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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 MEMORIES

dugout*** (dugout***)
2016.12.0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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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늦깎이 신인 오승환의 꿈을 향한 돌직구

 

35세. 대부분의 야구선수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은 35세의 나이에 ‘루키’라는 수식어를 달고 메이저리그에 도전, 또 한 차례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렸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그의 메이저리그행은 그저 ‘도전’에 불과했고, 우려와 기대의 물음표로 둘러싸였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지금, 그 물음표는 짜릿한 느낌표로 바뀌었다. 그는 올 시즌 76경기 79.2이닝을 소화, 6승 3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하이에 버금가는 시즌을 보냈다. 이어 103개 탈삼진을 잡아내 내셔널리그(NL) 구원 투수 탈삼진 4위에 오르는가 하면,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 닷컴>에서 제공하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에서 2.6의 기록으로 팀 내 1위, NL 구원 투수 2위에 이름을 올리며 끝판대장으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였다. 올 시즌 활약과 함께 한-미-일 세 리그 두 자릿수 세이브 달성의 신화를 쓰고,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정상에 선 오승환.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내년 시즌엔~’, ‘앞으로 더 열심히~’라며 입버릇처럼 미래지향적 문장을 반복했다. 가히 ‘루키’다운 모습이었다. 신인 선수 오승환은 오늘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돌직구를 던진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정지영 

의상 뉴에라 헤어‧메이크업 김활란뮤제네프 박승택 부원장, 이선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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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무대에서 서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올 시즌의 소감을 물었을 때 오승환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다.

 

 

“저에게 메이저리그는 ‘꿈’이었어요. 야구선수로서 설 수 있는 최고의 무대잖아요. 그런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정말 꿈만 같죠. 그렇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 새로운 꿈이에요. 그만큼 더 열심히 할 거고요. 과연 제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요.”

 

 

꿈의 무대였던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오승환. 올 시즌 그의 기록 중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1.92의 평균자책점이다. 일본에서 뛴 2년간의 평균자책점(2.25)보다 낮은 수치.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1점대 평균자책점은 제가 올해 이뤘던 것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저도 이 정도까지 잘해낼 줄은 몰랐거든요. 일본에서 뛸 때보다 성적이 더 좋아진 부분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딱히 비결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마운드에 선 매 순간 집중했고, 공 하나를 던지더라도 최선을 다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닐까요? (웃음) 내년에도 올해 못지않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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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판대장’에서 ‘Final Boss’로의 진화 

 

그의 미국행이 확정된 순간, 환호와 기대를 보내는 팬들 한편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의 리그인데….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에 못 미치는 오승환의 돌직구가 과연 통할까?’

 

 

“걱정이나 부담은 없었어요. 오히려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궁금했죠. 빨리 가서 부딪혀보고,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극복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공을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못 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음…. 이 질문은 제 공을 상대해본 타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웃음) 전 그저 포수의 사인을 따르고, 수비하는 동료들을 믿었을 뿐이에요. 마운드 위에선 상대 타자를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해서 투구했고요.

 

 

상대하기 어렵거나 까다로웠던 타자가 있나요?

모든 타자들이요. (웃음) 잘 치는 타자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한 명을 꼽으라면 생각나는 선수가 있긴 해요. 조이 보토(신시내티 레즈) 선수요. 파워도 파워지만 배트 컨트롤이나 컨택 능력이 정말 뛰어나더라고요. 타석에서 집중력도 엄청나고요.

 

 

그곳 타자들이 파워가 좋기로 유명한데, 이번 시즌 피홈런이 5개밖에 없어요. 일본 리그에서 뛸 때보다 적어요.

‘5개밖에’가 아니고 ‘5개나’ 맞았다고 생각해요. 홈런은 안 주는 게 제일 좋으니까요. 또, 제가 나가는 경기 상황이 항상 타이트하기 때문에 공 하나에도 승부가 결정되잖아요. 그래서 홈런은 되도록 안 맞으려고 하죠.

 

 

포수 야디어 몰리나 선수와의 궁합도 궁금해요.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잘 맞던가요?

몰리나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투수를 이끌어요. 위기 상황에서도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죠. 마운드에 올라와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요. 덕분에 저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투구할 수 있죠. 또, 경기를 읽고 운영해나가는 스킬이 굉장히 뛰어나요. 제가 많이 의지하는 편이죠.

 

 

몰리나 선수와의 찰떡 호흡 덕분일까요. 시즌 내내 좋은 투구를 보여줬고, 마무리투수 트레버 로젠탈이 부진하자 오승환 선수에게 기회가 왔어요. 그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며 ‘Final Boss(파이널 보스)’라는 별명이 생겼죠.

네. 듣기 좋아요. (웃음) KBO리그에서 뛸 때도 ‘끝판대장’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미국에서도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죠. 그곳 팬분들도 그 별명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심지어 ‘Final Boss’가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생겼어요. 정말 감사하고 힘이 되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 있나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께 감사하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세인트루이스 지역에 한인 분들이 많지 않은 편인데, 거의 매 경기에 오시는 분이 계세요. 제가 마운드 위에 서 있으면 들릴 정도로 크게 한국말로 응원을 해주시죠.

 

 

팬뿐만이 아니라 세인트루이스 구단 측에서도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최근 구단 측은 ‘오승환과의 계약은 2016년 최고의 선택이었다’, ‘오승환은 팀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다’, ‘그를 영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는 팀을 구한 선수다’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저도 기사 통해서 접했는데,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웃음) 또 한편으로는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도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팀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1년 동안 지내본 세인트루이스는 ‘가족’ 같은 팀이에요.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위해주고 배려해주죠. 분위기도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올 시즌 마무리투수로서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준 덕에 구단 측은 내년에도 그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오승환은 “저도 기사를 봤지만, 아직 보직에 대해선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저 역시 마무리투수를 맡고 싶어요. 스프링캠프에서 경쟁해야죠”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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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노력 

 

오승환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돌직구다. KBO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는 특유의 강력한 돌직구로 상대 타자를 압도했다. 이어 한국에서 조금씩 던지기 시작해 일본에서 빛을 발한 슬라이더 역시 그의 주무기. 이뿐만 아니라 그는 올 시즌 포크볼,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던졌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기존에 던지던 공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구종을 던져야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현재 느린 커브와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한 몸쪽 투심 패스트볼을 새롭게 익히고 있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완성되는 대로 경기에 활용하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 타자를 압도한 건 그의 공뿐만이 아니었다. 특유의 디셉션 동작과 이중 키킹도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타자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일부러 타자를 속이거나 기만하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야구 룰에도 규정되어 있듯 투구 폼 중 일부죠. 투수는 항상 타자와 타이밍 싸움을 해야 하잖아요. 제 고유의 투구 폼을 통해 타자에게 타이밍을 안 주려고 하는 거죠.”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76경기)에 나갔어요.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나요?

네. 전혀요.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분이 걱정해주세요. 혹사가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매일 경기 전 감독님께서 직접 제 몸 상태를 체크하시고 좋지 않은 날엔 바로 경기 명단에서 빼주세요. 휴식도 충분히 보장받았고요. 덕분에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기자회견 당시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첫 등판을 꼽았어요. Best 경기를 뽑아본다면?

음…. 저는 성격상 잘했던 건 기억하지 않는 편이에요. 대신 Worst 경기가 기억나네요. (웃음) (언제였나요?) 블론세이브 했던 경기요.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였죠. 8회말 무사 만루에 올라가서 잘 막았는데, 9회에 끝내기 홈런을 맞고 졌어요. 많이 아쉬웠죠. 지금 생각해도 아쉽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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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 

 

“이젠 단순히 얼마나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팀의 주축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해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무려 8명.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마감한 선수, 아쉬움을 남긴 선수까지. 제각기 다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한국 야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사실엔 아무도 반기를 들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약한다는 건 엄청난 자부심이죠. 많은 한국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를 즐길 기회가 늘어나는 것도 뜻깊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들과 만나니까 반갑고 뿌듯했어요. 물론 승부는 승부이기 때문에 봐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했습니다. (웃음)”

 

 

강정호 선수(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 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공이 더 좋아졌다”는 칭찬을 받았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그건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 같아요. (웃음) 좋다고 해놓고 바로 홈런 치던데…. (오무룩)

 

 

(중략)

 

올 시즌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들에 대해 간단히 평을 해본다면?

음…. 같은 선수로서 누군가를 평가하긴 힘들 것 같아요. 올 시즌 성적이 좋았던 선수도 있고 힘든 시간을 보낸 선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모두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는 거예요. 기존에 하던 대로만 하면 한국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리라 믿어요.

 

 

오승환 선수가 뽑은 차세대 메이저리거는 누가 있을까요?

음…. 야구라는 게 어떤 선수가 언제, 얼마만큼의 성적을 낼지는 아무도 몰라요. 특정 선수를 꼽기는 어렵지만, 정말 많은 선수가 미국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미국에서도 KBO리그를 자주 챙겨 보시나요?

그럼요. 많이 봐요. 시간 날 때마다 중계도 보고, 친분 있는 선수들의 기록도 찾아보고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워낙 오랜 시간을 보낸 팀이잖아요. 그런데 삼성이 지난 몇 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다가, 작년을 기점으로 많이 무너졌어요. 지켜보는 입장에서 친정팀의 추락이 안타까웠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네. 많이 안타깝죠. 그렇지만 항상 1등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걱정은 안 해요. 이렇게 무너질 삼성이 아니니까요. 다시 힘내서 재정비한다면 머지않아 반등할 거라고 믿어요.

 

 

아직도 오승환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는 삼성 팬들이 많아요. 삼성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립죠. 옛날 생각 많이 해요. (웃음)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그리워하죠.

 

 

이쯤에서 물어볼게요. 오승환 선수에게 삼성이란?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팀이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세 리그를 모두 경험했어요. 각 리그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서 운동하는 건 어느 리그나 비슷해요.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응원 문화’예요. 확실히 KBO리그는 응원 문화가 발달해있고, 굉장히 재밌어요. 일본도 응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한국보다는 재미없어요. 미국은 야구장에서 응원보다는 가족, 친구랑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죠.

 

 

역시 KBO리그의 응원 문화가 최고네요. (웃음) 제가 듣기로 메이저리그의 공인구와 마운드가 한국,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고 들었어요. 공인구가 조금 미끄럽고, 마운드도 딱딱하다고 하던데,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맞아요. 많은 투수가 그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공도 불편하지 않았고, 전 오히려 마운드가 딱딱한 게 더 좋더라고요. 마무리투수이다 보니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미 흙이 파여 있어요. 그 정도에 따라 투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그런데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단단해서 덜 파여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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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점(汚點) 

 

지금은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이지만,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 체력장에서 공 던지기를 잘한다는 우연한 계기로 야구를 접한 오승환의 야구 인생엔 굴곡이 많았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힘겹게 야구선수를 꿈꿨고, 고교 시절 당한 부상 때문에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 시절에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로 오랜 시간 재활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야구를 포기할 생각도 할 정도로 좌절의 시간을 보낸 그다. 이후 혹독한 재활 끝에 삼성에 입단, 국내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9년 어깨와 허벅지 부상, 2010년 팔꿈치 수술 등을 겪으며 순탄치만은 않은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그의 위치가 더 빛나는 법. 하지만 당사자인 오승환은 오히려 덤덤했다.

 

 

“저만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겪고 현재의 위치에 오른 거예요. 누구나 각자의 아픔이 있죠.”

 

 

힘든 시간을 딛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자리 잡은 오승환. 이어 일본 리그에서의 성공. 만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의 완벽한 성공스토리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찍혔다. 해외 원정 도박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 것. 그는 “명백한 제 잘못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실망하신 팬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보답하겠습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어 WBC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국가대표는 선수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죠. 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KBO리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박 파문은 앞으로도 그의 뒤를 따라다닐 꼬리표다. 하지만 언제까지 죄송해하고 반성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뼈저린 반성의 시간을 보낸 오승환. 앞으로 그에게 남은 과제는 선수로서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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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부처의 작은 변화 

 

특유의 무표정 덕에 그의 별명은 돌부처. 이에 걸맞게 그는 마운드에서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고, 표정 변화 역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올 시즌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마운드에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웃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된 것. 그는 “저 한국에 있을 때도 많이 웃었어요. (웃음) 단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을 뿐이죠. 미국에서는 한국 언론사가 저만 집중해서 찍으시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많이 포착된 게 아닐까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런가요? (웃음) 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누군가요?

정말 많아요. 두루두루 친한 편인데, 특히 불펜 투수들이랑 친해요. 쉬는 날에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쉬는 날엔 보통 뭐 하세요?

쉬는 날이 별로 없어서…. (오무룩)

 

 

아이고…. 예상치 못한 답변이에요. 저까지 슬퍼지네요. (에무룩) 분위기를 바꿔 볼게요. (웃음) 루키 헤이징(신인 신고식)에서의 마리오 분장이 인상적이었어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보통 팀의 고참 선수들이 정해줘요. 루키 헤이징은 진짜 한 팀이 된다는 의미가 있는 전통적인 행사에요. 그날 이후 동료들과 더 친해지고 관계도 두터워졌죠.

 

 

중계 카메라에 마이크 매시니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도 자주 잡히더라고요. 감독님과의 소통은 어땠나요?

감독님은 항상 제 얘기를 많이 들어주세요. 먼저 다가와서 말 걸어주시고,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하실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서로 장난도 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재밌게 지내고 있죠. (농담은 통역을 거쳐서 하나요? 아니면 영어로?) 통역을 통해서 할 때도 있고, 아는 단어를 조합해서 하기도 해요. (웃음) (영어는 많이 늘었나요?) 아뇨. (웃음) 배워야죠.

 

 

1년 동안 겪어본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흔히들 한 팀의 감독이라고 하면 어려워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매시니 감독님은 선수들과 정말 친구처럼 지내세요. 모든 부분을 다 공유하고 선수들과 장난도 많이 치시고요. 또, 선수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신경 써주시죠. 트레이너보다 먼저 직접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실 정도로 열정도 대단하시고요.

 

 

와, 정말 좋은 분이네요. 올 시즌 워낙 잘했지만, 잘 안 풀린 경기도 있잖아요. 한국에서는 블론세이브 한 날 소주를 마신다고…. (웃음) 미국에서는 어땠나요?

미국에서는 술을 거의 입에도 안 댔어요. (정말요? 그렇다면 평소 주량이 궁금해요.) 음…. 그건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서…. (웃음) (이때 그와 친분이 두터운 지인이 ‘한 짝’이라고 외쳤다.) (네? 한 짝이요?) 아,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주량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웃음)

 

 

알겠습니다. (웃음) 오승환 선수도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거나 기사와 댓글을 찾아보는 편인가요?

네. 봅니다. (웃음)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악플에 상처를 받기도 하나요?) 상처는 안 받는데, 기분은 조금 나쁘더라고요. (오무룩)

 

 

대신 제가 칭찬해드릴게요. (웃음) 실제로 보니까 체격이 정말 대단해요. (엄지 척)

감사해요. (웃음) 올 시즌 웨이트 트레이닝을 규칙적으로 했어요. (원래 한국은 시즌 중 웨이트 트레이닝을 지양하던데, 미국은 다른가요?) 네. 메이저리그에선 대부분의 선수가 시즌 중에도 규칙적으로 해요. 저도 처음에는 무리가 갈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몸 상태가 더 좋더라고요. 내년에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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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야구 인생은 현재진행 중 

 

야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대부분의 선수에게 물었을 때 어렵지 않게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아직 제 야구 인생이 끝난 게 아니잖아요.”

 

 

이어 은퇴에 대해서도 보통의 30대 중반 선수와는 조금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

 

 

“아직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당장 다음 시즌에도 마운드에 설 거고, 앞으로 던질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요?

성적과 관련한 목표는 없어요. 다만, 한 시즌 부상 없이 로테이션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올 시즌은 환경도 낯설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년엔 달라요. 더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고,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야구선수가 아닌 인간 오승환의 최종 목표가 궁금해요.

아직 선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야구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마무리투수였잖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마무리투수란?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무리투수는 기복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죠.

 

 

오승환 선수도 앞으로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주길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올 시즌 정말 많은 팬 여러분께서 응원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시차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제 경기를 챙겨보셨다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알아요. 그런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제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팬분들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과 함께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운 오승환. 이제 그는 다음 단추를 끼우기 위한 또 한 차례의 도전 앞에 놓여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 구종을 익히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35세 신인 투수. 내년에도 그가 올해와 같은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다. 그가 채울 마지막 단추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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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 매거진 6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12월호(68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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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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