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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terview] 이동현 MEMORIES

dugout*** (dugout***)
2020.01.0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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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작은 없다

 

한 번도 힘든 토미 존 수술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150km/h가 넘는 구속은 130km/h 대까지 떨어졌지만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후 한 팀에서 무려 701번의 경기를 치른 그는 이제 더그아웃이 아닌 경기장에서 팬들과 함께 야구를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55살에 대통령을 은퇴했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70살에 당선됐다. 이 세상 모든 이에게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37살의 나이지만 야구를 다시 한번 공부해 더 폭넓은 시각으로 야구를 바라보고 싶다는 이동현, 지금부터 그가 그려갈 미래를 함께 들여다보자.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송서미 Location 대단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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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의 사회초년생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은퇴식을 치른 지 3개월이 흘렀다.

야구를 시작하고 3개월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처음이다. 운동을 안 하는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못 갔던 여행도 조금씩 다니고 집에서 아이도 보고 기저귀 갈면서 살고 있다.

 

지난달에는 농담 반 진담 반, 분리수거를 하며 지낸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 이사한 아파트는 분리수거하기에 아주 좋아서 자주하고 있다. (웃음)

 

은퇴 후 지하철 목격담이 있다. 여전히 대중교통을 애용하는가.

연말이다 보니 저녁에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가 많아 지하철이 편하다. 사실 이제 백수라서 월급이 나올 곳이 없다. 그래서 차보다 대중교통을 더 찾게 됐다.

 

팔은 좀 어떤가. 운동을 쉬면서 팔이 잘 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수 때보다 더 아프다. 잘 굽혀지지도 펴지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선수 생활은 마감했지만 여전히 몸은 그대로 인 것 같다.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살이 잘 찌는 스타일이 아니고 살찌는 걸 좋아하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식단조절을 하고 있다. 팔도 불편해서 아프지 않으려고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 좋은 점도 있을 것 같다.

선수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야구장으로 출근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거나 함께할 시간이 적었다. 최근에는 아이 어린이집 등하교도 직접 시키고 아내와 쇼핑을 하기도 한다. 문화센터에 같이 가는 것도 즐겁다. (육아가 힘들진 않나?) 솔직히 너무 힘들다. 특히 요즘 들어서 육아의 고충을 체감하고 있다. 진짜 다시 선수를 하고 싶을 정도다. (웃음)

 

새삼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끼겠다.

맞다. 선수 시절 부족했던 부분을 아내에게 보상해주려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말하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조금 더 아이에게 신경 쓰려고 한다. (좋은 아버지다.) 그렇게 되고 싶다.

 

아이 이름이 정후다.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처럼 키울 생각인가.

야구를 하고 싶어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이다. 좋은 선수로 키워 LG 트윈스에 입단시키는 게 작은 꿈이기도 하다. (투수나 타자 중에 어떤 포지션으로 키우고 싶은가.) 타자에는 이미 이정후가 있으니 투수 이정후도 나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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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은퇴식

 

은퇴식 때 많은 팬이 함께 울고 웃었다. 심정이 어땠나.

스스로 정한 은퇴식은 700경기였다. 스스로 대단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구단이 은퇴식을 해줄 거라고 예상도 못 했다. 정말 영광스럽고 구단에 너무나 감사하다.

 

당시 투수 교체 타이밍에 박용택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어떤 얘기를 나눴나.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해줬다. 그리고 “좋은 날이니까 울지 마”라고 했다. 정말 안 울려고 했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더라. 700경기 때와 달리 팬들의 축하와 환호성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시즌이 끝나고 난 뒤에 따로 만났나.

(박)용택이 형이 개인훈련으로 외국에 나가 있어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병규 형, 코치님들과는 시즌이 끝나고 사석에 봤는데 “잘 결정했고,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명석 단장도 눈물을 보였다.

LG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단장님이 최고참 선배였다. 같이 뛰었던 선수가 은퇴하니까 감정이 복받친 듯하다. (마지막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고생했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라. 단장이 되고 나서 처음 은퇴시킨 선수여서 그런지 더 아쉬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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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자로 아버지와 함께해서 더 애틋했다. 본인이 직접 준비한 이벤트인가?

보통 은퇴식 시구는 자녀가 한다. 하지만 정후는 아직 너무 어리고 19년 동안 아버지가 야구장에 오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구단에 부탁했고 흔쾌히 들어주셨다. (야구장에 안 온 이유가 궁금하다.) 아버지도 운동을 했던 분이다. 본인이 야구장에 오면 아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하신 것 같다. TV도 잘 못 보신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그날만큼은 효도를 해보고 싶었다.

 

조금은 갑작스러운 은퇴였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데 공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언젠가 실력이 떨어지고 더 잘하는 선수가 들어오면 자리를 내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2군 생활이 길었고 은퇴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다행히 700경기라는 타이틀이 4경기 남은 상태에서 감독님의 배려로 1군에 올라올 수 있었다. 이후에 700경기를 채운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은퇴식까지 치러주셨다.

 

시즌을 완주하고 싶다는 미련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팀이 성적도 좋아서 시기도 알맞았다. 구단과 팬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경기를 회상해보면 삼진을 잡은 뒤 세리머니가 인상 깊었다.

지고 있었지만 그날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세리머니가 나왔다. 마지막을 깨끗하게 장식해 뿌듯했다. (정말 멋졌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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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에 걸친 세 번의 수술

 

힘들었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팔꿈치 인대 접합은 꽤 힘든 수술이었다. 그 고통을 무려 세 번이나 겪었다.

지금은 성공 사례가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었다. 운이 안 좋게도 첫 번째 수술에 실패했고 얼마 뒤 일본에서 진행한 두 번째 수술도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생겼다. 솔직히 세 번째는 포기하고 싶었다. 통증도 힘들지만 반복된 수술과 재활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곁에서 누가 도움을 줬나.

이상훈 해설위원에게 울면서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험악한 말까지 하시면서 그만두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 의지를 다잡게 됐다. 지금의 아내도 힘이 됐다. 본인도 공부로 바쁠 시기에 한발 한발 함께 맞춰 나가자며 응원해줬다.

 

세 번째 수술은 성공했지만 150km/h를 상회하는 구속이 130km/h대로 떨어졌다. 강속구가 주무기였던 선수로서 상실감을 느끼진 않았나.

재활을 도와줬던 김병곤 트레이너가 130km/h밖에 안 나올지라도 18.44m에서 던지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재활에 성공했고 마운드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구속이 준 것보다 통증 없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재활을 위한 노력도 상당했을 텐데.

출퇴근 시간마다 차에서 튜빙도 당기고 야구장에 나가서 따뜻한 물에 마사지도 했다. 오른팔의 긴장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훈련을 주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팔의 두께 차이가 눈에 확연히 보였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고된 시간을 견뎠다.

왕복 세 시간을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라디오를 들으며 버텼다. 사연을 듣다 보면 나보다 더 힘들어도 이겨내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위안을 받았다.

 

선수 생활 19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2013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 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기억난다. 잠실야구장에 있던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맞다. 그동안 팬들에게 정말 죄송했다.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선수단 모두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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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LG는요!

 

투수 중 700경기 이상 뛴 선수는 있지만 한 팀에서 7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없다.

700경기를 뛴 선수가 총 12명 있다. 하지만 그중 원클럽맨은 여태 없었다. 불펜투수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기록이다. LG 트윈스라는 팀에서 수많은 경기에 뛰었다는 자체가 야구선수로서 가장 뿌듯한 결실이다.

 

LG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은가.

1994년도에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선수를 동경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가장 고급스러운 야구를 하는 팀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팬들은 열정적으로 선수를 응원하고 구단은 팬과 선수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점들이 LG를 더 사랑하게 했다.

 

LG 외에 다른 팀으로 가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나.

FA 때도 큰 차이가 없다면 LG에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요즘 들어 그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한 뒤 길에서 팬을 만나면 의리 있는 선수라고 기억해주시더라.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번 시즌 팬들에게 가을야구를 선물했다. 앞으로 LG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2019시즌은 어린 친구들이 굉장히 발전한 시즌이었다. 특히 불펜에서 두드러졌다. 과거에는 (봉)중근이 형, (유)원상이, (정)현욱이 형처럼 베테랑이 필승조를 담당했는데 지금은 (고)우석이나 (정)우영이, (김)대현이 같은 어린 선수들이 허리를 담당하고 있다. 투수진은 앞으로도 발전이 기대된다. 타자도 마찬가지다. (이)형종이와 (이)천웅이도 플레이오프를 겪고 나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이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 계속 가을야구 단골손님이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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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선수가 눈에 띄나.

투수 파트에서는 (임)찬규와 대현이, 우영이, 우석이가 자리를 잡아준 게 크다. (차)우찬이도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줄 거라고 기대한다. 내년에는 용택이 형도 마지막 해라 선수단 모두 확실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시즌을 준비할 것 같다.

 

투수에서 애착이 가는 후배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대현이가 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올해 선발투수에서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해 본인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줬다. 부족한 부분도 캠프에서 똑 부러지게 보완할 수 있는 선수다.

 

얼마 전 팔꿈치를 다치지 않았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했는데 투수들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수술이다. 4~5개월이면 회복이 되고 간단한 수술이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잘 운동하면 금방 회복할 거다. 예방 주사 맞는 정도다. 물론 수술은 다 위험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된다.

 

후배들에게 호랑이 선배였지만 동시에 아낌없이 주는 선배라고 들었다.

신인 시절에는 규율이 굉장히 강했고 그걸 경험하면서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후배들이 잘못하면 강하게 지적했다. 그래서 호랑이 선배 이미지가 생겼나 보다. 그렇다고 매번 혼내지는 않았다. 조곤조곤 이야기도 자주 했다. 특히 불펜투수들에게 조언을 많이 했다. 선발투수들은 본인만의 루틴이 있어서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 반면 중간계투는 마운드에서 공격적인 피칭을 해야 하고 상황에 맞는 투구 로케이션을 가져가야 한다. 어린 친구들은 아직 그 부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포수에게 의존하거나 긴장 탓에 극단적인 볼 배합을 하기도 한다. 은퇴를 결정한 이후 그 친구들에게 이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달했다. 몇몇 선수는 흡수를 잘해서 바로 성적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를 빌려 조언을 잘 들어주는 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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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20년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처음에는 LG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후배들과 호흡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치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연수를 가서 야구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LG만 아는 이동현이었다면 이제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또 다른 야구를 들여다보고 싶다.

 

만약 LG 코치가 된다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후배가 있나.

찬규는 한번 잡아보고 싶다. (웃음) 굉장히 발전 가능성이 큰 친구다. 그런데 마음에 상처가 조금 있더라. 그걸 깨주고 싶다. 사실 LG에 복귀한다면 가장 하고 싶은 건 재활코치다. 재활군에 있는 친구들의 마음을 보살펴 주고 힘이 되고 싶다. 재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 시기에 선수가 왜 힘든지 알겠더라. 선수와 대화를 많이 하는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다.

 

지금 뒤돌아보면 신인 시절 목표를 얼마큼 이룬 것 같나.

99%는 이뤘다. 마지막 1%는 우승이다. 이제는 이 1%를 채우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했지만 선수와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이동현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다. 야구를 시작해 선수가 됐고 은퇴를 했다. 이렇게 끝일 줄 알았는데 결국 배운 게 이것뿐이라 야구에 대한 또 다른 꿈이 생기더라. 새로운 마음으로 팀을 위해, 못 이룬 우승의 꿈을 위해 또다시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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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LG 트윈스는 어떤 존재인가.

가족과 있는 시간보다 야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힘들 때 서로 도와주고 위로해준 선수들은 내게 가족이고 LG는 그들이 있는 집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19년간 LG 트윈스에서 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더그아웃이 아닌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이동현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LG를 응원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와 여러분과 호흡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19년 동안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젊은 시절을 모두 한 팀에 바쳤다. 그리고 앞으로도 LG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 이동현. 5년간의 고통마저 경험 삼아 재활코치가 되고 싶다는 말은 듣는 이를 뭉클하게 했다. 자신의 야구 인생에 명예로운 한 획을 그어준 팀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 같은 사람. 그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평생 LG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처럼 팬들의 마음속에도 ‘롸켓’ 이동현이 더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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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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