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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한화 이글스 송광민 MEMORIES

dugout*** (dugout***)
2016.11.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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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멘탈 미남

 

 

 

2016 페넌트레이스 동안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한화 이글스. 그 특유의 악바리 근성이 빛나는 경기 운영이 마치 마약 같은 매력을 가졌다 하여 ‘마리한화’라는 애칭이 붙었을 정도다. 이글스의 3루수로 내야를 든든하게 책임지는 것은 물론, 이번 시즌 0.325의 타율, 17홈런, 83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송광민. 마성의 멘탈 미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윤다영 Location 한화생명이글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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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로 인한 시작, 한화로의 출발 

 

 

 

대전에서 나고 자라 어린 시절부터 이글스 팬이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야구를 좋아했어요.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 때부터 야구장을 찾아서 응원했는데요.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모두 야구장으로 향해 경기를 봤죠. 계속 보다 보니 멋있더라고요. 그러다 야구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때 친구들과 야구공 대신 테니스공 가지고 놀기도 했죠.

 

 

그러다 야구를 직접 할 기회가 생겼나요?

그렇게 공 던지고 노는데 친구가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다면서 구경 가자고 하더라고요. 가서 보니까 더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야구 모자부터 유니폼까지 딱 맞춰 입고 줄 서서 준비 운동하고, 수비, 타격 훈련하는 거 보며 동경하게 됐죠.

 

 

야구가 동경의 대상이었군요. 처음 야구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사실 좋아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런데 야구부가 훈련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저도 그 안에 들어가서 하고 싶더라고요. 야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죠. 그래서 안 된다고 하시는 거 다 뿌리치고 무작정 들이댔어요.

 

 

동경의 대상이 현실로 다가오면 실망스럽다고들 하잖아요. 막상 실제로 해보니 힘들지는 않았나요?

막내 삼촌이 체육관을 하셨는데요. 거기서 무도(武道)를 배운 덕분에 기본 체력과 운동 신경은 원래 좋았어요. 나중에 야구부에서 힘든 훈련을 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됐죠. 그래서 ‘체력 훈련이 너무 힘들다’ 싶었던 순간은 없었어요.

 

 

공주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야구부를 거쳐서 한화 이글스로 오게 되었는데요. 그때 인연이 닿은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대학에서는 유한준(kt 위즈), 박정권(SK 와이번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선배가 있고, 고등학교에는 조동화(SK), 조동찬(삼성) 선배가 있죠. 만나면 인사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경조사 같은 행사 있을 때도 종종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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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화 전 감독님과의 인연도 눈에 띄어요. 대학 시절 야구부 감독님이셨는데 프로에서 다시 만났어요.

대학에 이어 한화에서 다시 만난 게 참 신기해요. 제게는 좋았던 일이죠. 대학 때 저를 스카우트해주신 감독님을 프로에서 다시 만났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인연인 거잖아요.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어요. 집도 가까워서 연락도 많이 했고 종종 식사 자리도 가지며 지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프로 이전의 송광민은 어떤 선수였나요?

그때에 비해 지금은 정말 많이 성숙해졌죠. 아마추어 때 다 그렇듯 4학년이 되고 국가대표도 하다 보니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것 같아요. 누가 ‘이거 해라’라고 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으면 두들겨 맞는 한이 있어도 안 했어요. 대신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해야 한다’ 싶으면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저 스스로 납득 될 때까지 연습했고요.

 

 

자기가 납득될 때까지 연습했던 걸 보면 승부 근성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가는 데 계약금은 두 번째 문제고 지명받는 게 최우선이잖아요. 일단 프로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제점을 스스로 진단하고 보완하다 보니 지금 이렇게 선수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잘 안 풀리면 속상하고 화나서 소주 한 잔 마시고 풀기도 했고요. 그래도 경기, 훈련에 대해서 예습, 복습하던 그때의 습관을 아직도 지키고 있죠.

 

 

속상하고 화나면 소주 한잔 마시고 풀었던 건가요?

처음 술 마셨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한번은 대회 끝나고 선배들한테 엄청나게 혼났는데 그게 그렇게 억울하더라고요. 그때가 장마철이었는데요. 비는 내리고, 집에는 가기 싫고, 마음은 서럽고…. 그래서 학교 앞 골목길 포장마차에 들어가 닭똥집이랑 소주를 시켰어요. (혼자서요?) 네. 술을 독학했죠. (웃음) 그렇게 한 병 먹고 눈 뜨니까 숙소 침대인 거예요. 룸메이트인 친구가 데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날 엄청 혼났으니까 어디 죽으러 나간 줄 알고 찾으러 다니다 발견했대요.

 

 

눈물 어린 ‘혼술’의 추억이네요.

어린 날의 치기였죠. 프로에 온 후로도 선배님들과 같이 대학 근처에 갔다가 그 포장마차를 다시 가봤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런데 집안이 다 술을 안 하는 분위기고, 유전적인 부분이 있기도 한가 봐요. 대학 3학년 때부터 술을 잘 안 하게 됐어요.

 

 

그 후 한화에 입단, 어린 시절부터 응원하고, 야구를 시작하게 만든 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정말 가슴 벅찬 기분이 들었겠어요.

지명받았을 때 다른 팀도 아니고 고향 팀에서 뛰게 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그리고 그 팀에 계속 머물고 있는 것도 너무 좋고요. 20대 때는 잘 못 느꼈는데 30대가 되니 고향 팀에서 뛰고 있다는 게 감회가 너무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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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여곡절에도 자기 자신을 찾은 시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가 시즌 중 소집해제 되어 팀에 복귀했어요. 아울러 시즌 중 입대한 건 전무후무한 사례라 당시에 말도 많았어요.

맞아요. 말도 많고 이슈도 많이 된 거로 알아요. 누가 잘했고 못했다기보다, 단지 시행착오가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복무했던 그 기간이 제게는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어요. 그 전에는 야구라는 틀에만 갇혀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여행도 다니다 보니 ‘힐링’도 많이 되더라고요.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배우게 됐죠.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나요?) 캐나다 밴쿠버의 휘슬러(Whistler) 스키장이 기억에 남아요.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거든요. 차를 타고 여행했는데 어느 순간 만년설이 나오는 절경을 실제로 봐서 좋았어요.

 

 

여행으로의 ‘힐링’, 그 ‘힐링’이 군 복무 후 2014시즌에서 입대 전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해주었군요. 타율 0.316이라는 좋은 성적도 기록하고요.

마인드 컨트롤에 있어서 여행으로부터 ‘힐링’의 영향이 컸어요. 충분히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요. 여행 덕분에 ‘나는 불운의 선수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에 갇히지 않았어요. 여유가 생기니 잘 풀렸던 것 같아요.

 

 

2년간 복무한 후 발목 부상으로 1년을 더 쉬었으니 3년에 가까운 공백인데요. 여행에서 배운 여유로만 극복하기에는 조금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놓고 보니 긴 시간이네요. 1년 6개월을 머리 식히고, 하고 싶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했어요. 야간에는 고등학교 운동장 나가서 연습도 했고요. 그리고 6개월 남은 시점부터는 서산에 들어가서 연습했죠. 6개월 동안 피칭머신을 틀어놓고 혼자 쳤어요. 그리고 동영상으로 훈련 모습을 찍어서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타격 폼을 바꾸려고 시도도 많이 했는데 결국 제 폼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웃음) 3개월 동안 매일 빠짐없이 3박스씩 치고, 감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 싶을 때부터는 수비 연습도 했어요. 그런 여유가 있었으니 불안해하지 않고 묵묵히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여행에서 학습했던 여유가 지금 선수생활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나요?

지금도 심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여행을 다녀오려고 해요. 물론 시즌 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어렵지만, 이번 겨울에 한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럽도 가보고 싶고….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많습니다.

 

 

시즌 중에 컨디션 난조나 슬럼프가 와도 공익 근무 시기의 묵묵한 훈련이 믿음을 줄 것 같아요.

그때 연습을 많이 해둔 게 지금도 도움이 많이 돼요. 2014시즌 때부터 잘 쳤을 때의 영상을 가지고 있어요. 타격이 잘 안 될 때면, 좋았던 시기의 영상을 다시 보면서 지금과 비교해요. 이동할 때 그 영상 보면서 어떻게 바꿔야 다시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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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위한 도움닫기를 계속하다 

 

 

 

프로에 오고 나서도 여러 일이 많았습니다. 2015시즌에는 외야 수비도 했다가 다시 3루로 돌아왔어요.

전략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권한이죠. 지시도 있었고 그 전에 먼저 이야기도 하셨어요. 팀 전력의 극대화를 위해 연구하는 차원에서 감독님이 제게 새로운 포지션이라는 기회를 주셨죠. 근데 다친 팔이 아프다 보니 멀리 공을 던지는 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고, 공부도 됐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나중에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된다면 외야에 대한 경험도 한 번 있어야 좋지 않겠어요? ‘때에 따라서 어떤 변수가 생기고, 감독님 입장에서 어떻게 운영해나갈지’에 대한 공부가 된 거죠.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선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용한 거니까요.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은 3루가 편해요.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수비 상황은 언제인가요?

kt전으로 기억하는데요. 하위 타선에 번트 사인이 나서 홈으로 뛰어들어갔는데 타석에서 번트가 안 난 거예요. 이미 마운드 앞으로 다 뛰어갔는데 말이죠. 너무 놀랐는데 그걸 또 얼떨결에 잡았어요. 그래서 뒷걸음질 치면서 2루로 무작정 던졌는데 (정)근우 형이 잡아서 더블 플레이가 됐어요. 마치 메이저리그 호수비처럼요. (웃음) 뜻하지 않은 위기에 오히려 더 잘 풀려서 기억에 남아요.

 

 

그러면 가장 아쉬웠던 수비 상황은요?

실책 말씀하시는 거죠? (웃음) 유격수 맡았을 때였는데 입스(Yips, 심리적 압박감으로 경기 중 실수를 하거나 근육 경직 등이 나타나는 현상)가 왔었어요. 첫 개막전부터 꼬이니까 더 초조해져서 일이 잘 안 풀렸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수비도 안 되고 실책이 많이 나던 때였어요. 전반기 끝나기 전에 실책이 10개가 넘었으니 말 다했죠. (웃음) 한 번은 당시 2루수가 저를 안타까워했는지는 몰라도 의욕적으로 잡으러 오다가 제 글러브를 쳤어요. 제 글러브에 맞아서 공을 떨어뜨렸으니 제 실책이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야구장이 새카매 보였어요. 너무 막막한 심정이었죠.

 

 

야속한 상황이었네요. 실책 후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요?

심호흡을 해요. 사람들은 표정 관리 하라고 하는데 그건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투수한테 미안하고, 답답하고, 점수까지 나면 기분 더 안 좋잖아요. 지금은 혼잣말로 ‘다음에 잡아야지’하고 말아요. (따로 호흡법이 있나요?) (김)태균이 형이 봄에 알려준 방법인데, 코로 들이마셔서 입으로 천천히 내뱉으면 뇌에 산소 공급이 된대요. 그때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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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징크스나 루틴이 있나요?

뭐든지 항상 왼쪽부터! 양말도 왼쪽부터 신고, 속옷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스트레칭도 왼쪽부터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색하더라고요.

 

 

오, 신기한 루틴입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요?

이전에는 골프도 쳤는데 팔 수술 하고 나서는 무서워서 할 엄두가 안 나요. 그냥 집에서 ‘치맥’하는 게 최고죠. 치킨은 무조건 반반에 순살입니다. 근데 한 마리를 다 먹은 적이 없어서 항상 남은 치킨은 길냥이들 밥 주게 되더라고요. 그 밖에는 대전 지인들 만나서 커피 마시기도 하는데요. 태균이 형처럼 걱정거리나 속 얘기도 할 수 있는 형들이랑 대화를 많이 해요.

 

 

스스로를 어떤 선수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앞파도, 뒤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앞파도는 항상 뒤파도에 잡혀요. 선수 생명이 다했거나 후배들이 치고 올라왔다는 거죠.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경쟁력 있는 뒤파도라고 생각해요. 더 배워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죠. 고참이 되면 팀 중간에서 후배들을 다독이며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부분도 배워야 할 때예요. 야구는 답이 없어요. 답이 정해지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다 보면 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로 믿어요.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도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야구선수로서, 본인의 장단점을 꼽아본다면?

장점은 낙천적인 성격이죠. 못했을 때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지만 덜 받으려고 해요. 그래도 쌓인 것들은 비시즌 때 여행으로 속 시원하게 정리하고 오면 좋아요. 반대로 단점 역시 성격이죠. 그런 낙천적인 부분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가 있다면?

끝까지 선수생활 하는 거요. 그리고 다른 공부도 해보고 싶고요. 올해 햇수로 21년째 야구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길게는 5년, 그러면 거의 30년 가까이 야구를 하게 돼요. 인생의 3분의 1을 야구를 위해 살았다는 거죠. 야구에 관련된 것을 하면 좋겠지만 은퇴할 기로에 서면 다른 것도 기회가 닿는 대로 찾아보고 싶어요.

 

미혼인데 결혼 생각은 없나요?

이제 좀 들어요. 원래 없었는데 올해 좀 들더라고요. 다 결혼하고 애 낳고…. 저는 혼자 있으니까 외로워요. 기회가 되면 하고 싶습니다. (이상형은?) 외모는 정말 상관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과 공감대 형성이에요. 성격이 저와 같았으면 좋겠어요. 속에 응어리지지 않고 풀 거 있으면 푸는 성격! 그리고 취미도 맞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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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웠던 2016, 도약할 2017 

 

 

시즌이 끝났습니다.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자율 훈련 중입니다. 요코하마로 넘어가 수술한 부분이나 다른 아픈 곳이 없는지 점검하려고요. 다음 시즌 준비 빨리 해야죠. (따로 휴가는 안 가셨나요?) 집에 있기도 하고, 가까운 지인들 만나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부산 여행도 다녀왔고요.

 

 

(중략)

 

이번 시즌 시작 당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재활로 늦게 출발을 했는데 기회가 빨리 찾아왔어요. 올해는 단순히 기회가 오면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감독님 오시고 나서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공익 다녀오고 나서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 대신 즐기자. 잘하려고만 하면 주눅 드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후회 없이 해야 한다’는 게 목표였죠.

 

그렇다면 이번 시즌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막판에 체력이 떨어졌던 부분이 아쉬워요. 부상당한 팔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제 스윙을 잘 못 해서 감독님과 특타도 했고, 조언도 많이 받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인데 저도 모르게 겁을 먹게 되더라고요. 그 두려움을 빨리 잊고 페이스를 올려서 잘 치고, 잘 뛰고, 잘 막도록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해야겠죠.

 

 

올 시즌 0.325의 타율, 17홈런, 83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원동력은 절실함, 그리고 초심입니다. 처음 프로 들어왔을 때의 초심과 야구 시작할 때의 초심이죠.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하고 싶어 했던 그 마음, 그리고 시작했을 때의 설렘. 그 설렘을 야구 인생 마칠 때까지도 가져가고 싶어요.

 

 

야구에 항상 설레고 싶군요. 그렇다면 송광민 선수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일까요?

설레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고…. 야구는 제게 인생의 모든 걸 알려줬어요. 모든 인생의 통합본 같아요. 좋을 때, 슬플 때, 안 좋을 때가 모두 배어있는 삶의 학습현장이요.

 

 

그렇다면 송광민 선수에게 한화란?

한화는 제 꿈이자, 희망이자, 지금이며 미래예요. 초등학교 때 야구장에서 내로라하는 선배님들을 봤을 때의 설렘과 떨림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 설렘과 떨림으로 한화에 끝까지 남아 마지막 마무리까지 잘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각오는?

일단 팔 부상을 극복하고 싶어요. 지금부터 먼저 준비를 해서 뒤처지지 않고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가을에 야구 할 수 있게끔 모든 면에서 올해보다 더 잘하려고요. 모든 선수가 한마음으로 염원하면 팀 성적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시즌도 응원 많이 해주셨는데 바라던 가을 야구를 이루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정경기에도 많이 찾아주셔서 항상 홈경기처럼 경기를 할 수 있게 하는 큰 응원에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내년에는 선수들도, 팬분들도 원하는 가을 야구를 꼭 하도록 보답하겠습니다.

 

 

***

다사다난했던 야구 인생 전반기를 누구보다 스윗하고 젠틀하게 극복해낸 마성의 멘탈 미남 송광민. 특유의 입담과 재치, 그리고 감동을 주는 구구절절한 인터뷰로 ‘힐*캠프’ 세트장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야구에 항상 설레고 싶다’는 이 남자가 대전을 설레게 할 2017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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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그아웃 매거진 6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11월호(67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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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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