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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한화 이글스 이용규 MEMORIES

dugout*** (dugout***)
2016.06.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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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혹시 독자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번 ‘더그아웃 피플’의 주인공은 KBO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성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멋들어진 수염을 가지고 있는 한화 이글스 이용규다. 독자들이 그렇게 기다려왔던 이용규를 만난 기념으로 에디터도 개성을 공개하기로 했다. 바로 개인, 프랜차이즈 가리지 않는 카페의 열성 팬이라는 점이다. 더운 여름이 온 만큼 에디터가 좋아하는 음료를 이용해 이용규의 야구 인생을 풀어보려 한다. 굴곡이 있는 인생을 산 야구선수 이용규. 그만큼 그 음료의 종류도 다양하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여지원 Location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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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프레소, 그 쓰디쓴 기억

 

카페에 있는 음료 중 가장 쓴 에스프레소. 양도 7~8g으로 아주 작은 컵에 담겨 나온다. 이 컵만큼 ‘작은’ 나이인 초등학생 때부터 방망이를 잡은 이용규.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야구에 관해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타는 의지로 계속해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때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야구 1차 지명회의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몇 달 뒤 2차 지명회의를 통해 입단하게 된 LG 트윈스에서는 베테랑 선수들에 가려졌다. 그의 시작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처럼 썼다.


서울 성동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어요. 그 계기가 뭔가요?

야구를 좋아했어요. 운동장에서 야구시합을 하는 형들과 야구장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선수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 이유로 어린 나이에 프로야구선수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지지해주지 않았어요. 작은아버지도 프로 선수였는데 주목을 받지 못했거든요. 프로 세계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아셨던 것이죠. 제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하니까 결국 믿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발이 빠른 편이었나요?

네. 체구가 작아서 빨리 달리기가 쉬웠어요. 지금도 주위에서 ‘체구가 남들보다 작아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불편한 점 전혀 없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전혀는 아니네요. 딱 한 번 있었어요.


언제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지명 받을 때요. 고등학생 땐 2001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최다 안타 상을 받을 정도여서 야구에 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주위에서 서울 팀에서 1차 지명을 받을 것이라고 얘기를 해 주셨기도 하고요. 그런데 실제 스카우트들은 절 다르게 보더라고요. 제가 덩치가 작아서 나무 배트를 드는 데 체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2004년 당시엔 고등학교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썼는데 프로에 와서 나무 배트를 들라고 하기 약해 보였나 봐요.

 

그래도 2차 지명회의에서 LG 선수가 됐어요.

네. 프로 선수가 된 건 기뻤지만, 그 당시 LG엔 제 자리가 없었어요.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거든요. 박용택, 9번 이병규, 최만호(현 롯데 자이언츠 작전코치) 선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외야엔 루 콜리어라고 용병 선수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많이 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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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 키위 스무디, 달지만 조금은 신(?) 기억

 

그러던 이용규는 2004년 겨울 KIA 타이거즈 선수가 됐다. 2:1 트레이드로 KIA의 소소경, 이원식이 LG 선수가 되고 LG 홍현우, 이용규가 KIA 선수가 된 것이다. 광주에 자리 잡은 그에게 당시 KIA의 수장이었던 유남호 감독이 선물을 줬다. 바로 주전으로 뛸 기회. 비록 2009년 한 시즌은 복사뼈 부상으로 날리긴 했지만, 이용규는 KIA에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WBC(World Baseball Classic) 같은 큰 국제 대회도 그를 찾아왔다.


2005년 트레이드로 KIA 선수가 됩니다.

네. KIA 유남호 (전)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경험도 많이 쌓았고요.

 

31도루라는 멋진 기록이 증명해주네요.

프로가 되고 마음껏 1군 무대를 누린 건 그 해가 처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행복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야구를 그라운드에서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 팀은 하위권에 있었지만 그래도 팀에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까지 잘하다가 2009년 복사뼈 부상을 당해요. 그때 당시 타율이 2할 6푼대로 이용규 인생에서 가장 저조한 타율이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정)근우 형 공 잡다 그랬죠? (웃음) 2009 WBC에서 열심히 했는데 팬 분들이 워낙 좋아하셔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하려다 사고가 났어요. 개막하고 세 경기 만에 부상이라니….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실수로 부상을 당한 게 아니라 팀을 위해 몸을 던지다가 운이 나쁘게 펜스에 부딪힌 거니까요.


(중략)


부상도 잠시 2010년 본격적으로 용규 놀이가 시작! 됐어요. 8월 29일, 넥센 히어로즈 박준수 투수(현 넥센 불펜코치)를 상대로 스무 개의 공을 뺏어냅니다. 와, 어떻게 해야 파울을 그렇게 많이 쳐요? 비법이 있나요?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파울을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에요. 파울 치고 싶어서 치면 저는 야구 천재죠. 타율도 아마 4할 이상 나오지 않을까요? (웃음) 타석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저는 한화에서 테이블세터를 맡고 있는데 이 역할은 최대한 공을 고르고 출루해서 중심 타자들이 점수를 낼 수 있는 밥상을 차려야 하잖아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기에 임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상대 팀 투수들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저를 상대하는 투수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프로라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승부가 기대되네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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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한정 메뉴, 국대빙수

 

9년 동안 KIA에 있었던 이용규가 기록한 안타의 개수는 총 1,101개. 평균을 내면 매년 122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KIA의 승리를 이끌었다. 베이징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를 맡은 명장들이 그런 이용규를 놓칠 리 없었다. 작년 가을에 열린 프리미어 12까지 합하면 그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것은 총 다섯 번이나 된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이용규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대표 1번 타자였다.


태극 마크를 다섯 번이나 달았어요.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World Baseball Classic), 2006 도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제일 기억에 남는 대회가 무엇인가요?

음, 사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죠! 당시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절 뽑아 주신 김경문 감독님! 지금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훌륭한 동료들과 금메달을 따서 군 혜택이라는 선물을 받았어요.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작년 시즌까진 2009년 WBC였는데 가을에 프리미어 12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당시 국민이나 야구인들이 한국 대표팀 구성이 좋지 않다고 성적이 저조할 것이라고 했었어요. 그래도 즐겁고 편하게 하니까 일본도 이길 수 있더라고요. 결국, 모두의 생각과 다르게 한국이 우승했습니다. 대표팀은 언제 가든 항상 즐거운 것 같아요. 여름에 열리는 올스타전을 제외하면 다른 팀 선수들이랑 같이 어울릴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국가대표로 경기에 나가는 것이 부담되지 않나요?

어릴 땐 부담이 없었어요. 그냥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담이 돼요. 여러 번 나가다 보니 성적에 대한 부담이 생기더라고요. 저 같은 중고참 선수들이 대표팀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그래도 영광스러운 자리니까 언제든 불러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웃음)

 

2009년 WBC 때는 결승전에서 일본에 아쉽게 패해서 은메달을 받아요. 하지만 그 메달을 목에 걸지 않죠. 크, 역시 남자의 자존심인가요?

그 당시에 일이 많았어요. 일본 여론에서 저희 팀에게 안 좋은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심리적으로 기분이 나빴기도 했고요. 결승전 때는 헬멧에 공도 맞고 슬라이딩하다가 다리도 삐끗하고…. 한일전은 모두에게 예민한 만큼 정말, 꼭, 반드시 이기고 싶었는데 은메달을 받으니 죽기보다 걸기 싫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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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메리카노

 

프로 선수가 된 지 9년 뒤인 2013년, 이용규는 처음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광주에 이어 그가 밟은 땅은 대전. 계약금을 포함해 4년 동안 67억을 받기로 약속하며 한화 선수가 됐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한화. 하지만 그 팀은 언제나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쓰지만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독수리 군단은 이용규 인생에 있어 마치 ‘아메리카노’ 같은 존재다.


(중략)


예전에서 뛰던 팀들과 한화의 다른 점은 뭐가 있을까요?

스프링 캠프가 훨씬 힘들다는 것?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감독님이 선수들을 빡세게 굴리는 편이시잖아요. (웃음) 평소 경기 중에 못하면 특별 타격훈련을 받고 출근 시간도 열두 시에서 한 시로 이른 편이에요. 그래도 힘들진 않아요. 팀 분위기가 워낙 좋거든요.


한화 선수로 뛰었던 첫해, 2014년. 팀은 꼴찌를 합니다. 그러다 2015년엔 6위로 성적이 뛰어올라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권혁, 배영수 선수 같은 FA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투수력 보충이 됐어요. 불펜, 선발 가리지 않고 모든 투수가 잘 해줘서 팀이 안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또, 감독님이 새로 부임되고 유니폼도 바뀌면서 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달라졌고요.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요.


예를 들면요?

어린 후배들이 더 악착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프로 선수라면 이기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기회가 생기면 그걸 잡아야 성공할 수 있고. 어린 선수들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선배들이 ‘어랏? 얘 좀 봐라?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고 긴장할 수 있게끔요. 그 부분이 아쉽지만, 저 포함해서 선수들이 조언해주고 본보기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솔직히 한화 라인업, 죽이지 않나요? (웃음) 저, 근우 형, (송)광민이 형, (김)태균이 형, 로사리오, (하)주석이, (조)인성이 형 그리고 (차)일목 형까지. 절대 어느 팀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팀 분위기가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도 될까요?

시즌 초반의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었어요. 개막 첫날부터 LG와 5시간 넘게 경기를 펼치다 끝내기를 맞고 졌잖아요. 기억하시죠? (웃음) 하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으니까 잘할 수 있다고 팀원들을 믿고 있어요.


(중략)


8회 한화 팬들의 육성응원이 큰 힘이 되겠네요.

네. 재밌는 응원 방식이에요. 육성응원 하려고 야구장 오시는 팬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화가 이길 때는 야구장이 떠나갈 듯이 크게 들리지만 지고 있을 때 역시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지고 있더라도 아웃카운트 27개가 잡힐 때까지 열심히 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여름엔 부상을 당해서 아쉽게 보답을 하지 못했어요. KIA 박정수 투수에게 공을 맞아 종아리의 근육이 파열됐죠. 많이 힘들었나요?

몸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팠어요. 팀이 와일드카드를 바라보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다쳐서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사실 작년에 페이스가 좋아서 최다안타 타이틀을 노려보려고 했었거든요. (웃음) 그걸 놓친 것도 아쉬웠고요. 역시 사람은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되나 봅니다. 그 공을 잘 피했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타격 폼은 부상 위험 때문이라도 바꾸는 걸 고려해 본 적은 없나요?

제 자세에 대해서 부상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전 세상에 부상 위험이 있는 타격 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다리를 펴면서 공을 치는 타자들은 일본에도 많아요. 저는 제가 가장 잘 칠 수 있는 모양으로 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석마다 다리를 들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래도 지금 고치는 건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나이가 더 들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바꾸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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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초콜릿

 

글을 읽었다면 한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아, 이용규 이 선수 프로 의식 정말 대단하구나.’ 실제 인터뷰를 한 에디터 역시 야구 얘기를 하는 이용규의 표정을 보며 야구에 관한 그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약 25분간 진행된 인터뷰를 하면서 농담할 때를 제외하곤 잘 웃지 않던 그. 갑자기 부인 유하나 씨와 아들 도헌이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얼굴에 ‘자동으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tvN <택시>, SBS <오 마이 베이비> 등에 출연했어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방송에 출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따로 이유가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방송 출연하는 것 싫어해요. 어릴 때부터 야구만 해서 야구가 아닌 다른 것은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저희 와이프가 방송사에서 거의 두 계절 동안 계속 부탁이 들어온다고 해서…. 미안해서라도 잠깐 출연하자고 해서 찍게 됐어요. 아, 도헌이와 함께 출연했던 방송은 재밌었어요. 비록 짧은 방송이지만 나중에 커서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 되니까요.

 

방송에서 유하나 씨는 도헌이가 야구선수를 한다고 하면 반대한다고 하셨고, 이용규 선수는 시킨다고 했어요. 이야기의 결론은 잘 지어졌나요? (웃음)

네. 도헌이가 좋아하는 것 시키기로 했습니다! 저희의 가장 큰 바람은 아들이 좋아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에요. 어떤 일이든 그게 나쁜 것만 아니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생각입니다.


멋진 야구선수라는 말뿐 아니라 멋진 아버지라는 말도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웃음) 사람은 항상 뭐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열심히 하고 그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생각 난 질문이 하나 있어요. 유하나 씨의 구첩반상 중 제일 맛있게 먹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다 잘 먹어요. 애호박 전, 삼겹살 김치 볶음, 시금치 된장국 등 제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니까요. 제 힘의 원천은 아내가 해 준 요리입니다!

 

원정 경기 때문에 대전을 떠나있으면 도헌이나 유하나 씨가 외로워 할 것 같아요. 멀리 있으면 애정 표현을 어떻게 하세요? (부끄)

영상 통화를 자주 해요! 제가 표현을 잘 못 하는 편이라 영상 통화를 해도 솔직하게 말을 못 하는데 얼굴을 봐야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문자나 메신저로는 표현을 잘하고 이모티콘도 잘 보내는데 왜 얼굴 보곤 어려운지 아직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표현을 너무 자주 하면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지 않나요? 연애하는 것처럼 밀고 당겨야 더 설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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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케이크

 

카페에서 음료의 맛도 중요하지만 단 케이크를 먹으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마찬가지로 글을 읽는 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에디터가 몇 가지 질문을 더 해 봤다.

 

수염은 이용규의 트레이드마크에요. 은퇴할 때까지 쭉 기를 건가요?

네. 아직까지 자를 생각은 없어요. 아까 등 번호 15번을 보면 절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수염도 마찬가지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하는 것이 귀찮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겠네요. 은퇴할 때까지 쭉 기르고 다닐 거예요. 대신 멋지게 관리해야겠죠?

  

혹시 징크스 같은 건 있어요?

LG에서 뛸 때까지는 있었어요. 전날 갔던 길과 똑같이 가거나 같은 옷을 입어야 성적이 잘 나왔어요. 타석에 들어설 땐 헬멧부터 쓰고 보호 장비를 차야 안타를 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거 신경 쓰는 것도 힘들어지더라고요. 어느 한순간부터 그런 징크스를 없애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징크스와 반대로 생활하기 시작하니 없어졌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한화 팬들에게 한마디!

안녕하세요. 한화 이글스 이용규입니다. 올 시즌 저희 팀에 대한 기대가 크셨고 그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초반에 너무 많은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 저희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야구장 오셔서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저와 함께 ‘기적’이라는 그 단어를 믿어주세요. 올 시즌 꼭 기적을 이루겠습니다. 변함없이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

이제 용규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됐다. 앞으로 이용규는 한화메리카노에 단 시럽을 더할까? 아니면 쓴 샷 추가를 할까? 5년 후, 그의 음료에선 무슨 맛이 날까. 앞으로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그의 응원가 (Don’t Stop~ 날쌘돌이 용규~♬) 처럼 그의 야구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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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7월호(63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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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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