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People KIA 타이거즈 임창용 MEMORIES

dugout*** (dugout***)
2017.01.0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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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새끼 호랑이는 완벽한 맹수가 되어 돌아왔다

 

 

무리수였다. 도박 혐의로 소속 구단에서 방출되고, 정규시즌 50%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를 영입한다는 것. 더군다나 불혹을 넘긴 나이. 그의 KIA행은 구단에게도 임창용에게도 어쩌면 명확하게 계산할 수 없는 ‘무리수’였다. 징계를 마치고 후반기부터 팀에 합류한 임창용은 난항을 겪었다.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그의 공엔 기복이 따랐고, 34경기에 등판해 블론세이브를 6차례나 기록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비아냥댔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그러나 시즌 막바지, 그는 자신을 둘러싼 물음표에 명쾌한 ‘유리수’를 던졌다. 마지막 6차례의 등판에서 5.2이닝 동안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은 채 5세이브를 기록하고 팀을 5강으로 이끌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완벽한 호투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베테랑의 위용을 톡톡히 보여줬다. 승리를 결정짓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그에게서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렸다. 나의 ‘이빨’은 아직 단단하다고.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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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온 호랑이굴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지난 1998년 떠난 이후 18년 만에 돌아온 친정팀에서의 첫 시즌.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은퇴는 고향 팀에서 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던 그이지만, 한 차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에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제 바람대로 돌아오게 돼 기쁘지만, 죄송한 마음이 더 컸죠. 좋은 모습으로 돌아와서 멋지게 야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제 잘못에 대한 대가니까요.”

 

 

KIA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의 야구 인생은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제 나이가 2~30대가 아니잖아요. 당시 괌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야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몸 상태가 정말 좋았거든요.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죠.” 그런 그에게 마지막 동아줄을 내려준 이는 다름 아닌 친정팀 KIA였다. 그에게 KIA란 어떤 의미일까.

 

 

“글쎄요.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그냥 마음이 편안해요. 말 그대로 저에겐 고향이잖아요. 올해 복귀한 건데도 마치 원래 있던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근해요. 이제야 진짜 제 자리를 찾아온 느낌이죠. (웃음)”

 

 

야구를 그만둘 위기에서 어렵사리 야구의 끈을 다시 잡은 그였기에, 올 시즌을 앞둔 그의 마음가짐은 마치 1995년 처음 프로에 첫발을 내디딜 때와 같았다. 이런 그의 마음은 등번호에 고스란히 담겼다. “원래 제가 달던 번호는 37번인데, 올 시즌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에서 12번을 달았어요. 12번은 제가 일본에서 단 번호거든요. 당시에도 KBO리그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일본에 가서 성공했으니까요. 이번에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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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팀이긴 하지만 이름도 바뀌었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네. 떠나 있는 동안 이름도 달라지고 홈구장도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죠. 그런데 21년 전 해태에 입단했던 당시 직원분들이 그대로 계시더라고요. 또, 김기태 감독님도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감독님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 성격을 잘 알아요. 항상 감사하죠. 올해 감독님께 참 죄송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올 시즌 두산 베어스 오재원 선수를 상대로 견제구 논란이 있었잖아요. 당시 감독님께서 저에게 오셔서 잘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잘못은 제가 했는데…. 그때 그 일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는데 감독님께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저에게 오셔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정말 뭉클했어요. 그 말을 듣고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선수들과 어색함은 없었나요?

왜 없겠어요. (웃음)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저를 어려워하더라고요. 서먹서먹할 때가 많았죠. 저도 워낙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편이라 먼저 다가가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후배들과 어색함을 없애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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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할래, 부모님 모시고 올래? 

 

 

우연히 야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 선수들은 많지만, 임창용의 시작은 우연을 넘어 조금 더 특별했다. 친구의 머리에 꽂힌 ‘포크’가 신의 한 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당시 저는 이상하게도 남의 집 반찬을 잘 못 먹었어요. 그래서 항상 어머니가 싸주신 반찬만 먹었죠. 그런데 어느 날 짝꿍이 제가 싸온 동그랑땡을 탐내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2개를 줬는데, 이 친구가 더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 친구의 반찬을 못 먹잖아요? 밥이 많이 남아서 안 된다고 그만 먹으라고 했는데 기분이 나빴나 봐요. 그 친구가 제 반찬에 침을 뱉고 도망가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 친구를 향해 포크를 던졌죠. 머리에 꽂힐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웃음)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너 야구 할래, 부모님 모시고 올래?’ 당시 야구부 인원이 부족해서 반마다 한 명씩 차출하던 시기였거든요. 부모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한다고 했죠. (웃음)”

 

 

친구의 머리에 꽂힌 포크가 신의 한 수였네요! 그 친구와 아직도 연락하나요?

아뇨. 초등학교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어요.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웃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우연을 운명으로 바꿨다. 학창 시절 누구보다 야구에 빠져들었고 프로 선수를 꿈꿨던 그는 고향 팀인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돼 ‘창용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입단 3년 차인 1997년이었다. 당시 14승 8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하며 최연소 세이브왕에 오른 임창용. 이듬해 34세이브를 올리며 해태의 최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타이거즈의 미래를 책임질 새끼 호랑이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임창용. 그런 그가 한순간에 호랑이굴 밖으로 밀려났다. 1999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것. 그는 “방콕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기자들이 박찬호 선배가 아닌 저에게 몰려들었어요.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제가 트레이드됐다고 하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해태와 작별할 줄은 그 자신도, 그를 응원하던 팬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유니폼은 바뀌었지만, 그의 실력엔 변함이 없었다. 트레이드 첫해인 1999시즌 38세이브를 따내며 성공 가도의 서막을 알린 그는 2000시즌 30세이브로 3년 연속 30세이브를 기록했다. 그 후 돌연 선발 전환을 선언한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14승, 17승, 13승을 거두며 사자군단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듬해 다시 마무리로 복귀해 36세이브를 올리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앞에 부상이라는 뜻밖의 장애물이 생겼다. 2005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2007년까지 3년간 부진을 거듭했다. 그간 오르막길만 올랐기 때문에 내리막길을 앞에 두고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그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전 솔직히 그때 제 야구 인생이 끝날 줄 알았어요. 부상을 처음 당해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또,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의학 기술이 발달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성공 확률이 반반이었죠. 더 이상 야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었죠. ‘안 되면 말지’라고 생각하니 한결 낫더라고요. 심리적으로 안정된 탓인지 재활도 잘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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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 난 즐겼을 뿐 

 

 

재활은 성공적이었지만 예전의 그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06시즌에는 1경기 등판에 그쳤고, 2007시즌에는 5승 7패 평균자책점 4.90으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그는 “야구와 권태기가 왔던 것 같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야구에 재미를 잃어버렸어요. 잘해도 기분이 좋지 않고, 못해도 아무 생각 안 들더라고요. 당시 보직도 명확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던 부분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이 타자를 왜 잡아야 하나, 잡으면 뭐하나 싶을 정도로 권태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그의 돌파구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팬들은 물론 그의 지인들까지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그의 선택은 확고했다. “분위기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상대하는 타자가 아니라 새로운 타자를 상대해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제 가치를 알아봐 줬어요. 당시 야쿠르트에 있던 스카우트 오쿠무라가 절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성적이 안 좋았는데, 구단 측도 저도 모험이었던 거죠.” 그는 일본에서의 5년을 ‘엔도르핀’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새로운 곳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하니까 설레고 긴장됐어요. 일본의 내로라하는 4번 타자를 상대해보고 삼진으로 잡아보기도 하면서 야구의 재미를 되찾았죠.”

 

 

노력하는 천재가 즐기기까지 하니 결과가 안 좋을 리 만무했다. 그는 5시즌 동안 11승 13패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로 대활약했다. 160km의 뱀직구에 일본 팬들은 열광했고, 그에게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하늘은 너무 무심했다. 팔꿈치 통증이 다시 찾아온 것. 그의 수술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임창용이 야쿠르트와 작별하고 국내 복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 모험을 감행했다. 한국행이 아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 모두 그의 미국행을 ‘도전’이라 칭했지만, 임창용의 생각은 달랐다.

 

 

“도전이요? 아뇨. 전 단지 즐겼을 뿐이에요. 일본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하고 싶었어요. 비록 성적은 안 좋았지만 시카고 컵스에서의 1년은 정말 행복했죠. 일본도 미국도 제가 즐겁게 야구하고 싶어서 간 건데, 왜 다들 도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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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고 바로 미국으로 갔어요. 재활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하게 재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세계 최고의 리그답게 재활 프로그램이 정말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 트레이너가 일대일로 붙어서 제 하루 스케줄을 체크하고 사소한 것까지 전부 기록하기 때문에 농땡이를 피우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었죠. (웃음) 그렇게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금까지 제가 안 아프고 야구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죠.

 

 

미국은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만한 곳이잖아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보낸 1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야구 외적으로도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한국과 일본에서 오랜 시간 야구했지만, 그곳은 정말 새로운 세상이더라고요. ‘아, 이런 데가 다 있었구나’ 싶을 정도였죠. 한 팀에 선수만 500명 정도가 있어요. 전지훈련 때 그 선수들이 다 모여서 훈련을 시작하는데, 이틀이 지나니까 메이저, 트리플A, 더블A, 싱글A, 루키로 분리되더라고요. 치열한 경쟁 사회임을 깨달았죠. 또, 루키 선수들은 훈련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고요. 미국에선 ‘밀머니(Meal Money)’라고 하루 식대를 받는데, 루키 선수들 식대가 정말 적거든요. 돈이 부족하니까 따로 일을 해서 채우더라고요.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그동안 제가 얼마나 편하게 야구했는지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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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사다난(多事多難)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발을 들여놓은 야구 인생에서 화려했던 전성기, 두 차례의 부상으로 보낸 힘겨운 시간들, 3개의 리그, 그리고 돌고 돌아온 자신의 팀. 그런 그가 되돌아본 지난 21년간의 야구 인생은 행복이었다. “전 마운드 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그동안 야구하면서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마운드 위에 선 순간만큼은 다 잊고 온전히 행복했어요. 그런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고요.”

 

 

그렇다면 그동안 야구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2009년 WBC(World Baseball Classic) 결승전,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승부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마운드에서 수많은 공을 던졌지만, 그렇게 압박감 속에서 타자를 상대해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파울도 많이 나오고 승부가 길었는데 정말 딱 하나, 실투 하나 때문에 끝났어요. 깔끔하게 졌죠.

 

 

임창용 선수 별명이 정말 많아요. 뱀직구(공이 마치 뱀처럼 휘어서 들어온다), 소방수, 수호신, 애니콜(언제나 부르면 나온다), 미스터 제로, 창용불패 등.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나요?

전부 좋은 의미를 담은 별명이라서 다 맘에 들어요. ‘애니콜’이란 별명 정말 오랜만이네요. 삼성 1년 차에 붙은 별명인데, 제가 당시 132경기 중 71경기를 나갔거든요. 이닝 수도 선발 못지않게 던졌고요. 그러다 보니 팬분들이 그렇게 불러주셨죠. ‘창용불패’도 듣기 좋고, 일본에서 얻은 ‘미스터 제로’도 마음에 들어요. ‘뱀직구’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인 것 같고요. 요즘엔 뱀직구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웃음) 별명을 들으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좋은 것 같아요.

 

KIA 못지않게 삼성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팀일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죠. 일본 가기 전에 9년, 다시 돌아와서 2년까지. 11년 동안 대구 생활을 했으니까요. 오랜 시간 동안 삼성에서 많은 걸 경험했는데, 정신없이 팀을 떠나게 돼 아쉽죠.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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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나이인 만큼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은퇴 생각은 항상 해요. 어떻게 하면 야구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죠. 그런데 은퇴는 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요. 강요나 압박에 의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죠. 그런 의미에서 내년이 정말 중요한 시즌이 될 것 같아요. 올 시즌에는 반밖에 못 뛰었잖아요. 내년에 풀 시즌을 소화하면서 야구선수로서의 가치를 검증해보려고 해요. 만약 팀에 도움이 못 된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은퇴도 고려해 봐야죠. 물론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요. 내년에 모든 걸 쏟아 부을 겁니다.

 

 

남은 야구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남은 선수 생활을 멋지게 보내고 싶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싶어요. 특히 어린 선수들의 경우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선수들이 많고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보면서 배우거든요. 마흔이 넘었지만 운동장에서만큼은 20대 선수들 못지않게 열심히 하는 것도 그 이유예요. 저를 보고 배우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죠. 지난 21년간 야구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요령들을 전수해주고 싶어요. 특히 쉬는 법이요. 방법을 모른 채 마냥 열심히만 하는 후배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거든요. 부상 위험도 크고….

 

 

본인이 두 번의 부상과 수술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제가 한 수술이 원래 재활 과정만 10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수술이에요. 그런데 저는 6개월 만에 전력으로 공을 던졌고, 10개월 만에 1군에 등판했어요. 비결을 묻는다면 저는 무리하지 않고 쉴 땐 확실히 쉬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조건 쉬었어요. 그러다 또 괜찮아지면 던지고요. 그러다 보니 더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그런데 후배들은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재활 과정에서도 몇 번의 시련이 찾아오는데, 부담감과 조급함을 가지고 있으면 극복하기 힘들어요. 꼭 말해주고 싶어요. 마음을 편하게 먹고 가만히 쉴 줄도 알아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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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음…. 야구선수로서 제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웃음) 뭐랄까 악동 같은 면도 있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고요. 저는 어떤 선수로 포장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 야구선수로 살아오면서 단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건 야구장에서만큼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야구했다는 거거든요.

 

 

일생을 야구와 함께 한 만큼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최근 광주에 스크린 야구장을 오픈했다고 들었어요.

네. (웃음) 오픈 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손님은 많은 편인가요?)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야구 인기가 워낙 높아져서 꽤 많은 분이 찾아오세요. 초창기라 지인들도 많이 오고요. (가게 홍보 좀 해주세요.) 제가 직접 해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실제 야구와 차이는 있지만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손색없는 것 같아요. 요즘 스크린야구장이 많은데 특히 저희 가게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깔려있어요. 또, 실제 마운드 거리인 18.44미터에서 게임을 즐기실 수 있죠. 실거리로 운영하는 곳은 아마 몇 개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웃음) ‘죠이리 히트존 광주 상무점’ 많이 놀러오세요. (웃음)

 

 

마지막으로 임창용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올해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내년에 좀 더 보충해서 KIA 팬 여러분들이 2017시즌 내내 기쁘고 설렐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2016년도 얼마 안 남았네요. 항상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라고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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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이 시점, 삼성에서 방출된 그의 야구 인생은 새드엔딩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해피엔딩의 첫 챕터를 끝냈다. 앞으로 몇 개의 챕터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끝에 임창용은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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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69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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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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