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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KT 위즈 이대은 MEMORIES

dugout*** (dugout***)
2019.08.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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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쏘다’ 수원의 심장이 된 KT 이대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고국의 땅을 밟은 이대은. 홀로서기에 익숙했던 그는 한국에서의 첫 시즌을 그의 명성에 걸맞게 난이도 높은 퍼즐을 완성하고 있다. 한 시즌에 3개의 보직. 선발로 시작하여 마무리까지 소화하며 새로운 마법사로 등극했다. 불펜으로 자리를 옮긴 후 27경기에서 3승 13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5강 싸움에 더 큰 불씨를 일으킨 KT의 수호신 이대은을 만났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표권향Location 수원KT위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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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수원에 터를 잡은 KT위즈는 한국프로야구의 ‘10번째 심장’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범했다. 9개 구단에서 알짜배기 선수들을 모아 팀을 이뤘고 그룹 성격을 반영해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위권으로 예상됐던 KT는 1군 진입 첫 시즌부터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 ‘만년 꼴찌’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한 마케팅으로 팬들의 흥미는 끌었으나 누가 봐도 훌륭한 구성을 이룬 데 비해 아마추어급 플레이로 실망감을 안겼다.

 

그러다 보니 가을야구와는 멀고도 먼 관계가 되어 버린 KT. 팀 구축에 혼란을 겪은 구단은 과감한 결단으로 분위기 쇄신에 힘썼다. 기준은 지키되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세상물정 모르던 막냇동생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필요하다면 내 것으로 만드는 철저함을 키웠다.

 

그 카드 중 한 장이 바로 이대은이었다. 2019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KT는 모두가 탐했던 ‘최대어’ 이대은의 이름을 당연하다는 듯 호명했다. 당시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군대 문제도 해결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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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 마운드를 지키는 수호신

 

“지명됐을 때 기분이 좋았다. 원래 잘하고 있던 팀보다 같이 올라갈 수 있는 팀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족했다.”

 

구단이 이대은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대은은 신일고를 졸업한 후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와 치바 롯데 마린스에서 미국과 일본야구를 경험했다. 최고 구속 155km인 직구는 물론 주무기인 포크볼은 제구력까지 갖춰 안정적이었다. 낙차 큰 고속 스플리터와 142km를 기록한 슬라이더, 이에 비해 100km 초반대의 커브까지 위력적인 변화구들을 장착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기복이 심했다. 강속구 투수이기에 삼진을 잡는 능력이 분명히 있지만, 긁히는 날과 그렇지 못한 경기의 차이가 컸다. 선발로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 이대은은 부상복귀 후 불펜으로 이동했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불펜으로 전향 후 이대은의 공에 힘이 붙었다. 새로운 수호신으로 자리를 잡아 승리까지 지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번번이 승기를 놓쳐 하위권에서만 허덕이던 KT가 현재 5강 싸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됐다. 그 중심을 이룬 이대은의 존재는 말 그대로 KT의 해결사가 된 것이다.

 

시즌 초 KT를 5약팀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현재 가을야구를 노리고 있다. 팀 분위기는 어떤가.

스프링캠프 때부터 좋다고 느꼈다. 초반보단 잘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더 올랐다. 하지만 차분하게 매 경기를 치르려고 한다. 나보단 먼저 있었던 선배들이 더 느끼는 것 같다. 뭔가 잘하고 있을 때 욕심을 내다가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커룸에서도 서로 이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자는 분위기다.

 

올해 초반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8경기밖에 기회를 받지 못했다. 혹시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는가.

없진 않았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던 마음이 커서 생각대로 안 풀렸던 것 같다. 사실 그 당시 몸 상태도 안 좋았는데 욕심을 부려서 어긋났던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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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경찰에서 거의 선발로 나섰다. 그런데 불펜으로 전향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내가 먼저 간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팔꿈치가 안 좋았다. 돌아와서 몇 경기 나가서 다시 감독님이 선발로 기용하려고 했는데 그 당시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기 때문에 몇 경기만 더 불펜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때 (정)성곤이의 페이스가 떨어졌었고 (김)재윤이도 아팠던 시기라 감독님이 일단 마무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보직을 바꾸게 된 것이다.

 

마무리로 온 뒤 성적이 좋다. 승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클 텐데, 더 잘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뭣 모르고 던졌다. 블론 세이브도 한두 번 해보니 와 닿았다. 몸이 그때보다 괜찮아졌고 부담도 조금 줄었다. 초반에 성적이 좋지 못해 그 부담이 더 컸다. 그 과정을 보내고 마무리로 오니 조금 더 내려놓고 할 수 있어서 좋아진 것 같다.

 

삼손처럼 장발에서 힘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징크스로 자리 잡으면 안 될 텐데.

어릴 때부터 길러보고 싶었다. 우리는 초중고 때 다 머리가 짧았다. 군대 가면서 2년 동안 또 짧게 자르니까 전역 후 한번 길러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기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더 자유롭지 않았나?) 일본에서 조금 길러보려고 했는데 답답해서 잘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길러볼 것이다. (웃음)

 

투수라면 선발을 선호한다. 선발로 다시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올해까지는 마무리를 맡지 않을까? 선발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팀에서 필요로 하는 자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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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싸움에서 홀로서기 연습

 

고등학교 졸업 직전 시카고 컵스로부터 스카웃을 받아 미국행에 올랐다. 하지만 중간에 토미존 서저리를 받는 등 부상으로 인한 공백에 발목이 잡혀 트리플A까지 올랐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는 밟지 못했다. 1년 뒤 이학주가 팀에 합류했지만 템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다시 홀로 남게 됐다. 결국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누구의 도움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이너리그 통산 135경기(선발 121경기)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했다.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으로 넘어가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스와 연봉 5,400만 엔으로 계약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데뷔 선발 마운드에 오른 이대은은 6.1이닝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그가 잡은 삼진은 9개였다. 28이닝 무실점 행진에 이은 호투가 펼쳐졌으나 타선의 득점 지원이 침묵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전략상 2군행이라고 통보했고 복귀 후에는 불펜을 오가다가 결국 10승 달성을 이루지 못한 채 귀국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고 말하는데, 그곳 생활은 어땠는가.

눈물 젖은 빵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 선수들이 꽤 있었다. (이)학주, (하)재훈이도 같이 있었고 (김)동엽이까지 많았다. 현재 시카고 컵스에서 통역하고 있는 한국분이 당시 같이 선수로 활동했었다. 크게 외롭거나 그렇진 않았다. 외국인선수들과도 친했다. 영어는 바디랭귀지를 섞어서 할 정도였다.

 

2014시즌 종료 후 마이너리그 FA였지만 일본행을 택했다.

미국에서도 재계약하려고 했는데 뭔가 좀 더 발전하지 않으면 크게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에서 야구를 더 배워보고 싶었다. 좀 더 성장하고 싶은 생각으로 일본야구를 선택했다. 마침 일본으로부터 콜을 받았고 고민 끝에 결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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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서도 결코 쉽지 않았다. 뜬금없는 2군행 통보라던가 득점 지원 없던 타선 등 장애물이 많았다.

워낙 미국에서 겪어봤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엇을 했는가?) 당시 일본에 (이)대호 형과 (오)승환이 형이 있었다. 근처에 있으면 같이 밥을 먹으며 힘이 되는 조언을 받았다.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다. 동료들과도 잘 지냈다던데.

성격이 밝아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장난을 많이 치면서 친해졌다. 비시즌에는 일본 투수들이 단체로 한국에 놀러 와서 같이 만났다. 경찰에 있을 때도 겨울에 연락하고 놀러왔다.

 

오랜 타지생활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언어의 장벽이라든지 음식, 외로움은 문제가 안 됐다. 야구가 안 될 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때마다 게임을 하며 잊으려고 했다. (웃음)

 

만약 다시 미국이나 일본리그에 도전할 기회가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나가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그곳에서 뭔가 이루지 못하고 온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두 리그에서 동시에 러브콜이 온다면 당연히 미국에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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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도왔던 고마운 이들

 

2015년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대은’이란 이름을 한국팬에게 알렸다. 일본리그에서 활약하는 젊은 투수의 등장이 큰 관심을 불렀다. 솔직히 당시 대표팀에 대한 시선은 이대은에게 집중됐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공항에 들어섰을 때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그의 경기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데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검증된 투수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의 실력보다 외모에 관심이 쏠렸다. ‘야구를 잘하면 잘생겨 보인다’라는 뜻의 ‘야잘잘’이 이대은에 의해서 ‘야구를 잘하는 잘생긴 선수’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실력은 실전 경기에서 보면 되는 것이고, 어찌 됐든 일본에서 한 리그를 이끌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걱정보단 오히려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전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KBO리그가 아닌 외국행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또한 투고타저인 일본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투수에게 회의적인 반응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론은 그가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대은은 갖은 소음을 스스로 잠재웠다. 최종 엔트리에 합류해 슈퍼시리즈 1차전이었던 쿠바전에서 4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MVP가 됐다. B조 베네수엘라와의 상대전에서는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6개 삼진을 잡으며 2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이날 루이스 히메네스를 3타석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것이 압권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덕분일까.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이대은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여유까지 넘치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듯했다. 오랜 외국 생활로 어색해할 우리나라 선수단의 정서를 국내 선수들이 가르쳐주며 그에게 맞춰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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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대표팀 시절에 실력보다 외모에 관심을 더 많이 받았다. 김광현은 이제 자기는 오징어라고 스스로 깎아내렸다.

형들이 사진 찍을 때 항상 옆에 오지 말라며 장난쳤다. 형들 덕분에 즐거웠다. (웃음) 그땐 대표팀에 뽑혔던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프리미어12와 WBC를 하면서 한국 선수들과 친해졌다. 누가 가장 챙겨주던가.

(우)규민이형이 잘 챙겨줬다. 항상 나를 데리고 다녔으며 같이 밥을 먹었다. 내가 어색해하니까 형들이 먼저 다가와 줘서 굉장히 심적으로 편했다. 내가 또 적응을 빨리하는 편이라서? (웃음)

 

‘우리형’은 우규민이다 or 김광현이다?

아 어려운데! 둘 다 워낙 친해서 한 명만 꼽기 힘들다. 아, 삐칠 텐데… (김)광현이 형!

 

대표팀과 경찰 생활 덕분에 프로야구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겠다.

확실히 그건 있는 것 같다. 어느 팀에 가도 친한 형들이 있더라. 대표팀에서 함께 생활했던 형들이 모두 주축선수들이다.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 좋다. 우리 팀에서는 (황)재균이형이 당연히 반가웠다. 경찰에서 같이 보냈던 배정대 선수나 여럿이 있다.

 

경찰에서 룸메이트가 신일고 동기이자 절친인 김기현이었다. 방에서 대화를 많이 했다던데.

그땐 일찍 점호를 했다. 그런데 잠이 잘 안 오면 이야기하다가 잠들던 것이 일상이었다. 어려운 이야기보단 쓸데없는 얘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웃음) 야구 쪽으로 느낀 것들에 대해 나눴다. 나는 일본에서 뭔가 느끼고 온 부분이 있어서 시즌 동안 해보고자 했던 마음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그 고민들이 무엇이었는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포함한 몸만들기다. 잘하든 못하든 일정해야 하는데 기복이 조금 있었다. 잘할 땐 운동도 잘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몸 상태가 훅 떨어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경찰에서 하고자 했던 의지가 지금도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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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첫 가을야구를 노리다

 

이대은이 대표팀에 뽑혔을 때 한 가지 더 화제가 됐던 것이 있다. 그의 왼쪽 귀밑에 새겨진 문신이었다. ‘+CDBJD’는 아버지 이철생 씨와 어머니 동연 씨, 누나 보희 씨와 진희 씨 그리고 자신의 이름인 대은의 이니셜을 그린 것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지생활이 외롭고 쓸쓸했던 이대은이 이 극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에 있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목에 그렸다. 하지만 경찰 야구단 입단을 위해 살을 도려내는 성형수술을 통해 지워야만 했다.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전을 이어가는 집념을 지녔다. 고집도 있어 한 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는 강한 이빨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지가 최약체 KT를 점점 강팀으로 만들고 있다. KT는 중상위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가을야구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KT의 가장 큰 자랑은 무엇인가.

어린 친구들도 선배들이랑 뭔가 사이가 좋은 것 같다. 더 잘 뭉치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다. 나는 중간입장인데 내가 보기에도 모든 것이 화목하다.

 

치열한 5강 싸움 중이다. 정규리그 마지막까지 접전이 예상되는데 어떤 각오로 임할 것인가.

나는 멀리 안 본다. 오늘 이겨야 한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이자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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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팬들이 날이 갈수록 열성적이다.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시즌 초와 지금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확실히 성적을 내고 있으니까 팬들도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초반보다 더 열성적으로 응원해줘서 되게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더더욱 열심히 이기는 야구를 하도록 노력하겠다. 야구장에 많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시면 더 멋진 경기로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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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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