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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논란에 지쳤다고 말하기도 지겨워졌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으로 패하는 모습을 보며 화내기도 벅찬데, 잘못된 볼 판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분노의 한계 수위를 높인다. 논란이 있을 때마다 KBO는 볼 판정을 심판의 인사고과에 강력하게 적용할 것을 약속하지만, 다음 시즌에도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팬들은 체득해왔다. 다만 이번 문제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선수에게 반말하는 심판과 심판에게 선배라고 부르는 선수, 군대처럼 수직적이라는 심판 문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잘못된 권위 의식이 왜 야구계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11월 12일 작성)
에디터 김나래 사진 삼성 라이온즈
#불씨를 자초한 KBO
10월 1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평소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삼성 구자욱이 5회 말 삼진 콜을 듣고 곧바로 헬멧을 벗어 내팽개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날 구자욱의 퇴장과 볼 판정도 화제였지만, 더 큰 논란은 항의에 대한 심판의 대응에서 발생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타자가 계속 마운드에 머물러 있자, 한 심판이 “들어가라. 들어가라고. 아니 클리닝 타임이니 들어가라고”라며 구자욱을 향한 것으로 의심되는 반말을 한 것이다. 팬들은 이를 송수근 구심의 언행으로 추정했다. 다음날 한 팬이 KBO에 전화를 걸어 입장을 확인했고, “선수에게 반말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심판에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을 들었으나 논란은 더 거세졌다. 구자욱의 삼진으로 3아웃이 돼 5회 말이 종료됐던 정황상 심판이 아니라 선수에게 반말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2017시즌부터 KBO는 벌칙내규 심판위원 제6항에 경기 중 선수나 코치, 감독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정했다. 그 예로, 2017시즌 6월 10일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렸던 두산과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두산 오재원이 5회 초 볼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고, 이 과정에서 그에게 반말한 문승훈 심판에게도 품위를 손상하는 언행을 했다며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구자욱과 삼성 허삼영 감독이 마운드에서 항의 중이던 상황을 고려하면, 당시 반말한 자에게도 벌금 100만 원이 부과돼야 한다. 하지만 KBO는 당일 경기에 관한 공식적인 사과나 징계 논의 등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말이다.
#팬의 분노는 정당했다
분노한 야구팬들은 “선수에게 반말하는 송수근 심판 징계대상. KBO는 실행하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 여러 장을 KT 위즈와 삼성의 경기가 열린 10월 22일 홈구장 앞에 걸었다. 1인 시위도 불사했다. 시위를 감행한 팬은 한 인터뷰에서 "송수근 심판이 오심으로 경기 흐름에 지장을 주었고 선수에게 반말했다"라고 말하며 "심판의 자질 부족과 편파 판정에 대해 항의한다"라는 정당한 이유를 밝혔다. 기사는 빠른 속도로 증식했고, 결국 KBO는 3일 뒤인 25일 “스트라이크존 판정 평가 기준을 현행 일관성 중심에서 2022시즌부터 타자 신장에 따른 개인별 스트라이크존을 철저히 적용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 어떤 사과도, 해당 논란에 대한 경위 조사도 없이 말이다.
당일 경기는 SBS Sports에서 중계했다. 중계 당시 사용한 스트라이크 존은 KBO 공식 기록통계업체인 스포츠투아이에서 제공하는 투구추적시스템(PTS, Pitch Tracking System)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시즌 퓨처스 리그에서 사용하며 데이터를 누적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AI가 타자 별로 달라지는 스트라이크 존을 인식해 공이 어느 궤도로 들어오는지를 판단했다. 따라서 ‘개인별 스트라이크존을 철저히 적용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은 이 논란에 아무런 해답이 되지 않는다. 팬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음을 KBO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같은 상황, 다른 해결
이러한 논란은 KBO리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발생한다. 2010년 6월 1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경기에서 디트로이트 선발 아르만도 갈라라가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짐 조이스 심판의 오심으로 불발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얻었다. 당시 MLB에서 가장 존경받는 심판 중 한 명이었던 조이스 1루심은 27번째 타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웃 카운트를 세이프로 선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오심을 인정하며 경기장에서 아르만도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사과를 받아들이며 ‘역대급 오심’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이 오심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MLB가 이를 보고 그다음 시즌인 2011시즌부터 일부 경기에 비디오 판독을 최초로 활용하며 실질적인 개선의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홈런성 타구를 확인하는 단 세 경기에서만 쓰였지만, 필요성을 몸소 체감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2013시즌에는 마이너리그 중 하나인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비디오 판독을 시범 운영한 뒤, 다음 해인 2014시즌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제 MLB는 다른 과제인 스트라이크 존 판정 논란을 해결하려고 한다. 우선 마이너리그인 애틀랜타 리그에서 AI 심판을 이번 시즌에 시범 운영했다. 앞으로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할 때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을 AI 활용에 투자해 관련 이슈를 적극적으로 소거할 예정이다.
#팬은 공정한 야구를 원한다
MLB 사무국이 로봇 도입으로 문제를 재빨리 처리해나가려는 이유는 야구를 외면하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2010년대부터 총관중 수 및 시청률 하락과 젊은 층 야구팬의 이탈이 두드러졌는데, 동일시기 NBA(미국 프로 농구,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와 비교하면 평균 연령층이 10세는 높은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절망적이다. 주원인으로는 긴 경기 시간을 꼽았는데, 경기 중 판정 문제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될 경우 흐름이 끊겨 지루해질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한 가족이 분위기를 버티지 못한다는 점 등이 반영됐을 것이다. 처음 방문한 야구장에서 판정 이슈로 싸움이 벌어지고, 경기장 내 야유가 빗발친다면 ‘야구 뉴비’가 다음번에도 경기를 관람하고 싶겠는가.
팬이 원하는 건 일관성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야구팬은 없지만, 일관되지 못한 판정은 경기 흐름에 악영향을 준다. 2017시즌 이후로 시청률과 관중 수가 현저하게 줄고 있는 KBO리그의 부흥을 위해서는 MLB처럼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타자마다 각자의 스트라이크 존이 있고, 구심도 마찬가지다. 늘 해설위원이나 캐스터가 1회를 마치면 “오늘 구심은 스트라이크 존의 크기가 어떠하니 맞춰서 경기해야 한다”라고 조언을 덧붙인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존은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만일 오심이 생기더라도 기계라면 일관된 오심을 만들어낼 것이고, 이는 불필요한 감정싸움과 시간 낭비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최선책이다.
#선수는 심판의 후배가 아니다
사실 AI가 도입되면 이런 논란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지 122호(6월 호)에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KBO 측을 최대한 이해해보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이번 반말 논란을 지켜보며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아무리 AI가 도입된다고 한들 볼 판정 결과를 알려주고 전체적인 경기 진행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의 존재는 필수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까지 심판이 선수에게 반말해 논란이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며, 대처도 늘 똑같았다. 어떻게 봐도 명백할 경우 벌금형 징계가 내려졌고, 그 수위에 대해선 항상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심판의 억울함을 알리는 기사를 내보내거나, 혹은 이번처럼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런 논란이 대화로 좋게 해결된 때도 있는데, 선수가 먼저 KBO 사무국이나 심판에게 찾아가 사과하는 경우다.
권영철 심판의 예시만 봐도 그들의 권위 의식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는 2016년 5월 14일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의 경기에서 볼 판정에 의문을 제기한 넥센 이택근에게 “네가 심판이야?”라며 반말로 소리쳤다. 이때의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 경기 때 바로 화해했다”라고 말하며, 이택근이 “선배님, 제가 좀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라며 찾아와 화해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또, 심판진의 위계관계가 어떤지를 묻는 말에 “군대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맞는 말”이라고 대답하며 “저는 어느 정도 그런 위계관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MLB에 선수 출신이 아닌 심판이 많은 것과 달리, KBO는 1%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이 프로에서 뛴 경력이 있다. 몇몇은 선수를 계속 자신의 후배로 인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사람을 통해 모두의 인식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권 심판은 올해로 19년 차에 KBO리그 통산 37번째 1,000경기 출장을 달성, 2018년에는 KBO 최우수 심판상을 수상한 베테랑이다. 그의 말에서 심판진의 보편적인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당장 개선할 수는 없겠지만, 팬들은 올 시즌 너무나 많은 파문을 겪었다. 그중 군대식 문화로 인해 대학야구나 고교야구와 같은 아마추어 리그에서 곪은 상처가 비명을 내지르며 터졌을 때, 팬들은 한마음으로 아파했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며 잘못된 조직문화가 즐겨야 하는 스포츠를 얼마나 괴롭혀왔는지 체감했다. 프로 선수단의 위계질서는 점점 사라지는데, 심판진은 아직도 과거에 집착하며 머물러 있다.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 관행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되기 마련이다. 새 시즌을 공정하게 바꿀 수 있는 적절한 시기, 스토브 리그가 돌아왔다. 때를 벗겨내고 속부터 단장해 정본청원(正本淸源)한 KBO리그가 되길 바란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8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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