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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는 공평함이 있다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5.17 01:05
  • 조회 2799
  • 하이파이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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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볼 프로젝트 오연우] 야구 규칙집은 총 10조(條)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조에서 9조까지는 경기 용구와 경기장에 대한 설명, 용어의 정의, 경기 방법에 대한 설명 등 직접적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규칙들을 나열한 부분이다. 야구라는 경기를 하고자 하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에 해당한다.


하지만 마지막 10조는 앞의 아홉 조와는 그 성격에서 좀 차이가 있다. 10조는 야구 기록에 관한 것으로, 야구 경기를 하는 법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야구 경기를 ‘기록하는지’에 관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는 방법이 아니라 경기를 기록하는 방법이 하나의 규칙으로,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명문화되어 있다는 것은 야구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축구나 농구 등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난다. 대한농구협회의 농구 규칙집은 부록을 포함해 130쪽이 넘지만 기록원에 관한 항목은 고작 한 쪽에 불과하며 배구 규칙에도 기록원에 관한 설명은 두 쪽이 전부다. 축구 규칙이나 골프 규칙은 아예 기록원에 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무려 40쪽을 기록에 관한 규칙에 할애했는데, 이는 10개 조 중 단연 가장 많은 양이며 전체 규칙의 1/4에 달하는 것이다.


이렇듯 야구 기록은 야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야구 기록을 잘 아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KBO가 주관하는 기록 강습회 등이 매년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야구 기록지를 작성할 수 있는 팬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안타나 타점, 자책점 여부를 결정하는 세칙들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하지만 이전 칼럼(야구, 규칙 속의 규칙)에서도 언급했듯 야구 규칙 아래에는 더 큰 규칙이 깔려 있고 이를 잘 이해하면 여러 세칙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기록 규칙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록 규칙 아래에 깔린 큰 규칙은 ‘공평함’이다. 기록 규칙은 특정 선수가 억울하게 손해를 입거나 부당하게 이득을 보지 않도록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생각하면 어려운 기록 상황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예시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보자.

 

 

오버슬라이딩 : 무고한 선수를 보호하라


일반적으로 주자가 오버런으로 아웃되는 경우에는 항상 해당 루를 점유하고 아웃된 것으로 해석하지만 오버슬라이딩으로 아웃되는 경우에는 제반 상황에 따라 점유 여부를 다르게 해석한다. 점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의 원칙은

1. 기본적으로는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나

2.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했을 때 같은 팀 선수에게 피해가 오면 점유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Q&A로 자세히 알아보자.


Q1. 타자가 외야수 키를 넘기는 큰 타구를 쳤으나 2루를 지나 3루에서 오버슬라이딩해 아웃되었다. 타자의 기록은 2루타일까, 3루타일까?

A1. 타자 개인의 루타수는 2루타로 하나 3루타로 하나 다른 선수의 기록에는 영향이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1번 원칙에 따라 3루를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해 2루타가 된다.

 

Q2.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으나 2루에서 오버슬라이딩하여 아웃되었다. 도루 성공 후 아웃된 것인가, 도루 실패인가?

A2. 도루 성공 여부 역시 다른 선수의 기록과는 독립적인 주자 개인의 기록이다. 따라서 2루를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해 도루 실패가 된다.

 

Q3. 주자 1루에서 타자가 2루타를 쳤으나 1루 주자가 3루에서 오버슬라이딩하여 아웃되었다. 타자의 기록은 단타인가 2루타인가?

A3. 이 경우는 3루를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경우 타자는 2루타를 치고도 무고하게 단타로 강등되는 일을 겪게 된다. 따라서 루를 점유하고 아웃된 것으로 간주하고, 타자의 기록은 그대로 2루타가 된다.

 

Q4. 무사 1루에서 희생 번트를 시도했으나 1루 주자가 2루에서 오버슬라이딩하여 아웃되었다. 희생 번트 성공으로 기록하는가, 실패로 기록하는가?

A4. 1루 주자가 2루를 점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경우 타자는 번트를 잘 대고도 실패로 기록되는 억울한 일을 겪는다. 따라서 1루 주자가 2루를 점유하고 아웃된 것으로 간주하고, 타자는 희생 번트에 성공한 것으로 기록된다.


예시를 통해 위의 2가지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았다. 여기서는 공격 측 입장에서만 생각했지만 수비 측에서 생각해도 마찬가지 결과임을 알 수 있다. Q1에서 타자주자가 3루를 점유한 것으로 하면 투수가 피장타율에서 손해를 보고 Q2에서 2루를 점유한 것으로 하면 포수가 도루 저지율에서 손해를 본다. 어찌 됐든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버슬라이딩 기록 규칙은 한 선수가 다른 선수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기록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한 점이 가장 잘 나타난 규칙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무사 1루에서 투구가 바운드되는 것을 보고 2루로 달리던 1루 주자가 2루에서 오버슬라이딩해 아웃된 경우는 루를 점유하고 아웃된 것일까, 점유하지 못하고 아웃된 것일까?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은 칼럼 마지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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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NC 다이노스)

 

 

끝내기 안타 : 부당이득은 없다


끝내기 안타에서는 안타의 루타수 판정이 문제가 된다. 끝내기 상황에서는 수비 측이 수비를 포기함으로써 타자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많은 루를 진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오버슬라이딩 규칙이 무고한 선수를 보호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끝내기 안타 규칙은 부당 이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끝내기 안타의 루타수는 끝내기 득점을 한 주자가 전진한 루의 개수만큼 주는 것이 기본이다. 가령 9회 말 동점, 주자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경우는 3루 주자가 1개 루를 전진해 홈으로 들어오는 순간 경기가 종료되므로 타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 루타수는 1이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1점 뒤진 상황이었다면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와야 경기가 종료되므로 타자는 최대 2루타까지 얻을 수 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타자주자가 1루와 2루를 정상적으로 밟아야 단타와 2루타가 인정되며, 특히 후자의 경우는 타구가 2루타성 타구인 경우에만 2루타를 받을 수 있다. 단타성 타구이나 외야에서 홈 승부를 하는 동안에 2루로 갔다면 선택수비에 의한 진루로 기록될 것이다.


이 규칙은 담장에 공이 끼인다든가 원바운드로 담장을 넘어간다든가 해서 안전진루권이 주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9회 말 동점, 주자 3루에서 원바운드로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를 날려 2개 루의 안전진루권을 얻어도 타자의 기록은 단타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나 부당이득 방지 원칙을 강하게 적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일한 예외가 끝내기 홈런이다.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으로 안전진루권이 주어지는 경우에 한해 모든 득점을 인정하며 타자는 홈런 기록을 얻는다. 경기의 극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감안한 예외로 생각되는데, 20세기 초에는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아 끝내기 홈런을 치고도 결승 주자가 진루한 만큼만 루타수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만큼 부당이득을 막고자 하는 초기 입법자들의 의지가 컸다고 볼 수 있겠다.

 

 

실책 :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야구 기록을 어렵게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실책이다. 같은 플레이라도 실책이 끼어 있으면 타점을 줄지 말지, 자책점인지 아닌지 등 기록의 세부 사항에서 착오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어떻게 해야 한 선수가 다른 선수의 실책으로 인해 기록에서 영향을 받지 않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면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실책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먼저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타자의 병살타와 관련된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타자의 내야 땅볼로 주자가 2명 이상 포스아웃되면 타자에게 병살타 기록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병살이 되었을 땅볼을 실책으로 인해 병살 처리하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 가령 무사 1루에서 유격수 정면으로 빠른 땅볼이 갔을 때 2루에서 1루 주자를 아웃시킨 후 1루수의 포구 실책으로 타자주자가 1루에서 세이프되었다면?


이 경우 비록 타자주자가 1루에서 세이프되었지만 타자에게는 그대로 병살타 기록이 주어진다. 처음에 말했듯 실책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어떤 플레이가 실책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실책이 없었더라면 아웃될 것이었다는 의미이고, 여기서는 1루수의 포구 실책이 없었으면 타자는 당연히 병살타 기록을 얻을 것이었다. 당연히 얻었어야 할 기록이 실책 때문에 소멸되면 타자 입장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얻는 것이기에 원래대로 병살타를 기록하는 것이 보다 공정하다.


문자중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도루 실패로 진루’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포수의 송구가 완벽한 타이밍에 적절한 위치로 이뤄져 정상적으로는 완전히 아웃될 상황. 그런데 2루 커버를 들어온 2루수가 실수로 포구를 하지 못해 주자가 세이프된 경우 주자에게 도루 기록을 주어야 할까?


일반적으로 포수가 도루를 잡기 위해 투구를 받고 송구하는 과정은 보통 수준의 수비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주자가 추가진루를 하지 않는 이상 포수의 송구가 나쁘더라도 포수에게 실책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야수가 포수의 송구를 잡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야수의 포구 실패로 원래라면 아웃되었을 주자가 세이프되었다면 야수에게 실책을 부여한다. 따라서 위 경우에서 실책이 없었더라면 도루 실패로 끝났을 주자에게 실책이 있었다는 이유로 도루 성공의 기록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공정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 경우 주자에게는 도루 실패, 포수에게는 도루 저지 기록이 주어지며, 문자중계에서는 이것을 ‘도루 실패로 진루’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희생번트에서도 유사한 원칙이 적용된다. 희생번트는 선행주자가 한 명도 아웃되지 않고 1명 이상의 주자가 진루했을 때 기록된다. 하지만 아웃될 선행주자가 실책으로 세이프되었다면 어떨까? 원래라면 선행주자가 아웃되어서 희생번트 실패로 기록될 것이었으므로 실책으로 살아난 경우에도 똑같이 희생번트 실패로 기록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웃될’ 주자가 실책으로 세이프된 경우에 한해 희생번트 실패로 기록한다는 점이다. 실책이 없어도 원래 세이프될 주자라고 판단되면 실책이 있어도 당연히 희생번트 성공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는 희생번트 외에 다른 타구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최초의 타구가 안타성이었으면 실책이 있어도 안타이고, 최초의 타구가 3루 주자가 홈인할 수 있는 뜬공이었으면 실책이 있어도 희생플라이다. 기록 규칙은 실책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뿐 아니라 손해를 보는 것도 막고 있다.


1999년 9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있었던 ‘희생땅볼’ 사건이 좋은 예이다. 롯데 에밀리아노 기론이 3실점 완투승을 거둔 이 경기에서 롯데는 5회 초 1사 1, 3루 위기를 맞는다. 여기서 해태 박계원이 평범한 중견수 뜬공을 쳤으나 롯데 김대익이 실수로 떨어뜨리고, 이 틈에 3루 주자는 득점에 성공한다. 하지만 뜬공이 잡히는 줄 알았던 1루 주자의 스타트가 늦었던 바람에 김대익은 1루 주자를 2루에서 포스아웃시킨다. 이때 타자의 기록은 어떻게 될까?


우선 중견수는 실수로 공을 떨어뜨렸으나 1루 주자를 포스아웃시키는 데 성공했으므로 실책이 소멸된다. 따라서 이 타구는 외야수 실책이 아니라 ‘외야 땅볼’로 처리된다. 타자 입장에서는 땅볼 타구로 3루 주자가 득점했으므로 우선 타점을 하나 가져간다. 그리고 비록 결과적으로 땅볼이 되긴 했으나 이 타구는 수비 측 실수가 없었더라면 희생플라이가 될 수 있는 타구였다. 따라서 희생플라이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타자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 되므로 타점에 더해 희생플라이 기록까지 인정해 주게 된다.

 

 

야구에는 공평함이 있다


야구 기록을 공부하다 보면 규칙집의 설명만으로는 명확하게 풀어낼 수 없는 상황들이 등장하곤 한다. 이렇게 해도 맞을 것 같고 저렇게 해도 맞을 것 같아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들이다.


이때 떠올려야 할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바로 야구에는 공평함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에게 이유 없이 이득을 주거나 손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 기록에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부당이득을 없애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그것이 대부분 정답이다. 야구는 상식이 살아 있는 스포츠다.


(앞선 퀴즈의 정답은 ‘점유하지 않은 것으로 한다.’이다. 점유한 것으로 하면 투수에게 폭투 기록이 부여되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사진: 마제스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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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비즈볼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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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오버슬라이딩, 끝내기 안타타, 야구에는 공평함이 있다

    • 등급 야미스
    • 2016.05.19 10:04
    • 답글

    아.....너무 어렵다,,,이해는 되지만 실상 기록을 하게되면 엄청 고민될듯.....ㅠ,ㅠ

    • 등급 김필중
    • 2016.05.23 12:29
    • 답글

    s야구는 너무 어려운 게임...새삼 기록원분들의 대단함을 느끼고 갑니다

    • 등급 버럭님
    • 2016.05.24 12:42
    • 답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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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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