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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DUGOUTV

dugout*** (dugout***)
2022.10.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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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거인의 자존심’, ‘자이언츠의 심장’. 그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 자이언츠의 희망이던 20대 초반의 이대호가 연거푸 담장을 넘길 때마다 그 전율은 TV 중계를 넘어 생생히 전해졌고, 초등학생 꼬마는 그렇게 이대호와 롯데의 팬이 됐다. 비록 팀이 줄곧 하위권을 맴돌아 언제 우승하냐는 친구들의 비아냥이 이어질지언정, 자이언츠를 굳건히 지탱하던 그의 존재는 늘 어린 동심을 지켜줬다. 이후 겹겹이 많은 시간이 쌓였다. 어린 꼬마는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됐고, 동심을 지켜주던 우상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써 내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수많은 꼬마는 자신들의 우상을 사랑하며, 그들의 우상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무한한 사랑에 감사를 전한다. 이대호의 지난 22년과 변함없던 팬들의 마음은 앞으로도 영원히 오래도록 기억될 거다.


Photographer Mino Hwang Photo Sports Korea, KIA Tigers Interview Sangeun Yeon Editor Jinseok Kim Location Sajik Baseball Sta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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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발자취


2001 9 19, 시즌 막바지 롯데의 한 고졸 신인 선수가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그의 이름은 이대호. 2001년 신인 드래프트 2 1라운드 순번에 지명된 본래 투수 유망주였다. 당시만 해도 타자 이대호는 야구팬들에게 다소 생경했다. 경남고등학교와 청소년 대표팀 시절 투타를 겸업하긴 했으나, 192cm 장신에 유연한 투구폼으로 힘 있는 공을 꽂아 넣는 모습이 상당히 강렬했으니까. 21세기 초 롯데 마운드의 든든한 한 축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던 그였다.


하지만 타석에 선 이대호의 모습은 머지않아 팬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프로에 입단해 이제 막 포지션 전향을 시도한 20살 타자였으나 재능부터 남달랐던 그의 방망이는 꽤 매서웠다. 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우타거포 선배 마해영의 49번을 물려받았을까. 9 2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했고, 그해 시즌 종료까지 8타수 4안타로 5할 타율을 기록했다. 당시 롯데의 중심 타자로 현재까지도 역대급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 펠릭스 호세의 출장 정지 징계로 인해 1군의 부름을 받은 이대호였다. 구단 역사에 손꼽는 타자와 바통 터치해 팀 최고 레전드의 커리어가 시작됐으니, 뒤돌아보면 참으로 기념비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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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팀은 2000년대 초중반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며 최악의 암흑기를 걷기 시작했으나, 이대호는 2004~2005시즌 연속해 20홈런을 돌파하는 등 소년가장으로 활약을 이어갔다. 막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등에 짊어진 젊은 선수는 중심타선을 굳건히 받치는 거인이 됐고, 200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과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 비록 이 해 역시 소속팀은 7위에 그쳤다. 그러나 거인 이대호를 본격적으로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각인시키기는 충분했다.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돼 좋은 성적을 남겨, 훗날 롯데를 넘어 '조선의 4번 타자'로 불릴 기틀을 다진 것도 이때다. 비록 대표팀은 졸전 끝에 대만과 일본에 패했으나, 이대호는 4할 타율과 2홈런으로 성공적인 대표팀 데뷔 무대를 치렀다. 2년 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정점에 달한다. 타율 0.360, 3홈런, 10타점에 무려 0.760에 달하는 장타율로 컨디션이 저조했던 이승엽의 부침을 완벽하게 지웠고, 무패우승 신화 달성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시간이 흘러 2015 WBSC 프리미어 12 결승전에서 일본을 무너뜨린 9회 초 역전 적시타, 이른바 도쿄 대첩의 주역이 돼 도쿄돔을 무너뜨리기까지. 국제대회에서의 이대호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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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이 없던 최고


2010, 그의 야구 인생에 최고의 시즌이 찾아온다. 2010 8 14, 많은 야구팬의 이목이 롯데와 KIA 타이거즈가 만나는 광주 무등야구장에 쏠렸다. 롯데가 3 0의 리드를 잡던 2회 초 이대호의 두 번째 타석. 2 1, 2루 상황에서 상대 투수 김희걸의 2구를 밀어쳤고,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기는 아치를 그렸다. 그가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관중석은 떠나갈 듯한 함성에 뒤덮였고, 홈런 하나하나에 크게 내색하지 않던 그 역시 이날만큼은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대기록과 더불어 시즌 끝에 타격 7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세운 이대호. 당연하게도 2010시즌 MVP 또한 그의 차지였다.


더 이상 한국에서 거칠 게 없었고, 2011 12 5일 그의 NPB 진출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2년 계약. 대한해협을 건너간 거인의 발걸음은 첫해부터 열도를 뒤흔들었다. 중심 타자로서 리그 144게임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OPS 1위를 기록하며 더 큰 무대에서도 본인의 가치를 입증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둥지를 옮긴 뒤로도 대단했다. 2014시즌 재팬시리즈 우승으로 본인 커리어 첫 반지를 꼈고, 2015시즌엔 2년 연속 우승과 재팬시리즈 MVP 수상, 30홈런 돌파까지 이뤄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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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2회로 성공적인 일본 생활을 보낸 그의 나이 어느덧 만 34. 더 큰 무대를 위해선 결심을 미룰 수 없었다. 일본에 남으면 막대한 부와 함께 안정적인 선수 생활이 따랐겠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마침내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MLB행 꿈을 이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맨 처음부터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많은 나이와 한정적인 포지션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역시 이대호는 이대호였을까. 플래툰 기용으로 한정된 기회에도 14홈런을 때려내는 등 수준급의 활약으로 꿈 같은 도전을 마쳤다. ‘더 젊을 때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감탄 섞인 아쉬움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7, 이대호는 다시 KBO리그로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팀은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곳 롯데 자이언츠였다. 팬들은 두 팔 벌려 레전드의 귀환을 환영했고, 구단도 당시 기준 역대 최고액에 해당하는 4 150억 원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예우를 다했다. 이미 한국에서 이룰 걸 다 이룬 이대호의 마지막 숙원 단 하나는 바로 롯데의 우승이었다. 그 목표를 향해 자이언츠는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고, 전설을 중심으로 거인 군단은 전에 없던 결속력을 자랑했다. 진격의 거인 모드로 뜨거운 하반기를 보낸 자이언츠는 3위에 안착해 5년 만의 가을 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그렇게 이대호는 돌아오자마자 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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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마지막 인사


.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보다는 와이프가 많이 울 줄 알았는데


지난 7 1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시즌 KBO 올스타전. 예상치 못했던 빅보이의 눈물과 함께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은퇴 투어가 시작됐다. 2021년 롯데와 FA 2년 계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2022년이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을 공표한 이대호. 모든 야구팬이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일찌감치 이별을 준비했다. KBO도 이승엽 이후 역대 2번째 은퇴 투어를 시행하며 성대하게 보내줄 계획을 마쳤다. 당사자 역시 오래전부터 결정한 만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을 텐데,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벅찬 감정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일단 올스타전 때 일찍 눈물을 보여서 조금 부끄럽네요. (8 18일 인터뷰) 사실 은퇴 투어 때는 안 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KBO에서 너무 많은 준비를 해주시고, 팬분들도 정말 고맙다고 말씀해주시고. 말 그대로 정말 눈물 나게 해주시더라고요. 이제 나이가 40이 넘어가고 아이들도 키우다 보니 그런지 모르겠는데, (웃음) 조그마한 것에도 감동하고 눈물이 많아졌어요.”


올스타전 이후 다른 구단을 방문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참 많은 준비를 해주시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죠. 벌써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까지 2차례나 지나갔는데, 할 때마다 조금씩 감정이 북받치는 게 있어요. 그래도 최대한 안 울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은퇴 투어 날은 눈물을 참고 경기를 하겠지만, 마지막 홈경기인 은퇴식 날은 참기 힘들 것 같아요. 그때는 울어도 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시원하게 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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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결정적일 때 빛나는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 2회의 타격 트리플크라운, KBO 골든글러브와 NPB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도합 8회 수상. 이대호는 언제나 반짝이는 수준을 넘어 폭발적인 타자였다. 매 경기 남다른 위압감을 자랑했고, 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결정적인 안타와 홈런을 때려냈다.

상대편으로서는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임이 분명했다. 비록 세월의 영향을 받은 최근 몇 년간 과거의 폭발적인 모습과는 다소 멀어졌던 것도 사실. 하지만 마지막을 앞둔 지금, 이대호의 불꽃은 예전처럼 화려하게 또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다. 은퇴 시즌에 타격왕 경쟁을 하고 20홈런을 돌파한 그를 어찌 보낼 수 있을까.


 

주변에서 '마지막 시즌이라긴 너무 아쉽다', '일 년 더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같은 얘기를 많이 듣죠. 하지만 이미 한 은퇴 선언을 번복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마지막을 앞두고 있음에도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비결도 종종 물어보는데, 아무래도 마지막이니까 오히려 마음을 비웠던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홈런을 치려고 욕심을 좀 부렸어요. 하지만 올해는 홈런보다는 팀을 위해 살아나가자’, ‘어떻게든 안타만 치자는 방향으로 욕심을 내려놓으니 타율도 올라오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당연하게도 전성기 때처럼 항상 빛나진 못했다. 매년 5할을 우습게 넘겼던 장타율도 2019년을 기점으로 4할 중반대로 내려왔고, 홈런타자의 위압감도 이전과 같진 않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거인의 4번 타자 자리를 지키며 동갑내기들이 하나둘씩 유니폼을 벗는 와중에도 이따금 클래스를 증명해내곤 했다.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낮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를 기록했던 2020년에도 그랬다. 득점권만 되면 천금 같은 타점을 올리며 WPA(승리 확률 기여도) 면에서 양의지, 이정후 등 수위급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 본인을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여지없이 결과를 만들어내던 이대호. 예전처럼 매일 빛나지는 않더라도, 결정적일 때 여전히 빛났다.


그 과정에서 이룬 게 얼마 전 8 14일에 달성한 KBO리그 출신 한국인 통산 최다 안타예요. 솔직히 그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요. 조금만 더 하면 최다 안타고, 몇 개를 치면 3,000안타도 넘볼 수 있다고 알고 있었죠. 중간에 부상도 겪고 해서 3,000개까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일찍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누적 스탯은 안 아프고 오래 뛸 수 있어야 달성할 수 있잖아요.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까지 큰 문제 없이 꾸준히 야구를 할 수 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요.”


이제 얼마 안 남은 한 게임, 한 타석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죠. 여태껏 그래왔듯요. 그게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 대한 보답이고 이제 더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점점 아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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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이자 아버지


8 10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 01로 롯데가 밀리고 있던 8회 초 1아웃 주자 2루 상황, 타석에는 대타 신용수가 등장했다. 초구를 공략한 신용수의 타구는 왼쪽 담장을 그대로 넘어갔다. 그의 시즌 마수걸이 홈런이자 승부를 뒤집는 역전 2타점. 더그아웃은 환희 섞인 축제 분위기가 됐고, 코치진을 비롯한 전 인원은 격렬한 축하를 보냈다. 그의 홈런을 축하하는 동료들의 행렬 뒤에는 가장 큰 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팀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 마치 아버지에게 안기듯 대선배의 품으로 향하는 후배의 모습은 많은 팬의 감동을 끌어냈다.


용수가 2군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올라온 걸 알고 있고, 무엇보다 이번 시즌 첫 홈런이라 제가 더 기뻤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강하게 안아줬죠. 용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후배가 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이 힘들게 노력해 1군에 올라와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고참으로서 뿌듯함을 느껴요. 사실 젊을 땐 내가 더 잘해야 1군에서 오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점차 선배가 되면서 어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 제가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안아주기도 하고, 좋은 말도 해주고. 가끔은 장난도 치고요.”


이 후배들이 롯데의 미래를 이끌어야 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제가 형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죠. 이제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네요. 이제는 아버지 역할이라고 하는 게 맞겠어요. 그래서 어린 후배들이 저를 덜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선배급 선수들이 더 어려워합니다. (웃음) 그들이 어렸을 때 제가 군기반장 역할을 맡아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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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그와 후배들의 관계는 나이나 세대를 초월한 듯했다. 정훈과 전준우 등 오랜 시간 동료로 생활한 이들과의 더그아웃 케미를 보여주는가 하면, 훈련에서 장난 섞인 고함을 지른다. 한참 어린 후배들은 그가 결정적인 홈런을 치고 돌아오기라도 하면 하나같이 헬멧에 금이 갈세라 격한 축하를 보낸다. 선배라기보다는 동네 형, 삼촌의 모습 같다. 마지막이기에 더 그런 걸까. 맏형이자 아버지로서 후배들과 한 조각이라도 더 추억을 쌓고,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픈 마음이 전해진다.


아들처럼 가장 많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선수는 ()동희예요. 옆에 붙어서 질문을 쉬지 않아요. 또 저를 최고로 괴롭히는 건 정훈 선수요. 훈이랑은 라커룸 옆자리를 쓰는데, 조금만 야구가 안 돼도 표정이 굳어있어서 제가 옆에서 숨을 못 쉬겠어요. ‘나이 들고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나 싶죠. (웃음) 아마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조금 더 편안하게 임하라고 얘기해주는데, 항상 훈이가 하는 말이 형님은 편하게 하는데 저는 편하게 안 된다 이래요. 야구를 대하는 본인만의 성격인 거죠. 잘 될 땐 웃음도 많고 재밌는 친구인데 뭔가 안 되면 너무 조용히 있으니까 안타까울 때도 있고요.”


동희나 훈이 말고 다른 후배들도 안 좋을 때 저에게 와서 물어봐요. 주로 컨디션 조절 같은 조언을 자주 해주는데, 사실 저도 안 좋을 때는 야구가 잘 안 돼요. 잘 될 때는 또 한없이 잘 되고요. 최대한 빨리 그 안 되는 시점을 지나야 해요. 저도 22년간 뛰며 부정적인 건 최대한 잊어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날이 끝이 아니라 한 시즌 144경기가 있고, 어차피 다음날이면 또 게임을 해야 하고, 오늘 못해도 다음 날 2 3개 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렇게 옛날얘기를 해주면서 다독여도 사실 정말 어려운 거지. 말이 쉽죠.”


제가 해주는 말이 다 쉽게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귀담아듣고 어려워도 해보려고 하는 선수가 많아요. 또 그러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이 보이면 뿌듯해요. 또 충고는 본인이 들었을 때 마음에 와닿아야 하거든요. 제가 전해주는 경험들에 후배들도 공감해서, 부정적인 기억을 잊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들 야구를 진짜 잘하고 싶어 하잖아요. 더 잘하고 싶어서 질문하는 거니 언제나 성심성의껏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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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 헌정글을 작성하는 시점으로 두산, KIA, NC, SSG, 키움, 삼성, KT까지 벌써 7번의 은퇴 투어가 열렸다. 매 은퇴 투어의 마지막 타석마다 평소보다도 유독 큰 소리로 그의 응원가가 울려 퍼지더라. 1루와 3루 그리고 외야까지 온 관중이 하나가 되어, 마지막을 추억하는 마음을 담아 오 롯데 이대호로 시작하는 노래를 목청껏 외친다. 롯데뿐만이 아니라 온 야구팬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대호 역시 이러한 팬들의 응원에 감사함을 전한다. 은퇴 투어 날마다 팬 여러분의 응원과 사랑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보호대를 착용하는데,  20글자 안에 팬들을 향한 진심을 모두 담기엔 칸이 모자랐을 거다.


부산의 별명이 구도잖아요. 야구를 대표하는 도시에서 야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해온 만큼 크나큰 사랑을 받았어요. 정말 감사하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이제 떠나야 하니까 아쉬운 마음에 더 많은 사랑을 주시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아쉽긴 마찬가지죠. 그렇기에 매 경기 더 집중하고 마지막 타석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떠날 때 팬들과 아름답게 작별하기 위해 겨울 동안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결국 마지막 목표였던 우승과는 멀어져서 죄송한 마음이죠. 그래도 즐거워요. 부산뿐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팬분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을 담아 응원해주시더라고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팬분들께는 큰 사람이 야구를 했다 이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저는 빅보이잖아요. 처음에는 과연 이런 몸으로 야구를 잘할 수 있겠냐는 눈빛으로 보는 분도 많았어요. 하지만 야구는 몸집이 크다고 못 하는 스포츠가 아니에요. 이 덩치로 편견을 이겨냈고, 41살까지 야구를 해왔잖아요. 스스로 이런 선입견을 바꿔놓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팬들도 마찬가지로 기억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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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올 10 8일 롯데 자이언츠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사직야구장에서 빅보이 이대호의 은퇴식이 열릴 것이 확정됐다. 이날만큼은 곧 영구결번될 10번 유니폼으로 경기장 전체가 가득 차리라. 20여 년 전 청년 이대호를 보며 야구에 빠졌던 필자와 같은 꼬마들도, 그의 22년을 보며 함께 나이 들어간 수많은 롯데 팬도, 팀을 떠나 조선의 4번 타자를 응원한 이들도, 그라운드의 선수들도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눈물을 흘릴 거다. 팬으로서 그에게 너무나 수고 많았고 고맙다는 진심을 전한다. 이대호의 인터뷰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영원한 자이언츠의 심장을 향한 글을 마친다.


끝으로 팬들께 한 번 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프로에 와서 벌써 22년 차인데, 처음 저를 응원해주실 때의 마음 그대로 지금까지 힘을 보내주시고, 제가 야구를 그만두고도 계속 사랑할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기분을 평생 가져가고, 참 큰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을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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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13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8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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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매거진 #lottegiants #lotte #롯데자이언츠 #롯데 #이대호 #은퇴투어 #KBO리그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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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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