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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야구] 아마추어에게 전하는 조언. 유정민 서울고 감독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5.31 15:17
  • 조회 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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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볼 프로젝트 김수빈] ‘귀감(龜鑑)’;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 어떤 분야에서든 ‘귀감’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어진 일에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실천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걸어 나가되, 올곧은 행실로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확고한 목표, 의지, 남부끄럽지 않은 행동에 실력까지 모두 갖춰야만 하기에 ‘귀감’이 된다고 평가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완연한 꽃을 피우지 않은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앞서 걸어간 사람들, 힘든 과정을 먼저 경험해봤기에, 애정 어린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냉철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전하는 조언들이다. 



서울고등학교 유정민 감독


2015년 필자가 인터뷰를 했던 A 선수가 지금까지 가장 감사하고픈 사람으로 어떤 ‘감독님’을 언급했다. 올해부터 프로에서 경력을 시작한 B 선수는 인터뷰를 마친 후, 기사에 꼭 ‘감독님’ 성함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귀감이 될 수 있는 분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자, C 스카우트는 어떤 ‘감독님’을 추천했다. 


각자 그 ‘감독님’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좋은 분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바로 서울고 유정민 감독이다. 과연 유정민 감독은 어떤 야구인일까. 좋은 감독님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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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를 뛰던 유정민


유정민 감독은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창단됐어요. 아버지께서 하나 있는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좋아하니까, 직접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보라고 하셨죠.(웃음) 그런데 야구를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 이후로 야구에 더 빠져서 살았습니다.”


야구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조르던 소년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공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유정민 감독은 스스로를 ‘썩 잘하지는 못했던 선수’로 평가했다. 


“장래성 있고 볼도 좀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실력이 눈에 띄게 올라오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2차 4번으로 프로구단까지는 갔는데, 어깨를 다치면서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그만두어야만 했죠. 다른 선수들에 비교하면 썩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네요.”


부상은 프로 입단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지금 류현진이 겪은 것과 같은 부상. 하지만 유정민 감독이 야구를 하던 당시에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재활하면서 운동했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운동 그만두고 코치 생활을 시작하긴 했는데, 미련이 남으니까 스물아홉 살 까지 테스트를 계속 봤습니다. 프로에서 뛰는 동기들 보면서 ‘아, 나도 아직 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이었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아픈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서울고 감독’이 되기까지


여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선수 생활을 오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유정민 감독은 이십 대 후반, 성동초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약 10년가량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처음 들은 ‘감독님’이라는 호칭은 아직도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 때가 29살이네요.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조금은 생소했죠.(웃음) 감독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 똘망 똘망한 눈빛은 아직도 기억나요. 같이 놀면서 야구하고 가르치는 것에 재미를 느껴서 10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0년 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던 유정민 감독은 모교인 서울고로 오기까지 한 차례의 시련을 겼었다. 좀 더 자란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마음에 서울고 코치로 부임했지만, 약 1년 후 바로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10년 감독하다가 코치로 간다고 하니까 주변의 만류도 컸어요. 고등학교 코치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면서.(웃음) 그런 만류를 뿌리치고 모교에서 불러주니까 왔는데 같이 하시던 감독님이 다음해에 그만두시면서 저도 함께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유정민 감독은 가족들과 함께 인도로 갔다. 조금은 의외의 행보다. 유정민 감독은 당시에는 그라운드에 있기가 창피했다는 말을 잇는다.


“코치직을 그만두면서 야구 일을 하는 게 싫어졌습니다. 한국에 있는 것도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인도로 갔죠. 1년 정도 선교 일을 도와주면서 생활했는데, 경제적인 부분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와서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고 울산공고 코치하다가 추천을 받아 스카우트 생활까지 했습니다.”



모교의 부름, 새로운 시작


유정민 감독은 서울고가 한차례 위기를 겪을 당시, 다시 부름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교라는 시선이 따라다니던 시기. 그의 부담감도 작지 않았다.


“모교 감독으로 오니까 흥분됐죠. 제가 오기 전 해에 우승을 두 번이나 했던 터라, 부담감도 컸습니다. 사회적으로 조금 안 좋은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1년 동안 분위기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좋은 선수들을 모으려고 여전히 노력중이고요. 그래도 짧은 시간에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유정민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서울고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무조건 밝게 운동하도록 지도한다는 그는 칭찬과 믿음을 중요한 부분으로 꼽았다.


“야구는 똑같습니다. 초등학생이라고 칭찬 좋아하고 고등학생이라고 지적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죠. 강하게 아이들을 밀어붙이기도 해봤고 혼내기도 해봤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좋았던 것만 계속 얘기해주고 칭찬하니까 아이들의 기량이 단숨에 올라오는 게 눈에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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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민 감독의 믿음, 야구는 ‘자신감’


유정민 감독은 이렇듯 가르치는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특히, 혼을 내기 보다는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 


“야구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그런데 좋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갈리는 건, 바로 정신적인 부분이죠. 자기 자신을 믿는 선수는 좋은 선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선수는 2류 선수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자신을 믿는 건 자신감에서 나오고요.”


그는 항상 열심히 하는 만큼 스스로를 믿고 그라운드에 나서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한다. ‘멘탈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야구에서 정신력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수가 가지고 있는 기량을 그라운드에서 모두 보여주게 하려면 자신을 믿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플레이를 믿고 연습한 양을 믿는다면, 그라운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 이건 확실히 자신을 믿는 선수가 할 수 있습니다.”


유정민 감독은 지도자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역시, 정신력을 키워주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 KIA 타이거즈 1라운드 최원준이 가장 좋은 예시에요. 이전 감독님은 조금 강성이셨죠. 살짝 눌려있던 부분이 있었는데, 자꾸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칭찬하면서 원준이를 이끌다보니 확 실력이 올라와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웃음)”


유정민 감독은 최근 세 시즌 중 올해의 서울고가 전력상 가장 뒤떨어진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지금까지 강조한 이 정신력이 올해 서울고 전력에 가장 큰 핵심이다.  


“객관적인 전력은 최근 3년간 가장 부족할지 몰라도, 올해 기대되는 부분도 큽니다. 강팀이랑 야구할 때 보면, 지금 아이들이 위기 상황에 눌려있지 않고 뒤집을 수 있는 힘을 보여줘요. 자기 기량보다 더 높은 실력이 그라운드에서 나올 수 있죠. 저도 믿고 있고 제가 믿는 만큼 아이들도 따라오더라고요.(웃음)”



아마야구의 현 주소


프로야구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관심, 주요 대회와 프로 지명을 앞두고서야 그나마 언론의 집중을 받는 아마야구. 한국 아마야구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좋지 못하다. 유정민 감독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해결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꼽았다. 


“지금 모든 매체가 프로야구 위주로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고시엔하고만 비교 해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죠. 우리나라도 많은 언론에서 아마야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고시엔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고교 선수들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도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의 눈길도 고시엔으로 모이고요. 우리도 아마추어 시절부터 선수들이 관심을 받다 보면 분명 자부심도 생기고 프로 구단에 가서도 더 성실하게 그라운드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유정민 감독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아마야구 환경은 어떨까. 그는 인원 문제도 꼭 개선해야 할 부분임을 강조했다. 서울고는 서울권 학교 중에서도 유독 많은 인원수를 자랑한다. 


“지금 고등학교 인원이 상당히 많죠. 하지만 모든 경기는 고학년 위주로 진행됩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없어요. 1-2학년 때 죽어라 연습만 하다가 3학년 시합에 나섰는데,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보세요. 하지만 그때가 돼서야 다른 길을 찾는다는 건, 상당히 힘듭니다. 차라리 저학년 경기를 따로 하면서 아이들이 빠르게 자신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들 스스로가 좋아서 선택했던, 그렇게 18살이 넘도록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야구. 다른 길을 찾고자 할 때 선수들이 가질 상실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제와서 다른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지점에서 야구를 완전히 저버리는 선수들이 많다. 유정민 감독은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프다.


“조금 기량이 떨어진다고 해서 야구를 완전히 놓는다는 건 정말 마음이 아프죠. 야구를 정말 사랑해서 지금까지 했던 만큼, 이 안에서 야구로 선수가 아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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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들의 마음


고등학교 감독은 어려움이 큰 자리다. 선수들의 프로 입단과 대학 진학을 준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말 성적대로 정직하게 프로와 대학에 가는 시대에요.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커트라인 안에 모든 아이들을 들어오게 만들고 싶죠. 기회를 자꾸 주려고 하는데, 한 학년에 8~9명이 프로, 대학에 가면 정말 많이 가는 수준입니다. 모든 부분은 감독이 짊어지니까, 아이들이 개인 성적을 잘 내기만을 바랄 뿐이죠.”


고교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서 아이들을 지켜봐야하는 유정민 감독. 당연히 잘 되는 선수와 함께 그 문턱에서 좌절하는 선수도 많이 봤다. 


“마음이 아픕니다. 나 역시 실패한 사람 중 한 명이라서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죠. 다 같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다른 길을 생각하는 기회가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합니다.”



좌절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유정민 감독은 사회에 나간 선수들에게 야구가 강장 큰 강점이었으면 한다.


“야구를 토대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야구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아니면 아예 다른 길도 많고요. 그걸 찾아주고 싶어요. 잘 하는 선수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아이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감독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민 감독 역시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좌절하는 아이들에게도 야구만큼은 사랑하고 야구를 잘 선택 했다는 생각을 이어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아, 야구 괜히 했다.’ 이런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좋아하는 일 해봤으니까 그걸 토대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기본적으로는 야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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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 부담과 뿌듯함


필자가 들었던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들. 유정민 감독은 그 말 한마디 덕분에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서 오는 그 뿌듯함. 이것 때문에 지도자 생활을 합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일거예요. 전 진짜 아이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신합니다. 정말 크게 욕심 없고 유명한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아이들이 좋은 선수가 되고 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 길에 제가 있었으면 하고요.”


서울고 감독으로서의 1년.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다.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유정민 감독은 지금까지 잘 극복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앞으로 안 좋은 부분들,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도 차차 더 좋아질 것입니다. 제 스타일대로는 끌고 나가고 있는데,(웃음) 정말 깨끗하게 아이들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것 때문에 프로가고 대학가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정말 실력으로 선수들이 커가는 그런 학교로 만들고 싶어요.”


유정민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 믿음. 자신을 믿는 것부터가 그라운드에서 실력이 되고 근성이 된다. 이 믿음을 선수들이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는 평생 아이들을 지원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저는 그냥 야구를 좋아하고 아직까지 사랑하니까요. 이 안에서 제가 무슨 일을 하던지, 좋은 선수들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평생 아이들과 공유하고 생활하면서 야구인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야구 감독으로서의 책임은 무엇일까. 작전? 성공한 제자? 답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유정민 감독은 ‘아이들만 생각하면 됩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장 중요한 감독의 책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칭찬과 믿음으로 선수들을 이끄는 그는 지금 아마추어 현장에서 좋은 뿌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프로야구라는 꽃을 이루게 될 다음 뿌리는 이렇듯 아마야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손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정민 감독이 강조했듯이, 이제는 대중들과 많은 야구팬들도 그 손길에 힘을 더할 시기다. 



사진= 서울고등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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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서울고 야구부, 서울고등학교, 서울고 유정민 감독, 유정민 감독, 아마야구

    • 등급 김필중
    • 2016.06.01 10:18
    • 답글

    우리 회사앞에 있는 서울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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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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