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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과 레이번, 디시전의 비밀 비즈볼프로젝트

류지호 (gulakk***)
2016.04.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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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볼 프로젝트 오연우] KBO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인 선동열은 통산 평균자책점 1.20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비롯해 수많은 대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런 대기록 외에 몇 가지 진기록도 남겼는데, 1988년의 선동열은 KBO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기록을 남기고 간다. 바로 ‘출장 전 경기 디시전’이라는 기록이다.

 

※ 디시전: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투수가 승 혹은 패를 기록하는 것.


이 해에 선동열은 총 31경기 중 선발로 12 경기에 등판해 9승 3패를 거두며 모든 경기에서 디시전을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구원으로 나온 나머지 19경기에서도 7승 2패 10세이브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구원 등판 경기에서 기록한 승, 패, 세이브의 수치를 다 합치면 19, 출장한 경기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구원투수로 얻은 성적은 디시전과 무관하지만 1988년 그의 발자취가 대단한 진기록임에는 틀림없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2008년 SK의 레이번은 전문 선발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적은 디시전을 기록했다. 26번 선발로 나와 133.2이닝을 던지고도 고작 5승 3패밖에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선발투수를 빠르게 교체하는 당시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26번 중 8번의 디시전이라는 것은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무엇이 선동열과 레이번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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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은 지난 시즌 24번의 디시전 경기를 가졌는데 이는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사진 제공: 두산 베어스)


 

이닝별 디시전 비율


선발투수가 디시전을 얻기 위해서는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에 어느 한 팀이 경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리드를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선발투수가 강판될 당시에 동점이 아니고, 선발투수가 강판된 후에 동점이나 역전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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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렇게 ‘경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리드가 발생하는 일’ 을 ‘디시전이 일어난다’고 정의할 때, 각 이닝별로 디시전이 일어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지난 시즌에 치러진 720경기 중에서 무승부 다섯 경기를 제외하면 총 715경기에서 디시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경기들은 다시금 1회에서 12회 중 언제 디시전이 일어났느냐에 따라 다음의 1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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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에서 파란색 선은 이닝별로 디시전이 일어난 비율을 나타내고 빨간색 선은 그 누적 비율을 나타낸다. 이닝별로 보았을 때 디시전이 가장 많이 일어난 이닝은 1회로 26.8%의 디시전이 1회에 일어났다. 이후 2회 12.0%, 3회 10.0%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5회부터 9회까지는 큰 차이 없이 약 7% 근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적으로 보았을 때는 1회에서 높은 값으로 시작해 이후에는 거의 일정한 기울기로 상승하다가 10회부터 기울기가 줄어들고, 12회에서 100%가 된다. 이닝을 길게 소화할수록 디시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 그래프와 비교해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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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최근 10년 동안 등판한 모든 선발 투수의 경기당 평균 이닝(“선발 이닝”)과 선발투수 디시전율((선발승+선발패)/경기 수)을 나타낸 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디시전율과 선발 이닝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체로 타고투저일수록 선발 이닝이 낮고 디시전율도 그와 함께 감소하는 것이 관찰된다.


구체적인 수치에 있어서도 연도별 디시전율 그래프와 이닝별 누적 디시전율 그래프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근 10년 동안의 선발투수들은 경기당 약 5와 1/3이닝을 던지고 66.8%의 디시전율을 기록했는데, 이닝별 누적 디시전율 그래프에서 5와 1/3이닝 지점의 디시전율을 찾으면 약 66.5%로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프를 통해 디시전을 얻으려면 얼마나 던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누적 그래프에서 보면 누적 디시전 확률이 4회에 57.3%로 처음 50%를 넘은 뒤 이후 1이닝을 더 던질 때마다 약 7%P씩 디시전 확률이 증가한다.


따라서 선발 투수의 최소 임무인 5이닝만 던져도 반 넘게 디시전이 생기고 QS라도 기록하면 7부 능선을 돌파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5회 이전에 강판당한 투수는 디시전이 일어나도 패밖에 얻지 못하지만 오래 던지는 투수는 대개 잘 던지고 있는 투수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디시전이 승리로 이어질 확률도 높을 것이다.


 

기대 디시전 횟수


이제 이닝별 누적 디시전율 그래프를 이용해 선발투수의 기대 디시전 횟수를 구해 보자. 만약 선발투수가 5이닝을 던지고 강판되었다고 하면 그 투수가 디시전을 기록할 확률은 5회 안에 디시전이 일어날 확률인 64.2%가 될 것이다. 또 다음 경기에서 7이닝을 던지고 내려갔다면 그 경기에서 디시전을 기록할 확률은 7회 이전에 디시전이 일어날 확률인 78.9%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발투수의 각 등판에 대해 디시전 확률을 구할 수 있으며, 구한 값을 모두 더하면 기대 디시전 횟수가 된다.(이닝 도중 강판된 경우는 완전히 마친 이닝만 세고, 1회도 마치지 못하고 강판된 경우에는 1회 디시전 확률을 더한다.) 아래 표는 지난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의 실제 디시전 횟수와 기대 디시전 횟수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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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중 15명이 기대치보다 많은 디시전을 얻어 전체적으로 기대 디시전 횟수보다 실제 디시전 횟수가 약간 더 많은 경향을 보였다. 두산 장원준은 기대치보다 3.7개의 디시전을 더 얻어 가장 큰 차이를 보였지만 그 디시전들이 승리가 아니라 패배로 이어지는 바람에 최다 선발패(12패)라는 멍에만 써야 했다.


그 외 선수들은 대체로 기대 디시전 횟수와 실제 디시전 횟수에 큰 차이가 없었고, 평균적으로는 1.2개의 차이만을 보였다. 운 없게 평균에서 아주 많이 벗어난 선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동열과 레이번은?


처음으로 돌아가 1988년의 선동열과 2008년의 레이번을 이 공식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당시 선동열은 선발과 구원을 번갈아가며 등판해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선발 등판한 12번의 경기에 대해서만 기대 디시전 횟수를 구하면 10.66번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12번 중에 10.66번이라는 기대 디시전이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12번의 선발 등판에는 무려 9번의 완투가 포함되어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만했던 것이다.


한편 레이번은 공식대로라면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6.53번의 디시전을 기록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5승 3패, 총 8번의 디시전에 그치며 30.8%의 디시전율을 기록했다. 레이번 다음으로 디시전율이 낮았던 채병용도 48.1%였다. QS를 기록한 10경기에서 단 3승만을 거뒀고, 심지어 5회 이전에 강판된 7경기에서도 3패밖에 얻지 못했다. 지독하게 확률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다.


선동열은 정말 대단했고, 레이번은 정말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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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전, 선동열, 선동렬, 레이번, 장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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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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