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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삼성 라이온즈 최형우 MEMORIES

dugout*** (dugout***)
2016.11.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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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의 어금니

 

 

 

‘사자 어금니 같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든든하거나 믿음직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16시즌 ‘이빨 빠졌다’는 혹평 속에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밀림의 왕’ 사자. 삼성 라이온즈의 아쉬운 행보와 달리 꾸준하게 자리를 지킨 ‘어금니’ 최형우는 팀의 몇 안 남은 희망이었다. 이승엽이 ‘라이언 킹’이라면 최형우는 ‘푸른 사자의 어금니’다. 사람이 한결같기가 가장 어렵지만, 그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그만큼 그라운드에서 꾸준함을 무기로 삼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 최형우와 사자군단은 쉼 없이 달려왔고, 그들에게는 ‘윗공기’를 마실 특권이 주어졌다. 일 년 뒤, 달라진 그들의 이야기…. 한 시즌의 멈칫거림이 지난 4년의 영광을 가릴 순 없다. 지금도 사자는 반격의 순간을 기다린다. 쉿. 숨죽이고 귀를 기울여보자. 푸른 사자의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김현세 Location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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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가치 있는 선수 

 

 

“어제부터 더워졌어요. 그 전에는 많이 쌀쌀했고요.” 대구의 가을은 여전히 뜨거웠다. 떨어진 순위 탓에 팬들의 관심과 그들의 열정이 조금은 식었으리라 여긴 에디터의 생각은 속단에 불과했다. 세간의 평가와 달리 푸른 사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여전히 앞발톱을 세우고 있었다.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만남을 수차례 기대했는데, 이제야 만났습니다.

수차례는 아니고요. 꼭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혹시 사진 촬영이 부담된 건 아닌지….) 에이, 제가 별로 나서는 걸 안 좋아해요. 제 할 일만 딱 하는 걸 좋아하죠. 근데 에디터님, 수차례는 아니잖아요? (머쓱) 한두 번인 거로 아는데!

 

 

이번에 표지를 장식했어요.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당연히 영광이고 좋죠. 늦게라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습니다.

 

 

그 소감 끝에는 긴 여운이 있었다. 팀 분위기를 고려한 탓일 터. 개인 성적과는 별개로 낮은 팀 성적에 근심 가득한 표정 일색이었던 최형우. 그는 올 시즌 138경기 타율 0.376, 31홈런, 144타점, 99득점으로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기록을 남겼다. 바로 전 시즌 144경기에 모두 출장한 ‘철인’ 최형우는 올 시즌 중반 부상으로 빠진 공백 탓에 지난해보다 여섯 경기 적은 138경기에 출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말인즉슨 올해도 마찬가지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기량 유지에 힘쓴 것. 그가 자랑하는 ‘내구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전 경기 출장하는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굉장히 뿌듯한 일이죠. 사실 저희도 월급 받고 일하는 거잖아요. 잘하든 못하든 매일 야구장에서 무언가라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저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것도 있거든요. (개근상을 받은 기분이겠어요.) 그렇죠. 안 아프고 1년 동안 뭔가 보여줬다는 게 가장 보람차죠.”

 

 

최형우는 ‘20승 투수’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와 함께 MVP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KBO리그에 등록된 수많은 선수 중 단 한 명에게 허락된 자리.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출발과 달리 현재 수많은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는 이제 그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 MVP, ‘Most Valuable Player’의 약자로 ‘가장 가치 있는 선수’를 뜻하는 용어다. 후보 간 성적을 두고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최형우가 ‘가치 있는’ 활약을 펼쳤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올 시즌 정말 좋은 성적 거뒀잖아요. MVP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MVP 받고 싶어요. 4년 전에 아쉽게 놓친 것도 있고…. 사실 올해는 꼭 받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거든요.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록을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받을지 모르잖아요. 물론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기회가 찾아왔을 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혹시 FA로이드 영향이….

그런 건 없어요. 안 믿으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를 전혀 생각지 않고 시즌을 치렀거든요. 아마 그게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건방지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지금까지 제가 사람들한테 보여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올해 잘한다고 더 많은 돈을 받고, 못한다고 해서 몸값이 확 떨어질 거란 생각은 안 했어요. 단지 ‘늘 하던 대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했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낸 것 같아요. 물론 제 성적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습니다.

 

 

높은 타율과 홈런 수를 동시에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비결이?

에이, 비결은 없는데…. 제 생각에 30홈런과 100타점은 해내기 힘든 거예요. 따로 놓고 보면 홈런 수가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두 기록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늘 그 기록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때문에 두 가지는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해오던 패턴과 루틴대로 하는데도 타율이 높아진 건 운이 좀 따랐던 것 같아요. 살펴보면 홈런이나 다른 기록은 다 비슷하거든요.

 

 

다른 해보다 안타 개수가 늘어난 게 인상적이에요. 그만큼 상대 수비 시프트를 전보다 많이 뚫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는데요.

에이, 말도 안 되게 잡힌 것도 엄청 많아요! 그런데 상대 팀이 시프트 거는 걸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해요. 저를 연구한 끝에 작전을 거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올 시즌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없었나요?

제가 보약이나 비타민 같은 약을 못 먹어요. 그래서 밥만 먹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고기를 유독 많이 먹습니다. (웃음)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족했던 부분이나 욕심나는 기록은요?

글쎄요. 올해는 없는 것 같아요. 제 개인 기록이 상상 이상으로 좋은 성적 내고 있거든요. 단지 욕심냈던 게 있었다면…. 어제(10월 3일)까지만 해도 저희가 5강을 포기 안 했는데…. 오늘로써 그 욕심도 없어졌죠.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누구나 가슴 속에 품어봤을 법한 그 말. 다소 식상한 격언일지 모른다. 그러나 최형우에게만큼은 그 명제가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 시작이 미약했던 것은 그의 재능을 발견해 준 이가 적었던 탓이었을까.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과거. 그가 걸어온 길이 궁금해졌다. 최형우의 롤러코스터 같은 야구사,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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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영광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어요. 그냥 멋있어 보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다 같이 뛰며 소리 내고 파이팅 하는 모습에 빠지게 된 거죠.

 

 

야구를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요.

공부 잘했을 것 같아요. (웃음) 초등학교 때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했거든요. 특히 수학에 자신도 있었고요. 아마 완전 모범생 돼 있지 않았을까요?

 

 

처음에 어떤 포지션으로 시작했나요?

포수였죠. 어릴 때부터 몸이 너무 커서…. 그런데 살 빼느라고 야구를 거의 안 했어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너는 먼저 살부터 빼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친구들 다 운동할 때 하루 종일 계~속 운동장만 뛰었어요. (덩치가 타고난 거네요.) 그렇죠.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거든요. 몸은 어머니가 잘 물려주셨죠. 4kg 중반 정도로 태어났어요. 그 때문인지 지금도 허벅지가…. 나이를 먹으면 빠진다고 하는데 이게 안 빠지네요. 작년에 한 번 재봤는데 30인치 나오더라고요. (4년 전 모 프로그램에서 선수들끼리 허벅지 씨름을 한 적 있는데요.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선수도 엄청나던데요?) 에이, 현수는…. (류)현진(LA 다저스)이면 몰라도 현수나 다른 친구들은 축에도 못 낄 거예요. 그런데 넥센 히어로즈 조상우 선수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웬만한 여성분들 허리보다 크겠더라고요.

 

 

최형우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 내내 늘 홈플레이트 뒤에 앉았다. 프로 입단 후 포지션 변경을 감행한 그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많이 아쉬웠죠. 그만둔 이유가 공 던지는 것 때문인데요. 당시 코치님들은 다 아시겠지만, 연습 때는 정말 잘 던졌어요. 그런데 시합 때는 잘 안 되더라고요. 여태 실컷 해온 포수인데, 심리적인 부분을 못 이겨내서 그만둔다는 게 정말 아쉬웠죠.”

 

 

슬픈 얘긴데요. 2006시즌 이후 방출됐을 무렵 싸*월드 미*홈피에 복수를 다짐하는 뉘앙스의 글을 하나 남겼어요.

 

아이, 안 슬퍼요 이제~ 그리고 복수라기보다…. 그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잘 치기도 했고, 던지는 것도 연습 때는 남들보다 더 잘했거든요. 그런데 방출돼버리니까 너무 아쉬웠죠. 제 기량에 자신 있었는데 그걸 몰라주니까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납득이 잘 안 됐던 거죠. ‘아직 분명히 보여줄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그런 글을 남겼던 거죠.

 

 

인터뷰 중반, 잠시 동안 진행된 사진 촬영. 렌즈 앞에서 다소 수줍은 듯한 그의 모습에 KBO리그 최고 강타자의 귀여운 면모를 발견했다. “아이, 그런 말씀 마세요. 진짜로. 정말 낯간지러워가지고. (외모에 자신이….) 자신감을 떠나서 제 외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요. 뭐든 물 흘러가듯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성격이거든요.” 이때 에디터의 눈에 들어온 문신. 프로 선수 가운데 문신을 한 선수는 꽤 상당수다. 최형우 역시 오른팔에 문신을 새겼다. 다양한 문양이 가지는 각각의 의미를 물었다. “의미가 좀 많은데요. ‘오늘 웃고 내일 울자’, ‘세상을 넓게 보자’는 뜻도 있고, 어머니랑 동생들 얘기도 있어요. 평생을 몸담고 있는 야구장도 새겼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다 해놓은 거예요. 제 삶을 담은 문신인 거죠.”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몸에 인생을 담았다. 이야깃거리로 가득했던 그의 굴곡진 삶, 최형우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8년 전부터다. 늦깎이 신인왕. 2008시즌의 최형우는 예상을 뒤엎고 그해 최고의 루키로 주목받았다. 루키? 안 어울린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신인왕’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니까. 스물여섯의 최형우가 그 상을 기대할 리는 만무했을 터. “그렇죠. 그때 저희 팀만 봐도 (박)석민(현 NC 다이노스)이가 더 주목을 받았고요. 저는 대타 요원 정도였어요. 그래서 크게 신경도 안 썼죠. 2군에서 방출당한 데다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누가 절 좋게 봐주겠어요. (막상 탔을 때는 어땠어요?) 기분 정말 좋았죠. 우여곡절 많았던 제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요. 성취감도 엄청났어요.” 설움이 길었다. ‘조용한 시골 청년’ 최형우는 그제야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것만 같아 마냥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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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조용하게 야구를 한 것에 비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단했어요. 프로에 지명받은 선수는 공부로 치면 다 서울대생이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고향을 홍보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전주뿐만 아니라 지방에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거든요. 예를 들어 서울 선수한테 눈길 세 번 갈 거 지방 선수는 한 번 본단 말이에요. 물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야구는 단 한 경기로 선수를 판단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장기간 관찰해도 잠재력을 확인하기 어려운데….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주시면 분명 좋은 재목이 넘쳐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솔직히 저도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잖아요. 숨은 선수들 많이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삼성의 4번 타자니까요. 팬들 사이에서 삼(3)성의 (4)번 타자라고 해서 등번호가 34번이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타석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요?

단지 찬스를 즐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4번 타자로서 이 게임을 해결해야겠다. 내가 끝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고요. 저 스스로 생각하는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찬스가 왔을 때 대기타석부터 타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주자가 없을 때보다 있는 게 오히려 더 좋고요. 뭐랄까요. 보너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치면 관중들도 좋아하고, 연봉도 오르고, 게임도 뒤집히잖아요. 쉽게 말하면 제 앞에 놓인 이 밥상에 정말 행복했어요. (부담은 없나요?) 전혀요. 절대로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크게 위축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자세가 포스트시즌에서도 빛을 발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삼성 왕조’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은 언제였나요?

2011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 야구 인생에 첫 우승이었거든요. 프로에 오는 선수들 다 야구 잘해서 왔잖아요. 청소년대표팀에도 발탁되고 우승도 해보고 상도 받아봤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있던 팀은 그렇게 잘하지 않았어요. 우승은 한 번도 해본 적 없고요. 심지어 8강에 간 적도…. (최무룩) 청소년대표팀은 더욱이 꿈도 못 꿔봤죠. 시골에서 잔잔하게만 생활해온 제게는 5년 전 첫 우승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준 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당연히 어머니죠. 그리고 동생들도요. 지금도 전주에서 조용하게 응원해 주시거든요. 제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셔서…. 제가 표현을 잘 못 하지만 이 기회 통해서 감사하단 말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고향 친구들! 이 나이에 오랜 친구 많이 데리고 있기 쉽지 않은데…. 항상 응원해줘서 고맙죠. 마지막으로 스무 살 때부터 15년 동안 늘 함께해온 동기들도 있어요. 조동찬, 신용운, 장원삼, 안지만, 그 외에도 많이 있는데요. 야구 하는 데 큰 원동력이 돼주었죠. (야구장 밖에서도 영향이 컸을 텐데요.) 그럼요! 가끔씩 술도 한잔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러니까요. 아마 그런 시간 없이 혼자 야구 하며 지냈으면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요. 저희나 다른 팀 선배들을 봐도 한 팀에 오래 있다 보면 선수들이 하나씩 떠나가고 줄어들잖아요? 그런 거 보면 쓸쓸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아직 친구들, 동기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떠나간 이적생들 빈자리가 많이 허전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다들 친했으니까요. 더군다나 팀의 주축들이었잖아요. 매년 한두 명씩 빠져나갈 때마다 마음이 왠지 짠했죠. 몇 년 동안 함께 우승해오던 멤버들이었는데….

 

 

그 빈자릴 채울 만한 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취미는 뭐예요?

취미요? 컴퓨터 게임! 이것저것 다 하는데요. 저만의 취미를 늘 가지려고 해요. 그게 제 인생철학 중 하나거든요. 운동 끝나고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출근하고…. 이런 빡빡한 인생이 너무 싫어요. 선수든 직장인이든 일이 끝나고 여가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즐길 건 즐겨야죠. 자고 일어나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활동이든 해야 삶이 풍요롭잖아요. 일하고 잠자고…. 이렇게만 살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안 살았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안 살 거고요. (어떻게 보면 최형우 선수도 직장인이잖아요. 보통 직장인들이 자기 시간을 잘 못 갖는 이유 중 하나가 피로 때문이에요.) 저도 엄청 피곤하죠. 그렇지만 그냥 자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자고 일어나면 또 야구장 나와야 하는데…. 그래도 피곤함을 참고 뭐라도 꼭 해야 돼요.

 

 

저도 오늘부터 알차게 살아야겠는데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야구 인생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 한 방만 꼽아볼까요?

첫 번째 홈런이요. 2008년 잠실 LG 트윈스전이었는데요. 10회초에 역전 투런 홈런을 쳤어요. 그때는 참 철이 없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첫 홈런 치고 인터뷰 때 카메라에 대고 ‘최형우 이름 석 자 기억하라’고 했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선수였는데 되게 당당하게 얘기했죠. (쑥스)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을 책임지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의 최형우 선수가 있게 됐잖아요.) 허허,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럴 순 있죠. 그때는 진짜 왜 그랬을까요.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하겠는데….

 

 

2008년 4월 1일. 10회초 2-2 동점 상황. 중간계투로 등판한 정재복의 공을 찍어 내린 최형우. 그의 타구는 우측담장 뒤로 넘어갔다. 경기가 끝나고 그는 낯선 카메라 앞에 섰다. 실제 그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홈런 친 소감이?) 만날 TV로만 이런 거 보다가요. 제가 직접 쳤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고, 진짜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립니다. (앞으로의 각오는?) 제가 2군 선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2군 선수도 1군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팬들에게 한마디) 최형우 이름 석 자 잘 기억해두십시오.” 8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 석 자는 이미 각인된 지 오래. 심지어 그 앞에는 ‘MVP감’, ‘FA 최대어’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어쩌면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도 여럿 보이니까. 하지만 최형우는 그 반대 케이스다. ‘2군 선수’. 8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늘 따라다녔던 지긋지긋한 꼬리표. 그걸 탈바꿈하기까지 장장 8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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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삼성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팬들 댓글도 보는 편인가요? SNS는요?

아뇨. SNS도 아예 안 하고요. 마찬가지로 댓글도 안 보죠. 주변에서 얘기해 주면 좀 보는 정도예요. (팬들이 불러주는 별명도 본 적 있어요?) 있긴 한데…. 국밥이라든지, 말도 안 되는 원빈이라든지…. (‘최원빈’은 좋은 의미잖아요.) 아이! 그건 진짜 말도 안 되죠! 그게 약 올리는 거죠.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거지 그게. 그분은 잘생기신 분이잖아요. 예전에 ‘최쓰이’란 별명도 있긴 했어요. 신인왕 받을 무렵에 마쓰이 히데키(당시 뉴욕 양키스) 선수를 닮았다고 해 주셔서…. 그때는 얼굴에 여드름도 있었고, 우투좌타란 것도 같아서 그렇게 불린 적 있죠.

 

 

팬들의 사랑이 커갈수록 그의 발언 또한 화두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최형우’ 하면 떠오르는 연관검색어가 있다. 120억. 2017년 FA 자격을 갖추는 그의 몸값으로 거론되는 금액이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최형우는 본인의 FA 금액과 관련해 “4년 120억의 가치를 지닌 선수가 되겠다”며 예상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일부 여론의 질타와 함께 팬들의 조롱 섞인 비아냥거림을 감당해야 했다.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아이, 액수가 솔직히 중요한 건 아니고요. 단지 그때는 다들 주가가 오르고 있었고 저도 해온 게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정도에 걸맞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한 거예요. 그렇다고 ‘120억 안 주면 안 가겠다. 야구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게 있어요. 그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다는 거예요. 제가 한 말에 후회는 없어요. 지금까지도 저 자신을 그에 걸맞은 선수가 되게끔 만들어왔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보란 듯이 증명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태껏 해온 게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는 마냥 꾸준하기‘만’ 하지 않았다. 최형우는 거기에 ‘잘하기까지’ 한 선수니까. 내뱉은 말에 책임지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아왔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분명 오랜 시간 야구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왔다. 그런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 중 하나가 바로 ‘영양가’ 논란이다. “그거는 정말…. 인터넷에 그런 얘기 떠돌면 고향 친구들이 가끔 얘기해 주거든요. 그러면 한 번씩 찾아보기도 하는데요. 사실 마음 상하죠. 수비 한참 못할 때 그런 얘기가 나온 거면 몰라도…. 공격 면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건 납득이 잘 안 가요. 결승타도 거의 매년 1, 2등 했고, 타점도 100개 넘게 해왔으니까요. 80~100타점 이상 해내는 건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영양가 없는 타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잘한 부분은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설령 영양가 없는 야구를 했다면 절대 그 수치를 넘길 수가 없었을 거예요. 물론 요즘에는 100타점을 기록하는 타자가 꽤 늘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각 팀 4번 타자가 80타점 정도 해내면 잘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때도 100타점을 올렸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많이 속상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저한테 그래요. ‘형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야구 하니까 잘하는 것 같다’고요.” 삼성의 통합 4연패와 큰 기복 없이 꾸준하게 일궈온 통산 성적, 그리고 올 시즌 MVP급 활약까지. 판단은 저마다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너무도 많기에 그의 주장 역시 납득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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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계단 

 

 

 

 

푸른 사자군단이 누린 숱한 영광의 순간들. 그곳에는 언제나 최형우가 있었다. 그 결과 갖가지 타이틀을 휩쓸며 존재감을 부각하기에 이른다. 상복이 타고난 것일까. 복 받은 사람이라 하기에 그가 겪은 우여곡절이 너무도 많다. 여기에 분명한 근거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피나는 노력으로 성장시킨 끝에 최고의 자리를 눈앞에 둘 수 있게 된 것. 2008년, 생애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인왕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세 번의 골든 글러브 수상, 그리고 팀의 통합 4연패까지. 그의 다음 목적지가 궁금해졌다.

 

 

그 받기 어려운 신인왕에 골든 글러브도 여러 차례 수상했어요. 게다가 팀의 우승까지도요. 굵직한 타이틀은 두루 갖추고 있는데요. 남은 목표가 있다면 뭘까요.

당연히 MVP죠. 진짜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기회가 왔을 때….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요. (웃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못 받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그러면 내년부터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뛰겠죠. 하지만 올해 받게 된다면 정말 기분 좋을 거예요. 그 영광이 제게 허락된다면 많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MVP로 방점을 탁! 찍으면 정말 멋있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해외 진출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건 시즌이 끝나봐야 알 것 같아요. 에이전트 대표님이 많이 힘써주고 계시지만 당장은 결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가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모든 선수가 그런 꿈은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있기 때문에…. 한 2년만 젊었어도 욕심을 더 내 볼 텐데 말이죠. 여러 이유에서 시즌 마친 뒤에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모든 걸 쏟아붓고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있고요. (나이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겠어요.) 제가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제가 보여준 내구성과 꾸준함, 이런 건 다들 알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해외 진출 문제이기 때문에 저를 보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중략)


올해 일곱 명의 한국 메이저리거들이 멋진 활약 보여줬잖아요. 경기는 챙겨보는 편인가요?

네. 자주 보죠. 요즘에는 잘 못 보는데, 시즌 초반에는 거의 매일 틀어놓고 있었어요. (특히 같이 뛰었던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 경기를 자주 볼 것 같아요.) 승환이 형은 조금씩 나오니까…. (웃음) 그래서 거의 하이라이트로만 보죠. 승환이 형은 시즌 중에 한 번씩 영상통화도 하고 그랬거든요. 오히려 현수랑 병호 경기를 자주 봤죠. 현수랑도 자주 연락했는데요. 초반에 힘들었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잘할 거라고 얘기해줬어요. 성격도 워낙 좋은 애니까 잘해낼 거라 믿었습니다. 결국에는 이겨냈잖아요. 진짜 멋있어요.

 

 

내년 열리는 WBC(World Baseball Classic) 대표팀 예비명단에 포함됐어요. 태극마크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태극마크라…. 국가에서 불러주면 당연히 영광이죠. 그런데 저는 지난 15년 동안 조용히 살아왔잖아요. 긴 시간 국가대표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더 큰 틀을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많이 없었어요. 그동안 하루하루 제가 속해있는 이 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기게끔 노력하고자 하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요. (듣고 보니까 안타까운 얘긴 것 같아요. 안 해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게….) 그렇죠. 그리고 작년인가 재작년에도 한 번 될 뻔하다 안 되는 걸 보고 많이 아쉽기도 했고요. 그때도 ‘나는 그저 삼성이란 팀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발탁된 선수 중에는 이미 좋은 선후배들이 많기도 하니까 제 자리가 아닌가 싶었죠. (그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렇죠. 뽑아주시면 당장 짐 싸서 나가야죠.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뽑아달라 말하는 건 아니지만, 발탁된다면 당연히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뛸 거예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건 15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이 마음 몰라요. 그래서 대표팀에 대한 마음을 죽이고 살았던 거죠.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팬들의 기억 속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꾸준한 선수요. 꾸준함 하면 떠오르는 양준혁 선배님처럼요. 저도 그 일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KBO리그 기록을 바꿀 만한 어마어마한 애도 아니고…. 다만 지금까지 제가 해온 것들을 토대로 이대로만 가고 싶어요. (삼성에 꾸준함을 대표하는 선수가 많아요. 박한이 선수도 있고요.) 그렇죠. 한이 형도 있죠. 근데 한이 형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으니까 안 꼽은 겁니다. (웃음)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인데요. 최형우에게 야구란?

제 전부요. 20년 넘게 해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별의별 일이 많았어요. 정말 엄청난 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더군다나 앞으로도 야구 할 날이 더 남았기도 하고요. 은퇴하는 그 날까지도 야구는 제 모든 것이겠죠. (은퇴하고 나서는요?) 모르겠어요. 은퇴 후에는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실은 소박한 꿈이 하나 있는데요.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요. (농사요? 기상천외한 답변인데요?) 시골에서 논밭 가꾸고 싶습니다. 과수원을 하든 뭘 하든지요. 조용한 데서 살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꿈꿔온 건데요. 만약 농사짓게 되면 <더그아웃 매거진>으로 실한 작물 보내드릴게요. 얼마든지요!

 

 

실한 놈으로 부탁드립니다. (웃음) 끝으로 삼성 팬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올해 안 좋은 일이 많이 있었음에도 응원 많이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년까지도 잘해왔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부터 다시 하면 되고, 또다시 새로운 목표란 게 생겼으니까요. 기대 많이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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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3일, KBO리그 MVP 투표가 끝났다. 올해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득표제(다수결)가 아닌 점수제를 도입했다. 더욱 다양한 평가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효율적일 수도 있는 방법인 셈. 투표지는 이미 기자단의 손을 떠났다. 공개되지만 않았을 뿐 이미 그 주인공은 정해져 있다. MVP로 어떤 선수가 선정될지 귀추가 주목되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누가 되든, 이미 그 과정 안에서 후보들이 ‘최고’란 수식어를 받을 만한 활약을 펼쳤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MVP감’ 최형우, 그에겐 언제나 새로운 목표가 있다. 올 시즌 팀은 잠시 주춤했지만, 그의 후광을 여전히 빛난다. 새롭게 설정된 목표, 그리고 재도약을 준비하는 사자군단. 그 중심에는 ‘어금니’ 최형우가 있다. 사자는 먹잇감을 놓칠지언정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풀숲 사이로 보이는 사자의 눈매는 여전히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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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6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11월호(67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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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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