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DUGOUT Interview 삼성 라이온즈 불펜코치 정현욱 MEMORIES

dugout*** (dugout***)
2017.02.15 10:32
  • 조회 4484
  • 하이파이브 3

_UG_5915.jpg

 

영웅은 돌아오는 거야!

 

도시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의 등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마땅히 사람들의 박수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궂은일을 끝내고는 또 말없이 사라진다. 영웅은 영웅인데 그다지 화려하지가 않다. 끝내는 도시를 구하면서도 스스로 어둠을 자처한다. 한 히어로 영화의 내용이다. 이번에 만날 주인공은 이 영웅과 많이 닮았다. 시즌 중에는 팀을 위해서, 국제대회에서는 국가를 위해서 등판하며 헌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타이틀이 없다. 그에게 붙은 수식어조차 멋들어진 별명이 아닌 ‘국민 노예’였다.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그는 위암을 진단받으며 사라지는 듯 했지만 결국 다시 건강하게 돌아왔다. 마운드로 복귀하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그는 이제 자신의 뒤를 이을 영웅을 육성하기 위해 팀의 코치를 맡는다. KBO리그의 다크나이트 정현욱. 이제는 코치로 변신한 그를 스튜디오로 모셨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황형순

 

_UG_5906.jpg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냈나요?

잘 먹고 운동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웃음) 운동을 너무 안 하니까 몸이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얼굴 살이 더 빠진 것 같아요.) 그래요? 사람마다 다르게 얘기하더라고요. 쪘다는 사람도 있고 빠졌다는 사람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의 불펜코치로 보직이 확정됐죠.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요?

편하죠. 아무래도 오래 있었던 팀이고, 고향도 경북이니까 어색하지 않아서 좋아요.

 

 

팀 동료들도 만났을 텐데 뭐라고 말해주던가요?

이전부터 저한테 농담 삼아 삼성으로 다시 오라고 했는데, (웃음) 전화나 문자로 연락이 많이 왔어요. “코치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내용이었어요.

 

 

팀에 새로운 선수들도 많이 보이죠?

네. 명단을 보니까 투수진 쪽에서는 몇 명 빼고는 모르겠더라고요. (선수진이 많이 바뀌었죠.) 사실 새로운 선수들은 많지만 완벽하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 젊은 선수들이 이전에 팀이 거둔 성적만큼, 혹은 더 좋은 성적을 내야 제대로 세대교체가 됐다고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과도기라고 봐야 합니다. 이 친구들이 2, 3년 후에 지금보다 더 올라가야겠죠.

 

 

_UG_5869.jpg

 

김한수 감독이 새로운 삼성의 수장이 됐어요. 선수 시절에는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선수 시절에도 말이 많이 없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주장직도 수행했던 만큼 리더십이 있던 분이었고요.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분이라서 선수들이 잘 따르지 않을까 싶어요.

 

 

코치로 부임할 때 어떤 말을 해주던가요?

아직까지는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지침은 없었고요. 선수들과 많이 소통하고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달라는 말을 하셨어요.

 

 

먹성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변함이 없나요?

요즘은 많이 안 먹어요. 조금씩 자주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위암 진단을 받으셨는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네.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5년 이상이 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병원에 꾸준히 통원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아요. 수술하고 일주일 만에 퇴원하라는 허락을 받았어요.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_UG_5909.jpg

 

배트맨 비긴즈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어요. 지금은 이래 보여도 몸이 굉장히 약했어요. (지금 모습을 보면 전혀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키는 좀 컸는데 너무 말랐어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도 야구를 좋아하시고 건강해지자는 차원에서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집에서 운동하는 걸 크게 반대하지 않았나 봐요?

네. 가족들이 다 야구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야구를 계속한다고 결정했을 때도 집에서 반대하지 않았어요.

 

 

불펜투수로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본인도 선발보다는 불펜이 몸에 맞았던 건가요?

선발보다는 불펜에서 많이 던지다 보니까 익숙해진 부분이 커요. 경기를 보면서 저 나름대로 준비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점이 불펜에 잘 어울렸던 것 같네요.

 

 

입단 초에도 그렇고 군 복무를 마친 2008년에도 그렇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종횡무진 활약했어요. 힘들지 않았나요?

저는 관리를 잘 받은 편이었어요. 많이 던지긴 했지만 그만큼 팀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줬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1998년 데뷔한 그는 이듬해부터 선발과 불펜을 동시에 오가며 7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활약한 2008년, 그는 데뷔 후 가장 많은 127이닝을 소화하며 10승을 거뒀다. 보직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위기를 막아낸 그는 팀의 요구에 따라 자유자재로 등판하는 전천후 투수였다. 그에게 ‘정노예’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펜투수로 나가면 어려운 상황에 나오는 경우가 많죠. 본인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있다면?

저는 오히려 약간 긴박한 상황에서 올라가는 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상황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니까 그런 면에서 집중력이 더 생기죠.

 

 

그 활약 덕분이었을까요. WBC에도 선발되면서 국가대표로 활약할 기회를 얻었죠.

뽑히면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덤덤했어요. 물론 아는 선수들이지만 한 팀에 모여서 같이 지내고 경기하는 게 조금 어색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런데 WBC에서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하면서 ‘국민 노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본인은 별명이 마음에 들었나요?

글쎄요. 저는 팬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부분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에요. 또 그런 별명이 제가 싫고 좋고에 따라서 붙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사실 노예라는 표현이 주는 어감은 혹사와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요즘과 같이 체계적으로 분업화된 투수진 운영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선수 시절 당시 정현욱 코치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그의 별명은 선발과 중간계투를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할 때마다 헌신하면서도 특별히 큰 부상도 당하지 않은 내구성을 대변하기도 했다. 폼 나는 별명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마저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여기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_UG_5911.jpg

 

어둠의 기사, 다크나이트

 

 

묵직한 속구도 있었지만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가 일품이었어요. 본인만의 그립이 있었나요?

저는 커브 그립을 잡을 때 검지손가락을 떼고 던져요. 일반적인 커브는 검지손가락도 공에 붙이고 너클커브를 던지면 검지손가락 끝으로 공을 찍어서 던지는데, 저는 검지손가락을 떼는 대신에 엄지하고 중지로 공을강하게 쥐고 던집니다.

 

 

그 커브로 국제대회와 시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팀은 아쉽게도 2009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어요.

당시 선동렬 감독님도 성적을 위해서 무리를 했다면 4강에 들 수도 있었을 텐데, 승부는 그 해가 아니라고 판단하셨어요. 당시 4강권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부상 선수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윤성환, 오승환 같은 주축 선수들도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요. 그래서 승부는 내년에 보겠다고 결심하셨고, 4강을 위해서 무리하기보다는 힘을 비축하는 방향으로 운영하셨어요. 시즌 막판에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셨죠.

 

 

그럼 당시에 눈에 들어오던 젊은 선수는 누구였나요?

투수진에서는 당시에도 잘 던졌던 차우찬, 지금도 불펜에서 활약 중인 백정현, 지금은 넥센 히어로즈로 간 김상수가 있었어요. 야수진에서도 굉장히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등이 있었죠. 이 선수들이 나중에는 팀의 주축 선수가 됐잖아요. 당시에도 잘했던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은 이후에는 팀도 4년 연속으로 우승할 정도로 최강팀이 될 수 있었죠.

 

 

사실 2009년의 그 성적 때문에 언론에서도 삼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하지만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왕조를 이뤘죠.

삼성은 이전까지 성적을 봐도 ‘못해도 4강은 가는 팀’이었잖아요. 위에 말씀드렸던 부상 선수들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연속 우승을 시작했던 2011년 스프링캠프 때도 무조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팀에서 존재감이 확실했던 선수였어요. 팀에서 어떤 선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좋은 선배도 있고 좀 지나치다 싶은 선배도 있었지만, 제가 입단 초기였을 때부터 함께 했던 김상엽, 박충식, 성준, 김현욱 선배님은 저한테 좋은 것만 굉장히 많이 알려주셨어요. 이분들을 닮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면을 본받고 싶었나요?) 선수들을 다그치고 주눅 들게 하는 선배가 아닌, 얘기를 들어주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뒤처진다 싶으면 밀어주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어요. 팀에서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아요. 하지만 실력적인 면과는 별개로, 성실한 선수들이 선수단 사이에서도 인정을 더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배들이 더 열심히 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선배들도 그런 선수들에게 더 정감을 가지고 챙겨줬어요.

 

 

_UG_5882.jpg

 

그래서였을까요? 2010년 4월 20일, 경기를 끝내고 오는 최형우 선수에게 ‘웃음이 나오냐’고 말했던 일화가 있죠. 어떻게 된 건가요?

당시 제 기억 상으로 차우찬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때도 굉장히 어린 선수였고 중요할 때보다는 승부에 큰 영향이 없을 때 나오는 편이었어요. 그런 선수들은 승부와 상관없이 잘 던져야겠다는 마음이 강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수비 실책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그 때문에 2군을 갈 수도 있죠. 그래서 최형우 선수가 타구 판단 미스로 실점을 허용했을 때도 투수가 안타까워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투수 본인은 그런 상황도 굉장히 아쉽거든요. 그런데 형우도 그 상황이 멋쩍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웃으면서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같은 투수 입장인 저로서도 화가 났어요.

 

 

차우찬 선수가 걱정되는 마음이 컸던 거군요.

그렇죠. 저도 어렸을 때 배웠던 부분이에요. 어린 선수는 공 하나에 본인의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에 코치들이나 선배들도 어린 투수가 등판하면 야수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해요. 야수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그 투수가 오래 갈 수 있지만, 어이없는 실책이 나오고 투구 내용이 안 좋아지면 이 투수는 또 2군으로 내려갈 수도 있잖아요. 같은 팀 동료를 위해서라도 야수들이 더 긴장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죠.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현욱 코치가 팀 내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상당했다.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는 많았지만 팀의 정신력을 다잡는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이는 결국 그였다. ‘갈락티코’라는 정책 하에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 있는 레알 마드리드도 매년 우승을 가져가지는 못한다. 그가 팀의 협동심과 정신력이 실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누군가는 웃지 말아야 했을 그 해프닝도 흐트러진 플레이로 인해 동료가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그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2013년 FA를 통해서 LG 트윈스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좋은 활약을 했어요. 하지만 이듬해에 팔꿈치 검사를 받다가 위암 진단을 받았는데….

팔꿈치 검사를 받다가 암을 발견했다는 건 잘못 보도된 것 같아요. 팔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었고 그때 들어서 속이 유독 안 좋았어요. 그런데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까 멍해지더라고요. 고맙게도 가족들은 별 동요 없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어요.

 

 

지금은 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요.

아뇨. 문제가 있습니다. (네? 어떤….) 술을 못 마시잖아요. (웃음) 술을 못 마시니까 대인관계가 좁아져요. 저한테는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시무룩) 그 외에 탄산음료도 마시면 안 되고요.

 

 

술자리 좋아하는 저도 공감이 됩니다. (주륵) 음식도 가려서 먹나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대신 평소보다는 적게 먹으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겠습니까?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살아야죠. (웃음) 대신에 몸을 생각해서 양을 줄이고 있습니다. (아내분이 신경을 많이 써줄 것 같아요.) 네. 과일이나 몸에 좋은 것들을 저한테 많이 챙겨줍니다.

 

 

‘우규민 나오냐’의 주인공, 우규민 선수도 FA를 통해서 삼성에 합류했어요.

규민이는 LG에서도 4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경쾌한 친구예요. 팀 분위기도 밝게 해줄 수 있고요. 공 던지는 면으로 보면 감각이 타고난 선수라서 적응만 잘하면 좋은 활약 할 겁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팀을 옮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더군다나 10년 넘게 뛰어왔던 팀인데 그 팀을 옮겨서 새로운 환경에서 운동을 해야 하니까요. 야구를 하는 건 같아도 환경과 분위기가 다르면 심리적으로 동요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만 컨트롤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중략)

 

 

_UG_5907.jpg

 

다크나이트 라이즈

 

 

평소와 같이 타자와 싸워야 했을 그는 암이라는 병마에 발목이 잡혀 2년 가까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영웅은 죽지 않는 법. 숱한 위기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삼진을 잡아냈던 그는 병마마저도 이겨내며 야구팬들에게 부활을 알렸다. 그렇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내려올 때와 같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며, 그는 정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마지막으로 공 던졌던 경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SK 와이번스전이었어요. (8월 17일 잠실) 그땐 그게 마지막일지 몰랐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잘 던질 걸’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사실 은퇴를 생각한 건 꽤 됐어요. FA를 계약하면서 ‘LG에서 뛰는 게 내 마지막 선수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또 그사이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FA 계약 마지막 해인 2016시즌이 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죠.

 

 

좋은 기억이 떠오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쉬움이 더 크게 남은 것 같네요.

물론 팀이 우승을 했을 때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기억나지만, 선수 생활을 끝내고 나니까 그렇더라고요. 잘 안 풀렸던 부분이 더 잘 풀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더 크게 남아요.

 

 

은퇴를 결심했을 때, 가족들은 뭐라고 해주던가요?

가족들은 아쉽다고 했어요. 몸이 회복되면서 공도 더 좋아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중간계투다 보니까 연투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힘에 부쳤어요. 예전처럼 하루에 팔도 수차례 풀고 연투를 하는 건 어렵겠더라고요.

 

 

삼성이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어요. 2009년 이후 다시 찾아온 위기인데, 코치로 임하는 각오가 있을까요?

투수코치는 따로 있으니까 저는 특별한 각오는 없고요. 선수들이 편하게 던질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기로 생각하고 있어요. 선수 생활하면서 느끼는 점인데,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선수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루기는 어렵더라고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기도 하잖아요? 선수도 단순히 실력만 좋아서는 성공하기 힘들어요.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선수가 야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 같은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도 성장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젊은 선수들을 격려하고 동기부여를 줘서, 그 친구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 대다수의 젊은 선수들은 지금 당장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잖아요. 오늘 못 던졌다고 해서 그런 부담을 계속 안고 가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도 제가 할 일이죠.

 

 

어떤 코치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미 구상이 끝난 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첫 번째입니다. 코치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코치가 좋은 사람이면 선수들도 잘 따라주지 않을까요? (웃음) 본인의 입장이 아닌 선수의 입장에서 들을 줄 알아야겠죠.

 

 

마지막으로 정현욱 코치의 복귀를 반기는 삼성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반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또 제가 맡은 코치직은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인 만큼, 선수를 잘 지도하고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UG_5916.jpg

 

***

삼성은 어쩌면 창단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시즌 삼성이 받아든 성적표는 9위. 역대 최악의 순위다. 그리고 정현욱은 그 이전에 팀의 추락과 부흥기를 모두 경험했던 이다. 이번에도 그가 맡게 된 역할은 마운드로 나가는 투수코치가 아닌, 뒤에서 선수들에게 조용히 도움을 주는 불펜코치다. 그리고 선수 시절에도 그랬듯 묵묵히, 본인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굵직한 타이틀을 따낸 적도, 일인자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었지만, 그를 지켜보던 야구팬들은 알고 있다. 그는 단순히 ‘노예’가 아닌,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침묵의 수호자, 팀을 위해 헌신하는 구원자이자, 어둠의 기사였음을.

 

 

mug_obj_148351740410477059.jpg

더그아웃 매거진 6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7년 1월호(69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agazine.co.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트위터 www.twitter.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wT46aAwOjO8mF8y6zhUBlA
네이버 tv캐스트 http://tvcast.naver.com/dugoutmz

하이파이브 3 공감하면 하이파이브 하세요!

댓글 1

더그아웃매거진, 더그아웃, dugoutmagazine, dugout, 야구잡지, 야구, KBO리그, 삼성라이온즈, 정현욱

등급
답글입력
Top
등급
답글입력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수정취소 답글입력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