

평소 자기관리를 잘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관리가 동안의 비법 중 하나인가?

그런 것 같다. 술, 담배를 일절 안 할 뿐더러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이런 습관이 영향을 주고 있다.

 

체중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한다고?

탄수화물 섭취를 조절하는 편이다. 야구장에서 운동은 꾸준히 하니까 탄수화물과 더불어 식단에 조금만 신경 쓰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수월하다.

 

그 외에 이렇게 1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인지?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주는 스케줄은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매일 주어진 훈련을 버티며 이 악물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데뷔 후로 쭉 삼성에서 왕조 시절도 함께 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언제인가?

2014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경기도 재밌었고 가장 힘들게 우승을 차지하게 돼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제일 잘 했던 해다.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는 잘 간직하고 있나?

우승 반지가 총 4개 있는데 다 아버지께 바로 드려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2014시즌에 받은 것도 아버지 사이즈로 맞춰서 드렸다. 아마 지금도 끼고 다니실 거다. (부모님께서 무척 뿌듯해 하실 것 같다.) 내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시는 게 유일한 낙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을 위해 야구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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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삼성의 역사를 함께하며 많은 유니폼을 입었다.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인가?

옛날 줄무늬 유니폼이 너무 좋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그때 팀이 항상 잘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오랜 기간 유니폼을 입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면?

당연히 1순위는 부모님이고 두 분이 떠오른다. 그 중 한 분이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님이다.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인 모든 부분에 있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구속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때 투수는 스피드가 아니라 컨트롤이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해주셔서 극복할 수 있었다. 코치님 덕분에 어쩌면 평범한 선수일 수 있던 내가 130승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분은 선동열 감독님이다. 오치아이 코치님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셨다면 선동열 감독님은 기회를 주셨다. 내가 신인 때 수석코치님이었는데 투수 파트를 전담하셨다. 그때 이름값은 필요 없고 실력대로 엔트리를 짜겠다고 선포하셨다. 명단을 보니 정말 새로운 얼굴이 5명이나 있었다. 그중 한명이 나였다. 선발 역시 감독님께서 시켜주셔서 할 수 있었다.

 

감독님과는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지?

전지훈련에 가면 항상 뵙고 가끔 사우나에서 만날 때도 있다. FA 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감사하다고 연락드렸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던 것은 감독님 덕분이고 그 은혜를 절대 잊을 수 없다.

 

드래프트 때를 회상해보자. 2004년 입단할 당시 기억나는가?

아직도 생생하다. 살면서 한 번도 그만큼 기뻤던 때가 없을 정도다. 워낙 간절했고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축하해주셨다.

 

현 시점에서 봤을 때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처음 세웠던 목표나 계획들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보는지?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뤘다. 입단했을 때 ‘선발투수든 뭐든 TV에 나오는 1군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1군에 진입했을 때는 10년 동안 잘 버텨내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더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감사하다.

 

처음보다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점과 여전히 같은 점은?

야구를 대하는 자세는 여전히 간절하다. 다른 게 있다면 예전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변 반응과 대우도 큰 차이가 생겼다. 베테랑으로 성장해갈수록 감독, 코치진과 더불어 선수들까지도 여러모로 잘 해준다.

 

최근 친하게 지내던 임창용의 은퇴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만감이 교차했다. 본인도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 했고 기량도 충분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게 돼 안타까웠다. 나 역시도 같은 위치에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오치아이 코치님께서 앞으로 2년은 더 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셨다.

이제 내년이면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작년에 계약할 때부터 ‘구단에서 놓아줄 때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목표하는 은퇴 나이는 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해마다 계약해야 하는 입장이라 멀리 보기보다 당장 맡은 시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야구 외적으로 마지막 30대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해는 꼭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다. 다른 나라는 가봤는데 아직 유럽은 가보지 못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스페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가서 현지 음식도 먹고 관광 명소도 구경하고 싶다.

 

제2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가고 싶다. 마침 삼성과 시카고 컵스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 중인데 연수 조건이 영어 구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하더라. 가서 배우고 오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이후에는 프로야구 코치도 좋고 유소년 야구선수도 육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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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혹은 유소년 야구선수를 가르치고 있을 것 같다.

 

남은 시즌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부상 없이 풀타임을 소화하고 싶다. 현재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관리를 잘해서 팀에 보탬이 되겠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윤성환의 명언 한 줄을 들려 달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늘 이 말을 지키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버텼다. 지금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이다. 윤성환에게 야구란?

내 인생의 전부다. 10살 때부터 야구를 했다. 생각할 수 있는 나이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야구를 하고 있으니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윤성환에게 삼성 라이온즈란?

제2의 고향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대학교까지 마친 부산이 첫 번째 고향이라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한 삼성이 내게는 두 번째 고향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야구장에 오시면 기쁨을 드리는 경기, 이기는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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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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