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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삼성 라이온즈 차우찬 MEMORIES

dugout*** (dugout***)
2016.04.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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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삼성 라이온즈 차우찬 ‘나는 새가슴이 아니다!’

 

스플리터. 이 구종은 투수, 타자 모두에게 어렵다. 투수는 스플리터를 던지기 위해 검지와 중지를 벌린다. “벌렸죠? 스플리터예요!”라는 명대사도 있지 않은가. 타자는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보고 속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갑자기 공이 홈 플레이트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방망이는 힘없이 돌아가기 일쑤다. 지난 2015시즌, 이 구종을 앞세워 무려 194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투수가 있다. 주목하라. 이제 차우찬이 스플리터를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Jiwon Yeo Location Guam Leopalace Resort

 

 

지난 59호를 읽었던 독자라면 알 것이다. 이번 겨울, <더그아웃 매거진>은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괌을 찾았다. 떠나기 전 에디터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한 선수는 차우찬이었다. ‘투수 왕국’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11년 차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경력이 워낙 화려한 선수이기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렇게 차우찬을 만났고 에디터의 머릿속에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역시’. 그는 에디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짧게 자른 머리처럼 시원시원했다. 그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비행기에서 부푼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는 에디터의 애교(?)를 ‘왜 기대하셨어요.’라는 말로 잘라냈다. 반대로, 취미를 묻는 말에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 이야기를 하며 발그레한 볼을 보이기도 했다. 차우찬의 성격은 그가 던지는 스플리터만큼 특이했다. 그 성격으로 살아온 야구 인생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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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백을 집어들다

 

 

지금부터 차우찬을 낱낱이 해부해볼게요. 어렸을 때부터 투수였나요?

네. 왼손잡이여서요. 알다시피 좌완 투수가 KBO리그에서 흔하지 않잖아요. 또, 제가 평소에 날아오는 타구를 무서워해서 야수는 못 하겠더라고요.

 

 

‘더그아웃 리포트’ 코너 인터뷰를 하면 학생들이 야구에 대한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어려웠다고들 해요. 차우찬 선수는 어땠나요?

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시작은 조용히 했고 야구를 진로와 연관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말씀드렸죠. 그러자 부모님께서 일단 알겠다고, 앞으로 2년 동안 야구 해보고 힘들면 그만두라고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나도 제가 잘하니까 지원해주기 시작하셨어요. 그 당시에 가졌던 믿음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계세요. 감사합니다!

 

 

군산초등학교, 군산남중학교 그리고 군산상업고등학교. 학교를 쭉 군산에서만 다녔죠. 학창 시절 프로야구 최강팀은 KIA 타이거즈였는데 KIA가 아닌 다른 팀에 지명받아 섭섭했겠어요.

아니요. 사실 학생 차우찬이 프로야구는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특정 팀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각 팀의 연고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웃음)

 

 

연고지도 모르셨다니…. 그래도 롤모델은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좌완 투수로 유명한 선배들은 다 좋아했어요. 송진우(현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구대성(시드니 블루삭스) 선배님처럼요.

 

 

군산상고를 졸업한 2006년,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됐어요. 열아홉 살의 패기로 정해놓은 특별한 목표가 있었나요?

뚜렷한 목표는 없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던지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되고 싶었던 프로 선수가 되어 기쁜 마음에 어느 자리든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한 몸 바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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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와 중지를 벌리다

 

 

삼성의 지명을 받은 차우찬의 첫 무대는 육성군이었다.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올라간 것은 2007년. 23번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 6.11을 기록하며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에는 출전 경기 수가 25경기로 늘고,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떨어졌지만 첫 승은 멀어보였다. 그러던 2009년, 꿀 같은 승리가 찾아왔다.

 

 

드디어! 2009년에 넥센 히어로즈 상대로 4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둡니다. 6이닝 1실점으로 성적도 좋았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기분은 좋았지만 긴장되지는 않았어요. 프로 4년 차면 떨릴 시기는 지났죠. (웃음) 그래도 그 당시 기억이 지금도 나는데 선발투수로 경기에 나간다는 게 좋아서 즐겁게 했어요. 야구는 즐겁게 해야 성적이 나온다는 걸 배우기도 했고요.

 

 

지금은 삼성을 대표하는 토종 투수지만 2009년엔 76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새가슴’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새가슴이라는 별명, 인정하세요?

아니요. 저는 새가슴이 아닙니다. (단호) 타자와의 승부를 피한 게 절대 아니에요. 단지 제구력이 불안할 뿐입니다. (웃음)

 

와인드업

 

 

새가슴이라는 별명이 싫어서일까. 차우찬은 한 시즌 만에 ‘새가슴’에서 ‘멋지게 포효하는 사자’로 변신했다. 그가 기록한 성적은 37경기 10승 2패 126.1이닝 평균자책점 2.14. 선발 8연승, 올스타전 우수투수상, 데뷔 첫 완봉승과 승률왕이라는 타이틀도 그를 뒤따랐다.

 

 

 

2010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차우찬의 해’였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죠?

네. 본격적으로 선발투수 기회를 받은 첫해니까요. 그 당시엔 야구장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거웠어요. 시즌 초에는 퓨처스 팀에 있었기 때문에 한 시즌을 시리얼 말아먹듯이 말아먹나 생각했는데 열심히 하니까 좋은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좋은 성적 얘기 하면 생각이 나는 별명이 있죠. 차쇼, 차바시아(클레이튼 커쇼, C.C 사바시아 등 당대 최고 좌완의 이름에 차우찬의 성을 합친 별명)! 알고 계세요?

당연하죠.

 

 

 

두 별명 중에 뭐가 더 마음에 드세요?

차쇼요. 지금은 커쇼가 제일 좋은 투수니까요. 팬 여러분, ‘차쇼’로 불러주세요! (웃음)

 

 

 

반대로 가슴 아픈(?) 별명도 많아요.

네. 차르봄바. 세계 최고 핵무기잖아요.

 

 

 

별명 두 개가 정반대의 의미네요. (웃음) 2010년은 차우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별 의미 없어요. 풀타임 선발투수를 목표로 두고 연습했고, 목표대로 얻은 결과니까요.

 

 

 

인터뷰하면 많은 투수가 두 자릿수 승수를 목표라고 말해요. 그들과는 조금 다르네요.

그런가요? 전 풀타임 선발투수로 나가면 두 자릿수 승수는 기본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목표로 두지 않아요.

 

 

 

기본이었던 두 자릿수 승수 달성이 2012년 불펜으로 옮겨지면서 어려워졌어요. 그 당시에 부상 탓이라는 추측이 있었죠.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상 아니에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야구를 못해서! (웃음)

 

 

 

정말 솔직하시네요. (웃음)

네. 저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2012년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만큼 성적도 안 나와서 1군에서 말소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죠.

 

 

 

사실 풀타임 선발투수 중 불펜으로 보직이 바뀌면 기분 나쁘다는 선수가 있곤 하죠. 자존심도 상한다고 하고요. 차우찬 선수는 어땠나요?

저는 괜찮아요. 팀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저보다 좋은 투수가 있으면 선발 자리를 양보해주는 건 프로로서 당연한 이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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슝! 타자를 향해 날아가는 공

 

 

2013년 얘기를 해볼게요. 삼성 팬들 사이에서 ‘혹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닝과 상대 타자수가 정말 많았어요. (실제 성적은 121.1이닝, 518타자다).

그렇죠. 선발과 불펜을 함께하다 보니 그렇게 됐나 봐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혹사였나요?

아니요. 혹사 아닙니다. 저희 팀은 혹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요. 류중일 감독님과 김태한 투수코치님께서 선수 관리에 신경을 잘 써주시거든요. 힘든 것 같으면 쉬라고 배려해주시기도 하고요.

 

 

2013년 한국시리즈 얘기도 해야죠. 총 5경기 12.2이닝 2실점 평균자책점 1.42…. 캬, 정말 대단했어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새가슴’이라는 별명이 생각나네요. 제가 새가슴이었다면 그렇게 큰 경기에서 잘 던질 수 있었을까요? (웃음) 장난이고요. 저희 팀이 페넌트레이스에서 항상 우승하고 한국시리즈 연습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성적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 활약하면서 MVP 후보로 손꼽혔어요. 박한이 선수가 극적인 승리를 만들어 MVP가 됐는데 아쉽지 않았나요?

전혀요. 두산이 3연승 하면서 우승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뒤집은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어요.

 

 

타자, 헛스윙 삼진 아웃!

 

그렇게 활약했던 차우찬은 2014년, 다시 라이온즈의 중간 계투가 됐다. ‘풀타임 불펜’은 처음이었다. “워낙 출전 경기가 많다 보니 후반기에는 체력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자신의 부진에 관해 얘기할 때 역시 솔직한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2015년에 다시 선발투수로 돌아왔다. 2014년까지 삼성에서 5선발을 맡았던 배영수가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거둔 성적은 5선발급이 아니었다. 그의 기록은 31경기 173이닝 13승 7패 평균자책점 4.79로 준수했다.

 

 

늦었지만 2015년 탈삼진왕 축하해요! 2014년에는 탈삼진 개수가 79개였는데 작년엔 194개로 두 배 이상 확 뛰었어요. 갑작스럽게 기록이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구종을 추가했어요. 스플리터를 많이 던지기 시작한 것이 크게 이바지했죠. 타자들과 상대할 때 결정구로 많이 썼는데 공이 속구처럼 일정하게 가다가 홈 플레이트 쪽에서 빠른 속도로 뚝 떨어지니까 헛스윙을 많이 끌어내더라고요.

 

‘소박하고 겸손하다.’ 차우찬과 인터뷰를 하면서 에디터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다. 프로 입단 때부터 화려한 목표와는 거리를 뒀던 차우찬. 구종을 더 추가할 것이냐는 에디터의 질문에 “추가보다는 던질 수 있는 구종을 더 정교하게 만들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차우찬도 소박함을 포기할 때가 있었다. 바로 우승에 대한 야욕(?)을 드러낼 때다.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아쉽게 놓쳤어요.

네. (한숨) 그래도 페넌트레이스 5연패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당연하죠. 그걸 말이라고! 한국시리즈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페넌트레이스에서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안 좋은 사건도 있었고 팀 분위기가 내려가면서 많이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프로라면 그런 상황들을 다 뒤집고 이겼어야 했는데…. 졌으니까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비록 우승은 못 했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는 ‘차우찬 시리즈’로 유명하죠. 부담됐죠?

솔직히 부담이 없진 않았어요. 제가 잘해야 팀이 우승하니까요. 그래도 그 부담을 ‘책임감’이라고 표현할게요. 올해도 좋은 기회가 생겨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면 어느 역할을 하던 다 잘 해내고 싶네요.

 

우승은 아쉽게 놓쳤다. 두산의 우승이 결정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자 삼성 선수들은 최대한 빨리 더그아웃에서 나가고 싶었다. 너무나 뼈아픈 패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자 군단은 류중일 감독의 제안으로 우승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3루 더그아웃 앞에서 두산의 우승을 축하해주는 진실된 모습은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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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주세요. 선발, 불펜, 마무리 중에 고를 수 있다면요?

고를 수 있다면 선발이죠. 두 번째는…. 불펜이랑 마무리요. 둘은 큰 차이가 없어요.

 

 

이유는요?

체력적인 문제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선발 투수로서 잘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 팀 마운드 운영 폭이 넓어지잖아요. 그런 게 제가 기여할 부분이죠. 아, 오해하지 마세요! 기여하고 있다고 했지 잘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웃음)

 

 

개인 경력을 쭉 보면 팀 우승 네 번, 승률왕, 탈삼진왕, 국가대표 세 번. 어느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화려한 성적이에요. 아직 먼 얘기지만, ‘은퇴 전 이것 하나만큼은 꼭 하고 싶다!’ 하는 것은?

솔직히 없어요. 또 받고 싶은 상은 탈삼진왕이요. 투수로서 받고 싶은 건 탈삼진왕, 평균자책점왕인데 후자는 힘들 것 같고…. (찬무룩)

 

 

야구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우승했던 모든 순간이요. 삼성에서 했던 우승도 기뻤고, 프리미어 12 팀원들과 받은 트로피도 절 웃게 만들어줬어요. 앞으로 그 행복을 누리려면 열심히 해야겠죠.

 

 

새 야구장 역시 차우찬 선수를 기쁘게 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인터넷으로만 잠깐 사진을 봤는데 벌써 기대돼요. 작년까지 썼던 시민야구장은 야구장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게요. 선수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었거든요. 더그아웃에 앉을 자리가 충분치 않아서 그라운드에 앉는 경우도 몇 번 있었고요. 갑자기 최신식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쓸 거라 생각하니 더 의욕이 생기네요!

 

 

그 큰 의욕을 가지고 꼭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바람은 서른여덟, 아홉까지 아프지 않고 계속 풀타임 뛰고 싶어요. 항상 그랬듯이 거창한 목표는 없고.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파서 공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는 선수들 많잖아요. 건강만하면 일 년쯤 부진해도 내년에 다시 잘하면 되는데, 아프면 계속 못 하는 거니까요. 그만큼 슬픈 것도 없어요.

 

 

2006년 막 삼성 선수가 된 차우찬과 2016년 올해의 차우찬은 무엇이 가장 다를까요?

돈? (웃음) 2006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올해는 돈이 좀 있을 것 같아요. 올 시즌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되거든요. (물질적인 면 말고는요?) 그때나 지금이나 노력은 절대 변화가 없어요. 제가 나태해지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계속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지켜봐주세요.

 

 

올 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고 하셨는데, 스토브리그 때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계속 삼성맨이고 싶나요?

앞으로의 거취는 올 시즌을 잘 치른 뒤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얼마를 받고 싶다”며 떠들고 다니다 부진하다면? (웃음) 제 스스로 처신을 잘해야죠. 다만, 시즌을 잘 치른다면, 그만큼 좋은 대우를 받으며 야구하고 싶어요. 또,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더 큰 무대’에서 야구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을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삼성 팬들은 섭섭하겠지만 가장 프로다운 모습이네요. 이 시점에서 궁금해집니다. 차우찬에게 야구란?

생활 수단이요. 야구를 해서 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요. 제가 야구를 통해 편히 살 수 있고 제 가족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니 훌륭한 생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삼성 팬들에게 한 마디!

안녕하세요. 삼성 라이온즈 차우찬입니다. 올해 새로 야구장이 생긴 만큼 많이 와주시고, 정규 리그 6연패 할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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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찬이 직접 들려주는 프리미어 12 뒷 이야기]

 

독자 여러분, 차우찬입니다. 글이 짧아서 실망하셨죠? 아직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프리미어 12 이야기를 직접 들려드리려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맨 처음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뽑혔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201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처럼 흑역사가 생길까 걱정이 됐어요. 몇몇 선수들이 엔트리에서 빠지면서 ‘역대 대표 팀 중 최약체’라는 언론 분석도 있었잖아요.

 

그러나 막상 합류하니까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 안에서 다른 선수들과 모든 부담을 다 떨쳐 내고 편하게 경기에 임하자고 약속했어요. 또, 김인식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매 경기마다 서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성적이 잘 나왔어요. 역시 야구는 즐겁고 부담 없이 하는 게 최고인가 봐요.

 

아, 다들 궁금해 하실 오타니 쇼헤이(니혼햄 파이터스) 선수 얘기도 들려드릴게요. 저는 그 선수 공 보자마자 정말 놀랐어요. 더 말이 필요 없었죠. 속구가 160km가 나오는데 포크볼이 잘 떨어지고 제구력도 좋고. 금방이라도 메이저리그에 갈 것 같은 선수예요. 지난달 <더그아웃 매거진> 인터뷰를 읽으니 (이)케빈이와 (최)충연이도 팬들에게 바라는 별명이 케타니, 충타니던데 그렇게 좋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네요.

 

오타니 선수의 공보다 더 저희를 힘들게 했던 것은 대만의 음식이었어요. 향이 너무 강해서 먹을 수 없었거든요. 햄버거, 바나나를 먹으면서 끼니를 때웠습니다. 그러다 주말이나 경기가 끝나면 한식당 가서 삼겹살을 싹쓸이했죠. 그 당시에는 햄버거가 지겨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두 개의 좋은 추억 중 하나예요.

 

또 다른 좋은 추억은…. 다들 아실 거예요! 한일전입니다. (정)근우 형이 2루타 치고 나갔을 때 ‘이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우승한 것보다 한일전에서 일본을 이겼다는 사실이 더 기뻤어요. 여러분, 다들 아시죠? 한일전 이기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하하.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저희가 우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한국에서 응원해주셨던 팬 여러분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이제 그만 편지를 줄여봐야 할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 한국 야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부탁드릴게요! 물론 저 차우찬도 아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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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4월호(60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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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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