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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의 몰락, 프레이밍의 몰락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6.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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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볼 프로젝트 박기태] 지난겨울, 탬파베이 레이스는 커트 카살리와 호흡을 맞출 두 번째 포수로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최현을 영입했다. 타석에서 그가 보여준 파워도 영입의 이유였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6년간 뛰면서 높은 평가를 받은 그의 프레이밍 기술, 소위 ‘미트질’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도 다른 이유였다.


(한편, 최현의 이름과 국적 문제는 인터넷상에서 언제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현은 해외로 입양된 한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미국 이민 3세대로, 국적상 미국인이 맞다. 하지만 사무국에 등록된 그의 공식 이름은 ‘Hyun Choi Conger’이며,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현(Hyun)’이라 불리기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행크’는 손자가 전설적인 홈런 타자 행크 아론을 닮기를 염원하며 그의 조부가 지은 별명이다). 최현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닌 이 같은 가족사에 관한 비난은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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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원정길에 오르는 최현과 탬파베이 동료 선수들 (사진=최현 SNS 캡처)


이제는 야구 팬들에게 생소함이 덜한 단어, 프레이밍은 포수가 볼이 될 공을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포구해 판정에서 이득을 보는 행위를 뜻한다. 이 개념이 생소했을 때는 일종의 반칙 혹은 얕은 기술 따위로 여겨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메이저리그에서는 송구 능력과 블로킹 능력만큼 포수에게 핵심적인 기술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그 전까지 포수가 1년 동안 프레이밍으로 얻어낸 득점 단위 가치는 최대 20점 정도였다(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기준).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와 나쁜 선수 사이의 차이도 30점에서 40점 정도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06년 즈음부터 최대-최소 간의 폭이 급격히 늘어나더니, 지난 몇 년 동안 그 폭은 60점 혹은 그 이상으로 크게 벌어졌다. 프레이밍으로 얻어낸 점수도 최대 40점, 50점을 넘보는 수준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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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에 따른 프레이밍 득점 가치의 최댓값, 최솟값, 그리고 그 차이의 변화. 2006년부터 최댓값-최솟값의 차이는 60점 이상으로 벌어졌다


프레이밍 열풍을 이끈 것은 브라이언 맥캔, 러셀 마틴, 조나단 루크로이, 야디에 몰리나 같은 젊은 포수들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았으며, 특히 마틴과 몰리나는 지난해 프레이밍 득점 순위에서 각각 10위, 15위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루크로이와 맥캔은 아쉽게도 지난해 프레이밍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세이버메트릭스와 새로운 분석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기로 소문난 탬파베이는 조금 늦게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2008~2009년 탬파베이의 주전 포수는 디오너 나바로였고, 2010~2011년에는 존 제이소와 켈리 쇼팩이 주전 포수로 번갈아 기용됐다. 이들은 모두 프레이밍에서 마이너스 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2008년 디오너 나바로는 뒤에서 3번째 순위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다 2012년 호세 몰리나가 등장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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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부터 지금까지 탬파베이의 주전 포수 현황. 2012년 호세 몰리나의 등장은 탬파베이 투수들에게 새로운 손맛을 알려준 신호탄이었다


‘지구 최고의 포수’ 야디에 몰리나의 형으로도 유명한 호세 몰리나는 전임자들과 달리 프레이밍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포구 능력을 보여줬다. 처음 탬파베이에 자리를 튼 2012년에는 프레이밍 득점 30.4점으로 전체 1위에 올랐고, 2013년 23.4점으로 2위, 2014년 16.7점으로 5위에 올랐다.


스트라이크 개수로만 따지면 2010년 존 제이소가 102개의 스트라이크를 볼로 바꾼 반면, 몰리나는 2012년 196개의 볼을 스트라이크로 바꿨다(스탯코너 기준). 판정 하나하나에 민감한 투수들에겐 몰리나의 손길이 탄산수처럼 시원했을 터다.


몰리나의 손맛(?)을 보던 탬파베이는 2015년 아쉬운 한 해를 보냈다. 몰리나가 14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자 2015년 주전 포수는 르네 리베라의 차지가 됐다. 리베라 역시 프레이밍으로 5.2점을 막아냈지만, 순위는 전체 19위에 그쳤다. 보조 포수로 나선 카살리 역시 1.8점과 순위 27위에 불과했다.


2015년을 마친 후, 탬파베이는 처참한 공격력을 선보인 리베라를 대신할 주전 포수로 최현을 데려왔다. 최현은 2014년 11월 LA 에인절스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됐고, 백업 포수로 나서며 OPS .759를 기록했다. 또한, 최현에게는 2013년 17.5점(6위), 2014년 23.8점(1위)을 프레이밍으로 막아낸 이력이 있었다. 최현의 영입은 탬파베이 포수진의 공격력을 보강하고, 동시에 호세 몰리나가 2년 전 보여줬던 ‘손맛’을 되찾아줄 절묘한 한 수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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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와 달리 최현의 성적은 눈에 띄는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OPS는 0.5 아래까지 떨어졌고 프레이밍 득점도 바닥 수준이다


그러나 시즌이 2달 가까이 지난 지금, 탬파베이 포수진의 성적은 바닥을 찍고 있다. 탬파베이의 포수진 OPS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밑에서 3번째다. 그 아래에 있는 구단은 팀 전체가 늪에 빠진 미네소타 트윈스, 그리고 러셀 마틴이 이해 불가능한 부진에 빠진 토론토 블루제이스뿐이다. 최현의 부진이 탬파베이의 포수진 성적에 한몫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탬파베이는 올해 2명의 포수를 기용하고 있다. 첫 번째 옵션인 카살리는 33경기 94타수를 소화했으며 타율/출루율/장타율 .170/.228/.372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옵션은 최현이다. 최현은 24경기 55타수를 소화했고 타격 성적은 .167/.207/.164를 기록 중이다. 이들의 타격 성적만 보면, 탬파베이는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처럼 투수를 타자로 세운 것과 같은 경기를 치러온 셈이다.


최현의 부진은 그의 ‘숨은 능력’마저 바닥으로 치달은 탓에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최현이 지난해 OPS .759를 기록하긴 했으나, 이는 그의 통산 최고 기록이었다. 그는 빅리그 생활 내내 타격에선 파워 정도만 돋보이는 평균 이하의 타자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도루 저지율이 2015년 2.4%에 그칠 정도로 포수로서도 불안한 점이 있는 선수였다. 아마도 다른 성적에 부족함이 생기더라도 최현의 프레이밍 능력으로 그 구멍을 메울 수 있다는 게 탬파베이의 복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최현의 프레이밍 득점은 0.4점에 불과하다. 순위로는 포구 기록이 있는 포수 74명 중 28위며, 팀 동료인 카살리의 1.9점(15위)에는 한참 못 미친다. 둘의 출전 시간이 다르기에 카살리가 누적 기록을 더 많이 쌓은 탓도 있으나, 포구 횟수 대비 득점으로 봐도 카살리가 최현의 5배 가까이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즉, 최현은 비교적 적은 출장 기회 속에서 부진한 타격을 보이는 가운데, 한때 자신의 주특기였던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키는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최현에겐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최현에게 더욱 아쉬운 점은 지금 메이저리그에선 ‘프레이밍 기술’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르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최현이 10년 전에 예전처럼(지금 실력은 2~3년 전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환상적인 프레이밍을 해냈다면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프레이밍에 대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제 30개 구단 모두에게 이 기술은 스마트폰처럼 흔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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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살핀 프레이밍 득점 가치의 최댓값, 최솟값, 그리고 그 차이의 변화. 급격히 벌어진 간극은 2012년부터 다시 줄어들기 시작해 작년 더 크게 좁혀졌다

 

앞서 봤던 프레이밍 득점 가치의 최대/최솟값 차이 변화를 보면 그 사실이 더 자세히 드러난다. 2006년부터 프레이밍 최고수와 최하수의 간극은 60점 이상으로 벌어졌는데, 이것은 제이슨 켄달이 최악의 포구를 했던 2000년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차이는 다시 60점 미만으로 내려갔고, 지난해에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50점 아래까지 폭이 좁혀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사실은 무엇일까. 우선 더는 프레이밍이 일부 고수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해 프레이밍 득점 10위 안에 든 선수 중 5명은 이전까지 프레이밍으로 10점도 막아내지 못하던 이들이었다. 이는 프레이밍 기술의 전파가 빠르게 이뤄졌다는, 그리고 프레이밍 기술의 습득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프레이밍 기술의 수준으로 이전만큼 경쟁력을 갖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과장해서 과거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세 계단 정도는 났다면, 이제는 두 계단 혹은 그 이하만큼 난다고 볼 수 있다. 프레이밍에서 강점을 가졌던 선수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또한, PITCH f/x와 스탯캐스트 등 공의 위치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심판들은 점점 더 정교하게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내리고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볼을 스트라이크로 바꾸는 ‘오심’이 생길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으로, 프레이밍의 가능성이 뿌리부터 사라져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프레이밍이 몇 년간 화두 거리가 되면서, 프레이밍에 능한 포수들을 상대할 때는 심판들이 더 조심스럽게 판정을 내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환경의 변화 때문에 최현의 프레이밍 기술은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프레이밍 득점이 크게 줄어든 데서 알 수 있듯(2014년 23.8점, 2015년 3.6점) 최현 자신의 기술적인 수준 자체도 이전만치 못하다. 결국, 타격과 프레이밍 양쪽에서 무기를 잃은 최현의 현재는 데뷔 후 그 어느 때보다도 암울하다.


자연의 섭리처럼, 한 시대를 선도한 아이디어는 낙엽같이 조용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 수북이 내려앉고는 한다. 최현의 현 상황, 그리고 프레이밍에 주목해 최현을 영입하기로 한 탬파베이의 결정은 지금 또 다른 시대착오적인 결과로 비치고 있다. 최현의 부진은 매년 떴다가 지는 수백 메이저리거들의 흔한 실패 중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러나 탬파베이와 최현이 빠진 늪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 블루오션을 찾아내기 위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치열한 경쟁을 비춰 보여주는 일면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이용희(비즈볼 프로젝트)

자료 출처: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팬그래프, 스탯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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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최현, 헹크 콩거, 프레이밍, 포수 프레이밍, conger choi, Hyun Choi Conger

    • 등급 김필중
    • 2016.06.07 12:23
    • 답글

    사회인야구의 경우 심판이 투수 뒤쪽에 위치해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프레이밍이 통하는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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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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