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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가 돌아온다
[비즈볼 프로젝트 김남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투수 워렌 스판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 바 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야구가 생긴 이래 투수는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단순히 빠른 공만 가져서는 좋은 투수가 되기 힘들다. 양키스의 네이선 이오발디는 현역 선발 투수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짐에도 불구하고 양키스에서 스플리터를 장착하기 이전엔 9이닝당 탈삼진이 5~6개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가장 좋은 구종은 무엇일까? 투수가 던지는 여러 구종 중에서 가장 보편화된 구종은 패스트볼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서는 패스트볼과 조화를 이룰 구종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구종이 바로 체인지업이다. 본 기사에서 이런 체인지업의 달인 류현진에 대해 다뤄보겠다.
타이밍을 빼앗는 류현진
체인지업은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폼에서 던지며 패스트볼보다 더 휘어지고 가라앉고, 더 느린 구속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체인지업을 던지는 콜 해멀스나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같은 투수들은 패스트볼과의 무브먼트 차이가 큰 투수들이다. 하지만 류현진의 무브먼트 차이는 상당히 적은 축에 속한다.
Pitch f/x 데이터를 제공하는 Brooksbaseball에 의하면 2013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포심 패스트볼에 비해서 3.08인치 더 하강했다. 이 수치는 그 해 체인지업 구종 가치 상위 10위 내 투수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었다. 무브먼트도 포심 패스트볼에 비해 2.08인치 더 휘는 데 그쳐 이 또한 구종 가치 10위 내 투수 중에서 가장 낮았다. 이런 사실은 류현진의 체인지업 무브먼트가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상당히 낮았음을 뜻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런 체인지업을 던지고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그 해 체인지업 구종 가치에서 전체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구종 가치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체인지업이 오프스피드 피치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체인지업도 하나의 변화구로 무브먼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체인지업은 본래 오프스피드(Off-Speed), 말 그대로 공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주 목적인 구종이다.
2013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포심 패스트볼과 무려 11.2마일의 구속 차이를 보였는데, 그 해 체인지업을 주 구종으로 사용하는 투수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무브먼트는 밋밋했으나 타이밍을 빼앗는 오프스피드 피치에서는 가장 뛰어난 구종이었던 것이다.
오프스피드를 잃어버린 2014년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이로 구종 가치 2위까지 올랐던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2014년에는 전혀 그 구실을 해내지 못했다. 2013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피안타율 0.164를 기록해 그가 던진 모든 구종 중 가장 피안타율이 낮았으며 피장타율도 .212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4년에는 전혀 다른 구종이 되었다. 이 해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은 .310, 피장타율은 .540을 기록해 모든 구종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1년 사이에 최고의 구종에서 최악의 구종이 된 것이다.
류현진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구속 분포(출처: baseballheatmaps.com)
위 그래프는 류현진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구속 분포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2014년에는 구속 분포 간격이 2013년에 비해서 좁아졌음을 알 수 있다. 체인지업의 구속이 올라갔음을 뜻한다. Brooksbaseball에 의하면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2013년에 비해 2마일 이상 구속이 증가했다.
다른 투수들에 비해 체인지업의 무브먼트가 밋밋한 류현진은 11마일을 넘어간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이마저 8마일대로 떨어지면서 오프스피드의 위력마저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체인지업을 보완해준 슬라이더 때문이다.
새로운 무기가 된 고속 슬라이더
2014년 체인지업이 위력을 잃으면서 고전할 때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더 빛을 발했다. 특히 그의 고속 슬라이더는 상당한 위력을 뽐내면서 체인지업을 대체하게 된다.
류현진의 슬라이더 구속 변화(자료출처: Baseballsavant.com)
위 그래프는 류현진의 슬라이더 구속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까지는 슬라이더의 구속의 85마일 전후를 기록했으나 2014년 7월 이후부터는 80마일대 후반을 기록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슬라이더를 던졌다. 90마일에 육박한 슬라이더는 한때 류현진이 컷패스트볼을 던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했다.
체인지업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역할을 했다면 슬라이더는 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헛스윙을 만들어내는 구종 중 하나가 바로 슬라이더이다.
류현진 슬라이더의 구속별 비교
류현진은 커쇼와 그레인키에게 배운 고속 슬라이더를 2014년 7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속 슬라이더를 선보인 경기에서 류현진은 6이닝 동안 10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그 중 5개를 이 고속 슬라이더로 잡아냈다. 그 날을 포함해 류현진은 남은 시즌 동안 9이닝당 9.45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피홈런 또한 9경기에서 1개만을 허용하는 짠물 피칭을 선보였다.
데이터 상으로 보면 류현진의 고속 슬라이더는 상당한 무기이며, 앞으로 갈고 닦아야 될 구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고속 슬라이더가 류현진의 어깨 상태를 악화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재활에서 돌아오는 류현진이 계속해서 고속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순 없는가
만약 류현진이 2013년의 체인지업과 2014년 후반기의 고속 슬라이더를 모두 던질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류현진은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투수가 될 것이다. 팬그래프 기준으로 2013년의 체인지업은 지난해 콜 해멀스의 체인지업과 비슷한 가치를 보였으며 2014년의 고속 슬라이더는 맥스 셔저의 슬라이더와 비슷한 가치를 보였다. 또한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의 구종 가치가 각각 류현진의 2013년과 2014년 후반기의 두 구종보다 모두 높았던 투수는 잭 그레인키 1명뿐이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아닌 다른 구종으로 보더라도 이에 해당되는 투수는 리그 정상급의 투수들 뿐으로 약 10여 명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하면 느린 체인지업을 던지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이다. 2014년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속은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기 이전부터 전년도에 비해 2마일 정도 올라간 상태였고, 공을 놓는 위치인 릴리스 포인트 또한 고속 슬라이더와는 무관하게 일정한 편이었다. 체인지업이 2013년도의 위력을 잃은 것은 고속 슬라이더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류현진이 체인지업의 구속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빠른 슬라이더와 느린 체인지업은 환상의 조합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류현진은 지난해부터 체인지업 연마에 힘쓰겠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체인지업의 구속을 2013년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h2luv@bizballproject.com
자료출처: brooksbaseball.net, fangraphs.com, baseballsavant.com, baseballheatmaps.com
사진출처: KBN, NY1 주성훈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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