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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 시프트의 시대를 맞이하라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5.06 02:51
  • 조회 2679
  • 하이파이브 4

[비즈볼 프로젝트 박기태] 박병호의 19일 경기는 한국 팬들에게 사이다 같은 장면을 제공했다. 3호 홈런을 친 것도 그렇지만, 수비 시프트를 뚫고 밀어서 안타를 때려낸 장면 역시 통쾌했다. 그러나 야구 팬이라면 이 안타에 앞서 나왔던 병살타에 눈길이 갔을 것이다. 우타자에게는 수비 시프트를 걸지 않는다는 상식을 깨고, 2루수가 유격수 쪽에 배치되는 수비 시프트가 걸렸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는 매 순간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처절한 머리 싸움을 펼친다. 하지만 알고도 고치기 힘든 약점도 있는 법. 타자에게 있어선 ‘공을 때려내는 방향성’이 그렇다. 타자들 중에는 유난히 한 방향으로 더 공을 많이 날려 보내는 이들이 많다. 보통 공을 당겨치는 걸 즐기는 타자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로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빗 오티즈가 있다. 오티즈는 당겨 친 타구의 비중이 커리어 통산 45%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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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티즈가 타석에 들어왔을때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타구 방향이 한 쪽으로 치우치면 수비 측에서 예측이 가능하고, 이는 곧 타자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왼손 타자인 오티즈가 당겨 쳤을 때 타구는 1루와 2루 사이로 향한다. 45%의 가능성에 주목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오티즈가 타석에 들어서면 2루와 3루 사이를 비우고, 1루와 2루 사이에 2명의 수비수를 세운다. 이와 같이 수비수를 정상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수비하도록 하는 것을 ‘수비 시프트’라고 부른다. 오티즈는 지난해 타석의 90%에서 수비 시프트를 경험했다.


 

수비 시프트, 메이저리그의 대세가 되다


한 때 수비 시프트는 도박적인 전략으로 여겨졌다. 수비수가 자리를 옮겼는데 원래 자리로 타구가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확률적으로 시프트로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계산 하에, 오티즈와 같은 극단적인 타자들의 타석에서는 거의 매번 시프트를 걸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수비 시프트는 ‘시도할만한, 진보된 전략’으로 인정받았고, 이제 점점 더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시프트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점차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정도의 언급만 가능했지만,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자료 덕분에 이제 시프트 증가에 대한 수치적 접근이 가능해 졌다.


얼마 전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에 수비 시프트 관련 데이터가 공개됐다. 데이터는 야구 통계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베이스볼 인포 솔루션스(Baseball Info Solutions, 약칭 BIS) 사의 직원들이 직접 기록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팀 별 수비 시프트 횟수, 시프트가 사용된 타석의 타율, 안타 수 같은 타석의 결과가 들어있다. 아쉽게도 수비수의 정확한 좌표, 시프트가 사용됐을 때의 주자 상황 같은 세부적인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메이저리그 타석의 약 20%에서 수비 시프트 전략이 시도됐다. 수비 시프트는 구체적으로 ‘전통적 시프트’와 ‘비 전통적 시프트’로 분류되는데, 매니아들이 익히 알고 있을 ‘내야수 1명이 원래 위치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종류의 시프트가 전통적 시프트로 분류된다. 이 중 전통적 시프트, BIS 식 명칭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는 지난 시즌 17,000회 이상 시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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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그래프에서 ‘전통적 수비 시프트(Traditional shift)’로 분류되는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의 시즌 별 시도 횟수. 2015년의 17737회는 5년 전보다 620% 증가한 것이다.


 


시프트 전략, 제대로 쓰이고 있나 - 1


수비 시프트는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같은 전력 분석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팀들이 수비 시프트의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거기에 (타구 속도, 투구 회전 수 같은 매니악한 자료들이 팬들에게 공개되는 것처럼) 시프트 관련 데이터도 대중에게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시프트의 효과는 아직 대중에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공개된 자료를 분석해보면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시프트 전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프트 전략의 효율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BABIP)이다. 성공적으로 시프트를 걸었다는 것은 곧 상대 타구를 그물망처럼 수비했다는 것과 같다. 홈런, 삼진, 볼넷을 제외한 나머지 ‘인플레이된’ 타구가 예측 수비의 범위에 들어왔다면, 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은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수치만을 살펴 봤을 때, 수비 시프트 덕에 타율이 감소했다는 유의미한 결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시프트 상황의 타율은 BABIP을 뜻한다). 출루율, 장타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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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리그 평균만 봤을 때 수비 시프트의 효과는 미미했다. 위 표는 인플레이 상황의 결과만을 비교한 것이다.


 팀 단위로 파고들어도 알고 있던 상식과의 괴리감은 여전했다. 강정호의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메이저리그에서 수비 시프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팀 중 하나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지난해 피츠버그가 시프트를 걸었을 때의 피안타율(0.294)과 시프트를 걸지 않았을 때의 피안타율(0.306)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처럼 시프트를 적게 거는 구단이 이보다 더 큰 이득을 보기도 했다. 진일보한 전략이 독이 된 셈이다.


 

시프트 전략, 제대로 쓰이고 있나 - 2


그러나 수비 시프트 관련 자료를 직접 제작한 BIS 사의 분석은 정반대였다. BIS 사의 수장, 존 드완은 <빌 제임스 핸드북> 2016년 판에서 수비 시프트로 인해 막아낸 득점, ‘시프트 런 세이브(Shift Runs Saved, SRS)’를 공개했다. 시프트 런 세이브는 수비 시프트로 본 이득을 득점 단위로 환산한 것이다.


드완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시프트 런 세이브 총합은 266점이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639%, 1년 전에 비해 36% 증가한 것이었다. 가장 큰 이득을 본 탬파베이는 23점을 절약했다. 10점 근방이 1 WAR로 계산되는 것을 고려하면, 수비 시프트만으로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클 와카를 영입한 효과를 본 것이다.


큰 틀에서 BIS 사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다는 가정을 해보자(아마 그럴 가능성은 1% 미만이지 않을까). 그러나 팬그래프에 공개된 BABIP, 장타율 차이로는 결코 266점이라는 이득을 계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266점은 어떤 근거로 나온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수비 난이도’의 차이다. 수비 시프트 때문에 평범한 타구 5개와, 조금 어려운 타구 5개를 놓치더라도 평소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타구10개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BIS에서 제작하는 수비 지표인 디펜시브 런 세이브(Defensive Runs Saved, DRS)는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프트 런 세이브 역시 그러리란 짐작이 가능하다.


또 하나는 상황 정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수비 시프트를 시도했을 때, 무사에서 시프트 실패로 안타를 내줄 수도 있지만, 무사 2루에서 시프트 성공으로 2루타가 될 타구를 잡아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수비의 결과로는 각각 1사와 무사 2루에 1점을 헌납하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시프트로 인해 무사 1루와 1사 2루로 결과가 바뀔 수 있고 이는 분명 팀에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1사 만루에서 시프트로 안타가 될 것을 잡아서 병살타로 만들어내 이닝을 종료시켰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팬그래프>에 공개된 자료에는 이런 맥락이 누락되어 있다.


19일 박병호에게 걸린 시프트가 그런 예시였다. 밀워키는 주자 1루 상황에서 수비 시프트를 걸어 박병호의 안타를 병살타로 둔갑시켰다. 이후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시프트로 2루수가 원래 자리를 비운 탓에 안타를 내주긴 했지만, 종합적으로는 시프트로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점점 더 과감해지는 수비 시프트


266점이 잘못된 계산이라고 하더라도, 수비 시프트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건 분명하다. 야구 관련 데이터를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분석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시프트가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방증이다. 구단들은 시프트 전략을 시도하는데 점점 자신감이 붙고 있다.


자신감의 발로는 박병호에게 건 시프트에서도 볼 수 있다. 수비 시프트는 우타자보다 좌타자에게 더 많이 쓰인다. 당겨치는 좌타자에게 시프트를 걸면 보통 유격수가 2루수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2-3루 사이는 3루수가 홀로 수비하게 된다. 이때 3루수는 3루 베이스에서 적당히 떨어져 넓은 범위를 수비하게 된다.


그러나 우타자의 경우는 다르다. 당겨치는 우타자에게 똑같이 시프트를 걸려면 2루수가 유격수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그러나 이때 1루수는 3루수와 달리 1루 베이스에서 멀리 떨어지기가 힘들다. 1루로 오는 공을 받기 위해서 언제든지 베이스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1-2루 사이에는 더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우타자에게 시프트를 걸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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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살타가 된 박병호의 타구. 정상 수비 중이었다면2루 베이스 옆으로 빠져나가 안타가 될 공이었다. 그러나 시프트로 자리를 옮기고 있던 2루수가 공을 잡아냈다


하지만 밀워키는 과감하게 시프트를 걸었고, 결국 박병호로부터 병살타를 뽑아냈다. 타구는 빠르게 2루 좌측으로 굴러갔지만 2루수가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프트가 아니었다면 중견수 앞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던, 안타가 될 수 있던 타구였다. 과감한 도박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수비 시프트는 앞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시프트에 날개를 달아줄 도구가 새롭게 추가됐다. 수비수의 위치, 달리기 속도, 낙구 지점 판단력을 분석하는 스탯캐스트(Statcast) 시스템이 그것이다. 스탯캐스트 자료는 구단들에게 시프트의 효율성을 더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현미경이 될 것이다. 박병호와 같이 ‘억울한’ 장면은 점점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출처: 팬그래프, 베이스볼 서번트, 빌 제임스 핸드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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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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