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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 눈야구에 대한 고찰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4.12 15:42
  • 조회 1799
  • 하이파이브 4

[비즈볼 프로젝트 오연우] 2012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롯데와 두산의 경기. 양 팀의 선발투수로는 각각 송승준과 니퍼트가 등판했다. 두 투수 모두 정규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아무래도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준 니퍼트의 우세를 점치는 팬들이 많았다. 특히 니퍼트는 그 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평균 6.89이닝을 던지며 리그 2위인 194이닝을 소화한 명실상부한 이닝 이터였다. 롯데로서는 자칫하면 변변한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경기를 내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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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인 두산 니퍼트(사진 제공: 두산 베어스)


하지만 경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니퍼트는 6이닝 동안 3점을 내준 뒤 내려갔고, 연장 10회 초에 3득점한 롯데가 8:5로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유먼을 2차전에 등판시킴으로써 시리즈 첫 두 경기를 싹쓸이했다. 반면 에이스를 내고도 패배한 두산은 1승 2패로 밀린 4차전에서 니퍼트를 3일 휴식 후 구원등판시키는 강수를 두었지만 니퍼트가 0.1이닝 3실점으로 무너지면서 결국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1차전에서 롯데 타자들이 니퍼트를 공략한 방법은 바로 ‘공 많이 보기’였다. 2012년 롯데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타석당 투구수를 기록한 강민호조차 타석당 3.99개의 공을 보는 데 그쳤을 정도로 이른 카운트에서 공격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만큼은 달랐다. 롯데 타자들은 타석마다 평균 네 개의 공을 보며 니퍼트를 괴롭혔고, 결국 니퍼트는 27타자에게 108개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렇듯 에이스를 상대로 한 ‘공 많이 보기’ 전략은 때로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공을 많이 본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공도 치지 않고 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는 타격 약화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공 많이 보기 전략, 소위 “눈야구”는 종합적으로 팀 타격 생산력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알아보자.


 

눈야구의 이익과 손해


공을 많이 보는 전략은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늘려 강판 시기를 이르게 하고 중간계투가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한다. 중간계투가 등판한 이후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격한다고 가정하면, 공을 많이 봄으로써 공격 측이 얻는 이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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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격 측은 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좋은 공까지 덩달아 놓치게 되므로 타격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다. 단, 이 손해는 상대 선발 투수가 던지는 동안에만 발생하므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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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과 손해를 구한 뒤 이익에서 손해를 빼면 최종적으로 ‘공 많이 보기’ 전략이 공격 측에 가져다 주는 순이익을 알 수 있다.


 

wRC


위와 같이 순이익을 구하기 위해서는 타선의 득점 생산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지표가 있어야 한다. 눈야구를 통해 팀 기준으로 득점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를 구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조정 득점생산력'(wRC)을 사용했다. wRC는 타자의 타격이 어느 정도의 득점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 실제로 지난해 각 팀의 wRC와 팀 실제 득점은 대개 5% 내외의 차이만을 보였다.


wRC를 구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가중출루율(wOBA)과 타석 수를 알아야 한다. wOBA는 출루율의 각 항목(단타, 2루타, 3루타, 홈런, 볼넷, 사구 등)에 대해 각각이 득점에 기여하는 만큼 가중치를 부여한 지표다. 비율을 나타낸 지표이므로 여기에 약간의 조정을 가한 뒤 타석 수를 곱하면 누적을 나타내는 지표인 wRC를 구할 수 있다.


 

통합 에이스


공 많이 보기 전략은 선발투수의 실력이 다음에 나올 중간계투에 비해 뛰어날수록 효과가 커진다. 실력이 비슷하거나 중간계투보다 떨어진다면 굳이 타격에서의 손해를 감수하며 일찍 강판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 많이 보기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는 상대 팀의 1선발급 선수가 등판했을 정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따라 지난해 WAR 상위 10걸 선발투수들의 평균 성적을 가진 ‘통합 에이스’라는 가상의 투수를 설정하였다. ‘통합 에이스’의 지난 시즌 성적은 다음과 같다.(선발 기록만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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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시즌 선발투수 WAR 상위 10명의 평균 성적으로 만들어진 '통합 에이스'


 

두 가지 전술


선수들이 공을 많이 보게 만들기 위해 코칭스태프가 선택할 수 있는 지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초구 타격하지 않기’와 ‘원 스트라이크 전에 타격하지 않기’이다. 물론 선수들이 재량에 따라 많은 공을 상대하도록 맡길 때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경우에는 이 두 가지의 전술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얼마나 일찍 내려보낼 수 있을까


공 많이 보기 전략이 상대 투수를 얼마나 일찍 강판시키는지 계산하려면 먼저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수를 설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수를 100개 전후로 보고 실제로 ‘통합 에이스’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도 99.95개이므로 여기서는 100개로 설정했다.


그렇다면 각 전술을 사용하는 경우 통합 에이스의 타석당 투구수는 얼마씩 늘어나게 될까? 두 전술에 의해 타격하지 않게 된 볼카운트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를 이용해 타석당 투구수는 다음과 같다. 단, 제외되는 모든 카운트에서 나온 사구와 3-0 카운트에서 나온 4구는 포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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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공격 시 타석당 투구수: 3.82개

 

이제 선발투수의 한계투구수인 100을 이 타석당 투구수로 나눠주면 선발투수가 상대할 수 있는 총 타자 수를 구할 수 있다. 다시 여기에 ‘아웃률’(1에서 출루율을 뺀 값)을 곱하면 투구수 100개로 아웃시킬 수 있는 타자의 수가 나오고, 이 값을 3으로 나눈 것이 소화 이닝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합 에이스'가 실제로 소화한 경기당 이닝에서 빼 주면 각 전술을 사용했을 때 통합 에이스를 얼마나 일찍 내릴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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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에이스'의 경기당 평균 이닝: 6.31이닝

 

 

타격 변화


각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에 타자들의 타격은 어떻게 변할까? 각 상황에 따라 투수들의 피wOBA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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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에이스’와 ‘구원투수’ 항목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통합 에이스와 구원투수의 피wOBA를 나타낸다. '통합 에이스'의 피wOBA가 구원투수 평균에 비해 0.043이나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구 안 치기’와 ‘1S 전 안 치기’ 항목은 통합 에이스를 상대로 해당 전술을 사용했을 때 통합 에이스의 피wOBA를 나타낸다. 먼저 초구를 치지 않는 타자들을 상대하는 경우, 통합 에이스의 피wOBA는 0.002만큼 떨어지게 된다. 1 스트라이크 전까지 배트를 내지 않는 타자들을 상대하면 거기서 0.007 추가 감소한다. 이제 이 값들을 득점의 형태로 나타내기 위한 조정을 거치고, 각각의 경우마다 상대하게 되는 타자의 수를 곱함으로써 각 전술의 시행에 따른 wRC를 도출할 수 있다.


 

순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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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비즈볼 프로젝트 이용희

 

정상 공격할 때의 wRC는 통합 에이스에게서 2.58점, 구원투수에게서 1.64점을 뽑아내 총 4.22점을 기록했다. 초구를 치지 않은 경우에는 각각 2.31점, 2.14점을 뽑아내 총 4.45점, 1 스트라이크 전에 치지 않은 경우에는 2.03점, 2.31점으로 총 4.35점을 기록했다. 초구를 치지 않은 경우의 wRC가 1 스트라이크 전에 치지 않은 경우보다 근소하게 높았는데, 통합 에이스를 0.27이닝 더 상대했지만 wOBA에서 훨씬 손해가 적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두 전술 모두 정상 공격을 하는 경우보다 높은 wRC를 기록했지만 그 순이익이 0.3점에도 미치지 못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부족했다.


 

공 많이 보기의 효용성은?


이렇게 되면 공 많이 보기 전략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에서는 구원투수도 평균 수준 대신 필승조가 등판할 가능성이 높기에 효용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이 전략은 선발투수가 구원투수에 비해 뛰어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공 많이 보기 전략이 실효성이 없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무사 1루 번트의 기대 득점이 강공보다 낮지만 감독들이 번트를 지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과 경기의 세부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번트의 가치가 높아지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공 많이 보기 전략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에이스들이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정확히 통합 에이스의 성적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더욱 위력적인 투구를 펼치기도 하는데 이때는 선발투수를 일찍 강판시키는 것이 공격 팀의 최대 과제가 된다. 이런 경우 공 많이 보기의 효용도 자연스럽게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는 단판승부가 아니라 3연전의 연속이라는 점 또한 공 많이 보기 전략의 효용성에 나름의 근거를 제공한다. 눈야구의 여파는 다음 경기에까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에이스를 일찍 강판시켜 원래라면 등판하지 않았을 필승조를 끌어냈다고 하자. 당장 이 경기에서는 더 득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등판을 통해 필승조의 다음 경기 등판을 제한시킨다는 점에서 공격팀은 충분히 소득을 얻게 된다. 상대 불펜 소모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공 많이 보기의 효용은 단순히 그 경기에서 1~2점 더 득점하는 것 이상일 수 있다.


현장의 환경이 실험실의 환경과는 상이한 것처럼, 실제 야구 경기에서는 다양한 변수와 상황이 등장한다. 결국 전략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은 현장 스태프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공 많이 보기 전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2016년 KBO리그 감독들의 지략 싸움을 기대해 본다.

 

기록 출처 : istat,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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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야구, 볼 많이 보기, 공 많이 보기, w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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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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