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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Futures] KIA 타이거즈 황대인 MEMORIES

dugout*** (dugout***)
2018.11.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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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의 날갯짓을 준비하는 ‘황따거’

 

상무 피닉스에서 21개월의 군 복무 생활을 성실히 이행하고 KIA 타이거즈의 품으로 ‘황따거’ 황대인이 돌아왔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오면 한층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루키의 티를 말끔히 벗어내고 진정한 호랑이 군단의 일원으로 성장한 황대인! 2019년 비상의 날갯짓을 준비하는 황대인을 만나봤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unsik Choi Location KIA Challenger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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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충성! 병장 황대인은 2018년 9월 11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KIA 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선수가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2019년 KIA의 타선을 한 층 강화해줄 황대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제대 후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선수들과 다음 시즌을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 현재 어깨가 좋지 않아서 마무리캠프 참가를 위해 열심히 재활을 하고 있다.

 

컨디션이 얼마 정도 올라온 것 같나?

80% 이상 올라온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 어깨가 100%는 아니다. 타격과 공 잡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송구가 완벽하지 않다.

 

함께 제대한 전상현 선수는 1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본인 역시 1군 무대 콜업을 기다렸을 것 같다.

(전)상현이는 워낙 퓨처스리그에서부터 공이 좋았고, 성적도 잘 따라줬다. 폼도 많이 올라온 상태라 올라간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니다.

 

입대 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다.

몸이 좀 불었다. 상무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남들이 봤을 때 몸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근데 내가 봤을 때는 전역하고 나서 살이 조금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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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니까 무엇이 가장 좋은가.

자유다. (웃음) 규율이 강했던 곳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게 좋다. (휴식할 때는 어떻게 지내나?) 집에서 쉬는 편이다. 나가서 노는 걸 안 좋아한다. 집에서 쉬고, 먹고 그냥 최대한 휴식을 많이 하려고 한다.

 

퓨처스리그 폭격! 상무의 중심타자

 

입대 전부터 황대인의 타격은 완성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상무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 KT 위즈의 문상철과 함께 중심 타선을 이뤘던 황대인은 군 복무 1년 차였던 2017시즌 86경기에 출장하여 26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퓨처스리그를 폭격했다.

 

이른 시기의 입대. 결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 군 복무를 빨리 해결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1년 차가 끝나고 바로 갔다 오고 싶어, 상무를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래서 한 시즌을 더 보내고 다시 도전해서 합격했다. 당시 2군 감독님이셨던 정회열 코치님도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셨다.

 

문상철 선수와 상무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1년 차부터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박치왕 감독님께서 시합에 많이 내보내 주셨기에 그런 성적이 나올 수 있었다. 다른 것 없이 시합을 많이 나간 게 홈런을 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감독님께 감사하다. (황대인에게 박치왕 감독님은 어떤 분이었나?) 감독님에게 질타도 많이 들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고 나를 깨우치게 했던 말씀이었다. 근데 그때는 많이 속상했다. (웃음)

 

함께 중심타선을 맡았던 문상철 선수와 아무래도 많이 친했을 것 같다.

그렇다. 모든 선수와 친하게 지냈지만, (문)상철이 형과 같은 방을 써서 더 친했다. 그래서 좋은 말도 많이 듣고 야구 쪽으로도 나와 비슷한 게 많아 상철이 형한테 많이 배웠다.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라이벌 의식도 있었을 것 같다.) 전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형이고, 라이벌보다 내가 많이 조언을 구하고,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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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에도 타격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상무에서 한 층 더 성장했다는 말이 많다. 어떤 면에서 달라진 것 같나?

군대 가기 전에는 아무리 잘 친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무에 있으면서 참을성을 많이 배웠다. 삼진을 안 당하기 위해 공을 열심히 봤다. 결과적으로 선구안도 좋아지고, 방망이에 맞추는 능력도 향상됐다.

 

팀 내에서 상무 출신 선배들이 굉장히 잘하고 있다. 본인 역시에서 상무에서 야구를 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팀의 (김)선빈이 형도 있지만, 바로 위에 선임이었던 NC 다이노스 (노)진혁이 형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엊그제까지 분명 같은 생활관에 있던 선임이었는데, TV를 통해 1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 나도 빨리 나가서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1군 무대에서 나 자신을 빨리 평가해보고 싶었다. 그냥 2군에서 전전할지, 아니면 1군에서도 통할지 빨리 시합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상무 유니폼 입고 KIA와 대결을 한 적도 있다. 그때 느낌은 어떠하던가?

그냥 좋았다. 익숙한 유니폼, 아는 선수들을 보니 좋더라. 또 내가 군대 간 사이에 어린 선수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약간 어색하기도 했다. (웃음) 그래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코치님들과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만나니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상무에 있을 때 많은 후배가 들어왔다. 만나보고 싶은 선수들이 있었나?

만나는 것보다 군대 빨리 가라고 말해주고 싶은 후배는 있는데…. (누구인가?) (김)석환이나 (류)승현이한테 해주고 싶다. (최)원준이는 워낙 잘하니까 본인이 알아서 잘 갈 수 있는데, 석환이와 승현이는 이제 경찰청이 없어져서, 상무가 유일하다. 갈 수 있는 폭이 좁아졌다. 야구 잘하고 있을 때 가는 게 합격할 수 있는 확률도 높다. 갔다 와보니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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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에 있을 때 3루수를 포함해 1루수도 하고 지명타자로도 뛰었다.

워낙 수비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거기에 박치왕 감독님께서 나를 수비보다 방망이가 좀 더 낫다고 판단하셔서 지명타자로도 많이 출장시켜 주셨다. 그래도 3루가 수비 포지션으로 봤을 땐 제일 나은 것 같다. 우선 편하다. 1루보다 3루가 더 좋다.

 

박치왕 감독님께서 전역 전에 해주신 말이 있다면?

특별한 것 없으니까 그냥 생활 체육 야구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가져봤자 잘하는 것도 아니고, 즐기면서 야구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하셨다.

 

고교리그 4할 타자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황대인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팀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리를 채워 팀을 이끌었다. 심지어 마운드에도 올라가 140km/h 이상의 공을 뿌리며, 투수로서도 재능을 발휘했다. 졸업반이었던 2014년에는 타격 재능이 만개해 6홈런 23타점. 0.403의 타율을 기록, 초대 백인천 상의 주인공이 됐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말하면 길다. (웃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는데, 1년 전인 2002년도에 한일 월드컵을 하면서 축구의 인기가 많았다. 당시에 나도 축구를 하고 싶었다. 태권도 학원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야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셨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카센터에 충주성심학교 감독님이 차를 고치려 오셔서 야구를 적극 추천해 주셨다고 했다. 싫다고도 했는데, 돈가스 사줄 테니까 야구하자고 말씀하셔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웃음)

 

부모님께서 특별히 야구를 시키신 이유가 있었나?

어렸을 때 몸이 워낙 작았다. 키도 작고 빼빼 말라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건강하게 자라라고 운동시켜 주신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잘 자랐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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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때문에 시작한 야구! (웃음)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한 번도 없었다. (적성에 맞았나 보다.) 그렇다. 아마추어 때는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프로 들어와서 오히려 좀 힘들었다. 입단 전까지 한 번도 안 아팠는데 프로 와서 몸도 아프고 야구도 뜻대로 안 됐다. 그때 프로의 벽을 실감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똑같은 부위가 계속 아프다 보니까 야구가 늘어야 할 시기에 계속 재활군에만 있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포지션이 어디였나?

유격수였다. (그럼 언제 3루수로 정착을 하게 됐나?) 고등학교 때부터 3루수였는데, 그때 많은 포지션에서 뛰었다. 포수도 하고 투수도 했다. 이러다 보니까 주 포지션이 3루수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프로에 와서야 3루수로 포지션이 정착됐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투수로도 좋았다. 그럼에도 투수를 접게 된 이유가 있나?

내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투수는 그냥 재미있어서 했다. 잘하겠다는 욕심보다 즐기자는 마음이 더 커서 오히려 잘됐다. 재미는 있었지만, 투수를 하기에 많은 게 부족했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나?) 우선, 키도 작고 투수보다 타자에 더 자신이 있었다. 스카우트분들이 봤을 때도 그랬고, 프로 와서도 느끼지만 타자가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타자로 완벽하게 정착하겠다는 마음은 프로에 와서 먹은 건가?

마음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먹었다. (웃음) 고등학교 때 이미 마음은 굳혔는데, 팀 사정도 있고 해서 투수도 겸했다.

 

투수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나?

아예 없다. (단호) 프로 첫해에 투수코치님이 장난으로 ‘타자하다 잘 안 되면 투수로 넘어와라’라고 장난을 치기도 하셨는데 (웃음) 나에게 투수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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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타격에 자신 있었고, 결과도 따라줬지만, 타율을 지키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주말리그라는 게 일주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르다 보니까 만약 그 주에 안타를 못 치면 성적에 영향을 받고, 그게 다음 주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적잖이 힘들었다. 3학년 때는 특히 프로 지명이 걸려 있어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했나?) 결국은 운동이다. 나는 규칙적인 루틴을 중요시한다, 슬럼프가 찾아오면 내가 짜놓은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고등학교 때부터 노력했다.

 

노력한 결과로 4할 타율을 유지하며, 초대 백인천상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영광이었다. 상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내가 첫 번째 수상자라니. 무엇이든 첫 번째는 바뀌지 않으니까. 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새로운 시작! 2019시즌

 

KIA의 3루수로 복귀한 황대인, 2019년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기다리고 있다. 그가 군 복무를 하는 2년 동안 3루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최원준, 류승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걱정, 근심보다 의욕과 자신감이 넘쳤다.

 

제대하면서 최원준, 류승현과 3루수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이들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제일 큰 것은 나는 이제 군필이다. (웃음) 군대에서 많은 부분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실력으로는 애들한테 밀릴 수도 있지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살린다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그래도 마인드와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애들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타격은 이미 많은 이가 극찬하고 있다. 반면 3루 수비에서는 걱정이 많다.

이번 캠프를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수비를 더 보완해서 오고 싶다. 연습도 중요한데, 우선 경기를 많이 나가서 실전 감각을 키워야 더 좋아질 것 같다. 실전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 (웃음)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봤자 시합 때 해보는 게 제일 빨리 실력이 발전한다. 시합을 많이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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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에도 부상도 있었고, 상무에서도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상무에서는 약간의 불안한 증세였고, 심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증세를 없애기 위해 보강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오히려 상무 입대 전에 많이 아팠다. (그러면 부상 방지를 위해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것이 있나?) 특별한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보강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아프고 나서 치료해봤자 어차피 한 달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아프기 전에 미리 예방해야 야구도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할 수 있다.

 

KIA는 양현종, 안치홍 등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지명자들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 역시 2차 1라운드 출신이다. 그런 점에서 부담은 없는지.

크게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다. 1, 2년 차에는 야구를 못했기 때문에 오로지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까’라는 고민밖에 없었다. 지금에서야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 라운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얼마만큼 준비하느냐에 따라 지명 순위에 상관없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 같다. 다만, 2차 1라운드 지명자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니 내년부터 그 대열에 합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KIA 팬들 사이에서는 황대인 선수가 ‘포스트 이범호’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범호 선배님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실력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게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안 다치고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하는 게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이범호 선수를 존경한다고 들었다.) 두말하면 입 아프다. 무엇보다 범호 선배님의 인성, 리더십을 닮아가고 싶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훌륭한 기량을 유지하는 자기 관리도 좋지만, 후배들을 챙기는 마음이나 이끄는 모습이 후배로서 더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선배님을 보면서 나도 고참이 되면 그런 선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역 후 등번호 4번을 받았다. 특별히 원하던 등번호가 있었나?

특별히 원하는 번호는 아니었고, 그냥 남는 번호 중에서 골랐다. 내년에는 웬만하면 10번을 달고 싶다. (특별히 이유가 있나?) 입대 전에 원래 달던 번호가 10번이다. 오랫동안 사용한 번호는 아니지만, 애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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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8시즌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년에 대한 목표가 궁금하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다. 완벽한 몸으로 나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게 목표다. 만약 좋은 기회로 1군에 안착한다면, 144경기를 꾸준하게 슬럼프 없이 보내고 싶다. 성적도 따라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웃음)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밝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그날 경기가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팬들 앞에서는 항상 밝고 인성이 먼저 돼 있는 선수로 팬들의 마음속에 남고 싶다.

 

황대인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마약이다. 끊을 수가 없다. 야구를 관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은퇴하더라도 야구판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죽을 때까지 야구와 함께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KIA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황대인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상무에서 많이 준비하고 발전돼서 왔습니다. 입대 전 좋은 모습 많이 못 보여드려 죄송한 마음 컸습니다. 복귀 이후 더 좋은 활약으로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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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인, KIA타이거즈, 더그아웃매거진, 야구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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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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