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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선수, 관중, 그리고
한 경기 중계방송에서 가장 오래 모습을 비추는 이는 누구일까? 공을 커트하는 데 능한 타자? 긴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 둘 다 아니다. 정답은 어떤 상황에서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심판이다. 따지고 보면 선수들보다 훨씬 자주 봤지만, 어쩐지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냉정하다. 선수들의 실수는 용서해도 그들의 실수는 용납하기 힘들다. 중요한 판정 오류라도 있는 날이면 심판 이름 석 자에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기계와 같은 정확성을 보여야만 본전이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항상 잊고 야구를 봐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oonjeong Jeon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익숙하지만 새로운 손님
근황과 함께 본인소개 부탁합니다.
29년 차 KBO리그 심판 강광회입니다. 작년까지는 1군 심판 팀장으로 일하다가 올해부터는 퓨처스리그의 후배 심판들을 지도, 교육, 평가하는 슈퍼바이저 역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심판은 야구계에서 가장 민감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있을까요?
팬분들께서 야구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심판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응하게 됐습니다.
심판이 되기 전에는 어떤 시절을 보냈나요?
심판들은 대부분 선수 출신이에요. 야구를 하다가 부상 같은 이유로 빨리 그만둔 친구들이 많죠. 저도 태평양 돌핀스에서 2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일찍 마쳤어요.
선수만큼이나 힘든 직업인데 어떻게 이 길을 택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선수를 그만두고 건국대학교 동문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김기범(전 LG 트윈스) 선배가 심판 한번 해볼 생각 없냐고 권유하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한 얘기로는… 제가 장가를 좀 일찍 가서 처자식이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은퇴하고 뭘 할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얼른 직업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거였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KBO리그 심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0년 전 당시에는 심판이라는 직업이 생소했어요. 근데 막상 돼 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저희 땐 교육이 4주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더 엄격해졌어요. KBO리그에서 주최하는 심판 학교를 10주 동안 이수해야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거든요. 이렇다 보니 선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힘든 편이죠.
작년까지는 1군 심판위원 팀장이었는데요. 평심판위원과는 업무상 어떻게 달랐나요?
심판들은 한 시즌 동안 조별로 활동해요. 5명씩 6개 조로 이뤄져 있어요. 시즌 중에는 같은 조 사람들과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보내요.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니거든요. 그래서 팀장을 하면 팀원들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들과 더 잘 융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도 연구해요.
심판들은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하나요?
심판들도 체력이 받쳐 줘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체력 훈련을 꾸준히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자전거를 탄다든지 등산을 하고요. 다른 친구들은 웨이트 트레이닝도 꽤 해요. 요즘은 미디어가 발달하다 보니 점 단위로까지 오차가 잡히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스트레스도 커지고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어요. 체력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어요.
그렇다면 판정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은 직접 실전을 뛰면서 노하우를 쌓죠. 그런 노하우를 제가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으로서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기도 하고요.
자신이 구심을 맡았던 경기를 복습하는 일도 중요할 거 같은데요.
그럼요. 평가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공부를 꼼꼼히 해야 해요. 옛날에야 그냥 위원장이나 팀장들이 보고서를 써서 성적을 기록했지만, 요즘은 기준이 촘촘하거든요. 예를 들어 스트라이크존 운영에 대해서도 점수가 매겨지니까 영상을 보면서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자꾸 뒤처지는 구조예요. 그렇게 되면 연봉에서 후배가 앞서가기도 하다 보니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잘 돼요.
시즌이 끝나고 겨울에는 휴식하나요?
한 시즌 대장정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12월, 1월까지는 쉬어요. 그러고 나서 또 2월에는 전지훈련을 하러 갑니다. 겨울에 쉴 때는 가족들에게 봉사해야죠. 시즌 중에는 거의 떨어져 지내니까요. 가족으로선 거의 빵점이죠.
#낯섦을 마주하기
작년 도쿄 올림픽 때 미ㆍ일전 주심으로 나왔어요.
국제대회다 보니 온갖 나라에서 심판들이 다 왔어요. 보니까 일본은 프로 쪽에서 다 차출됐고, 미국은 마이너리그에서 뽑았더라고요. 제가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치열한 게임도 담당하곤 했지만, 올림픽에서 주심을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낯설고 특별한 경험이었죠.
그 특별한 경험을 직접 해 본 소감이 궁금합니다.
올림픽에서의 경험은 제가 심판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워낙 큰 대회다 보니 심판들에게 오는 화살이 많았어요. 스트라이크존이 엉망이라면서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대표로서 더 철저하게 봐야겠다고 각오하게 되더라고요. 태극마크를 단 건 아니지만 일종의 애국심이 솟았던 거죠.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놀러 갈 곳도 없어서 우리나라 경기는 항상 봤거든요. 양 팀 선수들이 도열해서 애국가가 울릴 때마다 뭉클했습니다.
베테랑도 그런 큰 경기에서는 긴장하곤 하나요?
제가 미ㆍ일전에서 다나카 마사히로라는 투수의 공에 정강이 부위를 한 대 맞았어요. 그랬는데 그냥 ‘아, 아프다’ 이 정도에서 그치더라고요. 너무 긴장해서 통증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일본 심판들이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정작 ‘내가 아팠나?’ 싶었죠. 미국과 일본이 하는 큰 게임이기도 했고, 그런 와중에 한국 심판으로 나섰다는 중압감 때문에 아픔도 잊었던 거예요. 그날 경기를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올라갔어요. 거기가 59층인가 그랬는데 야경이 좋았거든요. 캔맥주 하나 딱 까서 먹으니까 그제야 긴장이 풀리더라고요. 긴장했던 만큼 희열도 느껴지고. 근데 그거 먹고 상처가 더 곪았잖아. (웃음)
아들 강진성에게 오히려 판정이 박했다는 평가가 많아요. 아들이라 의식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의식 안 할 수가 없었죠. 아무리 정확히 판정한다고 하더라도 팬들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일 거거든요. 저한테 ‘아빠존’이라는 게 있나요? 없죠? 그렇게 아들이 나왔을 때 평소보다 더 박하게 본 덕분에 제가 지금 살아있는 거죠. 오죽하면 제가 집에서 아들을 만나면 “야, 너 아빠 심판일 땐 초구부터 쳐 버려” 했겠어요. 초구부터 안 치면 스트라이크 줘 버려야지. 물론 저도 아빠로서 1군에 정착 못 하는 아들에게 판정까지 박하게 할 때 마음이 아팠어요. 근데 어쩔 수 없죠. 숙명이에요.
제도 개편으로 아들의 경기에는 출장할 수 없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솔직히 저는 편하지만, 마음이 안 좋기도 해요. 지금 심판들의 자제들도 야구를 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근데 저로 인해, 우리 아들로 인해 그런 제도가 생겼어요. 그럼 지금 야구계에 종사하는 부자지간은 서로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요. 사람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가족끼리 경기에 나오면 당연히 혜택을 줄 거라고 가정해버리는 분위기면 말이에요. 그래서 편하면서도 어느 부분은 불합리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을 때 어땠나요?
솔직히 처음 도입됐을 땐 반신반의했어요. 근데 이제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됐죠. 야구 외에도 뭐든지 기계를 이용해서 하곤 하잖아요. 실은 처음에는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을 때 우리가 할 일이 대폭 줄어드나 했어요. 근데 여전히 할 일은 많더라고요. 사실 비디오 판독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게 고과에 반영된다는 데서 비롯되죠. 예를 들어 판정 번복률이 높으면 고과에서 안 좋게 평가되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요. 전에는 오히려 비디오 판독이 없어서 오심을 한 날에는 밖에 못 나갈 정도였어요. 욕먹는 정도가 아니라 KBO리그가 마비되는 수준이었어요. 대인기피증까지 생긴다니까. (판정 번복이 나오면 유쾌하지 않을 듯한데요.) 그렇죠. 내가 했던 판정을 직접 번복하는데 그걸 또 클로즈업해서 잡아주니까. 진짜 머쓱해요.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존에 변화가 생겼어요.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래서 심판은 심판만 아는 거예요. 스트라이크존을 10년간 눈에 익혀 왔는데 그걸 한 달 만에 바꾼다? 사실 말도 안 되죠. 뭐든 과도기가 있어야 해요. 한 1, 2년 정도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가야 안정적으로 정착될 텐데 말이에요. (올해는 이와 관련해 선수들과의 시비도 잦았어요.) ‘작년에는 이랬는데 왜 올해는 이러냐’ 하면서 불만이 많아진 거죠.
최근 AI 심판을 도입하자는 여론이 거세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도 맨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몇 년 전에 처음 AI 도입 얘기가 나왔을 땐 우리가 설 자리가 없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고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구조더라고요.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는 부분에서 기계의 힘을 빌리는 거죠. 그러니까 볼 판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기계를 원망해야 하고. 주심을 맡았을 때의 부담은 줄어들 테니 괜찮다고 봐요. AI가 도입되더라도 인간에게 할 일이 있을 거예요. 이런저런 결정들은 즉각적으로 바로 나와야 하는데 무작정 기계의 판단만 듣고 있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심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테니 저는 좋습니다.
#몰랐던 이야기
판정의 일관성과 정확성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나요?
물론 둘 다 중요한데… 작년까지 정확성은 그냥 참고만 하고 일관성을 평가에 넣었어요. 정확성을 평가 기준으로 잡으면 존 테두리에 조금이라도 빠지지 않게 들어왔는지 판단하는 데 집착하게 돼요. 그러면 오히려 스트라이크존이 점점 요만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굳이 고르자면 정확성보다는 일관성을 추구하는 게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판정 논란이 발생한 날에는 팬들의 날 선 반응이 느껴지기도 하나요?
제가 오심한 날에는 진성이 SNS에 ‘네 아버지 진짜 짜증 난다’ 하는 식으로 댓글이 달리기도 했어요. 지금에야 다 차단하게 했지만요. 우리 아들이 무슨 죄예요. 특히 아까 말했던 것처럼 비디오 판독이 없었을 땐 가족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곤 했어요. (경기장에서 나올 때도 걱정이었겠어요.) 야구장에서 정말 제대로 못 나가요. 그런 상황에선 차가 와요. 유사시에 구급차가 오듯이 차를 보내주시거든요. 그럼 그쪽 통로로 빠져나가고 그랬어요. 엄밀히 말하면 죄인도 아닌데 테러당할 걱정까지 해야 했죠. 물론 그렇게 열성적인 팬들이 있어서 KBO리그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팬들뿐 아니라 선수단이나 코치진 쪽에서도 판정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럼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안 거슬리진 않죠. 근데 그런 상황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심판으로 활동하기 어려워요. (스트레스가 클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잡나요?) 아예 듣는 귀를 닫아버리든지 하면 되긴 하는데요. 수위가 높아지면 가만히 못 있어요. 바보 되니까요. 그럼 제재에 들어가요. 우린 규정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심판이 좋은 점이 하나 있잖아요. 항의가 너무 격해지면 퇴장 처분을 내릴 수 있죠. 서로 양보하면서 플레이하고 퇴장당해도 다음날 편하게 하고 그러면 좋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논란의 순간에는 감독이 나와 항의하는 일도 종종 있어요.
29년간 본 거지만 감독들이 다양해요. 누군가는 나와서 직설적으로 할 말만 하고 들어가고, 누군가는 또 우회적으로 얘기해요. 어떤 감독은 선수들이며 팬들이며 다 보고 있다면서 “아, 잠깐만 얘기하고 갈게”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전에 어떤 분은 하루라도 어필하러 안 나오면 안 됐어. 그럼 우리는 “아이고, 또 나오셨네요” 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곤 했어요. 그래도 보통은 감독 생활을 좀 하신 분들이면 나올 때와 안 나올 때 잘 구분해요. 근데 초보 사령탑들은 그 타이밍을 좀 헷갈리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들이 나오면 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사실 결국은 심판이 잘못했다고 나오는 거긴 하죠. 그럼 우리는 그냥 규정대로 합니다. 예를 들면 ‘감독님, 됐습니다. 볼 판정은 제 고유 권한입니다’ 이런 식으로 통보해요. 거기에서 ‘아니, 빠졌잖아!’ 하는 식으로 더 항의하면 시간을 재요. 몇 분 항의하면 경고, 몇 분 더 하면 퇴장을 주죠. 다음날 게임도 있는데 감정만 내세우면 안 되니까요.
선수들과도 감정이 상할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저 같은 경우는 선수단에 아들뻘이 많잖아요. 근데 베테랑, 예를 들어 강민호 같은 애들은 같은 강 씨라고 ‘삼촌, 삼촌’ 부를 때도 있어요. 성격이 좋은 거지. 이렇게 가볍게 농담도 나누는 사이가 있는 반면에 또 반대도 있긴 하죠. 근데 그런 건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에요.
심판마다 삼진 콜 동작이 다채로운데 어떻게 정하게 되나요?
그것도 실전 나가서 하다 보면 점점 변해요. 그거에 대해 서로 물어보기도 해요. ‘나 이 삼진 콜 어때?’하면 막 촌스럽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차 자신만의 포즈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요즘은 메이저리그에서 하는 걸 많이 참고하죠.
가장 마음에 드는 심판 포지션은 어딘가요?
스트레스는 월등히 많이 받아도 역시 심판은 주심이죠. 경기 대부분을 진두지휘하니까요. 권한도 가장 강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게임을 지휘하고 조율하는 게 매력적이에요.
낮과 밤 경기 같은 환경 변화도 의식되나요?
어휴, 환경마다 다르죠. 밤에 하는 게 확실히 나아요. 만약 낮 게임이 주였으면 그에 적응했을 텐데 보통은 밤 경기니까. 줄곧 밤에 하다가 낮으로 바뀌면 적응하는 데에 또 시간이 걸려요. 그리고 낮이면 땡볕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하고요. (고척스카이돔처럼 실내에서 하면 또 다른가요?) 고척에서 하면 오히려 눈이 더 침침해요. 개인적으론 은근히 쾌적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남들이 몰라주는 심판들의 애로사항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애로사항 많죠. 예를 들면 우리가 지방 원정을 다니다가 식중독이나 감기를 앓아도 대체자를 내세우기가 힘들어요. 내가 아파서 못 나가면 후배나 선배가 대신 나가야 하고요. 근데 만약에 그렇게 대체로 나간 사람이 그날 오심했다고 하면 너무 미안한 거죠. 그래서 보통은 아파도 참고 나가요. 그래야 하는 분위기고 시스템이에요.
경기 중 공에 맞아도 선수들처럼 교체될 수 없잖아요.
저는 후배들이 공에 맞으면 잠깐 들어가서 치료하고 오라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괜찮다고. 근데 옛날에는 선배들이 공 맞고 고통스러워하면 뭐라고 그랬어요. 왜 아픈 척하냐면서. 아니, 정말 아프거든요. 시속 150km짜리 딱딱한 공이 날아오는데. 전에 명치 한 번 맞고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젠 분위기가 바뀌어서 억지로 버티지 말고 간단하게라도 치료하고 오라는 쪽이죠. 제가 요새 선수들한테 은퇴하면 심판 일 해 보는 거 어떠냐고 물어보면 절대 안 한대요. 공 맞는 거 무섭다고.
#앞으로도 계속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어때요?
제가 통산 2천 경기 넘게 나갔는데 게임 끝나고 만족한 적이 없어요. 저희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실수가 나오잖아요. 사실 중간에 볼, 스트라이크 판정을 꽤 놓쳐요. 근데 그게 계속 아른아른하거든요. ‘그거 스트라이크였는데 보냈나?’ 하고요. 근데 만약 그게 중요한 공이었으면, 예를 들어 역전의 발판이 된 공이었으면… ‘그때 더 정확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항상 나요. 시즌 끝나면 그제야 ‘그래, 1년 무사히 마쳤구나’ 이 정도로만 생각하지, 만족하진 못해요. 그런 직업이에요.
그런데도 30여 년간 심판으로서 활동하게 해 준,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뭔가요?
그렇게 긴장하고 마음고생 한 만큼 희열이 뒤따르는 것 같아요. 힘들었던 하루를 뒤로하고 ‘오늘도 무사히 마쳤구나’ 할 때의 감정. 마치 연예인들이 연기하면서 긴장했다가 쉴 때의 그런 느낌을 우리도 느끼는 듯싶어요.
스트레스가 정말 심한가 봐요.
그 긴장감과 부담감 때문에 주심으로 배정된 날에는 막내라도 선배들이 터치 안 하거든요. 아무래도 그날은 소화도 안 되고 중압감도 심하고요. (30년 경력이 있어도 그런가요?) 그건 100년을 해도 그럴 거예요. 관중들이 쳐다보는 앞에서 한 경기 공 300개를 전부 집중해서 봐야 하니까요. 말했다시피 끝나고 나서 놓쳤던 공이 아른거리는 것도 스트레스고요. 그래도 플레이 볼 전에 애국가 나올 때가 제일 떨리고 막상 경기 들어가서 소리 지르면 약간 풀려요. 물론 게임 흐름이 긴박해지면 또 긴장되지만요.
본인의 인생에서 야구는 어떤 존재인가요?
하늘이 내려준 존재? 아들 얘기를 하자면, 우리 아들도 고생하다가 2020년도에 우승했잖아요. 그때 진성이가 웃었던 걸 잊을 수가 없어요. 몇 년을 해도 우승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아까 말했던 대로 이 일을 하면서 만족하진 못했지만, 2세가 야구에 종사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맞는 걸 보니 좋더라고요. 이런 점에선 야구에 감사하죠.
원래 아들이 야구를 하길 바랐나요?
본인이 원했죠. 솔직히 저도 해봐서 아는데, 힘들잖아요. 부상도 잦은 스포츠고요. 근데 자기가 하고 싶대서 이사까지 했어요. (아들이 은퇴 후 심판을 하겠다고 하면 찬성하나요?) 걔 적성에만 맞으면 저는 좋아요. 본인한테 맞기만 하면 괜찮은 직업이에요. 그게 쉽지 않아서 그렇죠.
심판을 그만두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저는 감독을 해보고 싶어요. 사령탑으로서 직접 심판들과 대면해보고 반대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거든요. 여차하면 “똑바로 안 봐?” 이렇게 항의도 해보고요. (웃음)
KBO리그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야구장에 잘 못 오셨잖아요. 이제는 자주 찾아오셔서 야구 더 많이 사랑해 주시고 열띤 응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6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6호 (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