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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LG 트윈스 이천웅 MEMORIES

dugout*** (dugout***)
2016.06.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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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영웅’ 天雄(천웅), 그라운드의 영웅을 꿈꾸다


지난 4월 1일 열린 2016 KBO리그 개막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둔 LG 트윈스. 이날 승리의 숨은 일등공신은 단연 이천웅이었다. LG 팬이 아니라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그는 첫 타석 투런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하며 제대로 존재감을 뽐냈다. 활약은 한동안 계속됐고, 그는 단숨에 LG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올랐다. 양상문 감독의 올 시즌 모토인 리빌딩의 중심에 안착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어깨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LG에 육성선수로 입단해 포지션을 변경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천웅의 야구 인생. 그렇기에 시즌 초반 그의 활약은 ‘육성선수 성공 신화’의 첫걸음인 듯해 보였다. 하지만, 장밋빛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의 성적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개막전에서의 눈에 띄는 활약은 팬들의 기대와 상대 팀의 분석으로 이어졌고, 이천웅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부침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5월 14일 1군에서 말소됐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정지영 Location 잠실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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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 매거진>은 4월 29일 이천웅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기사를 쓰던 도중 그의 말소 소식을 접했다. 인터뷰했던 당시와 현시점에 그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에디터는 시의성에 맞지 않는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고심 끝에 야구선수 이천웅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기로 했다. 에디터가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그가 살아온 인생과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해온 노력은 가히 대단했기에 성적과 상관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1997년 9월 22일 12pm. ‘소년의 꿈’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 9월 22일 오후 12시였어요.”


 

이천웅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소년 이천웅은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운동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축구를 하던 평범한 남자아이. 그 소년은 우연한 계기로 야구를 접했다. “친한 친구가 야구부였어요. 어느 날 그 친구가 야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떼써가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그렇게 시작된 이천웅의 야구 인생은 1997년 9월 22일 오후 12시부터 현재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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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다

고등학교 때, 이천웅의 주 포지션은 투수였다. 성남서고의 촉망받는 좌완 유망주였고, 2005년 황금사자기 준결승전에서는 당시 최대 기대주였던 안산공고 김광현(SK 와이번스)과 선발 맞대결을 펼쳐 완봉승을 거뒀을 정도로 잠재력도 컸다. 또한, 이듬해인 2006년 국가대표에 선발,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에 2차 6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제 선택에 맡기셨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대학 진학을 권유하셨어요. 저도 인생에서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대학에서 기량을 더욱 향상하고 싶었습니다.”


 

이천웅의 바람과는 달리 혹독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투수를 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고려대 양승호 감독의 권유로 1학년 때는 야수로 경기에 나섰다. 대학교 2학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투수로서 빨리 두각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피칭을 했고, 이는 어깨 부상이라는 예기치 못한 불운으로 이어졌다. 좋은 투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던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땐 정말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에게 마운드는 자존심이자 꺾을 수 없는 고집이었다. 가장 하고 싶은 포지션이 투수였고, 그가 상상했던 미래엔 투수로 성공한 자신이 모습이 있었기에 쉽사리 포기되지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힘겨웠던 시간을 보낸 이천웅은 결국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LG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끝내 투수의 꿈을 접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의 여파는 컸고 투수 이천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렇게 끝났다면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방출된 수많은 육성선수 중 한 명’ 정도였을 테다. 끝을 향해가던 그의 야구 인생. 방향을 돌려준 이는 바로 차명석 코치(현 kt 위즈 투수육성총괄코치)였다.


 

“차명석 코치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코치님께서 지금 이대로라면 1년 안에 잘릴 가능성이 크다고 냉정하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야구선수는 유니폼을 가장 오래 입고 있는 것이 성공이 아닌가 싶다며 야수 전향을 권유하셨죠.”


 

차명석 코치의 진심 어린 조언에 굳건했던 이천웅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는 그는 차 코치의 조언대로 야수 전향을 결심했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마운드였지만, 그렇게 그는 제 발로 마운드에서 내려와 배트를 들었다. 야수 전향과 동시에 뛰어난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그는 당시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한때 야구를 그만두려고 생각할 정도로 바닥을 경험했잖아요. 그땐 제 야구 인생이 여기서 끝이구나 싶었죠. 그랬던 제가 야수로 1군 타석에 설 수 있다는 자체로 감사했던 시간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죠. 부모님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시더라고요. 새로운 야구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했죠.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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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하늘에서, 이천웅은 ‘경찰청’에서 날다

이천웅이 다시 비상한 것은 2014년이었다. 경찰 야구단에 입대한 후 복무 첫해 0.385의 타율로 퓨처스리그 타격왕을 거머쥐었고, 2015년에도 그에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에 대한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체력’을 꼽았다.


 

“군 복무 기간에 체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웨이트를 하며 근육을 늘리고 살도 찌웠죠. 입대 전 78kg이었던 몸무게가 전역 즈음엔 91kg이 될 정도로 몸을 불렸어요. 덕분에 타격에서 힘도 좋아지고, 정신적인 부분에도 도움이 됐어요.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하면 정신도 해이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천웅은 스승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경찰청 유승안 감독님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타격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집어주셨어요. 가령 ‘이번엔 타이밍이 늦었다.’라고요. 그런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됐죠. 또, 제가 많이 부족한데도 기회를 주셨어요.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경찰청 생활을 떠올리면 서용빈 코치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어요. 기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이 의지했죠. 유승안 감독님과 서용빈 코치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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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의 창을 꺾은 이천웅의 방패

이천웅은 제대 후 첫해인 2016시즌, KBO리그라는 드라마의 주연을 꿰찼다. 시즌 초반, 개막전 활약을 비롯해 리그 타격 1위, 팀 내 타점 1위, 높은 타율 등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KBO리그를 씹어 먹었다. 이어 양상문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꾸준한 선발 출전을 보장받았고, kt로 이적한 외야수 이진영의 빈자리 경쟁에서 단연 선두였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육성선수 성공 신화’였다.


 

“개막전 경기를 치르고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까 더욱 기뻐해 주더라고요. 그동안 노력해온 것들을 운동에서 맘껏 발휘해보라면서요. 부모님도 굉장히 행복해하시고 뿌듯해하셨어요.”


 

시즌 초 활약에 대한 비결을 묻자 그는 “편하게 경기에 임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답했다. “못 치면 투수가 잘 던진 거고, 잘 치면 제가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50%의 확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투수가 잘 던지면 인정하고 그 대신 타석에서 내가 할 만큼은 하자’고 마음먹고 자신 있게 경기에 임했죠.”


 

“그렇지만 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런 제가 1군에서 이렇게 많은 경기에 나선다는 게 참 과분한 것 같아요. 먼저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신 양상문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워낙 선수들에게 애정이 많으신 분이라 평소에도 조언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세요. 캠프 때부터 선수들을 꼼꼼히 살피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죠. 요즘 저에겐 타격에서 ‘힘 빼고 쳐라’고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툭 건네주시는 한마디가 실제로 시합에서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야구가 잘 안 되거나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감독님의 말씀을 되새기려고 노력해요.”


 

“코치님들의 도움도 참 많이 받았어요. 제가 시즌 초 타격에서 두각을 보일 수 있었던 비결의 8할은 서용빈 코치님의 가르침 덕택이에요. 수비에선 한혁수 코치님의 덕을 많이 봤죠. 또, 주루 플레이에 많이 미숙했는데 유지현 코치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신 덕분에 보완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나 코치님들뿐만 아니라 함께 시합을 뛰는 선배님들의 조언은 더욱 피부에 와 닿더라고요. 특히 박용택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자주 물어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주세요. 선배님을 옆에서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런 분과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로 영광이죠. 또, (임)훈 형과 (이)병규(7번) 형한테도 수시로 물어봐요. 힘들 때마다 언제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선수예요.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 선배님을 만난 덕에 지금 이 자리까지 왔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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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위상, 변함없는 마음가짐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덕에 여성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이천웅이다. 그의 유니폼은 LG의 4월 유니폼 판매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얼떨떨하고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잘생긴 얼굴로 주목받는 것에 대해서는 “감독님께서 항상 ‘야구만 하라’고 강조하세요. 감독님의 말씀에 십분 동의해요.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해본다든가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서 팬들이 저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지 몰랐어요. 흔히 ‘야잘잘’이라고 하잖아요. 야구를 잘하면 잘생겨 보인다고. (웃음) 시즌 초 야구가 조금 잘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닐까요? 저는 제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웃음)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에디터보다 본인에 대해 더 모르고 있던 이천웅이었다. 유독 원정 경기보다 잠실 홈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그를 두고 팬들이 부르는 별명을 말해주자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실사나이? 잠실황태자? 잠실요정? 재밌네요. (웃음) 처음 들어봐요. 홈에서 강한 이유는 아무래도 가장 익숙한 구장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타석에 많이 서봤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죠. 마음이 편하니까 왠지 공도 더 잘 보이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지금은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는 이천웅이지만, 불과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그는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천웅은 오래전 자신을 응원해준 팬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2012년에 처음 1군에 올라왔던 적이 있었는데, 1군 첫 경기 다음 날 제 유니폼을 가져와서 사인을 부탁한 팬이 있었어요. 제 등 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가져온 첫 팬이었죠. 그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날 이후 그분을 다시 본 적은 없지만,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힘들 때 떠올리면 힘이 되는 그런 존재예요.”라며 고마움을 되새겼다.


 

“제 등장 곡을 팬 두 분이 직접 만들어 주셨잖아요. 처음엔 이 곡을 감히 내가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들을수록 신나고 타석에 들어갈 때마다 팬들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웃음)


 

그는 자신의 공은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덕으로 돌리고, 팬들의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선수였다.


 

이천웅은 입단 5년 차 선수지만, KBO리그 신인왕 자격(입단 후 5년 이내, 60타석 이하) 기준에 부합한다. 시즌 초 워낙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그였기에, 신인왕 후보로 여러 차례 언급되기도 했다. 조심스레 신인왕 욕심이 없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손사래를 치며 머쓱하게 웃었다.


 

“기준만 충족할 뿐이지 제가 감히 신인왕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시즌이 한 달 정도 흘렀는데 전 아직 부족하고 또 부족하죠. 야구를 시작한 이래 제 마음가짐은 항상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자.’는 거였어요. 올 시즌도 마찬가지로 개인 기록이나 상에 연연하지 않고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야구선수로서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꼭 이뤄야겠다는 건 없어요. 다만 선수로서의 마지막 순간, 팬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그라운드에서만큼은 근성 있게 최선을 다했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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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경찰청에서의 좋은 성적, 시즌 초 대활약이라는 화려한 예고편과 함께 막을 올린 이천웅의 야구 인생 본편에는 또 한 차례의 고난과 역경이 숨어 있었다. 시즌 초의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내 연속 경기 무안타 침묵에 빠지며 타격감을 잃었다. 이후 그의 타격엔 기복이 따랐다.


 

“요즘 머릿속이 정말 어지러워요. 타격과 수비 전부 다 어려워요. 먼저 타격에선 자신 있던 부분도 어렵다고 느껴져요. 상대 팀 투수들이 저를 분석하는 만큼 저도 많이 분석하고 준비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네요. 또, 시즌 전 수비를 많이 걱정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순조롭게 적응하고 배워가고 있지만, 아직 타구 판단, 베이스 러닝 등 많은 부분에서 미흡하죠.”


 

이천웅은 자신의 부진에 대한 원인으로 ‘욕심’을 꼽았다. 그는 “개막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주목을 받으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 욕심이 생긴 이후부터 잘 안되기 시작했어요. 타석에서도 서두르게 되고,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배트가 나가지 말아야 할 공에도 휘두르기도 하고요. 확실히 1군 무대는 다름을 느껴요. 적응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1군 경기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로 그럴 것이 시즌 전부터 이천웅은 ‘2016시즌 LG의 히트상품’으로 주목받았다. 민병헌, 양의지(이상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 등 군 제대 후 소위 ‘터진’ 선수들의 사례가 있었기에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거기다 개막 전에서의 깜짝 활약까지. 이천웅이 뭔가 해줄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가 동기 부여를 넘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잘해야 한다는 긴장과 압박이 칼날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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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야구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그렇기에 섣부른 추측이나 호언장담을 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하물며 남의 인생에 있어선 더욱더 그렇다. 시즌 초 야구팬들은 이천웅의 활약에 너도나도 LG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성적이 하락하자 이제는 “그럴 줄 알았다.”, “반짝 활약일 것 같더라.”며 비난을 아끼지 않는다. 1997년 9월 22일 오후 12시 이후 지금까지, 이천웅의 야구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퓨쳐스 팀에서 재정비의 시간을 보낸 후 부진을 털고 일어나 다시 활약할지, 아니면 이대로 추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잘할 것이다.”라는 책임질 수 없는 예상도 ‘넌 여기까지야.’와 같은 주제넘은 평가도 아니다. 에디터 본인도 ‘지금의 시련은 더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일 것이다.’ 따위의 진부한 멘트로 글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다. 그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선수에게 진심을 담아 쿨하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이천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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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6월호(62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네이버 tv캐스트 http://tvcast.naver.com/dugout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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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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